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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웃께서 북플에 사진을 올렸다. 몇 쪽인지 잘 모르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열린책들, 2002) 속에 있는 한쪽 전체를 찍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보았던 사본의 제목 몇 개를 그에게 일러 준 뒤, 또 다른 제목들도 언급했다. 말하자면 비드 존자(尊者)의 『세 번 출산하는 최고의 사건에 대해』, 『부드럽게 방귀 뀌는 기술』, 『배변하는 방법에 대해』, 『머리 빗는 법에 대해』, 『악마들의 조국에 대해』 같이 그가 그럴듯하게 꾸며 낸 것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선량한 참사회원의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라에빈은 서둘러서 알려지지 않은 이 지식의 보물을 복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우돌리노는 오토 주교의 양피지를 지워 버리고 나서 느꼈던 양심의 가책을 치유하기 위해 성실하게 라에빈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것을 필사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 작품들이 거기, 생 빅토르 수도원에 있는데, 이단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참사회원들이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한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바우돌리노가 언급한 사본의 제목이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다. 이런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는 중세 가톨릭교를 풍자하려고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우스꽝스럽게 꾸몄다. 중세 시대의 가톨릭교는 종교에 대한 풍자성이 강한 출판물을 이단 서적으로 규정했다. 가톨릭이 금서로 지정한 책은 불에 태워지기 마련인데 화형에 간신히 살아남은 책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수도원 도서관 비밀 장서실에 보관되기도 한다. ‘위험한 책’을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다. 이 책을 보려면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혹은 수도원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생 빅토르 수도원(St. Victor Abbey)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다. 생 빅토르는 마르세유에 주둔했던 로마 군인이자 순교자다. 그래서 수도원 외관이 요새와 흡사하다. 이 수도원의 도서관은 수많은 장서를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에코는 이곳 도서관에 이단 서적이 보관된 것으로 설정했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인간을 유혹하는 금기의 페로몬은 더욱 강렬해진다. 몇몇 수도승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읽으려고 했고, 금서를 필사한 사본들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은밀하게 유통되기도 했다. 가톨릭은 하느님의 절대적 권위를 조금이라도 무시하고, 희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를 신의 진리를 파괴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종교에 지배당한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풍자한 작가들이 등장했으나, 대부분 이단자로 낙인 찍혀 거대한 불길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물론, 그들이 남긴 서적도 함께. 그래서 무시무시한 시대 속에 끝까지 살아남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지성사, 2004)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라블레는 생전에 이 소설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가톨릭에 비판적인 태도를 밝혔다는 이유로 창작 활동에 제한받았다. 에코의 풍자는 라블레의 풍자에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블레는 에코보다 더 노골적으로 가톨릭을 어리석은 종교로 풍자했다. 그의 소설 《팡타그뤼엘》의 제7장은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된 서적에 관한 내용이다. 라블레는 중세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풍자하기 위해 식욕이 왕성하고 지식욕이 엄청난 거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창조한다. 팡타그뤼엘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파리에 오게 되는데, 생 빅토르 도서관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훌륭하다고 극찬한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제7장의 제목이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다. 라블레는 특유의 장광설로 도서관에 보관된 책 제목을 줄줄이 나열한다. 이 목록에서 재미있는 제목 몇 개를 골라봤다.

 

 

용자(勇者)들의 코끼리 불알
오르투이누스 선생 저, 모임에서 정직하게 방귀 뀌는 법
타르타레 저, 대변 배설법
건전한 배를 가진 배불뚝이
추기경의 암노새들을 세척하고 염색하는 방법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남녀 악마 소환법
다섯 탁발 수도회의 뚱뚱한 배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라블레는 보수적인 가톨릭교회 관계자,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들의 이름을 우스꽝스러운 책의 저자명으로 거론한다. 심지어 책 제목의 일부는 외설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책을 쓴 적이 없다. 라블레는 장서 목록을 허위로 꾸며냄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여 가톨릭 교리의 권위성을 무너뜨린다. 오늘날 같으면 명예훼손죄에 가까운 표현이다. 실제로 도서 목록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라블레와 함께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신학자들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라블레의 문장을 보는 신학자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에코가 라블레의 개방적인 태도를 모델로 자신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 수사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수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승인데 실제로 라블레도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윌리엄 수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 ‘희극론’의 진리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장님 수사 호르헤는 신의 교리 앞에서 웃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중세인들은 엄숙한 종교적 질서 속에서 생활했고 사제들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종교적 규율을 확립하고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웃음과 풍자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을 일깨우지만, 동시에 권위를 뒤흔든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이 가르치는 절대적 진리 위에서 만들어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금서의 존재가 두려워서 금단의 장소인 수도원 도서관에 비밀리에 보관했다. 라블레가 근엄한 수도사 출신이면서도 웃음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건강한 사회를 원했다. 그는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를 엄숙한 가톨릭교회가 아닌 교회 밖에 들리는 민중들의 웃음에서 찾았다. 이미 라블레는 윌리엄 수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중에서, 8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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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0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edgling 2015-09-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찾으셨군요~^^ 정말 책 제목이 비슷하네요~ 저는 읽다가 너무 웃겨서 올렸을 뿐인데..ㅎㅎ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페이지는 상권 148페이지 입니다~ 장미의 이름 명대사!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9-20 19:22   좋아요 1 | URL
fledgling님 덕분에 저도 몰랐던 사실을 알았어요. 장서를 보관한 곳이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이라는 사실에 살짝 소름 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