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001-751] 지금이 아니면 언제?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독일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나치스, 하켄 크로이츠,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반유대주의. 화가가 되고 싶었던 히틀러는 그림이 아니라 독일의 총통이 되어 ‘제3제국’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히틀러는 죽고 없지만, 그가 만들었던 작품은 폐기처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히틀러의 작품 속에서 살고 있고,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히틀러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스킨헤드다. 그들은 머리를 짧게 깎은 극우 인종주의자 집단이다. 그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거의 모든 나라에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통일된 강령은 없지만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의 자국 이민 반대와 인종 차별, 나치 찬양 및 반유대주의, 홀로코스트 부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치 추종에 따른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같은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스킨헤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가운데 극우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나치즘을 신봉하는 스킨헤드는 러시아에서도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와 경제상황 악화 이후로 유색인종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히틀러를 모방하는 집단적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토(Ghetto)를 형성한다. 그 곳에서 유대인과 유색인종은 격리당하고, 차별을 받는다.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프리모 레비가 살아 있었다면 전쟁의 향수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폭력이 사라지지 않은 세상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문학비평가 어빙 하우의 말처럼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움’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주인공 러시아계 유대인 멘델처럼 그도 ‘유대인’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을 탐색했고, ‘인간’의 의미가 총알과 포탄에 의해 학살되는 시대를 증언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그 전에 발표된 레비의 작품들,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주기율표』『멍키스패너』와 다르게 꽤 많은 입체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빨치산 부대의 여정을 재구성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빨치산 부대의 이야기다. ‘빨치산’은 유격대원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유래했다. 레비는 반파시즘 빨치산 부대에 활동하다가 파시스트 민병대에 잡혀 다른 이탈리아 유대인과 함께 악명 높은 폴란드의 모노비츠 수용소로 넘겨졌다.

 

유대인 빨치산은 싸우는 디아스포라(Diaspora)다. 그들은 나치스와 파시스트로부터 강제로 내쫓겼으며 학살과 가스실을 피하기 위해서 저항을 선택한다. 살기 위해서 총을 들기로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탈무드에 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 복수에 동참하기로 한다.

 

“살상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독일군을 죽이는 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하는 운명이니까 말이야. 난 반드시 유태인 빨치산이 존재해야 하고, 또 러시아 군대에 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내가 나치 하나를 죽임으로써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독일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말야.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만 비로소 인간의 가치와 존재가 증명되는 현실! (146쪽)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추방’과 ‘고통’을 삶의 동반자로 감내해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한줄 한줄 배어나온다. 유대인의 적은 나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빨치산 부대 안에서도 유대인을 향한 깊은 앙금과 오해가 존재한다. 유대인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빨치산도 있을 정도로 유대인은 어디에 소속되지 못하는 전쟁의 약자였다. 원래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비롯되어 뭔가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를 가졌지만 유대인들의 한없는 유랑과 겹치게 되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유대인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바로 유대인 출신 가수 마틴 폰타쉬가 쓴 노랫말이다. 그는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포로가 되어 유대인 게토에서 사망한다. 게달레 대장이 들려주는 마틴의 최후는 ‘유대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치욕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나치 친위대 장교는 유대인은 총살형, 빨치산은 교수형이라는 게토의 규정대로 마틴을 총살형과 교수형을 내린다. 그러자 마틴은 죽기 직전에 장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가사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장교는 마틴이 노랫말을 쓸 수 있도록 30분의 시간을 준다. 정확하게 30분 내에 노랫말은 완성되고 교수형을 받고 사망한 그를 향해 권총이 발사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게달레 대장은 마틴의 복수를 다짐했다. 게달레도 음악을 좋아하는 유대인 빨치산이다. 그의 양쪽 어깨에는 총과 바이올린이 함께했다. 틈만 나면 바이올린을 즉석으로 연주했고, 실력도 좋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동지를 위해서 게달레는 나치친위대 장교를 처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마틴의 노랫말이 적힌 종이도 찾게 된다. 게달레는 마틴의 노랫말에 자신의 구슬픈 바이올린 선율을 입혀 위대한 가수이자 용감했던 빨치산 유대인을 추모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229쪽)

 

안식처가 보이지 않는 추방과 학살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멘델처럼 저항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유대인을 향해 사람들은 그들의 이중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유대인의 생존의지는 안식 없는 삶,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극복하는 동시에 ‘인간’이라는 고유한 의미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총구가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살아야하는 수용소 생활은 자유를 박탈하는 인류의 범죄이다. 유대인을 짓밟은 나치의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총을 쥘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거주국과 조국 사이의 불안한 ‘균형’의 선 위에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대개 세 가지 대응방식을 보인다. 조국으로 귀환해 그 재건을 지향하거나, 귀환을 포기하고 거주국으로의 동화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거주국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기본적 인권과 민족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것은 마지막 지향성과 연관된다. 이제는 불가능하기에 귀환도 동화도 모두 거부하며 국민국가의 자명성과 폭력성에 대해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실향과 생존 투쟁은 단순한 폭력적 저항이 아니라 삶의 미래를 지키려는 선택으로써 적극적 저항이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소비에트 부대가 무고한 폴란드 인을 학살하고 매장한 카틴 숲 사건도 언급하고 있다. 스탈린은 서유럽 침략을 끝내면 독일군이 자신들을 향해 진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령 중이던 동부 폴란드 지역에서 공무원, 지식인, 의사, 예술가 등 2만여 명 이상의 폴란드인을 카틴 숲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희생자들은 소비에트 부대에 의해 사회 지도층 인사로 분류된 사람들로 훗날 러시아에 대적할 빨치산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형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단순히 유대인 빨치산 부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레비 자신을 포함시킨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집단 자화상이다. 그리고 전쟁의 광기가 인간을 학살을 감행하는 잔인한 짐승과 그들에게 핍박받는 비참한 짐승으로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가치, 폭력과 평화, 역사에 대한 망각과 책임 등의 문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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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7-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세 권을 읽었네요. <지금 아니면 언제?>를 레비의 다음 책으로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빨치산 게릴라를 다룬 책을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