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
양윤선.이소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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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슬랩스틱 희극인이자 무성영화 감독 찰리 채플린. 그의 1936년작 「모던 타임즈」는 산업화의 폐단과 그 속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절묘하게 풍자한 역작으로 불린다. 70여년이 넘도록 각기 다른 국가에서 각기 다른 역사가 생성되는 동안에도 항상 현시대의 고민에 투영돼 재해석 되고 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커다란 시계는 생산과 효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의 삶을 상징한다. 컨베이어벨트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찰리 채플린 분)은 하루 종일 양손에 든 공구로 나사못을 조이는 단순한 일을 반복한다. 자본가인 사장 지시로 작업반장은 기계의 속도를 점점 더 높인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생산성이 증대되고 사장은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공장의 화장실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 조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동급식기계는 점심식사의 여유조차 사치인 노동자들의 입에 음식물을 투여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조여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과 작업반장이 컨베이어벨트의 커다란 톱니바퀴에 끼여 이리저리 돌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그야말로 슬랩스틱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 입은 옷의 가슴팍에 달린 단추를 나사못으로 착각해 조이려는 장면에서는 웃음보가 터진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멈춰선 채 정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는 국회를 보노라니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에 국회의원이란 단어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효율성을 제고해야 하는 산업화, 현대화의 산물이라고 보면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리라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채플린이 나사못을 조이듯 무의식으로 의사봉을 휘두르고, 눈을 치켜뜨며 습관처럼 호통만 치니 말이다.

 

다만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면 둥글게 돌아가는 시간이란 궤적에는 얽매이지 않는 점이랄까. 급한 것이란 없다는 듯 매년 같은 행동을 여유롭게 반복한다. 국민에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은 아예 머릿속에 없는 듯 대통령이나 권력자에게 고용된 것인 양, 그들이 급여를 주는 것인 양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왜 싸울까?’ 매일 저녁 정치인들이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 채널을 돌리고, 선거 때마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을 하는 건 결코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만 정치에 관심이 있을 뿐이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 중 정치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마음 깊숙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정치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국익을 위한 정치가 되기를 모두가 소망하고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정치에 많은 불신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 어떤 사람이 해도 ‘정치가 달라질 것이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이 우리 국민이 깨어있지 못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고 이대로 놔두면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고, 정치 자체에 대한 염증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굳어져버렸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 정치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려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국회는 또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제대로 알긴 할까.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의 공저자이자 국회의 24시간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국회방송 소속 양윤선, 이소윤 기자는 국회의원들을 ‘용병’에 비유한다. 나를 대신해 싸워 줄 용병. “국회의원은 지역과 직능을 대변한다. 모든 사람이 링에 올라갈 수는 없다. 대표 선수를 올려 대신 싸우게 하는 이유다. 우리는 코치가 되어 선수를 지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일은 언제 하나 싶지만 국회의원은 원래 ‘싸우는 사람’이다. 하나의 법안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이를 조율하고 타협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인들은 그저 싸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흔히 언론과 브라운관을 통해 본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저자들은 '내 한 표가 무엇을 바꾸겠나'라는 생각으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치는 미래를 위해 미리 들어놓는 보험이고, 투표행위는 보험료라는 정치인의 말을 인용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악순환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차선, 차악, 차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점진적인 정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기를 꿈꾸며 바른 민주주의의 정치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얻고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혜택과 국익을 위한 정치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감정을 만든 정치꾼들에게 속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잘못된 정치를 바꾸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도약하는 귀한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중요한 정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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