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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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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인류 최초의 범죄

 

 

 

 

 

렘브란트 반 레인 「아담과 하와」 1638년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 때 사람이 살 수 있는 낙원을 세웠다. 그곳에 두 나무를 심었는데,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의 나무였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그중에서 선악의 나무에 열린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뱀이 등장하고 사람을 유혹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하와가 먼저 선악의 나무열매를 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낙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인류 최초의 부부는 이렇게 해서 힘든 노동과 고통, 죽음을 맛보게 된다.

 

아담을 미혹해 뱀의 말을 듣게 한 하와는 왜 금지된 선악의 열매를 먹었을까? 그것은 “죽지 않고 하나님같이 된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들도 하느님처럼 되고 싶었다. 선악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뱀의 유혹에 사로잡힌 나머지 영원불멸한 하느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인류 최초가 저지르는 범죄(?)의 한 순간을 묘사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 아담이 선악의 열매를 입에 대려는 하와를 제지하려고 한다. 아담은 손가락 하나를 하늘로 올리며 하느님의 명령을 하와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하와는 뱀의 거짓말에 속아 하느님의 지시를 어겼을 뿐 아니라 아담도 공범자로 만들어버렸다.

 

렘브란트는 최초의 범죄가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보지 않았다. 뱀이 유혹했을 때 아담과 하와는 탐스러운 열매 앞에서 망설였으며 ‘정말 먹어도 될까’라며 갈등했음을 보여준다. 순간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지시하신 말씀을 거역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Scene #2  우리 뇌에 살고 있는 나기만씨

 

인간의 감각기관은 현실을 왜곡 없이 인식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보고 들은 정보를 뇌가 ‘인식’하는 과정에선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을 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는 “기만과 간파의 반복교차가 진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기만과 간파가 이루어지는 관계의 행위는 이미 창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낙원에서 펼쳐진 ‘기만하려는 자’(뱀)과 ‘간파하려는 자’(아담)의 대결은 결국 ‘기만하려는 자’가 이긴다. 하지만 이 대립의 판도를 바꾸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자기기만하는 자’(하와)였다.

 

기만과 자기기만의 문제는 도처에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특히 남녀 간에도(!) 자주 발생한다. 조직 차원에서의 자기기만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다. 인간 몸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갈등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우리 뇌 안에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이성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나(자기)기만’씨가 있다.

 

우리 의식이 뇌에 전달된 정보를 왜곡하고 거짓 기억을 만들면서 부도덕한 행위조차 합리화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뇌는 좋은 의식은 살리고 나쁜 생각은 지움으로써 더 행복해지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자기기만의 사고 회로는 무조건 상대방을 속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분을 좋게 하려는 방어적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공격적 본능의 방편으로도 사용된다. 지나친 자신감의 표현이나 과시적인 행동, 과잉통제 등이 그렇다. 단순히 거짓말하는 차원을 넘어 왜곡된 상황을 사실이라고 스스로 믿는 게 살아가는 데 유리한 점이 많다. 기만이 발각되더라도 ‘나도 몰랐다’는 식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Scene #3  자기기만의 위험성

 

하지만 기만의 유혹에 빠져버린 하와가 타락한 것처럼 자기기만이 주는 혜택은 일시적이지만 대가는 너무나 클 수 있다. 사실 남과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얻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자기기만을 한다거나 기만술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사회 전체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전략이 위험하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상대방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 막연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직언을 계속 무시하면 부정적인 것은 걸러지고 긍정적 내용만 경영층에게 전달되는 조직의 침묵만 아니었다면 1986년 챌린저호는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6년 1월 28일 승무원 7명을 태운 미국의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폭발 확률에 대한 내부 견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낙관적 태도로 일관하던 중간 관리자들이 실무 연구원의 의견을 상부로 전달하지 않은 자기기만의 침묵으로 인해 참사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단 내의 자기기만을 그대로 방치하면 똑똑한 다수가 모였다고 해도 멍청하고 어리석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라.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한 무슨 말을 하면 참석한 각료는 물론 전문가들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그 말에 토를 달기 어렵다. 회의에 앞서 많은 준비했을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대통령 결정이 맞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아무리 말해 봤자 대통령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절대 권력자 앞에서 어쭙잖게 토를 달았다가 ‘뼈도 못 추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참석자 입을 얼어붙게 만든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면서도 한 번도 언급되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고 만다. 이러다 보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토론은 사라지고 일방적 훈시와 설교만 이어진다.

 

생존을 위한 공격적 기능의 자기기만 또한 문제가 있다. 동물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몸을 부풀리는 것처럼 자신을 과대포장하다 보면 엉뚱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자신의 배를 부풀리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다른 개구리보다 몸집을 크게 만들기 위해 배를 크게 하다가 끝내 터져서 죽고 만다.

 

자신의 현재를 과시하기 위해서 과거를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은폐하는 기만적 행위를 하게 된다. 3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북한의 김씨 일가 우상화와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의 모습에서 집단적 기만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둘 다 공통적으로 자화자찬과 자기정당화를 위한 거짓 역사 서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거짓 역사 서사는 집단의 통일성을 이룩하는 데 쓸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북한 우상화 작업은 북한 내부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있으며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은 설령 거짓이라고 한들 일본인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 자기 조상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Scene #4  똑똑하고 착한 악마가 되라

 

저자는 "과신과 무의식을 피하려고 노력해야하고, 쉽지는 않지만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한다. 자기기만의 늪에 쉽게 빠질 수도 있지만 조그만 더 꼼꼼하게 자신의 편향을 알아차린다면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기기만 편향도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집단적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과신과 무의식의 만남을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최악의 사고(思考)가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 전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 집단 내부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탁월한 결정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집단적 자기기만 사고를 막으려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생각이던 자유롭게 말하며 난상토론을 벌이는 브레인스토밍에서도 이런 역할이 중요하다. 바로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이다. 데블스 에드버킷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결국 우리 스스로 똑똑하고 착한 악마가 되어야 한다. 우리 뇌 속에 숨어 살고 있는 ‘하이드’(Hide) 나기만 씨와 싸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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