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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 불평등한 사회의 '비참한 사람들'

 

지난해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장기 흥행하며 6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한국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영화를 본 셈이다. 이 ‘감동의 물결’에 대해 저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많은 매체들이 대선 패배로 인해 ‘멘붕’에 빠진 야권 후보 지지자들이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영화를 보며 ‘힐링’한다고 진단했다.

 

레미제라블의 ‘비참한 사람들’은 분명 이전에 혁명도 이룩했고 심지어 왕도 갈아치웠다. 그랬음에도 이들이 다시 실패할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전히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역시 거리의 기억과 정권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개개인은 먹고살기가 나날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태백’ ‘88만원 세대’는 여전한 장기침체와 승자독식 경쟁체제로 인해 30대가 되어서도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해도 아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푸어’, 겉보기에는 번듯하지만 빚에 허덕이는 중산층 ‘하우스푸어’가 ‘서민’ 대다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대두되었을 정도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한국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말했다. 이렇듯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향한 일종의 패배주의적 분노는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분노에 가까운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 비협동적 자아의 등장

 

불평등이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사회 대부분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 원인 중 하나다. 선점하지 않으면 상대가 가진다. 지고 나면 재기가 어렵다. 이 같은 사회 시스템은 경쟁만 더욱 강화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에 협력의 미덕이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협력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협력에 참여하지 않은 사회 구성원의 등장이 문제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오늘날 사회에 ‘비협동적인 자아’를 가진 유형이 출현했다고 분석한다.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많은 복잡한 사회를 감당하지 못해 움츠러든다.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뒤로 물러서면서 차이를 느낀다. 여기서 오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해진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은 타인의 일일 뿐이다. 이런 상황인데 과연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협력’은 공동체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삶의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의 논리가 개입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문제는 승자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독식하는 현상이다. 패자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면 패자는 영원히 절망의 공간에서 시간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패자는 패자끼리, 승자는 승자끼리 연대하는 갈등관계가 조성된다. 세넷은 그러한 ‘연대’가 오히려 협력을 방해했다고 단언한다. 일반적으로 ‘연대’와 ‘협력’은 동등한 의미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연대’라는 말은 묘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는 광고로 ‘연대’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상품을 홍보하는 광고에 유명한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한다. 광고 속 연예인은 상품을 사용한다. 이 상품이 좋으니까 구입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지만 광고가 나간 이후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 바로 '연대'다. 광고의 진실은 ‘이 상품을 사용해야 유명 연예인의 팬이다’를 넘어서 ‘상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연예인의 팬은 아니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팬클럽이 지니고 있는 연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그 스타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스타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내포한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 연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공동체가 연대를 한다는 것은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이라는 전제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오히려 연대는 경쟁의 조건이 되면서 협력은 밀려난다. 더욱이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특히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쓴 부족주의가 만연된 사회일수록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회 구성원과 어울리지 않고 갈등을 야기한다. 그리고 승자 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남을 짓밟아서라도 더 앞서 나가려는 경쟁을 유도한다.

 

 

“협력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만 판에 박힌 행위에 붙들려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개발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세넷은 인간에게 협력 유전자가 ‘본성’으로 각인돼 있지만 이를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력을 단순한 윤리적 가치로 간주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쓰는 실기(實技, craft)로 보는 것이다.

 

 

 

 ♣ '비협동적 자아'가 많은 아마추어 사회

 

그렇다면 우리는 협력을 기술을 어떻게 배워야하는가? 세넷은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를 하는 장인들이 몸을 통해 기술을 ‘체화’하듯 사회적 관계의 기술 역시 그 리듬을 몸으로 익힐 수 있다고 말한다. 세넷이 기획중인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Homo faber project) 1부작인 <장인>에 보면 장인은 그 어떤 보상과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자기 일에서 스스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에게 도구는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이미 한 몸이다. 한 몸이 된 도구는 자신의 정신이요 신체다. 니체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 망치를 들었는데 협력의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에는 무엇을 쥐어야 하는가? 특별히 협력을 위해 도구를 들 필요는 없다. 장인 정신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지속적인 헌신을 경험하면 된다.

 

세넷의 생각은 실질적인 협력의 본질을 잃은 채 ‘공감’, '연대‘만 강조했던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기술을 제대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장기간동안 반복되어야 한다. 이미 <장인>에서도 밝혔지만 세넷은 장인적 지속성을 강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정의한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액체 근대’ 사회 속에서 협력의 기술을 지속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은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적인 담론으로만 남을 뿐이다. 헌신의 원리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반세기동안 좌우 이념 대립의 갈등 골이 깊어진 우리 사회에 장인적 협력의 토양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의구심이 생긴다. 특히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주종 관계로 따지는 갑과 을(甲乙)의 갈등은 지속적인 헌신의 체득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될 수 있다. 김홍중 <문학동네> 편집위원은 「함께 읽기: 연대를 넘어 협력으로 - ‘사회학적인 것’의 재구성」에서 세넷의 협력 정신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샹향식 변화 모델이라고 평가한다. 갑을 관계의 갈등이 지속되고 고착화된다면 상향식 변화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장인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비협동적 자아’를 가진 아마추어가 너무 많다. 아직 협력의 정신을 지닌 장인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연대’, ‘공감’이라는 본질 없는 공허한 단어만 있는 쓸모없는 연장을 손에 쥔 채 협력 부재의 원인을 그 연장 탓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헌신’의 연장이 우리 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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