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열린책들 출판사 공식카페  

http://cafe.naver.com/openbooks21

 

 

 

 

 

 

 

 

 

원래는 인터뷰 내용이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두번째 내용이 윤우섭 교수가 번역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상처받은 사람들>에 관해서 

다뤄지고 있어서 아직 읽어보시지 못한 분들에게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대신 세번째 인터뷰 내용을 올리는 것을 끝으로 스크랩을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이 책 아직 안 읽었거든요  , , , ^^;;) 

 

세번째 인터뷰 내용은 ' 번역 '  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되었으면 하네요.  

 

 


카페지기:
 

번역을 할 때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 

 

윤우섭:

역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원칙이지만 사실 너무 힘들어서 못 지킨다. 역자는 작가가 쓴 것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해줘야 한다. 그 과정에 역자가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쓰고 궁리를 하다보면 역자가 드러나게 된다.

번역을 할 때, 언어의 구조 때문에 우리 말과 상응하지 않는 말이 있고, 적절한 낱말을 찾아서 배열하기 힘든 것도 있다, 그런 문제들이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의역을 하거나 긴 문장을 잘라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을 많이 하다보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체가 사라져버린다. 물론 번역을 하면서 고유한 문체를 그대로 살린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우리 말 속에서 어순의 변동이라던지 하는 방법을 통해, 작가가 자신의 모국어로 썼던 작품 속에서 나타난 것들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게, 가급적이면 의역을 덜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의역을 하면 할수록 역자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피하려고 하지만 힘든 일이다.
 



카페지기:

작품(「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다보니 각주가 많더라.  

도스또예프스끼의 이전작이나 혹은 생애에 관해서.


윤우섭:

주를 달수밖에 없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이 작품엔 주가 꽤 많은 편이다.

 
 



카페지기:

그런 것도 역자의 존재를 드러낼까 우려되는 사항 중의 하나인 것인가?  

주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등.


윤우섭:

그렇다. 작품을 읽다가 따로 각주를 읽어야지 않는가.


 

카페지기: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윤우섭:

한편으론 맞는 얘기다. 번역을 아무리 잘해도, 원전이 어떻든지 간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왜곡과 각색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원래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서 자기 해석을 얹어서 원전을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엔 충실한 번역으로 작가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겠다고 시작했다가도 자기의 글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해야 한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면서도 우리가 그것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번역은 반역이다). 가능한 일이다.

 


카페지기: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윤우섭: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긴데, 역자가 작품과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작품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서 번역하다보면 독자들에게 작가를 이해시키겠다고 하는 욕구가 너무 많이 발동할 것 같다.

 


카페지기:

윤우섭 교수님께 러시아 문학, 도스또예프스끼는 어떤 의미인가

 


윤우섭:

작년부터 백두대간 산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문학을 하다보니 꼭 백두대간 같은 느낌이 든다.

백두대간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도 끝난 게 아니다. 또 가야 하고, 또 넘어야 한다. 그리고 구간이 끝나면, 다음번에 또 넘어간다. 봉우리를 넘었다 내려가고, 인생역전과 비슷하게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길을 가다보면 여기저기 야생화가 피어있다. 힘들게 오르다가 그 과정 속에서도 야생화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진 찍어야지 하며 피곤했던 산행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고, 이런 것들의 연속이다.

언젠가 백두대간 산행은 끝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 600, 700km에 이르는 길을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중에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을들, 경치들을 보며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한다.

처음엔 힘들어서 야생화가 안 보였다. 땀이 뻘뻘 나니 옆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걷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야생화가 눈에 들어오더라.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이파리나 줄기가 요만하고, 쑥부쟁이 이런 것들이 내게 인사하는 느낌. 요새 소나무가 재선충 때문에 고생이 많은데 동해안에서 소나무가 하늘로 뻗어있는 걸 보면서도 아,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싶고, 이렇게 인식이 바뀌는 거다.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것, 러시아 문학을 하며 그런 느낌을 받는다. 러시아 문학을 대하며 가지는 감상이 그런 것들이다.

러시아 문학은 현재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죄와 벌」,「상처받은 사람들」등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작품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현재와 동일하지 않나. 오늘도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오늘도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았고. 그런 것들을 풀지 못하고 하루하루 넘어가고. 그럼 그대로 쌓이고 망각한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 사회가 조금 더 복잡해지고 서로의 위치가 달라지긴 했지만 이 작품에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며 쓴 것들은 ㅡ 욕심이나 이기심, 집착과 같은 인간의 행위들 ㅡ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현재성, 그것이 바로 19세기 작가들의 위대성이다.

 
 


카페지기:

세계문학 번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윤우섭:

한국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우리 말들을 자꾸 찾아서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먼저 우리 말을, 아름다운 우리 말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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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1-0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문학이 백두대간 같은 느낌이라는 역자의 말은 어디에나 적용이 될 듯 싶기도 하네요.
하물며 독서 하나만 놓고 봐도 책을 읽으면서도 놓치던 것들,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을 어느날 문득 발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그야말로 유레카~~를 외칠만한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걸 성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우리 말은 번역에 있어서 도구로 이용되지만 그 도구가 부실하면 번역 자체도 조잡하고 난삽해 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번역 작업이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네요. 그저 백두대간을 열심히 오르는 수밖에요..^^

cyrus 2011-01-07 12:4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번역가에게도 나름 번역 일에 대한 고충 끝에 나오는 결과물인데
독자들은 번역의 결과의 정도에만 따지고 평가하기 마련이죠,
저도 예전에 그런 독자 중의 1人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