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 신자유주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복음 23:44)

 

 

 

세월이 지나면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상도 변한다. 경제학이 학문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던 300년 전의 중심 사상은 시장 자유주의였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만 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생산이 늘어나는 일도 없어지고, 당연히 심각한 불황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 지상주의를 믿던 경제학이 치명적인 일격을 맞았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가격이 내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가 늘어나지 않았다. 공황의 여파로 이미 소비자의 구매력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시장도 전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유례없는 경제 공황 앞에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시장의 기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다. 정부가 경제 각 부분을 적절히 통제하면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힘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지상주의를 그 바탕으로 한다. 정부는 완전 방임 상태를 추구한다. 소득 재분배는 물론, 복지 정책도 정부의 역할에서 배제된다. 다시 시장에 대한 믿음이 부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주목받으면서 시장이 부활했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남겼다. 대표적인 문제가 빈곤불평등이다.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자, 이것을 가지지 못한 집단은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가장 바람직한 경제사상으로 행세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경제 강대국들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개발도상국들이 이 원리를 따라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바로 이런 상식과 통념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허구적 위상을 폭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자본주의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시장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치밀하게 해부하면서 신자유주의 찬양론의 문제점을 드러내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무역 중심의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해서 경제가 좋아진 선진국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경제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은 건국 초기 시절에 자국 기업을 보호했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산업육성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자 관세장벽을 쌓아 올리고, 각종 산업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장차 성장 잠재력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 산업이 유치산업이다. 경쟁력이 갖추어진 다음에 자유무역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은 18세기 당시 유럽보다 산업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뒤처지고, 자본을 수입해야 했던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창시자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포함한 여타 선진국들도 지금은 후진국들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설교하고 있지만, 그들이 후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그런데 보호무역주의를 이끌었던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패권을 잡자 자유무역주의의 전도사가 됐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산파역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잇달아 맺었다. 장 교수는 개발도상국들에 다가가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장점을 설파하는 선진국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비유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남자를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는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의 경제 자유화를 요구한 사악한 삼총사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나온 지 벌써 십 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 없이 도입했다. 국유화와 복지정책은 무조건 나쁘고, 민영화와 무한 경쟁사회는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경제 강대국(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유 시장 교리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탓이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10주년 특별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는 아직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앞잡이이자 희생자로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에서는 이 책을 비판하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견해가 있었고, 놀랍게도 반미,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불온 도서로 지정된 적도 있다. 이 책에 찬사를 보내든 비난을 하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으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이 거침없는 흐름에 너무 무감각한 것이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철저히 순응한 개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면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는 비참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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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06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정부에서 새롭게 다시 나왔네요. ^^
예전 정부에서 대표적 불온서로 낙인 찍힌 책....^^ 그나마 세상이 약간 좋아진 듯 합니다. ^^

cyrus 2018-09-07 19:43   좋아요 1 | URL
80년대에는 금서를 숨어서 몰래 읽었다면 요즘은 ‘금서목록=베스트셀러‘입니다. 장 교수의 책은 금서로 지정된 이후에 더 많이 팔렸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