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 삼천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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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는 아주 해묵은 문제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 그래서 근절도 쉽지 않다. 인종 차별의 근원에는 서구 사회의 백인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인식은 고용, 교육 등 전반에 걸친 인종 갈등으로 이어진다. 서구 사회에는 사실 인종 차별이 일상화돼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인종 차별이 벌어지는 사회다. 미국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간단치 않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남북전쟁 이후로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 차별은 여전히 극심한 양상을 보인다.

 

인종, 피부색에 대한 차별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그러나 오해와 광기로 인한 비극은 늘 되풀이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노예제도는 15세기 유럽인의 신대륙 발견 및 식민통치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됐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제국은 19세기 초반까지 노예무역으로 떼돈을 벌었다. 목화 농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쇠사슬에 묶여 미국 남부로 끌려온 흑인들은 백인 농장주에 의해 착취당했다.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을 외치는 미국인들은 KKK(Ku Klux Klan)라는 비밀 폭력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만약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시청자라면 흑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일 것이다. ‘갱(gang)’, ‘폭력’, ‘마약’은 흑인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흑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20세기 초에 이미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한 백인의 무지와 편견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윌리엄 에드워드 B.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다. 1905년에 그는 나이아가라 운동을 통해 즉각적인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급진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1915년에 듀보이스가 쓴 《니그로》(삼천리, 2013)는 흑인과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화된 편견을 대담하게 뛰어넘는 책이다. 듀보이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흑인과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특히 만연하고 심각한 이유는 피부색 또는 외모 때문이다. 듀보이스는 ‘인류의 동일성’을 근거로 인종을 정형화하거나 인종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과 역사적 용례에 따르면, ‘니그로’는 아프리카의 더 검은 피부색 사람들, 즉 갈색 피부, 곱슬곱슬하거나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두텁고 때로는 뒤집힌 입술, 얼굴에서 턱 부분이 발달된 경향, 길쭉한 두상이 특징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렇지만 이런 유형의 니그로도 고정불변이거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피부색도 무척 다양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주 새까맣거나 남빛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곱슬머리에서 풍성한 복슬 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얼굴 각도와 두개골 모양도 무척 다양하다. (14~15쪽)

 

 

우리가 타자를 지각할 때 거의 자동으로 고려하는 요인이 성별, 나이와 함께 인종이다. 이처럼 인종에 대한 정보는 상대방을 지각하고 평가하는 데 최우선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암암리에라도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서로 다른 피부색과 문화를 지닌 타자에 대하여 동일성을 강제하는 폭력은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잦은 내전과 질병, 기아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의 발원지 아프리카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대륙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광활한 대자연과 풍부한 광물 자원을 토대로 무역도 발달했었다. 《니그로》는 아프리카 문명의 찬란한 문화와 업적만을 상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식민지시대 이전부터 행해지던 서아프리카 내에서의 노예무역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통념과는 달리 대다수의 흑인 노예들은 백인 사냥꾼에 잡혀 온 것이 아니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베냉, 다호메이, 아샨티 왕국은 약소 아프리카 부족 마을을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팔았다. 서아프리카의 아프리카 왕국들은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 노예 상인들의 높아진 수요에 맞춰 노예무역을 확대했다. 아프리카에서 구하기 힘든 총과 화약, 술 등을 얻기 위해서다. 듀보이스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역사에서 흑인 편견과 탄압의 원인을 찾는다. 그는 오랜 내전과 노예무역 그리고 식민지국 수탈로 인해 뛰어난 문화유산과 풍부한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가 ‘거대한 노예 시장’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100여 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듀보이스가 지적한 대로 흑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과 분리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 서두에서 “완벽한 흑인 역사를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라고 썼다. 이제는 아프리카의 역사, 다양한 아프리카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 형성 배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사라진 평등을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100년 전 듀보이스가 바라본 인종차별과 오늘날 인종차별은 다르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단순히 편견과 인식의 잔존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 종교 등이 조장하는 체계적인 ‘투명한 사회제도’로 작동된다. 흑인에 대한 차별 극복과 자유에의 여정은 아직 미완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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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9 20:37   좋아요 0 | URL
‘백인 남성/백인 여자‘를 구분하는 젠더 이분법이 있듯이 ‘흑인 남성/흑인 여성‘을 구분하는 젠더 이분법도 있어요. 그런데 백인을 선호하고, 흑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과 차별로 인해 흑인 남성/여성은 억압을 받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책에 흑인을 통제하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사례들이 나옵니다. 사례들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사는 이민자 중에 유색인들이 있어요.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들을 통제하는 편견과 차별이 형성될 것입니다.

AgalmA 2018-05-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진출해 지금의 인류 기원의 씨가 된 걸 생각하면 인종주의는 진짜 웃긴 구분 아닙니까. 뿌리와 근원 그렇게나 좋아하는 서양이 이건 왜 간과한단 말입니까~ 하여간 인간은 참 자기 믿고 싶은대로 주장 개진하면서 객관 운운하는 거 맘에 안 들어요!
이런 논의에는 항상 울분이 터져서(아, 필립 로스...노벨상 못 타고 가셨네요ㅜㅜ)...좀 격노 어투인데 cyrus님께 불쾌감을 드리지 않았으면 싶네요^^;;

cyrus 2018-05-24 14:28   좋아요 1 | URL
요즘 중세철학, 중세 역사를 다룬 책을 보고 있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수도사들이 논쟁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에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옵니다... ㅎㅎㅎ 제가 저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답답해서 못 살았을 거예요.

필립 로스. 제가 유일하게 읽은 그의 작품이 <울분>입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 중 최고령 작가가 밀란 쿤데라 아닌가요? 쿤데라 올해 나이가 아흔일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