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작품에 대한 줄거리, 결말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토 준지 컬렉션 9화 첫 번째 에피소드

화가

 

 

 

 

 

모리 미츠오는 인기와 실력 모두 겸비한 화가이다. 그는 자신의 개인전이 열린 전시장에서 신비한 매력을 가진 여인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토미에. 화가는 토미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알려달라면서 접근한다. 토미에는 그림 속 여자 모델이 멍청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델이 된다면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추파를 던진다.

 

 

 

 

 

 

토미에는 이 세상에 자신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진 여자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표현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화가는 토미에의 초상화를 완성했지만, 토미에는 그 그림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면서 조소한다. 그녀는 화가의 자존심을 꺾어놓고 유유히 떠난다. 체면을 구긴 화가는 전시회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완벽한 토미에’를 그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화가는 토미에가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려내지 못해 슬럼프에 빠진다.

 

 

 

 

 

화가는 친구로부터 조각가 이와타 타미오의 근황을 알게 된다. 조각가는 새로운 모델을 만난 이후로 연작 조각상을 발표하여 큰 주목을 받는다. 그 연작 조각상의 제목은 ‘토미에’다. 화가는 조각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조각가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조각가는 ‘토미에는 나만의 것’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한다. 토미에의 미모에 완전히 홀린 화가는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조각가를 죽인다. 화가는 조각가의 작업실에 들어갔으나 그곳에는 산산조각이 나서 널브러진 토미에 조각상들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서 있는 토미에가 있었다. 토미에는 조각가가 조각상 전부 부숴버렸다고 울면서 하소연한다. 토미에의 가짜 눈물에 홀린 화가는 ‘완벽한 토미에’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화가는 토미에의 매력에 완전히 지배당한 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토미에는 화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모두 나를 죽이려고 해요.”

 

 

화가는 토미에에게 완성된 그림을 보여준다. 토미에는 그림 속 여성은 자신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그를 가리켜 ‘최악의 화가’라고 말하면서 멸시한다. 화가는 자신을 비웃는 토미에의 모습에 분노를 폭발하고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인다. 미쳐버린 화가는 토미에의 시체를 토막 낸다. 그러나 토미에는 죽지 않는다. 잘린 토미에의 신체 부위는 세포처럼 재생하여 ‘새로운 토미에’가 되어 자란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1 : 토미에 Ⅰ》(시공사, 2008)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2 : 토미에 Ⅱ》(시공사, 2008)

 

 

 

 

『화가』《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1 : 토미에 Ⅰ》에 수록된 이야기다. 토미에는 이토 준지 작품 속 등장인물 중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토미에는 유혹으로 남자를 낚아다 파멸에 이르게 하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다. 토미에의 외모에 홀린 남자들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느끼고 있으나 그것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녀의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한 남자들은 살인 욕구를 느껴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러나 토미에는 불사(不死)의 존재이다. 토막 난 신체 부위는 ‘새로운 토미에’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부활한 토미에‘들’은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며 남자들에게 접근한다.

 

 

 

 

 

 

 

 

 

 

 

 

 

 

 

 

 

 

* 핼 포스터 《강박적 아름다움》(아트북스, 2018)

 

 

 

 

 

 

 

 

 

 

 

 

 

 

 

 

* E. T. A. 호프만 《모래 사나이》(창비, 2017)

* E. T. A. 호프만 《모래 사나이》(지만지, 2011)

* E. T. A. 호프만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

 

 

 

 

토미에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화가의 모습은 ‘강박적 아름다움(convulsive beauty)’을 재현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미술사가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 미술을 재정립하기 위해 ‘강박적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제시한다. ‘강박적 아름다움’은 ‘익숙한 낯섦(uncanny, 언캐니)’이 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언캐니의 정의를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의 저서를 참고해야 하지만, 이 언캐니를 문학적 효과로 적절히 활용한 E. T. A.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수월하다(프로이트가 호프만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언캐니’ 개념을 도출했다고 알려졌는데, ‘언캐니’를 제일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심리학자 에른스트 옌취다). 《모래 사나이》에 언캐니가 산출하는 감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드러난다. 소설의 주인공 나타니엘은 자신이 사랑하는 올림피아와 입을 맞추는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나중에 나타니엘은 그녀의 정체가 사람이 아니라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미쳐버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언캐니를 설명하자면, 언캐니는 ‘억압된 것이 어떤 다른 경험 때문에 다시 나타나는 상황’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에로스(eros)를 삶의 욕망, 즉 ‘삶 욕동’으로 이해하여 찬양했다. 즉 삶과 아름다움을 향한 상승 욕구를 샘솟게 하는 것이 에로스이다. 그러나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원하는 삶 욕동 속에 ‘죽음 욕동’이 내포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삶 욕동’과 ‘죽음 욕동’을 서로 대비되는 개념이 아닌 ‘결합 상태’의 개념으로 보았다.

 

 

 내가 보기에 초현실주의는 에로스의 사랑을 내세우면서도, 그와는 반대로 죽음 욕동의 언캐니함이 가리키는 쪽을 향했다. (핼 포스터, 《강박적 아름다움》 9쪽)

 

 

초현실주의자들은 죽음 욕동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여성’을 지목한다. 초현실주의자들도 세기말적 공포의 기운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은 쾌락과 고통,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여 여성에게 요부, 즉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양산한 팜므 파탈은 ‘성적인 것(삶 욕동)’과 ‘파괴적인 것(죽음 욕동)’이 결합한 상징이다. 팜므 파탈에는 가부장적 사회에 반기를 들고, 남성을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팜므 파탈의 유혹이 주는 ‘쾌락’을 선호하면서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파괴적인 힘’을 낯설어했다. 그리하여 초현실주의자들은 언캐니로부터 아름다움을 해방하기 위해 여성을 ‘처벌’하는 사디즘(sadism)을 지향했다. ‘그녀(팜므 파탈)를 좋아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시 이토 준지의 『화가』로 돌아가자. 화가는 토미에의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비정상적으로 창작 욕구를 드러낸다. 그가 토미에를 만나지 않았으면 ‘완벽한 토미에’를 그리는 데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실패했고, 토미에는 화가의 자존심을 긁는다. 화가는 사랑스러운 토미에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했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준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토미에를 죽이고 만다. 화가가 그녀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가학적인 처벌’이자 그녀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일종의 ‘성적인 쾌락’이다. 『화가』는 ‘열린 결말’이다. 이토 준지는 토미에가 부활한 이후 화가의 삶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아마도 토미에 여려 명 부활하면 화가는 영원히 토미에의 ‘강박적 아름다움’에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강박적 아름다움’은 시시포스의 형벌’과 같다.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는 형벌을 받는다. 바위를 굴려 산 위로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시시포스의 형벌’은 올라가는 방향의 고통과 내려가는 방향의 절망을 무한 반복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강박적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 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하는 형벌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을 ‘팜므 파탈’로 설정하여 가학적으로 대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반응과 토미에를 잔혹하게 죽이는 『화가』의 결말은 ‘여성혐오(misogyny)’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이토 준지의 ‘토미에 시리즈’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안과 공포뿐만 아니라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여성 혐오의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남성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성(모델)을 착취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성적 욕망을 조합한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페미니스트 미술 연구가들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여성의 이미지를 비판의 도마에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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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5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토 준지에게 토미에라는 캐릭터는 단연 에이스급이라 생각됩니다^^:)

cyrus 2018-04-25 20:31   좋아요 1 | URL
<소용돌이> 다음으로 유명한 이토 준지의 작품이 <토미에> 시리즈죠. 애니 2기가 제작된다면 토미에 에피소드가 반드시 나올 거예요. ^^

2018-04-25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25 20:34   좋아요 0 | URL
미술을 공부하면 난감할 때가 있어요. 섹슈얼리티를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어느 정도 선에서 표현을 허용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