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조정래 문학의 최고봉, 아니 우리 민족의 최고봉, 바로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 그 발음의 웅장함과 같이 그리고 우리나라 허리에 해당하는 중추적인 산맥의 그 느낌처럼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우리나라 민족과 분단의 아픔을 거대하게 그린 대 서사시이다. 엄청난 호흡을 자랑하는 분량인 만큼 이 책을 읽으면 한동안 그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읽었던 부분을 가다듬으며 다시 읽기를 여러번 그러면서 작가의 깊과 긴 호흡을 조금이나마 맛보기 위해서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일단 태백산맥은 10권이나 되는 무시무시한(?) 분량이기에 줄거리는 파악하는 일이 제일 먼저이다. 1948년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진압세력인 군경의 손에 들어가자 죄익 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몇몇 부하들과 함께 산속으로 퇴각한다. 비밀당원으로 상부의 명령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는 정하섭은 그곳에 살고 있는 무당의 딸 소화를 이용하고, 그 둘은 사랑에 빠진게된다.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는 죄익세력을 차단하는 데 앞장서고 형 염상진과 반대 사상을 지닌 염상구는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를 겁탈하는 만행을 저지륵 된다.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놓아지고, 이 과정에서 소작인 강동기는 지주를 삽으로 내리찍고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 지수 서민영은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국군 벌교지구 사령관 심재모로 하여금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6.26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또 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김범우와 손승호는 빨치산의 길을 택하지만 김범우는 미군에게 붙들려 통역관 노릇을 하던중 미군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목격한다. 유엔군이 개입하면서 대치가 계속되고 인민군과 빨치산의 세력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염상진은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가 염원했던 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그를 추종했던 하대치 등은 살아남에 새로운 투쟁을 경의한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 근대사, 반공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었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무엇이 인민해방이고 자유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전에 이념의 흐름속에 내던져진 아픈 우리네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태백산맥은 1983년 <현대문학>지에 원고지 16,500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이후에 한길사와 해냄에서 출판되었다. 6.25전쟁과 아픔 민족의 역사를 방대한 분량으로 채우며 무엇인 참된 자유이며 해방의 길인지 묻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출간후에 작가는 수년간 작품의 불온성 시비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기도하다.

  

그동안 6.25에 대해서 다룬 작품들은 많았지만 태백산맥만큼 깊고 넓게 그리고 진지하게 다룬 작품은 없었다. 이 작품은 우리근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맥과 같은 작품이였다. 지금은 이데올로기와 반공의 시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의 시대이지만 언제다시 이러한 지독한 이데올로기 시대로 역행하여 민족과 인간을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역사로 회귀할지 모른다. 아마도 그러한 시대가 비극적으로 재등장한다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지난간 역사의 치부를 보이며 하나의 해독제로써의 역할을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고결한 투쟁과 업적을 업숙한 마음으로 마음에 새기며, 격동의 세월을 살다가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웅들이 이 시대속에서 다시한번더 되살아나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딱딱한 철학이나 역사보다는 문학이나 심리같은 실용적이고 에세이적인 인간적인 삶의 이야기가 좋다. 이 책 <문제는 무기력이다>는 무기력의 심리적 처방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넓은 의미로 보았을때 인간의 마음의 문제에 관한 책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소 사변적이고 실제적이지 않다. 마음이라는 주제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보다 이렇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더 현실에 적합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저자를 보니까 원래를 컴퓨터 공학과 인지공학을 공부한 분이다. 이렇게 기계를 공부한 분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셨을까 궁금해졌다. 기계와 시스템, 그리고 인지공학을 연구하다가 결국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이쪽으로 전공을 돌리신 것 같다. 심리적 주제, 즉 무기력이라는 마음의 문제를 파고들어서 그 원인과 처방을 내리는 좁은 관점의 책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의 이해와 심리 그리고 나아가서 인간자체와 인간 관계까지 포괄하는 매우 넓은 범위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래동안 무기력에 시달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무기력에 빠진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한 심리학적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기력 그것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긍정 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에 따르면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하거나 피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실제로 극복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무기력에 놓이기도 한다. 마틴 셀리그만의 정의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하도 나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때 그리고 나의 주체적인 결정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할때는 누구든지 무기력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생각해보면 무기력을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비록 단기간에 극복하기는 했지만 심각한 상실감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때는 정말이지 몸과 마음에 힘이 다 빠져나가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노력이라는 것 조차도 시도할 수 없는 무기력의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특유의 근성으로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꽤나 시간이 걸리고 무작정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라고 했던 것 같다.

 

 

전반부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두가지 상황을 구체적인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주고 있다. 첫 번째 무기력에 빠뜨리는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때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고 동물의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다. 개를 박스에 두고 작은 전기 충격을 가했다. 한쪽에는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 한쪽에는 피할 수 없도록했다. 피할 수 있는 개쪽은 어떠한 상황이 와도 적극적으로 움직였지만 전기충격이 와도 피할 수 없었던 개 쪽은 어떠한 상황이 와도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다고 자신을 속이는 학습된 무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을때라는 것이다. 항상 남편에는 매맞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남편을 이길 수도 설득할 수 도 없고 언제 어떻게 남편에게 폭력이라는 고통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여자는 그냥 자기의 운명인것 처럼 그러한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때리는 남편은 정당하고 자신은 맞을 짓을 했다고까지 여긴다. 이러한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은 사람을 심각하게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때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3분의 2정도가 무기력에 빠지고 3분의 1은 스스로 빠져나온다고 했다. 스스로 무기력에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을 이해해주고 받아주어서 무기력을 극복하고 나올수 있는 마음의 힘, 즉 회복 탄력성이 있는 사람이였다. 따라서 무기력은 마음의 힘을 기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후반부에서는 자발적으로 마음의 힘을 길러 변화를 가져오는 통합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네가지로 움직이며 변화가 되는데 그것은 동기, 인지, 정서, 행동이다. 이 네가지가 통합적으로 운영되어 함께 돌아갈 때 변할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동기, 인지, 정서, 행동이라고 분류한 것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생각이나 마음을 변화시키라고 말하는 단편적인 방법보다 훨씬 더 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네가지 중에서 한가지라고 바뀌면 변화될 수 있지만 이 네가지가 함께 맞물려서 변화될때 온전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이룰수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네 개의 엔진이 동기, 인지, 정서, 행동이다.

 

 

무기력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여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다. 이것은 매일매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승리감으로 채울때 그것이 마음에 힘이 되어 어떠한 무기력의 상황에도 회복할 수 있는 내성과 탄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 책은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하나의 심리적 증상에 관한 책이지만 인간의 마음 전반에 걸친 이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스스로를 삶의 주체로 드러내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 인간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살 수 있는 자발성 회복을 위한 자기 마음 깨우기 방법이다. 나는 여기서 마음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통합적 마음 전환'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동기, 인지, 정서, 행동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 함께 돌아갈 때 변할 수 있다. 물론 이 중 하나라도 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총체적으로 완전히 변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모든 요소가 함께 변해야 한다. p. 11

 

진정한 여행-Nazim Hikmet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춰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에게 세상을 묻다 - 우리 사회 10대 난치병 feeling에서 thinking까지
이승연.김용희 지음 / 에이지21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영화에게 세상을 묻다> 일단 표지가 너무 이뻤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 처럼 한 여인이 자유롭게 허공에 떠있는 모습과 푸른색 표지가 묘하게 시원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도 세련되고 미인의 모습이였고 그러한 이미지가 정확하게 이 책에도 반영되어 있다. 영화로 세상을 읽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고 특히 이 책은 영화를 통해서 정치에 말을 걸고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고 했다. 이 말은 영화가 윤리도덕적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그러한 교과서적인 매체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간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장르라는 말이다. 즉 영화속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특정한 규범 밖의 것까지 모조리 다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평론가의 말은 예술의 장르로써 영화를 정의한 말로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표현이다. 이 책<영화에게 세상을 묻다>는 이 평론가의 말처럼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영화를 가지고 나름대로 현 정치에 대한 저자들의 시선을 풀어놓는 것이 재밌다. 즉 영화를 가지고 세상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10개꼭지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꼭지마다 3편의 영화가 있다. 영화는 내가 거의 보지 못한 것이였다. 일반 대중적인 오락영화가 아니라 사회의식을 지니고 있는 영화가 대부분이여서 영화를 알지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풀이한 이것을 보니 영화의 전체 맥락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또 짧은 지면에 30개의 영화를 소개하고 그것으로 짧은 저자들의 단상들을 던지는 식이니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들의 주장 또한 비약이 많고 설득력이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두세장 정도의 분량으로 영화의 내용을 쓰고 해석하고 한국사회에 적용하려니 듬성듬성 뛰어넘어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는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내용에 빈틈이 많다. 이러한 모음집을 나는 싫어한다. 호흡이 짧고 마케팅 위주의 책이라서 무엇가 설득력있게 길게 논의하지 못하고 몇편의 이미 써놓은 글들을 짜맞추어 그냥 책 형식으로 내어버리는 호흡이 짧은 책에서 건질것은 별로 없다. 책은 상당히 정성스럽게 만들고 편집도 잘되어 있는데 내용의 빈약하고 지나치게 호흡이 짧은 느낌이다. 유명한 정치인들과 영화인들이 추천을 했는데 저자중 한명이 정치권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한적이 있어서 일식이 있는 정치인들이나 영화인들에게 추천을 부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영화라는 특정한 매체를 통해서 현 정치적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영화를 통해 현실을 다시 묻는다. 영화 '스윙보트'주는 아주 재밌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인공 몰리는 귀여운 딸인 버드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간다. 마침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지만 몰리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귀엽고 똑똑한 딸 버드는 아빠에게 투표하라고 독려하지만 아빠는 시큰둥하다. 급기야 버드는 자신이 투표할려고 하다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나의 부재자 투표가 선거의 결과를 만들게되는 상황에 이르자 각 정당들은 몰리에게 자신을 찍으라고 온갖 아부를 다한다. 이때 몰리는 투표로 세상을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서 투표를 행사하고 영화는 마치게된다. 정치인들은 표를얻으려고 하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윙보트'를 통해서 아주 잘 보여준다. 비록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정치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만들어지 책인데 호흡이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긴 논의를 통해서 깊이 있는 영화와 현실, 그리고 정치를 연결시켰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새정부가 들어선 후 인선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부터 씁쓸한 소리가 들리니 정말 정치는 구제불능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인들이 영화를 본다고 바뀌지는 않겠지만 현실이 어떠한지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가상현실인 영화를 통해서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이 책에 묻어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브이 포 벤데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언스 이즈 컬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세기는 과연 통섭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과 과학이 만나고 과학과 종교가 만나고 문학과 예술이 만나며, 정치와 음악이 만나는 그야말로 퓨전의 시대이며 통섭의 시대이다. 이것은 무분별한 잡종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출현을 기대하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섞임인 것이다. 이 책의 기획자 애덤 블리이의 기획의도가 매우 신선했다. 그는 각분야의 매우 탁월한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담을 시키고 지평융합이 일어나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행해져야 할 것이다. 구획짓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종횡무진하면서 그안에 어떠한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가 불꽃튀며 솟아날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과학이 최종적 지식의 권위를 얻게되었다. 그 과학의 발전 속도에 걸맞게 새로운 인문학적 질문과 대답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새시대의 새로운 질문에 인문과학, 자연과학, 예술과 미디어등의 새로운 답변이 인류의 새로운 삶의 양태의 출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의 새로운 창조적 발상의 자리에 초대된 세계적인 석학들은 이름만 들어도 최고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지식의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노암 촘스키를 비롯하여,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미셸 공드리, 피커 갤리슨 등의 지식의 프런티어들이 모여서 진화철학, 시간, 꿈, 전쟁과 기만, 자유의지, 프랙털 건축, 소셜 네트워크등의 주제에 대해서 풍성한 대화의 잔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거장들의 대화를 중간에 앉아서 들어보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크다.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 대가로써의 존중심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잘아는 만큼 자신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사실도 잘알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이러한 수준높은 지식과 인격적인 대화는 최첨단의 지식에 대해서 대화라는 장을 통해서 매우 쉽게 일반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대화야 말로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찬 전문지식을 가장 쉽고 일반적인 용어로 배울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이 책은 먼저 진화생물학의 저장 에드워드 윌슨과 진화론적 철학자인 데니얼 데닛의 대화로 시작한다. 윌슨은 과학자이고 데닛은 철학자이다. 특히 에드워드 윌슨은 인문학자와의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고 사회생물학으로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러나 두사람과의 대화는 신, 진화, 근친상간, 사회적 규범, 개미등에 대해서 진솔하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한다. 둘은 진화론자이기에 동감하는 부분도 있고 과학자와 철학자이기에 다소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확실히 거장들사이의 대화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의견을 진정한 존중으로 여기고 그것을 수용한다. 반대의견을 자신에 대한 반대로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높은 지식과 품격이 느껴지는 대화이다.

 

이 책은 주제의 다양성이 최고의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다. 여러가지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지만 그 호흡이 짧아서 많이 아쉬운 감도 든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는 진화철학, 의식의 문제, 시간, 설계와 디자인, 객관성과 이미지, 기후의 정치학, 전쟁과 기만, 꿈, 픽션의 진실, 음악, 형상, 인공물, 누가 과학을 하는가, 인간등의 주제로 대화가 오고가지만 나는 2장 '도덕은 발명한 것일까 발견한 것일까'에서 스티븐 핑커와 레베카 골드스타인의 대화가 매우 유익했다. 특히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의 도덕적 의식을 심어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의 과학자와 소설가들이 만들서 내어놓는 최고의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도덕성이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진화심리학자이기도한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도덕성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부터 오는 사회성의 산물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소설가인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그러한 진화적 관섬을 인간을 동물로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읽으므로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도덕성을 깨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을 이르고있다. 특히 스토리텔링은 가공한 허구의 이야기지만 왜 인류가 그러한 가공한 스토리텔링을 그렇게도 좋아했고 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어떻게 인간 도덕성을 키워왔는지를 말한 부분은 이내용의 백미라고 할수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 이제는 문과 이과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 횡과 종으로 각 분야를 횡단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잡종적 창조물과 아이디어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시대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은 시도한 이 책의 기획자 애덤 블라이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제는 정착적 지성인이 아니라 노마드적 유목적 지성인이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시대이다. 종과 횡으로 가로질러 무수한 지평융합을 만들어내는 일이야 말로 이 복잡한 21세기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의 시대..> 

 

과학과 종교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쪽도 더 강해지지 못했다. 이 싸움은 그저 쌍방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을 뿐 대중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종교의 기반은 과학의 기반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적 전쟁'이 지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유용했다. 그러나 종교는 과학을 쓰러뜨릴 수 없고, 과학 역시 종교를 쓰러뜨릴수 없다. 둘 다 인류 사회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p.7 -애덤 블러드의 말중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unc 2013-02-2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글이 신간평가단 페이퍼에 연결되어 있지 않네요.
아마 실수로 빠뜨리신 것 같은데, 수정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
실뱅 들루베 지음, 문신원 옮김, 니콜라스 베디 그림 / 지식채널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종종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일을 저지르곤 한다. 상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조차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저지르곤한다. 이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정의와 합리라면 그와는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은 사람의 마음에도 정의와 합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워낙 묘해서 쉽게 잡히지 않고, 쉽게 파악되지 않고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상당히 교육수준이 높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목도할 때가 종종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간에 의해서 파악될 수 없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조합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며 또한 가장 밝혀져야할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래전 대학 심리학 수업때 심리학을 가르쳤던 교수님이 첫수업시간에 심리학에 대한 일종의 예방주사를 놓은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심리학하면 사람의 마음을 일는 일종의 독심술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분은 단호하게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 아니라 하나의 과학이라 하셨다. 그러면서 평소에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관상을 보고 손금을 봐달라고하는 사이비 독심술 정도로 취급하는 정서가 짙게 깔린 일반적인 심리학에 대한 상식을 여지없이 망치로 때리셨다.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행동을 관찰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도 일정한 행동, 즉 패턴화된 행동을 관찰하므로 그 마음의 심리를 일정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 <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은 인간의 불가시의한 마음을 열어보이는 심리실험이라고 할수 있다. 12가지실험을 통하여 보통 인간의 심리는 이해가능하고 합리적이라는 통념이 틀릴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특히 이 책은 사화학과 심리학이 합쳐진 사회심리학적 진술을 가능하게 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군중속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이 도와달라라고 소리쳤을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볼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개별적인 인간의 심리가 아니라 사회속에서의 인간심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사회심리학적 맥락에서 저술되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12가지 심리실험은 다음과 같다.

  

1.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까? 사회적 영향과 규범화

2. 무엇이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가? 군중과 집단 히스테리

3. 유언비어는 어떻게 널리 퍼지는가? 유언비어의 확산

4. 틀린 줄 알면서도 왜 다수의 의견에 다를까? 사회적 영향과 체제 순응주의

5. '우리'와 '그들'은 언제 하나가 될까? 사회 범주화의 효과

6. 왜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까?

7. 무엇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가? 권위에 대한 복종

8. 완벽해 보이는 그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 집단 극화와 집단 사고

9. 그들은 왜 피해자를 외면했을까? 무감각과 방관자 효과

10. 왜 사람들은 권력에 쉽게 눈이 머는 걸까? 스탠퍼드 감옥 실험

11. 이타심은 타고나는 것일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우화

12. 무엇이 진정 군중을 움직이는가? 사회적 사유와 연관성

 

이러한 심리실험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인간의 심리를 여지없이 깨뜨릴 뿐 아니라 집단과 군중속에서 인간의 어디까지 어리석인 비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준다. 나는 이 실험중에서 가장 끔찍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새벽에 한 남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던 사건이였다. 그 사건은 새벽에 일어난 사건으로 범행 직후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그 범인은 멀리 달아났고 집에는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무려 38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다시 조용해지자 범인은 그 여자의 집앞에서 강간을 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때도 모든 사람들은 그 사건을 보았음에도 아무도 신고한 사람이 없었다. 한사람의 잔인한 죽음앞에서 자신의 신변을 생각하며 다른사람이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수단이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살인방조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바로 이러한 심리가 인간의 군중속에 있을때의 심리라는 것을 이 실험을 통해서 보여준다.

  

과연 인간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존재일까? 인간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기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어 왔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험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고 혼란을 가져다 준다. 이것은 현대철학에서 말하는 '주체의 해체', '중심의 해체', '거대담론의 해체' 라는 포스트모던적 철학을 반영해준다. 인간의 체재는 인간과 함께 중심으로 조직될 수 없고 나름대로의 존재와 운동방식을 갖는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환상이 오래동안 지배해 왔는지 모른다. 나 또한 인간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 그러한 것을 수정내지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을 하나의 틀로 묶으려는 순간 그 믿음은 붕괴될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쌓아올린 철학적 인간론은 이러한 심리실험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 보듬어주고 불쌍히 여겨야할 존재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이 실험은 인간의 믿음을 바닥까지 보여주어서 더 이상 실망할 것이 없는 곳까지 데리고 간다. 완전한 실망에는 다시 여지없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한가닥의 희망이 생긴다. 이러한 희망은 대상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에 대한 희망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믿어야 할 것이 아니라 '희망'을 믿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