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외 지음, 이병무 옮김 / 다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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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킹한 책이였다. 노예제라니..그것도 현대에 노예제라니..노예제라고 하는 구시대적인 잔재는 이미 미국의 남북전쟁이후에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리고 노예제라고 하면 고대시대나 중세 그리고 근대화 이전에 있었던 악습이라 이미 폐지되었고 현대에는 그러한 악습이 잔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노예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별 기대감없이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겼다. 넘기면서 아직도 현대시대에 2천 7백만명의 노예가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연계성을 잃지않으면서 현대 노예가 고대시대의 노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이것을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고 매우 설득력있게 논리정연한 열정으로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안심하고 있는 이 세계가 사실은 상당히 어둡고 거칠며 파괴적이고 음성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게 되었다. 지금 내가 나의 삶의 틀로써 바라보는 이 세상인 정말 다가 아니고 매우 어두운 지구저편의 아픔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모를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문득 지구를 100명의 마을로 축소한다면..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이 지구에서 하루 세끼를 굶지않고 심지어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상위 5%이상의 사람이라는 특혜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직고 하루 1달러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자들이 10억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고, 그보다 좀더 나은 하루에 1~2달러로 살아가는 ‘차빈곤(moderate poverty)'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통계를 보았을 때 내가 이 지구상에서 상당한 특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의 저자를 보니 케빈 베일스외 2명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하버드대 교수들로 이 책을 쓰는데 아마도 전문적인 통계의 부분에서 기여를 한 것 같고 전체적인 내용이나 구성은 케빈 베일스가 쓴 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는 현대 노예제를 종식시키는 기구인 ‘프리더 슬레이브’의 의장으로 일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예제의 모든 정보와 현실을 알고있는 현장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통계를 나열하여서 자칫 지루해질수 있지만 그 간극 사이에서는 이 노예제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을 읽을수 있었다. 이것은 현장가 케빈 베일스의 가슴에서 울려퍼지는 것이라고 느꼈다. 긴 정보들 속에서 현장가의 냄새가 짙게 베여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예제의 역사적 시작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류 최초의 완전한 법률 체계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서 노예제에 대한 언급과 성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노예제를 통해서 노예제의 역사가 이미 매우 오래전 고대에서부터 있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노예제는 자연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철학적 주장의 영향아래 로마시대에서는 노예들도 어느정도 인간적인 처후를 받을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가 흘러흘러 합법적으로 노예제가 종식된 것은 1865년 북부가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수정 헌법 제13조가 통과되면서 종식되었다. 이로써 합법적 제도로서의 노예제를 페지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노예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현대 노예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을 던지면서 2장에서 노예제라는 것이 어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내리면서 현대에서 이러한 노예제가 끊어지지 않는 사슬처럼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예라고 하면 고대시대처럼 손과 발이 착고에 매여 자유없이 노동만 하다 죽는 그러한 사람으로 떠올리기쉽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노예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의 고정된 상(像)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노예를 이렇게 정의한다.


노예제란 어떤 사람이 폭력이나 폭력의 위협, 또는 심리적 강압으로 타인의 통제를 받고, 자유의자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잃어버며,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간신히 생계를 이어갈 정도의 임금만을 받는 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 (p.58)


이러한 노예제의 정의를 바탕으로 노예란 두가지가 핵심사항이다. 첫째는 폭력이나 심리적 강압에 의해 통제받는 것이고, 둘째는 이동할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로 인해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억압받고, 이동할 자유가 없이 노예주의 이익을 위해서 몸을 팔거나 노동에 종사하는 노예들이 많다고 한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노예와 노예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여러 가지 연관된 사회의 상황들을 분석하는데 이부분이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가 생기는 것은 단지 노예주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한사회의 부패지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통해서 밝혀주고 있다. 한 나라에서 인신매매와 노예가 발생할 수 있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정부 부패 수준, 유아 사망률, 14세 이하 인구의 비율, 식량 생산 수준, 인구밀도, 그 국가가 겪는 분쟁과 사회적 불안의 양, 이것은 인구 압박과 빈곤(유아 사망률과 식량 생산이 그것의 지표가 된다)이 인신매매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73)


현대 노예는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 같은 빈곤국에서 나오며 비교적 부요한 북미나 유럽같은 곳에 공급된다. 캄보디아는 가장 노예가 많이 나오는 국가이며, 태국 같은 국가는 노예도 많이 나오고 많이 공급되는 상위의 부끄러운 나라라고 한다. 특히 노예가 공급되는 나라에 우리나라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노예는 주로 노동력을 착취 당하지만 현대의 노예는 대부분 성매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유럽이나 북미같은 부유한 나라일수록 성매매의 비율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선진문화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이 이러한 통계적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매우 진지하고 수준높은 통계자료, 그리고 노예제를 종식시키고자하는 저자의 열정이 뛰어나다. 노예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전세계적인 거시적인 안목으로 그것을 분석하고 해결점은 포착하는 저자의 통찰과 열정이 매우 감동적이였다. 이렇게 거시적으로 전세계의 자료를 샅샅이 뒤져서 멋지게 엮어 노예제의 패해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고 그것의 해결방법까지고 알려주는 이 책은 가히 노예제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어두운 역사의 종식을 위해서 어떻게 현실에서 싸워가야 하는지 그 길을 제시해주는 매우 훌륭한 가이드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이렇게 어두움의 역사, 특히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심각하게 가혹한 인권유린의 역사라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매우 부끄럽고 낯설었다. 노예제라는 너무도 낯선 현대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 알고나니 인간의 악함은 어떤 역사에나 사라지지 않고 단지 숨어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노예로 표상되는 인류의 악은 그 자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부패와 부정의, 그리고 약자에 대한 착취가 그것을 키우는 모판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다른 악의 모습을 목도하지 않기 위해 정의로운 사회,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갈때 잠재적인 악은 많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 오타 : 72쪽 이문 ->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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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 사건, 진리, 장소
이정우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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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개념의 철학자로 각인되어있다. 그분이 쓴 철학 개념어 풀이 책인 <개념-뿌리들 01,02>를 읽고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개념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과 상응하는 면이 많아 매우 공감하였고, 사람들이 보통으로 쓰는 철학개념들을 저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들을 이분의 책을 읽고 그 의문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떤것을 설명할 때 그 근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렇게 된 연유를 설명해주므로 논리적 비약이나 생략으로 인해 생기는 낯설음을 없애주는 매우 탁월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하여 그리스 철학을 강조하며 그리스 철학이 모든 철학의 기초라고 말한다. 이분의 글은 매우 탄탄한 기초적 철학의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그뿐 아니라 미셀 푸코도 전문적인 연구가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푸코 뿐 아니라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어느정도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 훈련과 기본 배경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다시 앞장을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책이 어려우면 차리라 마지막에 보론으로 첨가된 ‘미셀 푸코와 사유의 변환’이라는 저자의 글을 보고 푸코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꽤 많은 분량으로 쓴 서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에서 전체적인 책의 윤관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적 철학자답게 약간을 역사와 진보의 문제를 사변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역사를 반복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반복에는 퇴보의 얼굴과 진보의 얼굴이 있는데 이 두가지로 인해서 역사에는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반복을 통해 시간에는 수많은 층위들이 있는 마디가 새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진보적인 사간에 매듭을 지어주는 것은 인간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건 자체가 역사적인 계열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사건의 계열은 늘 주체에 의해 구성되며 주체에 의해 반복되어진 진보의 시간을 매듭짓는 행위를 통해서 진보적 역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진보란 끝없는 귀환이라는 것 자체가 물적 체제의 끝없는 재생을 전제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실재의 귀환은 물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때에만 진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p.29

 

1장 ‘관리사회’에서는 현대사회를 관리사회로 정의하므로써 생성되어진 생명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닫혀진 사회이다. 타자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차이를 막고 그 차이를 적절히 배분해 단지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특성으로 취급하여 상품처럼 관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명과 차이가 하나의 시스템속에서 제단되어져 버린다. 즉 관리사회란 자본주의의 대전제 위해 적절히 타자들의 차이를 배치하므로 그 치부를 인폐시키는 사회를 말한다. 1장에서 언급되는 화페 또한 순수한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정의되며 단순히 사물의 가치를 표시하는 등가물이 아니라 단지 사물과의관계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므로 화폐가 괸리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을 통해서는 서론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진보’라는 용어로 이해해서 정치권에서의 진보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져야 할 것인지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철학적인 관점에서 특히 생명과 타자, 차이와 생성 등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낸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개념을 사용해 진보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차라리 제목을 <진보의 철학적 성찰>이라든지 <생성과 차이에서 본 진보>라고 붙이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괜히 대선이 다가오므로 진보정당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로 착각하여 덥석 이 책을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말도록 말이다.

 

몇 번이나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 책 드럽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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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0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하는데 어렵다 하니 손이 잘 ㅋㅋㅋ 그래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 정리되지 않는 인생을 위한 철학의 조언
이나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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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질서(Cosmos)와 무질서(Chaos)에 대한 것들을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풀어내는 철학 에세이다. 그런데 어렵다. 이 책을 보게된 이유는 내 주변에 강박적으로 질서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날카롭고 조직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이 판단력을 심각하게 신뢰하며 늘 모든 현상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조언하려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자신도 주변의 사람도 어렵게 만든다. 옆에 보면서 어떤 질서에 모든 사람들과 현상들을 편입시켜 그것을 통제하려는 그 습성이 너무나도 나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떤 강박관념이 사람들의 자류를 빼앗기까지하는 정신적 폭력으로 까지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 책의 주제가 코스모스와 카오스, 즉 질서와 무질서를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전개하는 내용이 궁금했다. 살려고 마음먹었다가 근처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길래 일단 빌려서 보기 시작했다. 질서라는 뜻의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리 주변의 질서뿐 아니라 우주와 나와의 질서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매우 예민한 철학적 사유로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질서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세계속에 이 모든 세계를 집어 넣으려는 편협한 자기 만족일 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맥락에서 이미 19세기 말에, 우리는 항상 가장 비슷하지만 절대 동일시하지 않은 사물들을 동일시한다고 한탄하였다. 우리는 사물들을 패턴과 책장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는다. 뜻대로 잘 안 되면 새 패턴을 짜는 게 아니라 사물의 모퉁이를 살짝 잘라내고 그 위에 칠을 해 덮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아무리 해도 우리의 정신적, 외적 질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의하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완벽한 질서, 코스모스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모든 자아의 내면이 질서에 순응하는 이 세상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질서의 혼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철학적 사유를 키우라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란 어떤 패턴에 정해진 조직적 사유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현상을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질서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시각을 가진 관찰자 속에서 그 관찰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탁월하게 설명한다.

 

지난 세기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을 집중 조명하여 이런 사실을 발혀냈다. "자연의 온갖 형태를 만들었고 우리의 영혼, 즉 우리 사고 능력의 구조를 책임지는 것은 동일한 정돈하는 힘들이다.“ 그러니까 몇 십 년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도 이미 확고부동한 실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 이 역시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어 사고 전환을 이루어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밝혀낸 중요한 깨달음이다. (p.44)

 

이 책을 읽으면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해서 이렇게 집요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계는 코스모스지만 무수히 많은 카오스가 존재한다. 개별적 카오스들은 어쩌면 전체적 코스모스 속에 편입되어있는 지도 모른다. 카오스를 혼돈스럽게 여기지 말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약동하는 운동의 힘에 맡긴다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코스모스의 질서속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의 설명을 들으면 현대 철학의 첨예한 담론인 차이와 동일자 이론이 생각났다. 현대 시대의 우울과 파괴는 주체가 모든 차이의 타자들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철학자들은 진단했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문제점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폭력이라고 보고 ‘차이’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데 현대철학이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주체와 타자의 차이는 결국 카오스와 코스모스와 일맥상통한다. 주체의 입장에서 모든 타자는 카오스이다. 그러나 주체로써의 타자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전체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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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0-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빛이나요 ㅎㅎㅎ이글보고 천장지구가 떠올랐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글 보고 누구신지 알았네욤 ㅋㅋㅋ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
전성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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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서 뭔가 심오한 인문학 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인물이 서서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쳐다보는 표지 그림과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제목의 질문투에서 뭔가 일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파헤치는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제목의 글씨체가 데모할 때 보통 쓰이는 그러한 딱딱한 글씨체여서 어떤 인문학 책으로 다가왔다. 분명 이 책은 인문학 책이다. 그런데 인물들의 역사를 모은 책이다. 다시 한번더 이 책을 보니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들의 업적에 대한 책이였다. 순간 뭐 그렇고 그런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잘아는 포드나 록펠러 그리고 윌리엄 보잉이나 월트 디즈니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러한 인물위주의 책은 서점가에 얼마나 범람하고 무수히도 그들의 영웅담에 대해서 많이 들었는가? 그래서 이 책도 그러한 분류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단순히 그러한 인물들의 업적을 나열한 책이 아니였다. 인물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이야기과 그 인물이 깔아놓은 현대성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정말 멋진 인문학 책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인물전과 같은 책에서 이렇게 넓은 시각으로 그 인물이 시대에 미친 영향과 그 후에 형성된 현대성에 대해서 잘 풀어놓을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넓은 시각으로 보건데 분명 사회적인 활동은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성원이라는 사람이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날 앞날개에 인물 소개란을 보았더니 보통 소개하는 몇 년생이며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책을 썼는지에 대한 식상한 소개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사회적인 시각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중요한 사건위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소개만 보아도 그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해서 깊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과 링크되어있는 저자의 인터뷰를 읽어보았더니 역시 그는 오래전부터 계간지 [황해문화]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저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종과 횡, 즉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고 넓은 시각 때문이다. 보통은 한 인물의 성취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이 책은 철저히 그 인물의 업적과 과오를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볼뿐 아니라 그 이후에 제목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깊이 스며들게된 과정을 보여주는 종과 횡, 즉 역사와 사회에 대한 중요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부터 프리츠 하버까지 총 16명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책의 부제처럼 모두가 지금의 현대성을 창조하고 우리의 일상 깊이 그리고 우리의 의식 깊이 영향을 지금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익숙한 인물들도 있었고 이름만 들었던 인물 그리고 전혀 생소했던 인물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워낙 유명하고 뛰어난 인물들이기에 우리에게 정확하게 알려져있기 보다 신화적인 요소가 덫붙여져 가리워졌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성공과 성취에 의해 과도하게 부풀려져있는 신화를 벗겨내고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 그들을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열정과 노하루로 큰 성공을 일구어내었지만 그들역시 작은 한계를 가진,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이기에 그들이 일구어 놓은 자신들의 성취가 동시대인들과 자신의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러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좀더 세상에 아름다운 기여를 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물 한 인물 모두가 열정과 실력으로 뭉쳐있었지만 그들이 이룩해 놓은 성취의 그림자는 신화에 가려져 있는 그 인물들은 진실가운데 드러나게 했다. 자동차 제왕 헨리포드가 만들어 놓은 포드주의는 엄청난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로인해 많은 노동자들을 부유하게 해주었지만 반면 인간을 하나의 생산 기계로 조각하여 자본주의적 시간속에 인간을 편입시킨 산업사회의 폐해를 낳기도 하였다. AK-47 소총을 개발하여 조국 러시아에 큰 승리를 안긴 미하일 칼리시니코프는 자신의 만든 소총이 전세계에 1억정 이상 판매되었고 지금도 어딘지 모르게 생산되고 판매되어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어떠한 심장을 가질까 궁금했다. 이 책에 언급된 인물중 아직도 살아있어 자신의 조국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최고의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고 조국의 승리를 안겨준 발명품이 가장 잔인한 살인기계라는 야누스적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장 충격적인 인물중의 한명인 존 D. 록펠러는 단지 십일조를 통해서 부자가 되어 자선사업에 힘쓴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재산을 위해 철저하게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였다는 것을 알고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가 아무리 좋은 자선 사업을 행한다 할지라고 그가 저지른 악행을 모두 덮을 없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모두가 뛰어난 인물들이지만 그들도 그들의 시대와 역사를 살아간 유한한 인간이기에 그들이 현대성을 만들고 인류를 편리하게 했지만 또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간 두얼굴의 이름들이였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 세상에 진정한 위인이 있을까? 또 우리가 알고있는 위인이라는 사람들도 진정 위인적인 모습만 있을까?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진실이 아니면 역사든 사람이든 사건이든 사물이든 명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거짓이나 신화로 덧붙여진 베일을 벗기고 좀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두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y Lefebvre는 일상이 혁명의 공간이며 동시에 혁명이 좌절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대 일상이 촘촘한 틀(매트릭스)을 만들고 지배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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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0-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인문정보가 다른 곳보다 많아서 유익한 점이 나름 많은 듯 ^^
알라딘에서 갈 곳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 참 감사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