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1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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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이라는 말이 낯설다. 그리고 경승지라는 말도 흔히 들어보지 못한 옛시대의 말들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있는 명승지에 대해 소개해주는 책이다. 책을 보면서 살펴보니 옛선비들이 명승지에서 책을 읽고 쉬면서 몸과 마음을 닦았던 곳이였던 것 같다. 주변에 훌륭한 자연 경관이 있고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지은 한 채의 집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선비정신을 가다듬었던 곳이 바로 명승이였다. 책은 이러한 나의 명승에 대한 설명에 비해 좀더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명승’은 흔희 아름다운 경승지를 일컫는 일반명사로 쓰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명승 등의 문화재 중 하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였다. 명승은 유적보다는 예술적, 관상적 측면에서 자연유산적인 요소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유적의 비중이 큰 ‘사적’(史蹟)과 구별된다. 저자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명승의 역사와 문화를 철저한 고증과 함께 생동감 있는 필치로 완성했다. 고즈넉한 옛 문화의 향기가 서려있는 우리 명승, 사연이 빚고 인간의 역사가 더해진 숨은 절경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국에서 아직도 낯선 명승이라는 곳을 찾아서 발굴하고 열려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 저자는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로 7곳에 불과한 국가지정 명승을 100여개가 넘는 곳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고 놀았던 곳, 송강 정철이 어슴푸레한 그윽한 달빛을 받으며 감상에 취해 즉흥해서 읊었던 시를 지은 그곳 명승을 역사와 문화의 시간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상세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발로 발품을 팔려 직접 발굴한 명승지라서 저자의 글에는 그것에 대한 상세함 묘사와 경험이 묻어난다. 화사한 사진은 실제로 그 명승이 어떠한 모습이며 그것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화려함을 잘보여주고 있다. 퇴계 선생과 두향의 전설이 담긴 구담봉, 올돋은 선배의 모습으로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킨 길재의 향기가 있는 채미정 등 저자는 옛 선현들의 충절과 향취의 모습을 명승지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색감으로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 명승의 모습을 저자는 발굴하여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될수 있도록 노력한다. 역사의 시간의 과거 묻쳤지만 그 시간의 나이테는 문화유산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잊혀졌던 명승이라는 유적지를 통해서 과거 우리 옛선현들의 향취와 충절, 그리고 고뇌와 학문이 옹골차게 박혀있는 역사의 나이테를 보여주고 있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현들의 정신과 울려펴졌던 가야금과 시냇물소리, 그리고 청아하게 퍼져나가는 시읊는 소리가 이 책을 읽으면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산하에 묻혀있어 발굴되기를 기다리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한 발견이 얼마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풍부하게 해주는지 깨닫게 되었고, 어떤 소명감을 가진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묻혀져 있는 우리 문화의 유물들을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역사는 사라지지만 문화유산은 사라진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어 줄 뿐아니라 생생하게 복원시켜주고 그 향취마저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흔적이라고 할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다시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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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딘 연대기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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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판타지 소설 <에이딘 연대기>가 나왔다. 제목을 보건데 알만한 사람은 누구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제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알리스터 맥그라스’였기 때문이였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기독교 신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고, 또 최근에 <만들어진 신>을 필두로 해서 다시 점화된 무신론 논쟁에서 리처드 도킨스를 반박하며 유신론의 입장에 서있는 과학자이자 기독교 신학의 변증가로써 유명한 사람이다. 과학과 신학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두분야 모두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또 현대에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는 과학과 신학사이에서 모두 활동할 수 있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소설을 쓰다니..일단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놀라움이였다. 과학은 통계와 실증의 학문이고 신학은 철학과 함께 인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이 두분야와는 좀 거리고 멀다고 생각하고 저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소설의 분야까지 확장하는 놀라운 지성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C.S. 루이스의 <나니와 연대기>와 비슷하듯이 구성과 내용도 비슷하다. 특별히 기독교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지니고 있는 전체적인 틀은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뛰어난 기독교 변증가로 여겨지는 C.S. 루이스의 <나니와 연대기>와 매우 흡사하다. 두사람 모두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두사람 모두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출신이고 옥스퍼드에서 공부했으면 케임브리지 대학과 관련이 있는 것도 같다. 아마도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C.S. 루이스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선택받은 이들, 2부 쫓겨난 자들의 싸움, 3부 어둠은 무너지리라. 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피터 그랜트와 줄리아 그랜트는 방학을 맞아 조부모가 있는 옥스퍼드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분수정원에서 알수 없는 광채에 이끌리어 에이든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한 예언을 따라서 그 악의 세력에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구원자가 올것이라고 그곳 백성들은 믿고 있었다. 줄리아와 피터는 자신들을 구원자로 여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낯설었으나 차츰 어둠인 세력들인 세 영주와 싸우며, 또 ‘왕의 왕’에 받은 부름에 순종하여 차음 구원자가 되어간다. 피터와 줄리아는 에이딘을 악의 세력에서 구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투성이였다. 다시 어려움에 처하게된 에이딘은 피터와 줄리아 그리고 이복동생 루이자를 구원자로 불러들인다. 에이딘 백성들이 끌려가게된 케미아 광산에서 그곳 군인들고 케미아의 괴물들은 굴녹의 감시하에 ‘신물’을 찾는데에 동원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피터와 줄리아, 루이자는 ‘신물’을 가져 나오게 된다. 케미아가 더욱 어두워지고 에이딘의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게된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페라스’라는 한 사나이가 ‘왕의 왕’의 천사로 등장해 피터와 줄리아를 속이고 그곳 백성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굴녹들이 피신한 인신처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시 ‘신물’을 빼앗아 간다. 모험 끝에 다시 줄리아는 신물을 찾아오게되고 피터는 바다에서 페라스와 싸워 이기고 루디아와 백성들에게 돌아온다. ‘상처입은 많은 약자들의 무리들’은 루다아의 격려 속에 어둠의 뿌리속으로 들어간다. 빛과 어둠의 대결, 선과 악의 대결, 그러나 들리는 것은 ‘노래’ 뿐이라는 것을...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이 책 <에이딘 연대기>는 현직 신학자인 맥스라스가 성경적인 세계관, 성경에서 보여주는 여러 가지 진리의 주제들은 판타지의 형식으로 녹여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야기기 아름답고 신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모험과 성장, 믿음과 현실, 선과 악의 갈등,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다. 에이딘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한 문제들,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저자는 아마도 현실과 믿음의 세게, 영혼과 육신에 대해서 다리를 놓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의 갈등과 삶,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단정적이고 닫힌 신학적인 결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불가해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므로 언제나 생각한 것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신학자가 쓴 판타지 이야기를 통해서 인생의 궁극적인, 그리고 믿음의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속에 묻어둔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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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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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은 조선시대 문장을 전공한 분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지식사회에 대한 전문가이시다. 특히 문장론에 관한한 그의 글은 매우 탁월하다. 그동안 정민 선생님이 펴내신 책들을 많지는 않지만 읽어보았다. 옛선현들의 글을 연구하는 학자여서 그런지 이분의 글도 옛조선시대 선비들의 그윽한 글의 향취가 많이 묻어나 있었다. 내가 읽은 정민 선생님의 최고의 책은 <한시미학산책>이다. 이 책을 읽고 어찌나 진한 고전의 문장 향기가 짙게 나던지 그만 정민 선생님의 글에 취해버렸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개정판이 나오기 전, 절판되었던 <한시미학산책>을 구석구석 뒤벼서 겨우 한권을 발견하여 금덩이를 캐낸 기분으로 책을 가져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지식경영법>은 다산 정약용이 짧은 기간동안 전무후무한 지식작업을 할 수 있었던 방법을 10가지로 정리해서 들려주는데 이 책 또한 정민 선생의 내공이 묻어나는 역작이였다. 직접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 인문학자답게 깊은 내공과 인문의 향기가 직접 전달되어 또한 그 향내에 취해서 바로 이분의 팬이 되었다.

 

솔직히 초기 저작에 비해서 정민 선생님의 후기 저작들은 다소 짧은 글을 모아노은 단편집이다. <일침>이라던지, <삶을 바꾼 만남>같은 책들은 선현들의 글을 짧게 해석한 글을 모은것과 인터넷에 올린 것을 묶은 책들이였다. 물론 정민 선생님의 내공이 묻어나는 책이지만 초기의 저작에 비해서 깊이있는 내공과 문장의 매력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 책 <오직 독서뿐>은 허균, 안정복, 박지원, 홍길주에 이르는 조선 최고 지식인들의 독서 전략과 그들이 경험한 실제적인 독서의 묘미에 대해서 원문의 짧은 글을 인용하고 정민 선생님이 해설을 다는 매우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단편이지만 역시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의 향취가 묻어있고 동양정신의 특유의 실제성, 통일성, 경험성들이 담겨져 있다. 서구의 공부법과 독서법을 보지만 역시나 그들 특유의 분석적인 측면이 강하여 깊은 울림이나 여운이나 몸을 움직여 책을 읽고자하는 실천적 힘보다는 방법론에 치우친 경향이 많다. 하지만 우리 선현들의 독서법은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안전하고 건강하다.

 

<오직 독서뿐>에서 전하는 우리 선현들의 독서방법중에 가장 인상적이 였던 부분은 천천히 다독하며 깊이 읽으라는 조언이다. 나를 비롯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독에 대한 생각이 많다. 그런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읽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읽어서 저자의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과 영혼으로 내안에 깊은 울림을 받고 결국은 인격과 삶이 바뀌는 부분까지 나아가야지 독서의 유용성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삶을 바꾸는 독서를 위해서는 깊이 읽어야 하고 깊이 읽기 위해서는 천천히 그리고 같은 책을 많이 읽는 다독의 경험이 필요하다. 책을 한번읽었다고 저자가 평생에 걸쳐서 쌓은 지식을 다 흡수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수록 이상하게 그때마다 다가오는 감동과 수용하는 지식을 달라진다. 이것은 독자의 경험과지식이 많아지면서 책을 흡수할수 있는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고, 그때그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그 고민의 부분에 따라서 책의 수많의 지식들중에 그에 맞는 부분이 독자에게 깊이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선현들의 독서는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읽는 다독의 방법은 깊이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깊게 공감되는 부분은 책을 좋아하면 책에 대한 외관또한 좋아한다는 부분이였다. 나는 책이 좋다. 책을 주문하면 기다려지고 책을 받으면 냄새맡고 이러저리 돌려보며 만져본다. 그리고 심지어 책을 만질때는 손을 씻고 만지는 버릇까지 생겼고 아내가 책을 팔꿈치고 누르면 얼른 책을 빼버린다. 이것이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자들의 태도인데 이것을 책을 좋아한 옛선현들이 이렇게 언급한 부분을 읽으면서 책중독자는 책 자체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이 짧아서 전체적인 독서에 대한 깊은 옛선현들의 사상과 실천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고자하는 마음에 썩 흡족하지는 않으나 사람에 따라서 주제에 따라서 분류되어 있어서 단편이지만 그 단편들이 나름대로 계통이 있고 체계가 있어서 만족스럽기도 하다. 오직 독서뿐! 제목처럼 정민 선생님도 독서를 강조하고 옛선현들도 독서를 강조한다. 오직 독서만이 산만한 정신을 오롯이 세우고 바른 가치관을 세운다. 인터넷을 통해서 현대인의 지각이 산만하다고 했던 서양철학자의 말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은 즉흥적으로 지각은 산만하다. 화면에 떠오르는 수많은 상들은 단 몇초만에 바뀌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오직 독서만이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정신을 세워서 결국 우리의 삶을 세우는 것이다. 정민 선생님을 통해서 옛선현들의 독서를 듣고 배우는 귀한 책이였다. 오직 독서뿐!

 

인터넷 시대가 될수록 독서의 소중함은 더 절실해진다. 어려서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지식을 얻지만 깊은 사유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다. 귀 밝고 눈 맑은 젊은이의 예지는 게임으로는 결코 습득되지 않는다. 빨리 가고 싶은가? 속도를 늦춰라. 서두를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 책을 통해서만 생각은 깊어진다. 책 안에 원하는 대답이 있다. 또한 책 읽기는 읽기는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 잘 쓰려면 많이 읽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한 단락 한 단락을 날마다 세 끼 밥 먹듯 새겨, 정신의 균형과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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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DNA에서 양자 컴퓨터까지 미래 정보학의 최전선 카이스트 명강 1
정하웅.김동섭.이해웅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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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도대체 책 제목이 왜이러지? 하고 첫 번째 생각이 들었다. 요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구글이나 네이버 지식 검색을 찾으면 그야말로 다 나온다. 지금까지 검색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니 뭐 굳이 어려운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 것 같긴하다. 그리고 요즘 명강의 시리즈가 유행인가보다. 하버드대 명강의, 예일대 명강의, 카이스트 명강의. 명강의 시리즈는 높은 수준의 학문을 일반 대중들이 알아들을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강의하므로 최고의 학문적 성과를 함께 나누는 좋은 취지가 있다. 보통 인문학 같은 경우는 높은 학문적 성과를 쉽게 풀이하면 잘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 같은 분야는 워낙 전문적이고 기초학문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그것도 양자역학이니, 생명공학이니 하는 학문들을 대중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들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카이스트에서 강의하는 3명의 교수들이 몇 번이 걸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정하웅 교수는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복잡계 네트워크와 데이터 과학에 대해서 강의하고, 김동섭 교수는 ‘생명의 본질, 나는 정보다’라는 제목으로 생물 정보학의 최전선에 대해서 강의하고, 이해웅 교수는 ‘퀀텀 시티 속에 정보를 감춰라’라는 제목으로 양자 암호와 양자 정보학에 대해서 강의한다. 모두다가 정말 어려운 최첨단에 속한 분야이다. 과학에 대해서는 거의 눈뜬 장님에 가까운 내가 이들의 첨단 강의를 쉽게 풀이한다고 해도 전부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수도 있다. 세 개의 강의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이 각자가 하나의 완결된 것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 보였다. 그중에서 첫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언급된 ‘정보의 네트워크’가 전체 강의를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된 중심적 역할을 한다. 이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며 인간이 알지못하고 보지 못하는 세계에서 무수히 복잡하게 얽혀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세계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그중에서 어떤 질서와 정보를 찾는 것은 복잡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과학자들은 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속에서 어떤 정보를 읽어야만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양자학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하웅 교수의 복잡계 네트워크가 가장 흥미로웠다. 일단 2강의 생명강의에서 생명의 본질을 정보로 정의하는 과학의 오만함이 거부반응을 일으켰고, 생명은 단순히 과학의 물질적인 관점으로만으로 ‘정보’라고 정의할 수 없는 1강에 따르면 무수히 복잡한 복잡계의 네트워크가 생명에도 연결되어 있는데 그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단순히 생명을 하나의 ‘정보’라고 정의하는 것은 과학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과학적 환원주의(reductionism)이다. 그리고 3강 양자학은 어렵다. 복잡계 네트워크는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일상의 모든 삶에도 적용되는 것이기에 흥미로울 뿐 아니라 유용하기 까지 하다. 1강의 저자 정하웅 교수는 복잡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양하고 많은 수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구성요서 하나하나의 특성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복잡한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나름대로의 질서를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얽혀 있는 사회, 몸 속 물질들이 생화학반응하며 일어나는 생명현상, 통신수단을 통해 컴퓨터들을 연결해 놓은 인터넷, 신경세포들의 연결이 이루어내는 뇌의 작용 등 우리의 주변의 거의 모든 것에서 볼수 있는 것이 복잡계이다. 이 복잡계 네트워크는 좁은 세상의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전 세계인들이 5명만 거치면 사로 아는 사이라는 이론은 1967년 하버드대 사회학과의 유명한 교수의 스탠리 밀그램에 의해서 증명된바 있다. 그리고 정하웅 교수와 라즐로 바바라시 교수는 인터넷의 모든 웹페이지는 평균적으로 1번의 링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것은 결국 우리가 사는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것도 몇몇의 연결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얽혀 있다는 사실이고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다양한 자료와 표, 도표와 그림을 제시하면 복잡계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부분은 지루할 틈이 없고 상다히 흥미로웠다. 저자는 구글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나는 구글을 단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네트워크의 힘, 데이터의 힘을 이런식으로 전체로 네트워크화 시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였고 흥미로웠다. 다른 강의도 좋았지만 1강만큼은 흥미롭지는 않았다. 전문적이여서 그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과학도 이렇게 흥미있구나 이렇게 재밌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러한 시스템으로 움직여 나가는 구나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고, 역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도 다시금 환기하게 되었다. 주로 인문학 분야에만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 습관을 도쳐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복잡계란 복잡하고 어려운 무언가입니다. 그런데 잘 보니까 그 바탕에는 네트워크라는 아주 간단한 뼈대가 있었습니다. 네트워크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주변에 널려 있어서 찾아내는 건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라는 뼈대를 연구한 다음에 복잡계를 이해하자. 어려운 문제는 나중에 풀자'라고 생각해서 실제 네트워크를 살펴보았더니 이것들이 항공망, 허브가 있는 네트워크였다라는 게 이번 강의의 내용 전부입니다. (p.66)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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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반양장)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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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중권은 이제 한국사회의 진보적이며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는 논객과 또 미학자로써 이름을 굳히고 있다. 진중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말과 지시과 언변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 언론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지식인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언변의 칼을 날리는 독사와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별로 좋아않지만 그의 원래 본업인 미학자로써 진중권을 보았을때는 감탄할 만하며 존경을 보낼만하다. 그의 강의와 책을 읽어보았는데 그가 알려주는 미학의 세계는 철학의 세계와 맞물려 매우 탁월한 인식적 지형을 그려준다. 그의 강의를 여러번 들었는데 모호하게 다가오는 철학과 미학의 개념을 매우 명쾌하고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라 대중문화를 미학자의 눈으로 분석한 글을 읽어보면 그는 전문적인 글쓰기 뿐 아니라 대중적인 글쓰기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보면서 어떻게 이러한 통찰을 가질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하고 어쩜 이렇게 재치있고 위트있는 글을 쓸수 있을까 또한번 감탄하기도 한다. 진중권 그는 분명 그의 본업인 미학자로써는 매우 성실하고 탁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그가 그동안 책은 분명히 그것을 알려준다. 그의 문장은 지적 통찰이 날카롭게 서있으면서도 문장은 유려하고 위트를 가진다.

 

미학자로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준 그의 출세작은 <미학 오디세이 1,2,3>일 것이다. 이 책은 미학자로써 그의 이름을 알렸고 미학이라는 낯선 영토에 독자들을 초대하여 새영토를 개척하게 하였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썼지만 역시 그의 본업은 미학자이고 이것을 다시 확인시켜준 책이 <서양미술사 1,2,3>이다. 시리즈나 구성이 모두 <미학 오디세이1,2,3>을 닮았다. 두 시리즈 다 미학과 미술사를 연대순으로 꼼꼼하게 다룬 것은 아니지만 전체 그림을 그릴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서양미술사1,2,3>은 고전미술사와 모더니즘 미술, 그리고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3부로 나누어서 서술되어진 책이다. 이 책은 미학자 진중권의 매우 날카로운 통찰과 풍부한 미술사 지식이 잘 드러난 시리즈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3권은 모더니즘의 후기현상인 후기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미술의 표현방식의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이 시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 미술은 형식의 파괴와 함께 비평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보통 비평이라 함은 작가의 사후에 이루어지는 역사적 성격을 띄지만 오늘날 현대미술에서의 비평은 단지 작가와 작품의 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작품과 작가와 함께 현재성을 띄면서 작품자체를 해석하고 성립시켜주는 중요한 예술의 베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현대미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 자체를 주체화 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과연 예술을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언제 예술이 되는가?’로 바뀌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미술의 형식의 파괴, 즉 예술작품과 일상품을 구분시키는 물리적 차이자체를 폐기시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폴록의 작품과 뒤샹의 작품, 그리고 앤디 워홀의 작품이 그러하다고 할수 있다.

 

후기 모더니즘 미술에서 특히 폴록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 폴록은 비평가 그린버그에 의해서 지지되면서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폴록은 이로인해 1950년 이후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예술운동의 모태가 되기 시작한다. 색면추상, 탈회화적 추상, 미니멀리즘, 개녀미술, 카프로의 해프닝 등은 ‘폴록의 유산’이 없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p.8 그리고 모더니즘 운동과 예술은 정치적인 운동과도 관계가 있고 실제로 모더니즘 운동에 영향을 받은 모더니즘 예술은 정치적 좌익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모더니즘 예술은 향후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라는 걸출한 화가에 의해 영향을 받게된다. 폴폭은 이젤을 수직으로 그리다 갑자가 이젤을 수평으로 눕이고 물감을 드리붓기 시작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폴록은 몇 번의 실험 끝에 전혀 새로운 화법을 개발한다. 그것을 이셀을 수평으로 눕이고 작업화를 신고 물감을 들이붓고, 붓으로 찍어서 캔버스 위에 흩어뿌린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이 1950년 처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소개되었을 때 그의 작품은 난해하고 형태나 정형화된 작품이 아니여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처음 소개된 그의 작품에 대해서 “그의 모든 그림에서 감지하기 쉬운 것은 이런 것들이다.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기법의 흔적조차 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혼돈”이라는 말로 혹평을 받았다. 후에 그의 작품은 “후기 입체주의를 넘어섰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폴록의 미술사에서 큰 획을 그을수 있는 사람이며 전후 미술의 역사는 폴록의 드립 페인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폴록은 기하학적 추상을 넘어서 뜨거운 추상과 관념의 세계, 그리고 무정형의 작품을 탄생시켰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폴록의 이러한 성취에 대해서 그당시 유럽의 미술이 주도하고 있었던 것을 미국의 회화로 다시 올수 있었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고, 이러한 것은 회화의 평면성과 순수성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의 작업은 후기 모더니즘의 출발점이자,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전개될 거의 모든 예술 운동의 미학적 기준이 된다.

 

진중권의 이 책 <서양미술사 3>은 다소 전문적인 용어와 간결한 문장으로 미술사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을 쉽게 풀어냈다기 보다는 압축해서 설명하므로 다소 난해한 것 같았다. 그러나 진중권의 미술사에 대한 작업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철학적 측면에서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툴(tool)을 제공해 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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