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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박부장입니다 - (주)만복유통 글로벌 마케팅 감동 신화
정진호 지음 / 홍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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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박부장입니다> 소설제목치고는 좀 유치하고 어이가 없다. 소설의 기획과 내용에 비해서 이 제목은 다소 가볍게 느껴지고 내용의 스케일이나 진지한 의도를 담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는 거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저자가 말하는 온전한 복음과 새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의 의미를 알고 이 제목을 보면 '띵동'이라는 말은 교회를 사람들 가운데 가져다 주는 희망의 소리로 이해가 되고, 박부장이라는 말은 평신도 복음사역자의 대표격으로써 사용된 단어임을 알수 있다. 구입하기에는 소장가치가 조금 떨어진다 생각하여 이 책을 빌렸다. 가까운 지인이 강력히 추천하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정진호. 이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평양과기대와 연변대학에서 가르치면서 탈북자들이나 실크로드를 따라 이스라엘로 들어가면서 그곳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재료공학자로 알고 있다. 주로 평신도의 입장에서 개혁적인 글을 쓰시는 분인데 이 분의 글을 처음 읽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도전적이고 시대 적절한 교회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요즘 한국교회가 이제 한계에 다달했다는 자성적 반성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교회론의 문제 그것도 교역자와 평신도간의 계급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근본적이라 할수 있다. 이 책은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평신도 전문인이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자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유기적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의 두 중심축을 말하자면 온전한 복음과 새로운 교회론이다. 나에게 매우 적절하고 평소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는 책이였다.

 

일단 온전한 복음과 새로운 교회론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 저자가 채택한 방식은 논리적인 논술방식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서 두가지 핵심적인 논의를 설명한다. 어쩌면 이야기야 말로 논의가 말하지 못하는 인격적이면서도 온전한 설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야기는 혜진과 그의 남편 영광으로부터 시작된다. 혜진은 과거에 교회에서 만난 광서라는 남자를 사랑했다. 광서는 가난한 집안의 청년이였지만 건실하고 조용한 카리스마로 혜진의 마음을 잡았고 혜진은 그에게 마음을 주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형편의 차이로 인해 억지로 혜어지게 되었고 혜진은 조건좋은 영광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영광은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조건과 능력을 가진자로 혜진은 애써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광서와의 헤어짐을 잊으려한다. 어느날 영광이 혜리라는 젊은 여자에게 아이를 낳게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녀의 가정을 깨어지기 시작한다. 자녀 수민과 성민은 어긋나기 시작하고 영광은 자취를 감추고 혜진은 그동안 지켜왔던 가정의 틀이 모두 무너져감을 느낀다. 혜리는 영광이 임신시킨 딸을 데리고 와서 혜진의 마음을 어지렵했다. 그때 박부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부터 이상하게 하나둘씩 사건이 신비스러우면서도 은혜롭게 해결되기 시작한다. 박부장이라는 사람은 일곱 개의 비밀이 담긴 상자를 가지고 와서 이것을 시간이 될 때마다 하나씩 열어보라고 하고 혜진이 이 상자의 하나하나씩을 열때마다 그녀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된다. 그녀는 혜리와 수민으로 인해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고 그들과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박부장으로 인해 중국으로 가게되고 거기서 옛 애인 광서와 그녀의 남편 영광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이 혼란함의 중심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경험을 주변의 친구들에게 전해주므로써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만복유통의 지점을 세우게되고 이것이 글로벌화 되면서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하나되는 특별한 교회의 틀을 만들어가게 된다.

 

대략적인 이러한 줄거리 속에서 저자는 온전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현 교회에서 전하는 교회중심, 목회자 중심적인 불완전한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중심의 온전한 복음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직접 사역자가 되고 섬김이가 되어서 주의 복음을 잁터와 세상으로 확장시켜나가는 새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의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가 유대인과 이방이 하나되는 우주적인 교회론적 모델을 제시하고 그것을 광서와 그의 유대인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서 소설적 이야기로 구체화 하고 있다.

 

이 책은 참된 복음과 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오랜세월 고민하면서 실천해온 저자 정진호 박사의 전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림이 담겨져 있다. 그는 이러한 열린 교회에 대해서 그의 전공인 재료공학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재료를 구성하는 셀이 거대할때는 주변의 셀이 그 특성을 잃어버리고 거대한 셀에 편입되지만 작은 셀로 구성될때 그 재료는 더욱 단단한 성질을 가진다고 하면서 마이크로 셀로 구성된 재료가 튼튼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회또한 거대한 중심이 아니라 자발적인 작은 중심이 건강한 교회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닫힌 셀이 아니라 열린 셀이 서로의 결합을 단단하게 하듯이 교회 또한 물질과 영성이 흘러가는 담을 넘는 열린 곳이 될 때 교회의 연합과 부흥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재료공학적으로 마이크로 오픈 셀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목은 다소 유치하기고 하지만 매우 거대한 스케일과 온전한 복음, 그리고 전혀 새로운 시대에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평신도와 사역자가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교회론을 제시하는 매우 뛰어나고 중요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고민하고 생각해 왔던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어느정도 좋은 모델을 얻은 것 같았다. 하나님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교회가 로마의 국교로 인해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로 구조화 되기전 1세가 초대교회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은 마이크로 오픈 셀과 같이 작고 열린 모습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회전도자와 상담자는 교회와 모임을 돕는 보조자일 뿐, 절대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지 않았다. 모든 성도가 예배자요, 설교자요, 또한 직업이 있는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것은 모든 성도가 독립 예배자로서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모임 역시 성도들의 집이나 더러는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일터교회의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교회를 개척하면서 동시에 가능한 유통 사업을 함께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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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자유케 하라 - Set Yourself Free
로버트 D. 하이들러 지음, 방원선 옮김 / WLI Korea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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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바라보는 커다란 관점을 세계관(worldview)이라고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어울어져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체계적이고 총체적이든 아니면 파편적이고 단편적이든 누구든지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눈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세계관(worldview)라고 한다. 이 세계관을 좀더 종합적으로 분류해보면 몇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나는 크게 두가지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두가지의 부류는 나만의 분류법이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두분류로 나누는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나는 세속적인 방식이요, 또 하나는 종교적인 방식이다. 세속적인 방식은 이 세상에 보이는 현실이 모두인 유물론적인 방식이요, 또 하나는 내세를 믿는 종교적인 방식이다. 나는 플라톤처럼 이 세상은 이데아의 그림자요, 참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이 현실 가운데는 무엇가 다른 초자연적인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눈에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 그것을 사차원적 세계라고 하든, 영적인 세계라고 하든 별 상관은 없지만 성경을 믿는 그리스인으로써 이 현실안에 다른 차원인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

 

이 책 <너 자신을 자유케 하라>라는 책은 두 번째 세계관으로 쓰여진 책이다. 즉 이 현실 세계속에는 또 다른 차원인 영적인 세계가 있고, 현실 세계와 영적인 세계는 상호 작용을 하며 대립하기도 한다. 저자 로버트 하이들러 박사는 뛰어난 성경교사이면서도 복음의 영적인 권위를 믿고 경험하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받는 영적인 공겨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매뉴얼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력에 대해서 어떻게 스스로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성경적이고 실제적으로 싸우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영적인 존재, 즉 사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사단의 권한과 능력이 분쇄되고 무장해제 되었지만 실제적인 공격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들면 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이 ‘D-day'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쳤고 전쟁의 승리는 이미 이때 결정되었지만 그 사이에 격렬한 작은 전투는 있엇다. 마찬가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존재의 권세를 모두 무장해제 시키고 해체시켰지만 작은 영적 전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강건하게 설수 있는 실제적인 영적 전략과 무장방법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공격에서 무장해주는 가장 좋은 방어는 바로 의로운 삶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공과 의를 행하고 정직함 가운데 거할 때 우리를 둘러싸는 의의 방패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할 때 이 의의 방패는 균열이 생기고 영적인 공격을 허용하는 구멍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 영적전쟁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의의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인데 바로 그 장비가 정의이다. 바른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우리의 흉배가 되어 보호받는 방패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 존재가 공격 발판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준다. 교만, 거짓, 용서치 못하는 마음, 영적오염, 조상의 죄등이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공격하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깊은 성경적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단순히 일차원적인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의 모든 것이 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자들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성경이 참된 인간과 세상의 길을 제시하는 참된 진리임을 믿는 나에게 이 책은 인간의 몸과 영혼 모두가 안녕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길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세상은 모든 것이 유비(類比)될 수 있다. 인간에게 몸과 영혼이 있듯이, 자연에도 물질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것이 있을 것이다. 만물은 그렇게 서로 유비(類比)될 수 있도록 되어있고, 그래서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유비를 문학을 통해서 특히 ‘시’를 통해서 그 신비와 비밀의 일말을 조금 비춰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린도후서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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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
팀 켈러 지음,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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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어떤 이끌림으로 읽게 되는 특별한 책이 있다. 이 책은 어떤 이끌림과 인도하심을 받은 특별한 책이라고 믿는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참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었고 그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갈구 하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복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이번에 복음에 대해서 정리를 하고자 마음먹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구했다. 몇주전에 지인들을 만날 일이 있어서 분당 약속장소로 갔다. 제일 먼저 도착하여 그곳 근처 서점에서 책을 보며 돌아보고 있었는데 넓은 가판대에 중간에 있었던 이 작은 책을 집어 들었다. 난 책을 들면 항상 앞뒤 표지의 글과 앞뒤 날개의 글을 읽는다. 그곳에 있는 내용은 책의 핵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글을 읽는데 바로 이게 내가 찾던 책이라는 느낌이 왔다. 정말 65쪽 밖에 안되는 작은 책자이지만 이 책안에 복음의 핵심이 정확하게, 그것도 현대적인 적용과 진술로 매우 탁월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바로 사들고 그 다음날 다 읽었다.

 

성경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구원의 행위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복음을 믿는 것이고 교회는 이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을 실천하는 하늘의 에이전시(agency)이다. 현대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과 멀어져 세상의 지탄을 받고있는 것은 진정한 복음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현대문화와의 타협으로부터 오는 복음의 변질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그곳 가운데 침잠하고 그 복음을 누리고 그 복음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이 책은 '티모시 켈러'라는 현대의 주목받는 한 목회자이자 기독교 변증가가 쓴 책이다. 우리 시대의 유명한 신학자들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핫'한 목회자이기도 한 티모시 켈러는 미국 뉴욕의 한 복판에서 현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서 정직하게 답변하여 기독교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유물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며 인간이 가야할 유일한 소망의 길이라는 것을 놀라운 지성으로 변증하며 목회하고 있는 분이다. 나는 소식으로만 들었지 이분의 책은 처음이였다. 이 책을 다 읽고 새로운 뛰어난 기독교 변증가이자 복음적 목회자를 발견한 기쁨이 컸다. 그래서 이분의 책을 뒤져서 다른 책도 읽기 시작했다. 그의 변증능력은 성경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면서도 시의적절하고 논증의 태도는 예의바르고 세련되어 있다.

 

이 작은 책 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는 복음안에서 자아의 문제에 집중한다. 현대문화와 성경은 인간의 '자아'에 대해서 다르게 진단한다. 프로이드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에 대한 놀라운 발견은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밝혀 주었고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준 것은 사실이다. 현대 심리학은 언제나 자기긍정과 자신감과 자존감을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보루(堡壘)로 여기고 그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복음안에서 말하는 인간의 '자아'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것과 완전히 다른 이해를 갖는다. 이 책은 바로 복음안에서의 '자아'가 현대문화에서 말하는 '자아'와 어떻게 다른지 매우 설득력있고 세련되며 적절하게 논증할 뿐 아니라 복음안에서 있는 참된 자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므로 인간의 존재됨과 존엄성 그리고 참된 자유는 복음안에서 올바른 '자아'로 회복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고린도전서 본문은(3:21-4:7) 어떻게 자존감과 자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전통적인 문화나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말하는 자기이해의 방식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16

먼저 그는 현재 인간의 '자아'의 상태를 진단한다. 그는 인간의 원래 본성적 상태가 바로 교만이라고 말한다. 교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브리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원래의 상태보다 부풀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본성적 상태는 스스로의 작은 자신의 실체보다 훨씬 더 커보이고 위대해 보이려고 하는 작위적인 상태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인간 자아를 부풀려져 보이게 하는 상태를 공허함, 고통, 분주함, 나약함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인식할때 실존적 유한한 상태를 감추기 위해서 자기를 부풀리는데 이것은 빈약한 실체를 감추려 함으로 공허한 상태가 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하게 되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으로 채우려고 분주하게 되고 그 실체는 나약함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존의 존재가 아니요 의존의 존재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존적 존재라 되려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풀릴 수밖에 없는 교만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기위해 여러 가지로 채울려고 하지만 하나님 없는 노력은 원래로 돌아가야할 큰 배경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존감을 말하고 자신감을 말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부풀리는 것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참된 복음안에 있는 정상적인 자아의 상태에 대해서 매우 탁월하게 진술한다. 바울은 성경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나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자유로운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회복되어야할 인간 '자아'의 상태인 것이다. 인간은 외부의 판단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그럴듯하게 보이고 인정받기 위해 포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판단이나 자신의 판단에 노예가 되어 자신도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간다. 언제나 심판대 앞에 선 피고인 처럼 아무런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판단에서 자유하였다. 그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았고 세상의 참된 진리에 따라서 스스로를 움직여 나아갔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했으면, 진실로 자신으로부터 자유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인간보다 가장 열정적이며 사랑스럽우며 존귀한 인간이였다. 바로 바울의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새로워진 자아였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현 상태는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자유한 자아는 부패하였고 교만이라는 질병이 자아에 침투하여 하나님과 멀어져 대적하며 비참한 실존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현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우연히 던져진 존재라고 어렴풋이 인간의 실존적 상태를 진단하긴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상태에 대한 진단은 유보되고 있는 것이 현대 문화에서 인간 자아의 진단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이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안에 돌아갈 때 가장 온전한 인간 자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복음은 가장 위대한 소식이지만 또한 감추어지고 버려진 소식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이 복음을 주셨으면 우리가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일때 가장 자유하고 존엄하며 지혜로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하나님의 복음을 이 작은 책자가 이렇게 깊고도 넓게 담아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인간의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람들이 인정하던 그렇지 않던 말이다. 바울은 그 열정으로 세계의 문명을 유럽에 실어날랐다. 이 시대에 진주와 같은 복음이 돼지우리에 던져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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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닉 교회 -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로버트 D. 하이들러 지음, 진현우 옮김 / WLI Korea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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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신앙서적중에 가장 유익하면서도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책이다. 제목은 ‘메시아닉 교회’, 부제는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이다. 성경에 대한 상당한 식견과 깊은 신앙이 없으면 이 책은 아마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한 책일 것이다. 내가 10년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만큼 유익하거나 신성한 충격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교회모습은 과연 어떠한 역사적 전통위에서 세워진 것일까? 우리가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형식들, 그리고 교권제도들, 교회정치, 그리고 매년 지키는 교회력들. 이 책은 이러한 현재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교회사 자료를 바탕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원래 교회의 뿌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복음의 매우 중심적인 주제라는 것을 알게된 것을 10년전쯤이다. 성경을 읽다가 히브리서 4장의 안식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것을 한 선배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 선배는 그가 만든 이스라엘을 공부하는 모임을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 참석하고 나서 내가 그동안 가졌던 하나님과 복음 그리고 열방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되었다. 나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을 두 번째 부르심이라고 스스로 부른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발견은 성경을 보는 눈을 뜨게해 주었고 성경을 유대적인 관점으로 그리고 현대 중동문제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실로 나에게는 천지개벽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교회론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정말 참된 복음과 참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찾아나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는 바로 주후 1세기 바로 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였다. 현대 기독교 용어로 그것을 메시아닉 교회의 회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이 책은 교회의 뿌리가 되는 주후 1세기의 교회, 즉 메시아닉 교회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것의 모습이 현재의 교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참된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의 유대적인 유산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교회의 초기 모습은 어떠한가? 초대 교회 멤버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였다.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유대교의 전통들과 절기들을 지키는 유대교인들을 말한다. 초기교회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졌고 초기교회의 모습에는 자연스럽게 유대교 전통과 기독교 전통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구분적은 성직제도는 없었고 예배는 자연스럽게 인도자들에 의해 인도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면 자연스럽게 가진 은사에 따라 사역을 하여 몸을 세워나갔다. 이것이 초기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힘이였다. 그러한 모습이 3백년까지 지속되다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의 역사가 로마제국을 이기자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다. 그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모진 핍박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에 의해 멈추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때부터 기독교를 황제종교로 만들기 위해 이교적 관습을 기독교에 접목시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조직적인 예배방식, 그리고 여러 가지 종교풍습들이 혼합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때부터 황제적 예배방식에 따라 유대교적인 방법들과 실천들이 이단시 되면서 철저하기 기독교와 유대교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교회사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가 있는 거의 모든 공의회는 표면상으로는 교리의 연합과 이단의 문제로 모였지만 많은 부분은 기독교 생명의 핵심이였던 유대적 관습을 철저히 배격하는데 있었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반유대적 관습에 대한 금지는 다음과 같다.

 

* 안디옥 공의회(A.D. 345) - "만약 이 결의 후에, 감히 유대인들처럼 유월절을 준수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가 주교건 장로건, 또는 부제건 간에 공의회 판사들은 그들을 교회로부터 파문시키고 저주할(아나테마) 것이다. 이 공의회는 그자들의 지위를 박탈할 뿐 아니라, 감히 그자들과 연락을 취하려는 자들의 지위까지도 모두 박탈할 것이다.“

 

*라오디게아 공의회(A.D. 365) - "유대인들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만약 그 누구라도 유대주의자라는 것이 발견되면, 그 자를 그리스도로부터 파문시키고 저주할 것이다.“

 

* 프랑스, 아그드 공의회(506) - “성직자들은 유대인들의 잔치에 참가해서는 안된다”

 

* 제10차 톨레도 공의회(7세기경) - “부활절은 한결같이 지켜야 한다, 단 유월절 기간이 아닌, 니케아 신조에서 결의된 기간에”

 

*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 - “공공연하게, 혹은 비밀스럽게 안식일을 지키고 다른 유대인들의 관행들을 따르는 자들은 영성체에도, 기도에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공의회로 인해 철저히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주의 임재가 충만한 초대교회는 유대적 유산과 분리됨으로 인해 원래의 생명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A.D. 70년경 로마가 유대인들을 공격할 때 기독교인들이 함께 싸우지 않으므로 역사적으로 완전한 분리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한 분리는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로마서 9~10장과 에베소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맏아들인 이스라엘은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빛과 말씀을 전하는 자로 이방에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안에서 복음으로 하나될 때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충만한 복음의 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 로버트 하이들러는 현재의 교회가 유대적 유산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성경적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이며 둘째는 성경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 셋째는 가정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 넷째는 삶에대한 히브지적 태도의 상실이 그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태도는 경외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적 유산과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교회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경하는 태도가 아니라 분석하는 태도로 바뀜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삶에 대해서도 히브리적 태도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던져진 무지한 것으로 여겨 삶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무의미하게 던져진 것이라고 했다. 바로 정확하게 히브리적 삶의 태도와 반대되는 사상이다.

 

저자는 현대교회가 종교개혁과 여러 가지 은사성령운동을 통해서 교회의 원래모습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원래 뿌리인 유대적 유산을 아직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유대적 회복 운동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백 투 예루살렘(Back to the Jerusalem) 운동을 비롯해서 영화 회복(Restoration), 그리고 여러 이스라엘 회복 선교단체(IMN 등)들이 일어남으로 매우 급속도로 마지막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즉 교회를 원래의 뿌리인 유대적 유산에 접붙임 하므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준비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현재의 교회는 분명 어떤 한계에 와있다. 원래 교회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 전통과 전통으로 쌓아올려진 지금 교회의 모습은 이제 그 한계를 보이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회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래 교회의 뿌리는 유대적 유산의 일부이며 교회가 그것을 회복할 때 진정한 교회의 모습, 생명력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력있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랜 의문들, 왜 유대적 유산을 회복해야 하는지, 대체신학이 무엇인지, 지금 지키고 있는 교회력의 기원은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적 유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유대적 절기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현대 교회에 접목시켜야 할지에 대한 많은 답을 주었다. 현재 교회는 회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우 단순하고 실제적이며 하나님에 의해 의도된 유대적인 뿌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가장 성경적이고 교회를 교회되게하는 마지막 성경적 지도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며, 모든 세상의 소망이며 생명의 원동력이다. 이 교회가 타락하고 생명력을 잃어버릴 때 세상의 역사는 어둠의 역사의 길을 걷게된다. 그것이 바로 중세사의 모습이다.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임재의 집으로 회복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은 교회가 뿌리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 책은 나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슴이 뛰고 열정이 솟아올랐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것을 선포하는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말이다.

 

그 회복의 일부는 메시아닉 유대교의 부흥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메시아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교회된 교회에는 거할 수 없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그 뿌리로 다시 부르고 계시며, 우리의 잃어버린 유산을 회복시키고 계신다. 그분의 교회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풍성함을 누리는 “한 새사람”이 되게 하실 것이다.(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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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2-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양장)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유진 피터슨..대학시절에 이 분의 책을 읽었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책을 읽고 얼마나 신선한 충격에 빠졌는지 모른다..한 인물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니..그리고 이렇게 다윗의 이야기를 가지고 깊은 묵상에서 길어올린 참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지..그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로 진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지..나는 이 책을 대학때 읽고 유진 피터슨의 팬이 되버렸다. 그때부터 이분의 책을 전부 사기 시작하고 이분의 글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월간지나 잡지에 나온 작은 쪽글이라 할지라도 유진 피터슨의 글은 깊은 영성과 묵상에서 퍼올린 영혼을 맑히는 글이였다. 짧은 글이라 할지라고 그것이 주는 임팩티는 가희 매머드 급이였다. 개신교 신학자중에서 영성신학자로 그 명성이 높은 유진 피터슨은 기독교 영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장 건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진 피터슨이 길어올린 다윗 이야기..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혜롭고, 노래잘하고, 군인으로 용감하고, 의리를 지킬줄 알며, 한여자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깊은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시편으로 알려진 다윗의 노래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는 시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알고있는 다윗은 바로 위의 정도이다. 참 그리고 골리앗을 드라마틱하게 물리친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용감한 무용담으로 널리 알려지 이야기이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다윗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조망하고 깊은 영성에서 길어올린 다윗이 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나와있는 감추어진 모든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다윗과 예수님, 다윗과 이야기, 다윗과 사울, 다윗과 요나단, 다윗과 도엑, 다윗과 사무엘, 다윗과 아비가일, 다윗과 밧세바...등 다윗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우리에게 참된 영성과 참으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다윗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다른 유명한 성경의 인물과는 달리 한번도 특별한 기적을 일으킨 적이 없다. 모세나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와 다니엘과 같은 경우는 특별한 기적이 그들의 삶안에 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 안에는 초자연적인 어떤 일들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목숨과 같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며, 미친척하고, 아내 미갈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지는 것을 보면서 아파하고,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에 충격받고, 밧세바를 범하는등 온통 자연적이고 현실적인 삶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보통 성경의 인물들에서 볼수 있는 초자연적인 기적은 하나도 없고 자연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일들로 가득한 그의 삶속에서 그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용서하고 아파하고 극복하고 이해하면서 늘 하나님을 가장 현실적인 삶 가운데 모시고 가장 인간답게 지혜롭게 살아갔다는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수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삶속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의 재료로 삼았고 다른 사람들이 현실만을 볼때에 다윗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보았고 또 그분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인해 적군을 달리며 담을 넘는 진정한 인간이였다. 유진 피터슨을 바로 다윗의 이러한 점을 한마디로 ‘영성’이라고 말한다. ‘영성’은 위험하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거칠다. 그래서 보통 영성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극히 위험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은 현실의 정중앙과 가장자리 모두에서 살면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그렇지만 하나님과 언제나 연결되어있는 삶을 살았다. 이것이 바로 제목과 같이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곧 ‘영성’이다. 이 영성은 무엇가 특별하고 현실을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에 뿌리박혀 살면서도 하나님으로 부터오는 생동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고대의 고부 이레니우스는 참으로 살아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다윗은 죽음과 아픔과 상처라는 현실이 주는 가장 깊은 고통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현실 가운데 인간으로써의 자격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최고의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아 바로 영성있는 이야기꾼 유진 피터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다윗 이야기의 최고의 교훈인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자하여 적군을 향해 달리며, 담을 뛰어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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