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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빵의 위로
구현정 지음 / 예담 / 2013년 1월
평점 :
몇주전에 여동생과 나란히 앉아 토요일 아침의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재미가 없었다. 지루했다. 나는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른채로, 아이씨, 왜 뭐 먹는지 안나와! 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여동생은 언니는 뭐 먹나 궁금해서 저거 보는거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나는 다른 지역에선 무얼 먹나, 그게 궁금해서 그 프로를 시청했던 것 같다. 그 프로를 보고 무얼 보고 싶다거나 무얼 경험해보고 싶다거나 한 적은 없는걸 보면. 난 항상 뭔가 먹어보고 싶어서 거길 가보고 싶었던거다.
여행기를 읽는것도 마찬가지. 내게 여행기는 그동안 재미없는 책이었는데 간혹 신나게 만드는 여행기가 있다. 그런 경우엔 내 흥미를 끄는 음식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얼마전에 읽은 체코 여행기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당을 조용히 관람한것만 나와서 읽자마자 팔아버렸다. 왜 무얼 먹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거야, 왜, 대체 왜!
그런참에 이 책 『유럽, 빵의 위로』란 책을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빵이다, 빵! 그것도 유럽의 빵!!
내가 이 책에 기대한 건, 빵 사진이 전부이다. 어디에서 어떤 빵을 먹는지, 그 빵들은 어떤 느낌을 주는지만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글솜씨도 있었다. 저자가 새로운 빵을 먹기전에 기대하고 또 먹으면서 느끼는 충만함에 대해 얘기할 때, 나에게 그 느낌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브레첼은 짭짤한 맛과 쫀득쫀득한 식감 때문에 맥주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특히 독일 남부에서 날씨 좋은 날 비어가르텐에 앉아 맥주 한 잔과 거대한 브레첼 하나를 즐기는 이들을 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p.21)
그중에서도 바게트가 가장 맛있는 순간은 살라미 한 조각을 올리거나 마음에 드는 치즈를 두껍게 바를 때가 아닌가 싶다. 가끔 햇살이 좋은 날에는 발코니에 앉아 살라미와 바게트 그리고 화이트와인 한 잔을 곁들인다. (p.39)
내 꿈이 살아나던 그 순간에 우리 테이블 위에는 거품이 싱그럽게 올라온 카푸치노가 있었고, 하얀 접시에는 아펠 슈트루델(Apfel Strudel)이 담겨 있었다.
얇은 빵 안쪽으로 익힌 사과 조각들이 시나몬과 버무려져 포근하게 안겨있고, 그 주위를 바닐라 소스가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었고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향기들이 모두 모여 있다니 ‥‥‥사과향, 계피향, 바닐라향. 그것은 코끝으로 느끼는 회복의 환희였다. (p.48)
빵은 비극일 수도 있다. 빵이 그려내는 장면은 굶주림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빵을 먹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물론 알고 있다(이 점은 나중에 저자도 언급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읽다가 자꾸만 내 자신이 삐딱하게 나가려는 것도 같았다. 흥, 잘먹고 잘 사는 사람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이건 빵에 대해 말하는 책의 저자에게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텐데, 나는 찌질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은 저자가 느끼고 묘사하는 장면들에 대해 황홀경에 빠진것도 사실이다. 아, 이 여유로운듯한 일상이라니. 빵과 맥주라니, 빵과 와인이라니. 물론 나는 살라미와 치즈에 더 반하기는 했지만, 나른한 오후와 게으른 아침이 연상되면서 행복한 장면이 그려지는거다.
가장 놀랐던 건, 이 책 안에서 다른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거다. 빵에 대한 이야기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내게, 저자는 자신의 독서 내공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가 메모를 해둔 것일지, 혹은 빵을 대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게 된 것인지,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안에서 알랭 드 보통을 만나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다른 작가들도 가끔.
크루아상에 대한 부분에서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떠올린다.
프루스트는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을까? 그의 병이 너무 심해지기 전에는 카페오레 두 잔이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진 은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중략) 제대로 바삭바삭하고 고소하게 구울 줄 아는 빵집에서 하녀가 가져온 크루아상을 커피에 찍어 먹었다. -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p.57)
프린츠레겐텐 토르테에 대해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린다.
PRINZREGENTENTORTE‥‥‥라는 식의 음식 이름을 일일이 수첩에 메모하면서 어떻게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못한다. 대학 1학년 때의 독일어 강의가 생각나서 속이 거북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중에서 (pp.252-253)
나는 위의 두 책을 모두 읽었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결코 생각나지 않는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알고 인용한걸까? 놀랍다.
나는 대부분의 육중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빵을 좋아한다. 떡은 잘 먹질 않지만 빵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밥보다 빵을 좋아하진 않는다. 끼니는 무조건 밥이어야 하고, 끼니와 끼니 사이의 허기짐에 대응해서라면 빵을 선택하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생크림이 들어간 빵도 좋고 아몬드가 박혀 있어도 좋다. 단팥이 들어가있어도 좋고 딸기쨈만 발라 먹는것도 좋다. 물론 햄과 치즈가 가득 들어가있는 빵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고.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빵은 나를 유럽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나로 하여금 이 빵들을 먹기 위해 유럽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는 못했다. 빵이라면 대한민국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빵은 내가 간식으로서 만나는 음식이 아닌가. 간식을 위해서 저 멀리로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질 않는다. 물론 내가 낯선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빵을 죄다 먹어보고 싶은건 사실이다. 나는 아주 맛있게, 여유를 즐기면서, 그러니까 저자가 언급했던 맥주나 와인들을 한 손에 들고 그 빵들을 음미하고 싶다. 내가 아주 먼 곳에 갔을 때, 낯선곳에 들렀을 때 빵을 즐기고 느끼고 싶은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들을 즐기기 위한 여행을 작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워했던 건 유럽의 어느 나라도 저자가 거주하는 독일에서 자동차로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몇 시간만 달리면 오스트리아로 갈 수 있고 좀 더 긴 시간을 달리면 이탈리아를 갈 수도 있다. 자동차로.
까르멜로와 루칠라의 결혼식은 그들의 고향인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열렸다. 독일맥주가 그립다는 까르멜로의 얘기에 우리는 자동차에 그가 좋아하는 에르딩어 맥주를 가득 싣고 독일 베를린에서 장장 15시간을 운전하여 페루자에 도착했다. (p.220)
아, 부럽다. 나도 15시간을 운전하여 포르투갈에 닿았으면 좋겠다, 21시간을 운전하여 뉴욕에 닿았으면 좋겠다. 12시간을 운전하여 호주에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각 나라에 머물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그들이 먹고 싶다는 한국 음식을 트렁크에 넣고 갈 수도 있을텐데. 중간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면서 우동을 먹을수도 있을테고, 몇 시간 눈을 감고 지친 몸을 쉬기 위해 길 한 복판의 호텔에 들를 수도 있을텐데. 쓰읍-
그러나 이 책의 부작용은 이런 부러움이 아니다. 읽을 당시에 느껴지는 빵에 대한 허기짐이다. 엊그제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기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미치겠는거다. 책의 절반도 채 읽지 못했는데도 나는 집 근처 빵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빵집을 털었다. 집에 갈 때까지 나는 무겁다고 중얼거렸다. 세상에, 빵을 '무거울만큼' 사다니. 식구들은 무슨 빵을 이렇게나 많이 사왔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차마 빵 책을 읽어서라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내가 사온 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그 순간 정신줄을 놓았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한다. 배고플 때는 이 책을 보지 말자. 더불어 배고플 때는 빵집에 들어가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