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Happy birthday to me 이벤트 :)
(웬디양님의 생일축하 이벤트 참여글입니다.)
사람마다 이성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곳이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이라고 하는데, 나는, 눈은 좀 식상하다고 생각한다. 그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으면서. 얼마전에 만난 남자에게 내 눈이 하는 말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 흥! 남자라면 여자의 눈이라고 대답하면서 사실은 가슴을 볼 수도 있고 뒤돌아 있는 엉덩이를 볼 수도 있으며 다리를 볼 수도 있겠지. 어제 읽은 하루키의 일큐팔사에서 덴고는 아오마메의 다리를 아주 아름답다고 말했다. 마음에 쏙 든다고. 여자의 경우에는 눈이라고 말하면서 엉덩이를, 손을, 뒤통수를, 어깨를 볼 수도 있을거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엉덩이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엉덩이를 본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보다는 입술과 코와 눈을 그리고 볼을(으응?), 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을 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어느 신체부위가 마음에 든다면 그 순간 사랑에 빠진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거다. 아니,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잘 모르겠다. 사랑하니까 예뻐보이는 건지도. 아, 이런건 정말 어려워. 진짜 모르겠다니까. 어쨌든 한나는 미카엘을 사랑한다. 미카엘의 미소를, 미카엘의 손가락을. 아니, 다시 미카엘을. 나의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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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미소와 손가락이 좋았다. 그의 손가락은 각각이 개별적인 생명을 갖고 있다는 듯이 찻숟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찻숟가락은 그 손가락에 쥐여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내 손가락은 그의 턱을, 제대로 면도가 되지 않아서 수염이 삐죽 나와 있는 그 부분을 만져야만 할 것 같은 희미한 충동을 느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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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한나는 아마도, 그가 만지작 거리고 있는 찻숟가락이 되고 싶었겠지. 그러니 찻숟가락이 가졌을 느낌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겠지. 후아- 그의 턱을, 제대로 면도가 되지 않은 그의 턱을 만져야만 할 것 같은, 그러니까 '만지고 싶은' 이 아니라 '만져야만 할 것 같은' 충동!
그들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고 데이트하고 그리고 그들은 그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연애 (혹은 사랑)의 끝일지도 모르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하고 나서도 한나와 미카엘이 달콤했다면, 처음 시작처럼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마음이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한낱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아모스 오즈는,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라는 분명한 명제를 드러낸다기 보다는, 아모스 오즈가 얘기하는 건 결국,
사랑이든 설레임이든 그게 뭐든, 영원한 것은 없다, 는 것. 인간은 결국은 혼자라는 것. 변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이라는 것.
그것이다.
미카엘은 여전히 미카엘이다. 미카엘의 손가락도 여전히 그대로 미카엘의 손가락이다. 미카엘의 턱도 여전히 미카엘의 턱이다. 미카엘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미카엘을 마주 보고 있는, 함께 살고 있는 한나의 마음은 변했다. 한나는 조금, 표독스러워졌다. 시간이 변하게 하는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는 그게 무엇이든 '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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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과 함께가 아니에요. 우리는 두 사람이지 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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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주 말랑말랑하게 시작한다. 두근거리게 시작한다. 마치 내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쿵쿵거리면서. 그러나 이 소설은 점점 쓸쓸해진다. 그래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어, 사랑이란 게 고작 이런거라니까. 그 쓸쓸함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 쓸쓸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입꼬리 한쪽을 치켜 올리며 피식, 웃게 되는 쓸쓸함 쪽에 가깝다. 그치, 영원한 건 없으니까, 하는.
가끔 소설이 가져다주는 가장 완벽한 느낌은, 그것이 주는'현실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허구의 이야기이고, 만들어진 캐릭터였어도, 그 속의 삶은 정말 존재하는 진짜 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달콤함과 쓸쓸함이 사실은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 그렇기에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
여자에게 완전한 나이란게 있을 수 있을까? 여자는 언제나 지금의 나이가 아닌 다른 나이를 꿈꾸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미카엘]을 읽는 것은 삼십대가 가장 완전하다. 이십대는 뒤편의 쓸쓸함을 무시하기 쉽고, 사십대는 앞편의 살랑거림을 놓치기 쉬울테니까. 삼십대는 설레임과 쓸쓸함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이 책을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나이대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삼십대에 읽었다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 이십대에 읽었다면 별을 세개나 네개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삼십대에 읽었기 때문에 별 다섯을 줄 수 있었다.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에서 '요는 타이밍이지' 라는 말을 했었는데,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스타킹 훔쳐보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그런 오래된 격언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하권, p.191)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아..가슴 시려.
웬디양님, 지난 생일 축하하고 앞으로의 생일도 계속 축하해줄게요. 나는 웬디양님의 마흔에도, 쉰에도, 예순에도, 일흔에도,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생일을 계속 축하해주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그리고 웬디양님, 쑥스럽지만, 잘 말하지 않는 단어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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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에요. 이 감정은 살아있어요! ㅎㅎ
따뜻한 커피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계절이 왔다.
아, 잊을 뻔 했는데,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성의 신체부위는 날 바라보며 웃어주는 그의 눈동자다. 식상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