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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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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쳐다만 보고 말아버리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시집을 붙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호기심이었고 충동이었다. 별다른 뜻 없이 그냥 읽고 싶은 맘이 동해서 읽게 됐는데 생각보다 받은 인상과 느낌이 좋았다. 그건 난해하게 들리는 시가 적었기 때문인 거 같다. 시를 접해본 적이 없는 문외한으로서 그나마 얼핏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를 이해했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어렴풋이 한 번 느껴본 기회가 됐다.

희미하기도 선명하기도 한 기억과 사유 속에서 힘들게 한 자 한 자 시를 짓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눈으로 한번 슥 하고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글도 소리내서 천천히 자꾸만 읽다보면 느낌이 생겨났다. 신기하다. 어렵다는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수준에서 시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조금씩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마음에 와 닿는 표현들이 자연스레 감정의 파고를 높였다. 그런 정제된 표현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언어를 시도했을까. 그런 시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숭고해진다.

여전히 내겐 시는 멀다. 하지만 그 거리가 마냥 아득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시집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따금 고급 언어인 시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사방팔방 펼쳐지는 느낌과 가슴을 때리는 시적 표현으로 위로도 받고 감성적으로 깨어나고 끝끝내 일부만이라도 깨우치는 인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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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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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햄릿]에 이어 이번엔 [오셀로]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느낌상이나 캐릭터상으로 오셀로가 햄릿보다 훨씬 더 흥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는 거다. 이 작품의 핵심은 '남성의 질투'라고 말할 수 있다. 질투라는 감정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고 있으니까. 질투란 요망한 감정 때문에 언제까지나 변치 않으리라 장담했던 위대한 사랑도 아주 손쉽게 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지는 않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오셀로나 데스데모나도 있지만 가장 마력적인 인물은 바로 이야고다. 악한의 기본구성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로서 사건의 발단도 이 사람에서 기인한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악한 사람들이 있다. 교활함이 무기인 사람들 말이다. 그런 교활한 사람의 표본이라고 할 만할 정도다.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능숙하게 헤아리는 솜씨가 상당하다. 이야고가 오셀로에 대한 앙심을 품게 된 것도 어쨌든 시작은 승진하지 못한 데 대한 야속함 같은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야속하고 이해가 되는 바가 전혀 없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쥐락펴락 희생시키며 교모하게 파탄에 몰고가는 그 악랄함은 절대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오셀로의 사랑이 그 정도로 허약했을까, 하는 점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쉽게 쓰러져버리는 그런 사랑이란 말인가. 하긴 견고하고 완벽한 사랑에도 빈틈은 있는 법이다. 의심하는 눈으로 보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니까.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질투심이라는 마음에 싹트는 순간 처참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질투하면 괴롭다. 불안하고 힘들어진다. 아름다움이나 숭고함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자연스럽지만 나쁜 감정이라서 더더욱 무서운 것 같다. 자연스러워서 벗어나기가 그만큼 힘들테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재밌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여러 면면에 대해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워낙 양면적이고 복합적이라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상황과 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질투에 성별과 연령이 있을 수 없기에 누구나 동일하게 흔들릴 수 있다. 감정의 동요로 누군가는 사랑을 얻는 반면에 누군가는 사랑을 잃는다. 비극이 주는 씁쓸한 맛이 있다. 희극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감정에 금이 생기는 그곳에서,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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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8-2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까지 멕베스 읽다가 말았어요; 잘 안읽히더라구요 ㅠㅠ
어렸을 때 아동용 세계문학 전집으로 읽을 땐 재미있었는데 ㅋㅋ 오델로도 꽤 재미있던걸로 기억-
다시 집중해서 읽어봐야겠어요-

거친아이 2009-08-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가 있든 없든 간에 상식 차원에서 4대 비극만이라도 다 읽어보려고요.^^
전, 오셀로 생각보다 재밌게 봤어요. 이야고란 나쁜 놈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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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염두하고 책을 보는 편은 아니다. 희곡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까닭에 희곡은 언제나 내겐 새롭다. 이 책도 한 4년 가까이 묵혀둔 후에 가까스로 읽게 되었다면 더 말해 무엇하리. 부조리 연극이라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어본 것이 유일하다. 부조리극을 직접 눈앞에서 본다면 책과는 다른 어떤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다.  

책을 보면서 비슷한 감성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부조리는 역시 극명하게 다른 감성을 받기에 요긴한 것이 사실이다. 글을 읽는 내내 아니면 읽고난 후, "이게 뭐야!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읽기를 멈추지 못했다. 논리적인 사고나 개연성 따위는 쓸데없는 것인 양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현실이란 삶이 부조리하기 때문에 이런 연극이 계속 지속가능한 생명부여를 받게 되는 것일까. 같은 모국어를 쓰건만 서로가 내뱉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빈번한가를 생각해보면 부조리는 진정 참인 것이다.   

하나의 재미라는 것에도 여러 층위가 있기 마련인데, 정해진 재미를 깨는 재미가 있는 희곡집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재미와는 차이가 있으니 어쩌면 재미없다는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뜻밖의 수확이라면 '부조리'라는 말이 시사하는 그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약간이나마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인간이라서, 현실이라서 가질 수밖에 없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우린 '한계'라고 부른다. 한계를 직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반연극을 보면서 '그래. 현실은 부조리한 것이지.'하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세 편의 연극들이 혁신적인 것은 알겠다. 부조리한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현실과 진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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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3-3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 오늘 이오네스크의 코뿔소보러가는데..
진짜 이 이오네스크나 베케트 희곡이 공연을 하면 극단에 따라 엄청 괜찮거나 완전 졸리거나 둘 중 하나거든요.
친구가 전에 대머리 여가수 보면서 계속 잤다고 그러던데 약간 떨려요. ㅋㅋ

거친아이 2009-03-3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연극보러 가시는구나~ 코뿔소는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네요.
부조리연극, 제겐 좀 난해해요~ 부디 마음에 드는 공연보시기를.^^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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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받은 작품이란 것만 알았지 사실 작가 이름도 제대로 잘 몰랐다. 희곡에 대한 관심 자체가 결여된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소설이라면 또 몰라도 내 취향에 비추어 볼 때, 희곡을 자연스럽게 대하기란 아직까지는 좀 이른 것 같지만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작품과 연관된 어떠한 설명도 일부러 피했다. 내가 받은 감상만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조리극의 표본 같은 작품으로, 또 고전이란 이름으로, 오랜 세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사뭇 궁금하기도 했고.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란 두 남자가 미지의 인물인 '고도'를 끊임없이 기다린다는 내용이 전부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게, 정말 뭔가!'싶기도 했었다. 처음엔 생각보다 '별로'라는 느낌에 강해 왠지 실망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곰곰히 작품에 대해 생각을 반추하면서 '고도'란 인물에 관한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은 그 모호함이 주는 면이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긴한 장치로 보였다. 우스꽝스럽게 끊임없이 지껄이며 끝끝내 나타나질 않을 대상을 기다린다는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동화될 수 있었다. 

어리석게도 보이고 시간만 허비한 채 마냥 그렇게 세월을 속절없이 보내는 그네들의 모습들이 솔직히 낯설지가 않았다. 그건 분명 나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번듯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냥 무작정 무엇가를 기대하며, 기다림을 생활로 삶을 연명해가는 존재들이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아무리 혁신적으로 바뀐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생명으로 태어난 존재들이라면 무엇가를 항상 기다리게 되어 있다. 기다림의 끝이 헛헛한 허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뭔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게 세팅된 존재들인가 보다.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기다림이란 단어의 양가적인 면을 목격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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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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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선생님께서 엮으신 시집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을 읽을 마음은 아마 생기지 않았으리라. 시와는 무관하게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신경림 시인은 알고 있다. 간혹 방송에 출연하실 때 멀리서 바라보는 게 다지만 역시 시인은 달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각도 표현하는 언어도 다르다는 점이 시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학교에서 시험을 위해서 배우는 시를 제외하곤 개인적으로 내 스스로 시를 접해본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시는 어렵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를 접한 방식 자체가 틀려서 그런 거 같다. 공부하듯 분석하고 해석하지 말고, 소리 내어 읽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일 텐데 말이다. 시에 대한 이해가 좁은 편인 나지만 마음을 흔들고 가슴을 적시는 시 앞에서는 감성이 자극되는 것이 사실이다. 둔감한 사람이라도 감성이 있는 한 다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시인들의 이름이나 대표작도 모르거나 헷갈리기 십상이다. 꼭 알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기억할 수 있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선생께서 책머리에 쓰신 글 중에, 시를 즐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 이들은 남이 맛보지 못하는 삶의 즐거움을 하나 더 가지고 세상을 사는 셈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정말 기억해둬야 할 말 같다. 시를 대하기도 전에 난 항상 내 빈곤한 감성을 탓하곤 했다. 이번만은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천천히 음미하고 천천히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덧붙이신 간명한 해설의 힘으로 한결 수월하게 시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음결이 미세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시를 쓰거나 시를 가까이 하는 것 같다. 무턱대로 어렵다고 치부해버리거나 시 자체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버리기에 안성맞춤인 시집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절제된 감정으로 그리워하고, 강렬하게 저항하지만 언제나 차분한 어조로 저마다의 의미를 노래하는 시가 아름답다. '처음처럼'으로 인해서 시와의 멀어진 거리가 좁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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