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기둥 - 제3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42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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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요지의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을 나는 새 시집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사건의 개연성이나 구성, 스토리, 인물, 주제 등을 두고 따지는 소설보다 시가 더 요령부득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시를 읽는 이들은 다른 문학 장르보다 더  문학을 대하는 자신을 점검해보게 될 것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자주 본다. 점잖게 ‘요즘 시는 어렵네요’ 라거나 ‘이런 시는 별로예요’ 말하면서도 시를 꾸준히 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히키코모리나 외계어 같은 문장과 생각에 넌더리를 내며 시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들도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시가 뚜렷했던 것처럼 한국시는 한국인의 시대적 감수성과 아주 밀접했다. 소설보다 정서에 더 가깝게 와닿기 때문에 소설보다 기대하는 게 컸다.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 많은 시 모임들만 봐도 한국인의 시 사랑은 대단하잖은가. 그만큼 많은 시들이 쏟아져 나왔고 분량이 짧은 시의 구조상 기존 시 스타일로 더 이상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시는 새로운 모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시는 소비에서도 뚜렷한 두 양상이 있다. 시 쓰는 자들이 읽는 시와 일반 독자들이 읽는 시. 전자는 더욱 신선한 걸 원하고 후자는 자기 감성에 와닿는 시를 써주길 바란다는 게 내가 보는 현 상태다. 그래서 무수한 실험이 펼쳐지고 있는 이 시집이 전자에겐 환호 받겠지만 후자에겐 환영받기 어렵겠다는 게 내 소견이다.
 
나는 나대로 이 시집에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1. 작위와 無用 사이
시의 無用은 시인이 말하는 게 아니라 시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가닿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 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라는 시인의 <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이나 이 수상 소감에 깔깔대며 좋아하는 박상수 시인·평론가는 자조를 넘어  문학 판의 치기로 보였다. 그 말은 약간의 허세였고  詩作에서는 다르다고 해도 그 수상 소감은 내가 이 시집에서 내내 느꼈던 개운하지 못한 의심을  확인해줬다. 문 시인이 시를 ‘쓰는 도구’로 생각하는 게 시집  전반에 뚜렷이 보였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막을 생각도 없지만 몇몇 이들의 공감과 인정으로 만족하거나(과연?) 개의치도 않는다면(더 과연?) 스스로 자신의 시 가치를 깎는 것 아닐까.
“문장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주변을 신경 쓸 재간도 없이, 미래를 도모하지도 않고도 않고 오직 한자리에서 홈을 파며, 어쨌든, 바닥에 흔적을 내고, 그것을 위해 몸을 꼴 대로 꼬며 깊어지는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다//…(중략)…//이 문장은 다른 문장에 비해 더 오랜 기간 외롭게 매듭을 만들고 있으며 고유한 방식으로 몸을 꼬고 있는 것 같다”(「멀리서 온  책」)고 말하는 이 문장처럼 이 시집에서는 낯선 것들을  ‘이중 매듭’으로 엮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아래에는 두드러졌던 예 하나만  가져왔다.
    
ex) “피는 끝에 오니까. 나무뿌리처럼 뽑히기 직전까지 땅을 움켜쥐니까. 배다. 작은 어선. 당신은 졸고 있다.  지루하게 돌아가던, 구석의 앉은뱅이 도르래의 속도가  빨라진다. 당신은 넓은 모자의 끝을 턱에 걸었다. 턱으로 흐르는 검은 액체를 해풍이 말리고 있다.”(「뾰루지를 짠다」)
 
뾰루지 짜는 정황을 갑자기 항해를 하는 정황으로 점프 컷 연결했다. 재밌거나 신선하게 느낄 윤활유가 전혀 없어서 과장만 되고 말았다. 사소한 것들에 과장을 붙이는 게 문 시인 시작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만.   
  
 
2. 시시함과 단언 사이
이 시집은 이질감과 딱딱한 느낌을 주는 현재 시제로 대부분 진행되고 있는 데다 단언이 많아서 읽는 이에게 거부감을 주는 구석이 많다. 신은 왜 그렇게 시시해야 하며, 시인의 단언을 우리가 신뢰하며 귀 담아들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재기 넘치고 빛나는 문장이 곳곳에 있어도 설득력은 뒷받침되지 않아 시 자체를 부질없고 시시하게 만든다
 
●  동의되지 않는 神
ex 1) 신의 손을 편 채 뒤집어 가방 위에 올려놓았으므로/신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모양의 책은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다(「역사와 신의  손」)
 
ex 2) “그녀는 일찍 태어나 버렸다./ 신이 무단횡단을 하는  바람에 //…(중략)…//인간에게 약간의 삭제가 허락된다면 ㅡ 그것이 신의  직업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일지라도 ㅡ 전봇대 아래의 똥, 아니 똥이 보여 주는 침착함 그 자체가 되고 싶었으며, 깜깜한 밤보다 비 오는 대낮을 무서워하는 똥의 속사정을 몰랐지만 그것까지 알았다면 정말 똥이 되었을  것이다.”(「무단횡단은 왜 필요한가」)
 
ex 3) "중력의 법칙은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신이 원자보다 작은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신은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신을 보려면 특수한 기구가 필요하다 신은 인간과 연락을 끊기 위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 인간세계의 중력 법칙이 미치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인간들이 섭섭해한다”(「과학의 법칙」)
 
ex 4) "손이 부족한 천국에서는/천사가 악마도 겸임한다는 사실 같은 게/사람들의 따뜻한 여름날을 망쳐선 안 된다고.”(「공원의 싸움」)
 
ex 5) “새/가창문에부딪혀자꾸자꾸죽었다신은실력이좋지않았던/거지,도끼를내려놓고도그런생각이가능했다”(「도끼를 든 엉덩이가 미친  사람」)
    
신을 인간 위치로 끌어내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품성이 있다는 듯 신을 가져와 쓰는 방식이 굉장히 소비적이며 문제적이다. 그 위치시킨 신, 추상에 대한 비유와 정의도 너무 가볍다. 지금 시대 이것이 과연 신선한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시대도 아니고. 전복적이라기보다 신의 추종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딪힌 벽을 그렇게 처리하고 마는 한계로 느껴졌다.
  
● 있어 보이는 문장이지만 동의하기엔 미숙해 보이는  화자의 단언들
ex 1) 죽음은 두둑하게 쌓여 있는 무엇일 뿐이다(「N의 백일장의 풀숲」)
ex 2) 인간을 불행으로 나눈 뒤 다시 불행을 곱해 인간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수학의  법칙」)
 
과학과 수학 등을 동원하며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지만 소화가 덜 되어 보였고 시인의 사색과 상상력이 좌중을 휘어잡을 설득력도 부족해 보였다. 시인이 정서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성의 시 쓰기를 하고 있어서 더 그렇다.
문 시인의 가능성에는 꽤 긍정하고 있다. 다음 시집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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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8 11:15   좋아요 1 | URL
네... 일단 시가 분량이 적어 다른 장르보다 쓰는 부담이 덜하죠^^; 그래서 쉽게 접근하게 되죠. 막상 써 보면 좋은 시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지만. 시처럼 보이게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죠.
문장에 고심하게 되면 비틀리는 단계가 추동되는 건 언어와 사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철학의 현학성과 비슷하죠. 감성 시를 원하는 독자에겐 반갑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현상이겠고요ㅎ;
읽는 사람이 있으니 쓰기도 하는 거겠으나 문학도 자본 시장인 만큼 요즘 소비자의 위상처럼 독자도 늘 불만을 표할 수밖에 없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좋습니다. 릿터 같은 문예지 글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아..

AgalmA 2018-01-08 14: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요즘은 민음 시집을 많이 읽게 되는데 젊은 시인들의 경향을 특히 잘 알 수 있죠. 대중과의 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많이 느껴져서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도 알겠고 복잡하네요....

cyrus 2018-01-08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난감한 직업이에요. 읽기 쉬운 시를 쓰면 사람들은 시인의 자질을 의심하고(ex: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수준 논란), 오랜 사색을 해서 나온 시가 비평가들이 인정해줘도 독자들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말합니다.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시‘가 어떤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

AgalmA 2018-01-08 18: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한국의 시 문화도 다양성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서 아카데믹한 데가 있잖아요. 안 그런 척 하지만 대학 따지고 국문학과, 문창과, 급을 나누기도 하고; 그런 학적이 없는 신춘문예 시인은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 하죠....
출판사별로 주로 활동하는 비평가들로 나뉘어진 것도 눈에 뻔히 보이는데 시에 비해 평이 과하다 싶을 땐 평가를 신뢰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평을 위한 평을 볼 때도 많고요.
걍 저는 저 대로 읽어요. 좋은 시집이 나오길 기대할 뿐...

그것은실로 2018-01-0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의 무용은 어쩔 수 없이 가닿는 지점이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