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2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2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2권은 1권에 비해 독후감 한 편당 분량이 늘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좀더 풍부해진 해석과 감상을 맛볼 수 있었다.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승옥의 무진기행,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새도매저키즘,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물의 가족, 김인숙의 칼날과 사랑, 김주영의 아들의 겨울, 호영송의 흐름 속의 집, 신경숙의 외딴방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며칠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고 독후감을 올렸는데, 오늘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리뷰를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리뷰는 4~5편 밖에 없고,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이다. !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니 감상평도 다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도 아닌데 변명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오지랖)

 

같은 책이라 해도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讀者)의 몫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어떤 관점에서 읽고 있으며, 무엇을 얻을 속셈인가? 물론 처음부터 숨은 목적(?)을 가지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다 보니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먼저, 책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 방식.

내가 읽지 못했고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이라 해도 상관 없다. 저자가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무엇을 근거로 어떤 해석을 내놓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정히 언급된 책이 어떤 내용인가(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으니 검색하면 된다.

 

두 번째는 한정적이긴 하지만(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영화, 연극, 희곡, 음악에 대한 감상평도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희곡집에 대한 평은 내가 평소 안보는 것이라 신선했다. 관심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악(음악에 관한 책),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세 번째는 역사적인(?) 것. 20년이면 짧은 것 같지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그 시절(20년 전)과 달라진 점이 많다('응사'를 보면 알 것이다). 책에 언급된 작품들과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저자가 자주 쓰는 단어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 출신(학출?)에 대한 반성,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빚어진 가정의 붕괴, 개인화, 물신화,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보면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는 어떨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 잘 몰랐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절판된 책도 많아 구하기 힘들지만 중고장터와 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그래도 못 구하면 어쩔 수 없다) 책에서 언급된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나에게 끼친 중요한 영향이다.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은 어떤 주제를 많이 택할까, 작가론 소설론 시론 같은 건 어떤 것일까, 비평집을 좀 읽어야겠다 등등. 실로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은, 장정일의 아내가 소설가 신이현이라는 것!(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진 않았지만) 책에 FBI 심리분석관, 원래 내가 읽으려고 샀던 책이 아니라 아내가 자기 소설을 쓰는 데 참고하고 싶다면서 보고 싶어했던 책.”(45)이란 문장이 있기에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2권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에로티시즘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부분(121~124), 정화진의 시 51편을 민음사에 보내며(출간 부탁) 쓴 편지(나중에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211~213), 저자가 쓴 단막극 이디푸스와의 여행(원제: 긴 여행)에 대한 작가의 말(259~260), 최현묵의 연극(끽다거〉) 책자에 실은 작가 초상(269~270) 등의 글도 실려 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체제에 비판적인 체하는 작가들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111쪽)

기껏 자기가 체험하거나 어깨 너머로 목격한 인상적인 사건을 몇 명의 꼭두각시 같은 화자의 입을 빌려 나열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믿고 있는 작가에게 어떻게 소설을 가르칠 것인가? 막막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묶으면 열 권, 스무 권은 될 거다`고 마음속 깊이 벼르면서도, 결국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노인네들의 절망만이 소설이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노인네들은 생각했다. `내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되거나 교환될 수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것이다. 하므로 내 삶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똑같이 유일무이한 글쓰기가 고안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안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을 표현할 수 없다. 유일무이한 내 삶을 어떻게, 누구나 해왔던 글쓰기의 방식으로 담아낸단 말인가!` 노인네들을 절망하게 하고, 절필하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절필을 요구하지 않지만, 작가에겐 절필에까지 이르는 절망이 필요하다.(199쪽)

고통은 인간 존재의 출발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으로 절을 짓는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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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6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은 극작가이기도 하지요. 희곡도 작품성 뛰어납니다.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한국에서 학력 문제로 가장 시달림과 폄하를 많이 당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토록 더 공부에 치열했던 거겠죠. 시대에 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과 오버랩이 되기도 하는데, 장정일이 프랑스에서 시나리오 공부도 해서 김기덕과는 또다른 영화를 만들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한 건 아쉬워요.

cobomi 2015-05-16 03: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왠지 아쉽네요.
희곡도 찾아 봐야겠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낭만인생 2015-05-16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 얼마 전 서민교수가 서두에서 장정일을 유난히 부러워 하더군요. 그에 비해 자신은 무명이라고! 그럼 우리는 뭐죠? 글 잘 읽었습니다. 1은 읽었는데 2는 아직 읽지 않아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절판이라 구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cobomi 2015-05-16 23: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최근 여러 곳에서 `장정일` 이름 발견했어요. 그러던 차에 스승의날까지 겹쳐서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ㅎㅎ 중고 장터까지는 못 살폈는데 아마 있을 것 같습니다. 즐독하세요!

cyrus 2015-05-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것이 어렵더군요. 남이 쓴 서평에 대해서 따지는 듯한 입장이 되는 것 같아요.

cobomi 2015-05-16 23:15   좋아요 0 | URL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건 어색하고 쫄리긴 해요. 하지만 그것도 책은 책이니까요.
전 저자한테 따지려 한다기보다 책에 대해서 따지고 싶을 땐 꽤 되는데요? 이 때 따진다는 건 읽다가 혈압 오르는 책... 이를테면 모양만 한국어일 때... 내용이 빈약하다 못해 읽을 거리가 없음에도(저자가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의 책으로 반복 출간할 때 포함) 책값이 비쌀 때... 심각한 오탈자 같은 거 말이죠ㅎㅎㅎ
또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거리가 있을 때, 논리가 이상하거나 빈약할 때도 소심해서 속으로 혼자 따져요 ㅋㅋㅋㅋㅋㅋㅋ
 
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 이건 꼭 읽어볼 책이라는 말을 먼저 하자.  

그리고 독후감.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달력에 표시된 각종 기념일과 행사를 체크하다가 문득 스승의 날에 눈길이 머물렀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이건 순수한 의미에서다) 국어선생님이 있었다. 난 가끔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곤 했다. 뭔가 그 나이 때 아이다운 허세 같은 거였다. 그저 내 얘기를 듣기만 하셨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 보렴."

 

당장 책을 샀는데(허세였다), 무려 다섯 권이었다.(당시 5권까지 출간)

학생이 가진 돈으로 장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수능공부에 필요하다는 둥 온갖 구실로 엄마의 주머니를 털었던 듯하다. 열심히 읽었고, 내 기억 속에 장정일은 '책을 많이 읽는 똑똑한 아저씨' 로 남았다. 그 시절 독후감 공책을 찾아 보면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대한 글도 있을지 모르겠다. 보나마나 민망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다니?

몇 개월 전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책을 잔뜩 들고 갔는데(팔려고), 그 속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다섯 권도 끼어있었다. 놀랍게도 "밑줄 그은 부분이 5페이지가 넘어서" 팔지 못했다.(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기준이다.)

그때 팔 수 있었다면, 그래서 팔았으면 지금 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을 것 같다.

 

국어선생님…. 스승의 날에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고, 대신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시 펼쳤다. 읽다가 이따금씩 선생님이 떠올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나한테 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 건지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아서. 아마도 내 허세가 우스꽝스러우셨던 거 아닐까 싶다.

그땐 아마 대충 읽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니 사회주의니 마르크스니 그런 것도 몰랐을 때고, 에로티시즘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였으니까.(지금이라고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이게 정말 20년 전에 나온 책이야?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나 출간년도, 상영 영화, 김영삼, 새마을호(지금 같으면 KTX를 탔겠지) 얘기가 나오는 걸 봐서는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선 책 참말로 많이 봤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핵심을 쉽게 전달(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데도)하는 글솜씨에 놀라고, 저자만의 명쾌한 해석에 또 놀란다. 놀람의 연속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이 글을 쓸 무렵 저자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엇비슷하다. 근데 난 왜 이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살짝 심각해졌지만, 대신 나는 저자보다 술을 더 열정적으로 마셨을 거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본다.(ㅠ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 나도 독서와 글쓰기에 더욱 매진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그걸 바라셨을까?) 애석하다.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제자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

6, 7권도 중고로 구입했으니 부지런히 읽자.

 

* 그런데 이거 시리즈인데, 한 권씩 독후감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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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3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나 2권 이상의 책에 관한 서평을 쓸 때 난감합니다. 서평을 안 쓰면 시리즈 전체를 다 읽어도 읽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cobomi 2015-05-14 18:43   좋아요 0 | URL
공감! 저는 서평이라기보다 독후감인데요, 안쓰면 괜히 찜찜해요ㅎㅎ 그냥 읽고 치운 느낌이죠.
 
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내친 김에 <아주 사적인 독서>를 읽었다.

그 두 권은 같은 날 주문한 책으로, 내 나름 로쟈 컬렉션이다.(민망하지만)

 

우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을 때 속도가 더디었던 반면 이 책은 수월한 편이다.

둘은 내용이나 분량 자체도 다르지만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두께도 다르다.

먼저 읽었던 책은 종이가 얇아서 두 장씩 넘어가곤 했는데 이 책은 종이가 두껍다.

별로 안 읽었는데 상당히 읽은 것 같은 두께감 때문에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 줄 알면 출판사 직원들이 더 섬세해지려나.

 

일곱 편의 고전 문학작품을 저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게 책의 주내용이다.

원래는 강의한 내용인데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그럼 공적인 독서는 뭐지? 공적으로 기여하는 독서인가?' 생각했다.

나처럼 제목에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많았을까.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이란 말이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독서'라는 의미로 쓰고자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를 가리킵니다. 나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입니다."(6쪽)

마치 공적인 독서와 사적인 독서가 흑과 백처럼 확연히 다른 듯이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념 설정을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독서는 남에게 뽐내기 위한 독서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독서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대화를 나누고(논의의 토대) 소통하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그 둘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 7편이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봐서(<석상 손님>은 빼고) 마치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저자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표현을 쓴다.)

나도 한 두 권은 확실히 읽었는데 나머지는 긴가민가하다. 어린이 시절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중요하지도 않은데 왠지 세어보게 된다는…)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읽은 책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마담 보바리>와 <주홍 글자>, <햄릿>이 그랬다.(확실히 읽은 책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니, 엠마가 저런 짓을 한 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였어?!'

'헐, 저런 게 있었나?'

속으로 이 비슷한 말을 주절거리며 읽게 된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이 진짜 저 책이 맞는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쁜 유형이다.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 사건에 일일이 흥분하고,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온갖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도 읽고 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좋게 말하면 몰입도가 뛰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성찰이라니?! 내가 문학작품을 읽고 과연 성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주 사적인 독서'를 할 수 있을까?!! 로쟈사마처럼 저런 해석을 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다.

 

로쟈가 펼쳐 보이는 고전 작품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물론 저자의 훌륭한 해석과 빼어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도 이제 고전 작품을 로쟈처럼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로쟈사마에게도 몰입하다니, 난 진짜 몰입능력이 좋은 것 같다) 

그러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싫어서(열정은 좋으니까) 책을 다시 훑어 보는데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온다.

 

"(…) 저는 고전을 최대한 우리 가까이에 갖다놓고 싶었습니다. (…)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발견은 자기 발견의 구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라는 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질 때, 고전 독서는 시간이 남아돌 때나 가능한 독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독서로서 의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7~8쪽)

 

난 저 부분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처음 읽을 땐 왜 몰랐을까?) 난 이미 저자가 말하는 독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 ……

날카롭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읽을 때 난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주인공(또는 꽂히는 인물)인데.

 

문제는 내가 작품 속 인물과 완전 합체(?)되던가 아니면 아예 따로 놀던가 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달까.

포인트는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아, 소중한 깨달음.

이야기, 해석, 정보 게다가 깨달음까지 빼곡하게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읽고 싶어졌고,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책에 나온 저자의 가르침(?)이 도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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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2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부터 아직까지도 돈키호테입니다ㅎ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고요.
누군가, 그건 틀렸어. 하려나요ㅎ

cobomi 2015-05-13 06:01   좋아요 0 | URL
돈키호테요?! 틀렸을 리가 있나요. 그냥 다를 뿐이죠 ㅎㅎ
전 아직 안 읽어 봐서 깊이 와닿는 느낌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상주의자? 시대착오적 인물? 이런 정도의 평이었던 거 같네요.
아무래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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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첫 출간된 책을 이제야 읽다니 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로쟈의 책을.

그는 서평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유명한데, 나처럼 너무나도 안 유명한 사람이 그의 서평집을 읽고 리뷰를 쓰려니 심히 부담스럽고 쫄린다.

 

서평은 왜 읽는 걸까? 저자는 신기주와의 인터뷰에서 서평의 기능이 세 가지라 말했다. 첫째는 읽게끔 해주는 것(좋은 책을 사서’ 읽게 만드는 것), 둘째는 안 읽게끔 해주는 것(특히 번역이 엉망인 경우), 셋째는 읽은 척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평을 읽는 이유도 이 세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로쟈의 서평을 읽는가?’ 하는 거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도 저자가 말한 세 가지 기능을 탑재한 서평을, 그것도 쉽고 재미있게 잘 쓰는데 말이다. 궁금한가? (특별히 500원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은 후 나름대로 찾은 답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먼저, 로쟈의 서평은 그 자체로 다른 독자들에게 축복이라는 점이다. 뻥이 너무 심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서점과 도서관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널려 있다. 그 무수한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읽고 싶은 책이 끊임없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내 생각엔 드물지만) 상관없겠지만,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에겐 로쟈의 서평이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일종의 여행안내책자인 셈이다. 그의 서평을 읽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적어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특정한 사람이나 주제를 다룰 때, 저자는 관련 책들을 몇 권씩 나열해서 조감도를 그려준다. 각각의 장단점 설명은 물론이고 어떤 관점으로 읽는 것이 좋은지, 저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쓴 책인지도 알려준다. 그야말로 친절한 로쟈씨다.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것과 관련이 있는데, 독자의 관심 영역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 책 재미있겠다를 넘어서 이런 주제로 공부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내가 이런 것에도 관심이 있었던가, 스스로도 낯설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독자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로쟈의 서평은 곧 그의 책읽기다. 그가 어떻게 책을 읽어내고 공부했는지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문에 읽을 책을 목록으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책을 읽을 때 주목해야 할 부분, 참고 자료를 찾아보는 습관, 미심쩍은 것은 원서와 대조해보고 다른 자료도 확인해보는 것 등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서 혼자 책을 볼 때도 도움이 된다. 내 경우엔 뭘 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자주 있어서, 제대로 읽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로쟈의 서평을 찬찬히 읽으며 내용과는 상관없이 독서(공부)를 이렇게 하면 좋겠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저자의 인터뷰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

저는 읽기 위해 써요. 읽고 쓰는 게 서로 순환하는 거죠. 잘 읽으려면 잘 써야 해요. 잘 쓰면 더 잘 읽게 됩니다. 자기가 뭘 읽었는지 알게 되거든요.”(인물과사상204(2015.4), 24)

역시, 써야 한다. 읽기만 해서는 뭘 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포인트는 읽기 위해 쓰는 것이다. ‘참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의 수준(내 수준)이 아니라, 잘 읽기 위해 쓰는 것. 막연한 느낌이지만 쓰는 것이 읽는 것과 별개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네 번째는 번역에 관심을 갖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번역이라고? 번역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도록 용기를 준다는 게 아니다.(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인문사회과학서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이며, 학술교양서의 경우에는 번역서의 비중이 60퍼센트를 넘는”(159) 현실이기에, 그만큼 독서에 있어 번역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처럼 외국어라고는 거의 모르는(그래서 원서와 병행해서 읽는 건 고려대상조차 되지 않는) 독자의 경우에도 번역은 중요한 사항인데, 자칫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늬만 한국어일 뿐 마법의 주문처럼 번역해놓은 책을 읽을 때마다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혈압이 치솟곤 한다. 그런 분노유발 번역서는 읽다가 팽개친다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이름이나 개념 등을 잘못 번역한 경우엔 문제가 심각하다. 나처럼 원서를 못 읽는(슬프다) 독자들은 번역서의 가독성이 좋을 경우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신나게 읽을 테니까. 그러니 독자 여러분, 잘못 번역된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널리 알려주세요.

 

마지막으로 독서와 글쓰기(리뷰)에 대한 투지를 불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난 읽는 내내 그를 능가하고 싶다는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나도 뭔가 폼 나게 읽고 쓰고 싶다는. , 물론 읽은 지 하루 정도 지나니까 저런 생각을 했었나 싶게 열정이 희미해지긴 했다.

 

2010년에 출간된 책인 만큼 그 이후에 나온 책에 대한 서평은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모쪼록 로쟈의 이 책과 블로그가 책 세계를 여행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변함없이 좋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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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obomi님 (괄호) 속 자학유머 은근 재밌습니다ㅎ

cobomi 2015-05-11 12: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그런가요ㅎㅎㅎ 나름 진지한데요 ㅎㅎㅎㅎ

cyrus 2015-05-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집을 읽으면 글쓴이가 어떻게 글 쓰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그책 속에 언급되는 책들이 뭐가 있는지 보게 되요. 그래서 책 속의 책들이 읽고 싶어져요. ^^

cobomi 2015-05-11 23: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장바구니가 대책없이 가득 차죠ㅎㅎ

albatros 2015-07-0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는 책이 로쟈의 손을 거쳐갔다는 걸 알면 왠지 안심이 되더라구요. 아, 이 책은 나름대로 검증된 책이구나! 하고요.
 
아무 날도 아닌 날 - 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최고운 지음 / 라의눈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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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한다. 참 좋아한다. 어제 오후에 최고운의 <아무 날도 아닌 날>을 펼쳤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책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단숨에 볼까, 싶기도 했지만 왠지 그 타이밍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았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라고 하는 모양인데 난 그저 예의가 바를 뿐이다.

 

어제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남은 부분은 오늘 아침 학교에서 읽었다. 처음엔 분명 텅 빈 강의실이었는데 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보니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만 있었다면 조금 덜 부끄러웠겠지만 교수님도 와 계셨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낄낄대며 책을 보고 있었다니. 대단한 책인 건 틀림없다. 심지어 철학사 수업이었는데(상상하는 그대로의 분위기). 어쩌면 오늘도 술을 마시게 될지 모르겠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을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일단은 재미있고 거침 없고 그리고 또... 또오.... 한잔 생각나는 거? 뭔가 뭉클해지는 부분도 있다.

놀라운 건, 책에 나온 거의 모든 에피소드와 주석에 격렬히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난 어쩐지 '반듯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빨려든 건지도. 저자는 사랑스럽다 못해 만나서 소주(두꺼비 소주가 좋겠다)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나누고픈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나도 모르게 상상하는 것이라 쉽게 멈출 수가 없다.

 

대신 내가 처음 들어 보는 술과 안주의 이름, 잘 모르는 영화나 배우 이름이 나와서 살짝 주눅들었다는 게 단점이랄까. 나중엔 묘한 경쟁의식마저 생겼다. 내가 더 많은 종류의 술을 정복해 보겠다는, 뭐 그런.

이래서 사람들이 대도시(서울?)에 사는 건가, 갑자기 이해가 되고 그들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여긴 지방 소도시이고, 내가 사는 마을은 자정 무렵이면 밥집이건 술집이건 불 켜진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자카야(응? 그게 뭐임, 먹는 거임?)는 고사하고 선택지가 열 손가락도 안 되니 씁쓸하다. 더군다나 가게 문 닫을 시간 걱정하느라 초조해서 술 마시는 데 몰입도가 떨어진달까. 간혹 제대로 술을 마시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택시를 타거나 대리를 부르거나, 운전할 줄 알면서 술 안먹는 사람과 같이 살거나, 집을 '술집화' 하는 수밖에 없다.(그 어느 것도 만만한 선택은 아니다) 저자가 여기저기서 맛있어 보이는 안주에 다양한 술을 즐기는 걸 보니 진심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서울시민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서울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비용(집값+이사비용)으로 마을 경제에 기여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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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에서 술이 빠지면 앙코없는 찐빵같아서..급땡깁니다...

cobomi 2015-05-07 18:52   좋아요 1 | URL
저도 땡겨요 아하핳하하하하핳 쪽갈비에 쏘주(이건 이렇게 발음해야 제맛)로 결정했습니다 함께 해요 하하핳하하

cyrus 2015-05-0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서재 바탕 화면이 소주잔과 어묵탕이군요. 코보미님의 취향이 반영되었군요. ^^

cobomi 2015-05-07 18:53   좋아요 0 | URL
헐 눈치 채셨군요.. 맘에 드는 게 그거 뿐이더라구요ㅎㅎ

AgalmA 2015-05-08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살아도 남산케이블카 안 타보고(저;) 카페모카가 뭔지 모르고(제 지인;) 그렇게 각자의 취향대로 사는 거지요^^;

cobomi 2015-05-08 14:23   좋아요 1 | URL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지의 문제죠 ㅠㅠ
서울 살아도 남산케이블카 안 타보는 거랑, 남산케이블카 자체가 없어서 못 타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여기서만 가능한 것들이 서울에선 못 하기도 하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