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 - 2014 서점 대상 2위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3
기자라 이즈미 지음, 이수미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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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심란하지만 심란하지 않은, 짧지만 따뜻함이 넘쳐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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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심란해지는 대상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땐, 사랑하는 사람이 날 힘들게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너무 모르겠어서, 친한 친구의 실연에 위로하느라 같이 공감되어서, 모든 것이 불확실해서... 그래서 심란했다. 항상 마음 속에는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거품. 그게 나에게 심란을 야기시키고 그래서 술 먹고 그래서 뻗고 그래서 머리 아프고... 뭐 그랬었다.

 

나이를 먹어보니, 이제 그런 걸로는 심란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감정도 잊은 지 오래고 (아 정말 까칠한 삶이다) 인생은 이미 결정이 많이 되어서 궁금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이미 산 날이 많아진 나이라는 거다) 친한 친구가 실연이 아니라 이혼을 한다고 해도 시큰둥이고 (인생이 다 그런거지) 모든 것이 과거에 비추어 명확히 보이는 게 괴로울 뿐이다. 그런 것보다는,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나의 부모님이 가끔씩 몸이 찌뿌둥하다고 하셔서, 지인이 아파서, 내가 아파서... 병원 다니느라 심란하다. 그러고보니 나이먹으면 그저 모든 것이 삶과 건강에 연결된다는, 이 진리 아닌 진리를 깨달은.. 더러운 느낌이 드네 그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걸로 술 먹고 뻗지 않는다. 그러기엔 몸이 넘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 방에 콕 쳐박혀 아무 생각없이 드러누워 있기 일쑤다. (사실 이런 심란으로 같이 술 먹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이젠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요즘 주변에 심란한 일이 계속 일어나서 매일매일 너무 우울하게 지내고 있다. 이러다 접시물에 코를 박고 허우적거릴지도 몰라..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책을 읽어도 마음 한뭉텅이는 '심란'에 가있다. 그래서 매우 가볍고 매우 잘도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책들만 가까이 하고 있다. 덕분에 몸은 힘들고 무겁고 머리는 쉽고 가벼워지고 있다. 머리를 넘 안 쓰는 게 걱정이 되어서 가끔씩 수퍼에서 사는 물건들을 혼자 암산해보곤 한다. (찌끈)

 

나이를 먹어서 느끼는 심란함은.. 사는 게 뭘까. 인간은 뭘까. 이승과 저승은 뭘까.. 뭐 이따위 근본적인 질문들과 엮여 있어서 해결책도 없고 조언을 구할 데도 마땅치 않고 누구랑 공감하기도 우울하고.. 그런 류인 것 같다. 결국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드러누워 이 책을 읽었다. 너무 가벼운 책이라 2시간 만에 다 읽어서 아쉽기까지 했다. 일드 '수박'의 원작자(부부!)들이 지은 첫 소설이라 하고 곧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거라고 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정말 일상적으로 그린 책이다.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 혼자된 며느리라는 설정 자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인연은 참 사소한 데에서 감동을 받으며 시작하기도 하는구나. 나도 모르는 나의 심정 기저에 있는 감성의 털을 살짝 건드려서 저도 모르게 전기가 지릿.. 오르는.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만나면 사는 게 참 넉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뭐.. 심각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아니니 여기까지.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있다. 아르망 가르슈 경감 시리즈 3번째 거다. 쓰리 파인즈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계속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넘의 마을에선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게 좀 흠이다..ㅎㅎ 추리/스릴러 소설을 넘 읽어대서 중간부터는 제발 결말 내라 이런 심정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가르슈 경감 시리즈는 좀 다르다. 그냥 기대가 된다고나 할까. 가르슈 경감의 캐릭터도 남다르고. 그 캐릭터에 흠뻑 빠져 보고 있다. 물론... 진도는 잘 안 나간다. 그넘의 '심란' 때문에. 하루면 읽던 책을 삼사일 째 끙끙거리고 있으니.

 

그래도 이 책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맥주 한잔 하고 가자는 동료의 제의를 가볍게 물리칠 수 있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 다 읽지 않았지만 추천이다.



 

 

물론 루이즈 페니의 다른 아르망 가르슈 경감 시리즈도 함께 추천이다. 무엇보다 책표지가 넘 이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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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리본
헨닝 망켈 지음, 홍재웅 옮김 / 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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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닝 만켈의 책 중에 가장 추리소설 같지 않은 내용이 아닐까 한다. 150년 전의 인종차별과 학대가 살인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와 마오, 덩, 그리고 그들에게 경도되었던 스웨덴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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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의 충격이라면... 다들 브라질의 참패를 얘기할 것이다. 축구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8강부터는 매일 새벽까지 혹은 새벽에 일어나 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팀이 브라질팀이라 그들의 경기는 처음부터 챙기고 있었다. 당연히 오늘 새벽 독일과의 준결승도 보았다.

 

전반전 25분 정도 보고 껐다. 그때까지 난 점수가 4점인가.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무력한 경기였다. 수비가 뻥뻥 뚫리고 공놀이는 전부 브라질 골대 앞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네이마르와 실바가 빠진 브라질. 어느정도 어려우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홈팀이고 그래도 브라질인데..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울고 있는 관중들을 보며 나까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독일의 클로제와 브라질의 프레드다. 운동경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장면 때문일 것이다. 브라질은 7대 1이라는 참혹한 스코어로 졌고 여러가지 진기록들도 세웠다. 독일은 승승장구 결승전에 나가게 되었고 클로제는 36살의 나이에 참가한 월드컵에서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고 월드컵 최다골을 기록하는 영예를 안았다. 반면에, 브라질의 원톱이었던 프레드는 관중의 엄청난 야유를 받아야 했다. 공격수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다 이거겠지. 아버지같다던 브라질감독의 스타일도 비아냥을 받았다. 아버지 좋아하시네.. 그러니까 저렇게 정신력이 없지 뭐 이러쿵저러쿵.

 

이 와중에 경기가 끝나고 야유를 받는 프레드를 클로제가 어깨를 감싸며 걸어간다. 위로하는 것이리라. 사람의 뒷모습은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해준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만 저 동작만으로도 위로하고 있으리라 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참으로 훈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경기에서 이기기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같은 필드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였고 그래서 비난을 받는 것이 안타까와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한 클로제의 배려가 돋보였다. 클로제는 최다 골을 넣어서가 아니라 저 모습으로 내게 기억이 될 듯 하다.

 

나도 클로제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다독일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그런 '덕'이 사는 데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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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얘길 하자면 정말 이야기가 길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완전 미친 여자처럼 transfer를 위해 공항을 달렸고 헥헥 거리며 도착했더니 갈아탈 비행기가 무려 2시간 연착. 이건 뭐 안 온다는 얘기랑 같은 거 아냐? 라며 분개했으나 나 이외의 사람들은 표정변화조차 없더라는 이해불가의 스토리. 2시간 연착도 연착이지만 그 시간이 밤 12시였다는 게 함정. 서안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마중나온 동료에게 미안해 죽을 뻔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간 출장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잘 지내다가 돌아왔다. 갈 때 무슨 책을 싸들고 갈까 망설이다가 들고 간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파리는 깊다>.

 

 

사실은, 중국에 출장을 이리 다니니 중국 역사에 대한 책이나 하나 가져갈까 라며 찾았는데... 흠 중국에 관련된 책은 별로 없고 있다 해도 두껍거나 하드커버이거나 해서 포기. 그러니까 출장이나 여행이나 갈 때 가져갈 책의 조건은 심플하다. 내용이야 누가 보겠는가. 내가 읽는 책의 표지로 날 판단할 거라는 부담감 따위는 과감히 떨쳐 버리고 무조건 얇고 가벼운 소프트커버의 책을 선택한다. 내용도 가급적 가벼운 쪽으로. 여행이나 출장 오고가면서 혹은 그 장소에서 뭔가 심각한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우습다는 게 내 생각인지라 최대한 재미있겠거나 가볍겠거나 하는 쪽의 책을 고른다.

 

책 고르는 걸로 사설이 길었으나... 어쨌든 중국 출장이라는 걸 가면서 왜 꽤나 오래 전에 사둔 이 책에 눈길이 갔는 지 모르겠다. 파리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 아. 파리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용솟음을 치게 만드는 책이다.

 

 

예정된 코스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자.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미술관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다. 모로 미술관이나 달리 미술관은 물론이요, 포부르 생토노레나 보주 광장에는 작은 갤러리들이 많다. 한적한 골목에서 마음에 드는 작은 가게를 찾아낼 수도 있다. 벼룩시장 끄트머리에서 손때가 묻은 찻잔을 사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허름한 식당에서 싸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뒤팽 거리의 레피 뒤팽이나 생폴 거리의 '빨간 목구멍' (Rouge Gorge) 같은 집들이 있다. 그러려면 예정된 코스에서 약간씩 벗어나야 한다. - p8

 

 

백퍼센트 동감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책자에 적힌 관광지에 적힌 곳에 가는 게 지루하다. 그런 곳은 대부분 엽서로 봐도 괜챦을 만하다. 오히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멋지기도 하다. 직접 가면 사람은 많고 그 속에서 인증샷 하나 건지려는 카메라 더미속을 헤쳐 나가야 한다. 뭐하나 여유롭게 감상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런 관광지는 그 나라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 데에 있다. 어쩌면 관광지는 그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장소인 지도 모르겠다.

 

 

툴르즈-로트렉은 볼거리를 좋아했다. 극장이나 서커스는 그에게 또 다른 환상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질려 해도 개의치 않고 같은 공연을 수차례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구경거리를 앞에 둔 툴르즈-로트렉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툴르즈-로트렉만큼 극장을 잘 그려낸 화가는 없었다. 극장은 그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공연이 어떻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설령 공연이 형편없더라도 극장은 즐거운 곳이지요." 그는 어둠 속에 숨어서 인공조명 아래 빛나는 배우들을 훔쳐보는 관찰자였다. 툴르즈-로트렉은 언제나 술집과 극장을 전전하며 밤의 화려한 무대를 탐닉하고 다녔다. -p33

 

 

엄마가 툴르즈-로트렉의 그림을 좋아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람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근데 이 구절에서 이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볼거리를 좋아한다는 것. 구경거리 앞에서 넋을 잃고 몰입한다는 것. 그 장소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 이게 왜 이리 뿌듯한지. 잘 사는 명문집안에서 태어나 귀하디 귀하게 자랐으나 근친결혼의 영향으로 152cm의 왜소한 몸집에 큰 얼굴, 툭 튀어나온 입술 등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한 툴르즈-로트렉에게는 볼거리 자체가 어쩌면 작은 마음 하나 위탁할 유일한 장소였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지도. 사람은 자신의 불행이나 콤플렉스를 뭔가로 가리고 싶어하고 잊고 싶어하는데, 아마도 나에겐 '볼거리'가 그것인 모양이다. 일면 인정.

 

 

 

 

 

 

 

 

 

 

 

 

 

 

 

 

 

인상파에 대한 찬양 뒤에는 꼭 예술혼에 대한 숭고한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해." 혹은 굶주림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나온다는 판에 박힌 얘기가 뒤따랐다. 살아생전에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 화가들은 있었지만, 고흐처럼 작품 한 점 변변히 팔지 못하고 비참하게 산 경우는 없었다. 고흐가 상징이 되면서 인상파 전체가 굶주린 예술가들의 영혼으로 미화되었다. 다른 화가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정보도 없던 시절의 일이다. 이제는 그 신화에서 벗어나 가깝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예술이란 부담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즐거움이므로. -p59

 

 

그러고보니 나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술가란 뭔가 궁핍하고 뭔가 부족하고 뭔가 처절해야만 진정한 예술가라는 편견. 그게 아마도 고흐 등의 몇몇 예술가들에게서 비롯된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고뇌하지 않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예술이 아니고 따라서 나같은 凡人이 근접하기 어려운 영역의 것이다 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말이다. 마지막 문장이 좋다. 예술은 그러니까, 이런 부담이나 고통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즐거움이라는 말.

 

좋은 책이다. 반 정도 읽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좋다. 다시 파리를 간다면 이 사람의 말대로 한번 해봐야겠다 싶은 대목들이 여럿 눈에 띈다.

 

 

이 분은 피렌체에도 이리 자주 가서 머무는가. 부러울 뿐이다. 파리와 피렌체라. 세상의 낭만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의 저자다. 나도 이제는 여러 곳을 두서없이 마구 다니기보다 몇 몇 도시를, 마을을 오래도록 두고두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그 대상이 파리이고 피렌체라면 더욱 좋겠지... 아 다시 부러워짐.. 흑. 

 

내년에는 파리에 가서 며칠 머무르다 와야겠다. 가서 미술관 위주로 슬슬 걸어다니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오면 한결 사는 게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이넘의 책이 나를 불지르고 있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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