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이런 통증을 받아들입니다. 뜨거운 열정이 남긴 유산이 우리 삶에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애도는 잃어버린 사랑의 흔적을 미래로 가져가라고 우리를 독려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나는 재능있는 작가였던 한 남자를 사귄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어렸습니다.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 글과 씨름할 때 그는 앉은 자리에서 20쪽씩 써내려가곤 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짜증스럽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없다면 내가 한 경험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내게 별 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어떤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글을 쓰려고 앉았을 때 나는 실제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20쪽은 아니어도 5쪽은 너끈히 썼습니다. 이별은 10년도 더 된 일이건만 그 뒤로 나는 펜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진중한 태도를 내가 어떻게든 이어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선물을 준 그에게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선물이었으니까요. 그는 떠나갔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의 자질 하나는 내게 남았습니다. - P210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과의 매우 친밀한 유대는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이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죠. 사랑이 개방성을 의미하는 한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습 214 니다. 인생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마음을 열수록 우리는 더 취약해진다는 사실입니다. - P213

많은 연애지침서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합니다.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비생산적인 것도 없습니다. 내가 늘 우세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애정 생활을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농밀한 관계 속을 더 잘 헤엄쳐나가는 법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마스터가 되지는 못합니다. 또한 오만해질수록 우리는 넘어질 공산이 큽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투명함을 인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혼란과 예측 불가능성을 다루는 능력만큼 여러분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 내부에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죠. 사랑의 복잡미묘함을 견딜 만큼 내 마음이 강하다는 걸(그리고 내 삶이 충분이 충만하다는 걸) 아느니보다 더 든든한 보호막은 없습니다.
- P226

시대가 변했습니다. 가족적 가치관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이혼을 일삼는다고 해서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붕괴보다 훨씬 더 긴박한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습니다. 테러리즘에서 환경 문제까지 우리 사회는 이전 세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람들의 애정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죠.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단순히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때문에 이혼을 피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우리를 더 진지한 관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남자가 내 곁에 있는 것은 사회적인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니까요. - P231

사람들은 열정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욕망이 죽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정말이지, 인공호흡기를 달아 억지로 열정을 유지하느니 열정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때로는 더 낫습니다. 우리는 이미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요? 왜 끝없이 애쓰는 관계가 되어야 하나요? 게다가 노력한 보람마저 적다면요? 사랑을 안정적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가 사랑의 즐거운 즉흥성을 억압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랑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을 보호하려는 조치들이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 대상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를 매혹시켰던 바로 그 정열을 파괴할 수 있다는 거죠.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은 모든 사회관계, 모든 세대 간의 관계, 모든 개인 간의 관계에서 대단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너그러워 보이는 법률, 어쨌거나 보편적인 법률을 이용해서 바로 이 그림자, 이 유령, 이 두려움을 좌지우지하려 할 것이다. (…) 그러면 위험, 그것도 보편적인 위험이란 형태로 나타날 성을 통제하는 온갖 법규가 생길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다. _미셸 푸코Michel Foucault - P107

하지만 섹스나 성적인 침해가 피해자에게 끼치는 영향, 가해자의 심리 상태, 형벌이 피해자에게 갖는 치료적 기능에 관해 형법에 담긴 지식은 결코 과학적으로 증명된 진리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진리를 밝혀야 할 심리학이나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리어 형법이 전하는 진실에 적응하고 말았다. 이 진실은 일련의 전략적 진술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목적은 이전까지 국가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인간 생활의 특정 측면에 국가가 개입하는 새로운 권한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 P111

동의에 실린 부담이 얼마나 큰지, 어떤 성관계에 동의했던 많은 여자가 나중에 실제 상황은 이와 달랐다고 느끼는 경우가 생긴다. 겉으로는 자신이 동의해서 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사실상 자신의 영혼이 파괴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자신을 가해한 사람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려고 법적 판단을 요구한다. 강간당한 사람이 보이는 증상이 자기한테도 나타난다고 생각되면, 이 사실을 정당화해주는 사건이 일어났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겪는 아픔의 원인이 인정되고, 강간범이 처벌받고, 치유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118 덧붙여, 성 혁명에서 비롯한 새로운 이중적 성도덕은 애착 없는 성관계를 했다고 여자를 비난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느낌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강간을 고발함으로써 이런 느낌을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서구의 이중적 성도덕과 북아프리카 문화 특유의 남성 중심주의적인 성도덕이 혼합된 문화를 지닌 젊은 여성의 경우에 이 현상은 더욱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매우 심한 사법적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어떤 여자와 동의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실로 그리고 실제로 믿고 있었는데 강간으로 고소된 남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P117

몇 년 전에 나는, 여성에게 어떤 성행위를 강간으로 규정할-여성이 한 말의 진위 여부를 문제 삼아 반박할 수도 없는-일방적인 권리를 주는 프랑스와 미국의 페미니즘 경향에 대해 책을 썼다. 이런 권한이 과도하고 독단적일수록 제도는 공포와 위협을 동원해 권위적인 지위를 만들어내는데, 공포와 위협은 제도가 자기 목적을 완수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공포와 위협으로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슬로건에 담긴 생각을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 정치권의 의도 아닌가? 이 슬로건을 들으면 생쥐스트Saint-Just(프랑스 혁명 시대의 정치가.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로 불리며 공포정치를 지지하였다-옮긴이)나 스탈린의 슬로건이 떠오른다. - P122

이 모두가 가해자와 커플이 아닌 강간 피해자라면 알 수 없을 일상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남편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가끔 남편과 성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던 여자가, 자신이 해 준 동의가 사실은 동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해볼 유혹이 들지 130 않겠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커플 관계에서는 이루 셀 수 없이 무수한 강간이 이루어지고, 이를 고발하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여자의 의지에 달린 셈이 된다. 커플로 함께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간이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일은 어려운데, 현재 법 논리에서는 이 때문에 강간을 유죄로 판결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성의 말에만 더욱 힘이 실리는 실정이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 대부분은 노이로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노이로제가 있습니다. 노이로제는 어떤 식으로든 반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우선순위 목록에서 27번째쯤으로 생각하는 남자와 사귄 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은 이 남자들에게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해달라고 애원했겠죠. 여러분은 필 박사(리얼리티 쇼를 통한 상담으로 유명한 미국 심리학 박사-옮긴이)가 권한 화술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남자들은 ‘이제부터’ 당신을 위해 시간을 내겠다고 약속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늘 작심삼일로 끝이 나고 말죠. - P172

프로이트는 연애만큼 반복 강박이 심하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주 어려서 부모님(또는 보호자)과의 관계에서 배운 관계 맺기 패턴을 끊임없이 작동시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근원적인 심리를 동원합니다. 이런 것은 너무도 굳건히 자리 잡은 애정 패턴이어서 우리는 이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격의 가장 기본적인 층은 이런 패턴으로 형성됐습니다. 우리는 그 패턴이 효율적인지 어떤지 문제 삼지 않고 이를 기계적으로 재현하지만 그 패턴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 P174

불행히도 사랑하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적 신념입니다. 그 신념은 다른 가능성은 닫아놓은 채 특정한 관계에 대해서만 우리의 애정을 작동시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상상하는 것만을 성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무의식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무의식 저변에 나쁜 대본이 깔려 있다면 나쁜 연애를 하기 쉽습니다. - P176

그렇다면 반복에도 의미가 있는 걸까요? 기차가 눈물 젖은 정거장에 서는 것은 왜일까요? 그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습니다. 이런 괴로운 패턴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상처 받는 것이 즐거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에 뒤틀린 쾌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알고 보면 상처 받는 자신의 패턴을 극복하려고 처절하게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반복이 해결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생각도 아닙니다. 세계 정상의 수영 선수가 되고 싶다면 수영장에서 숱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19세기 영문학의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찰스 디킨스며 토마스 하디,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을 수도 없이 읽어야 할 것입니다. 차세대 요요마가 되고 싶다면 첼로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법의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면 과학 서적을 줄기차게 읽어야 합니 178 다. 마찬가지로 연애를 더 잘하려면 한 수 배울 때까지 고통스런 연애의 딜레마에 여러 번 빠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P177

두 남녀가 서로의 굶주린 유령을 자극하면 관계는 금세 진흙탕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내 상처를 건드린 게 아니란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실수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다가 상대방을 화나게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도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한 게 아닙니다. 오래가는 관계들 중에 이런 문제를 겪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오래도록 함께하는 커플은 문제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거나 비참한 상황을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통제할 수 없는 상항을 제압하려 애씁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를 끝낸다면 그것은 반복 강박에서 벗 181 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패턴을 깰 수 없어 이별을 대신 선택한 것입니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연 장자가 그러한가? 장자는 분명 대붕과 참새를 나누고, 대붕과 참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작은 앎은 큰 앎에 미치지 못한 172 다’고 한다. - P171

그런 점에서 나는 곽상을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하는 것을 반대한다. 형이상학의 결과가 이렇게 잔혹하고 냉정한 것일진대, 무감하고 무력하게 어떤 이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무심코 형이상학’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사고’는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P181

그러나 실상은 현학이 추구하고 있는 매우 분명한 ‘문제현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제도냐, 본성이냐?’를 묻는 토론이다. 당시의 표현대로는 ‘명교名敎’와 ‘자연自然’이다. 이는 인간을 어떤 제도 속에서 신분을 지우고 그것에 맞추어 나가게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을 자연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를 따지는 문제였다. - P217

제도는 다름 아닌 이 유가의 천지지심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제도 없이 무나 도가 쓰일 곳도, 천지지심의 발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왕필의 궁극적인 결론이었다. 따라서 왕필은 "하늘은 오행을 낳고 만물을 쓰임이 없도록 하며, 성인은 오 224 륜을 행하고 말없이 교화한다"라고 노자의 철학을 정리하는 것이다. ‘만물을 쓰임이 없도록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해도 만물은 각기 쓰임이 되는 바를 위해 맞추어 나아간다는 것이며, 성인의 다섯 가르침이란 다름 아닌 유가의 강목인 오륜이 행해지는 제도를 일컫는 것이다. - P223

위의 문제에 대해 곽상은 대략 아래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성은 타고난 것으로 운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을 바꾼다는 것은 아무나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고, 바로 자신의 성에 맞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길이다. 또한 성을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성을 벗어나 산다는 것은 곧 불행과 죽음을 뜻하며 성의 굴레 속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 P2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성의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결혼 연령과 첫 자녀 출산 연령이 계속 높아지면서, 커플인 남녀가 서로 다르게 받는 이런 압박은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30세 전후에 안정적인 커플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여자는, 출산이라는 중요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남은 시간이 겨우 몇 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여자는 남자보다 커플 관계에 더 의존적이며, 따라서 남자는 여자를 성적으로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여자가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이유는 이것이 커플을 이루기 위해 여자가 지닌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맺는 것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반면에 남자는 이런 계획 없이 여자와 잔다. 어떤 남자 주변에 안정적인 커플을 이룰 것을 기대하면서 그와 성관계를 맺는 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남자는 아무하고도 커플이 되지 않는 게 유리하다. 적어도 남편감으로 여겨지는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렇다. 일자리가 없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아무 매력이 없거나, 너무 늙어서 성매매 여성과의 성관계로 만족해야 하는 남자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 P96

그런데 역설적으로, 남자는 자신이 애착 없는 섹스를 추구하면서도 애착 없는 섹스를 추구하는 여자, 이른바 ‘창녀’를 욕한다. 테레즈 아르고는, 십 대 남자들이 먼저 나서서 또래 여자들을 ‘창녀’로 낙인찍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자는 섹스할 기회를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섹스 면에서 그 어떤 도전도 직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착 없는 섹스를 추구하는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보다 성 체험의 강도에 훨씬 더 민감하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에게 사물처럼 주어지는 존재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를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애착 있는 섹스를 추구하는 여자들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와 더불어 ‘섹스하는’ 대신 계속 여자를 ‘따먹을’ 수 있는 것이다. - P97

성별에 따라서 여자는 애착 있는 섹스, 남자는 애착 없는 섹스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불평등이 생길 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성 경험이 빈약해진다. 남자는 되도록 많은 섹스를 하려고 하고, 이 때문에 이성애 관계의 섹스는 성적 학대-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줄기차게 규탄해온 가학적인 관계-나 소비 행위에 가까워지지만, 여자는 성행위를 자신이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아닌 다른 것의 조건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남자는 기대 수준이 높은 성 파트너를 만날 가능성이 없어지고, 여자는 쾌감의 진정한 주쳊체가 될 기회를 못 얻는다. 남녀가 제도의 기대에 부응하는지 여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 제도의 특징은 우리의 인식과 ㅁ정, 기대에 ‘젠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 규범과 법 규범은 애착 없는 섹스와 이런 섹스를 확산시킬 만한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그래서 성매매, 포르노그래피, 커플이 아닌 사람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는 행위를 비난한다. 성적 서비스를 구매하는 일은 이제 금지되어 있고, 나머지 두 행위는 미성년자를 오염시키고 타락시키고 그들이 장래에 할 성생활을 해친다는 이유로 특정한 사람과 더불어,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만 이루어지도록 제한된다. 페미니스트 움직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권력 99 에서도 여성이 구상한 가족의 계획에 맞추어 남성의 성을 ‘문명화’시키기 위해 애착 있는 섹스의 편을 든다. 공권력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여성이 애착 없는 섹스를 할 때 부각되는 타락한 여성의 모습, 남성의 욕망에 전적으로 부응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애착 있는 섹스를 추구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쾌락을 커플의 계획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플 제도는 커플 바깥뿐 아니라 커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의 모습 또한 빚어낸다. 19세기 커플 관계와 달리 현대 커플 관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성적 욕망인데, 이 욕망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자가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자녀가 있는 커플이 헤어질 때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파트너를 결합해주던 욕망이 사라져도 이 커플 관게를 쉽사리 깰 수 없다. 성적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강하지 않다면 이런 상황이 크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가 아니고, 커플이 각기 애인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평생 일종의 금욕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혹시 커플 중 한 사람이 잠간 애인을 사귀는 일이라도 생기면 ‘배신당한’ 파트너는 당연히 끔찍한 위협을 느낀다. 간통은 커플의 기반과 커플 관계에 따르는 모든 약속을 뒤흔들며, 많은 경우 커플을 갈라서게 만든다. 성 혁명 이전에는 간통 때문에 커플 관계가 깨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커플은 사회 제도로서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간통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 그런데 오늘날의 커플은 욕망이나 감정 같은 참으로 불안정한 정황으로 두 사람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간통이란 사건을 견딜 만큼 강력하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로 폴리아모리polyamory(동시의 여러 명의 성애 대상을 가질 수 있는 것.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도 부른다-옮긴이)와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성애로 맺어진 3인 이상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옮긴이) 같은 방식이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폴리피델리티는 커플을 취약하게 만드는 주요 요소를 제거하되 사실상 커플 개념을 유지한다. 이런 공동생활이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보이긴 하지만, 이는 공동체의 한 사람이 강자의 위치에서 보다 약한 파트너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한 결과다. - P98

서로를 성적으로 욕망하는 관계라는 이상적인 커플의 모습 101 과 실제 현실 간의 이러한 불협화음으로 인해, 감정 있는 섹스라는 개념은 결국 터무니없는 모순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몇 년이 지나면 배우자에 대해 지녔던 ‘사랑’과 동시에 욕망이 꺼지기 때문이다. 이때에야 두 파트너는 자신들이 ‘사랑’이라 부르던 것이 실제로는 가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시적인 불장난 상대에게 느낄 만한 성적 욕망보다 더 강한 욕망을 덮어주던 가면, 또는 모성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한 커플의 이해관계를 가리던 가면 말이다.
 요컨대, 커플에게 섹스는 몇 년 후면 섹스 때문에 헤어지고 말 사람들을 결합하는 역할밖에 해주지 않는다. 헤어지는 데 성공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들한테는 말이다. 만일 커플 사이에 종속 관계가 생기고 이로 인해 배우자를 멸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지면, 경찰과 사법 당국이 나서서 옛 연인들을 갈라놓는다. 섹스가 커플을 결합할 때에는 다른 모든 사람이 배제된다. 커플이 제삼자를 관계에 끌어들일 때, 이는 대체로 소비 행위와 같은 감정 없는 섹스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제삼자와 맺는 관계가 혹시라도 애착이나 감정 있는 관계가 되면, 커플은 종말을 고한다. - P100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부부 커플은 더욱 파괴적인 다른 힘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이 힘은 섹스를 도구 삼아 사람들을 분리시킬 뿐 아니라 커플 제도 자체를 끝장내려 한다. 그렇다. 바로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 형법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부부 커플 관계를 강화하려 했지만, 결국 커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족의 살점을 다 먹어치우고 이제 자신의 살점을 뜯기 시작한 괴물처럼 말이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