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장자가 그러한가? 장자는 분명 대붕과 참새를 나누고, 대붕과 참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작은 앎은 큰 앎에 미치지 못한 172 다’고 한다. - P171

그런 점에서 나는 곽상을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하는 것을 반대한다. 형이상학의 결과가 이렇게 잔혹하고 냉정한 것일진대, 무감하고 무력하게 어떤 이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무심코 형이상학’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사고’는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P181

그러나 실상은 현학이 추구하고 있는 매우 분명한 ‘문제현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제도냐, 본성이냐?’를 묻는 토론이다. 당시의 표현대로는 ‘명교名敎’와 ‘자연自然’이다. 이는 인간을 어떤 제도 속에서 신분을 지우고 그것에 맞추어 나가게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을 자연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를 따지는 문제였다. - P217

제도는 다름 아닌 이 유가의 천지지심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제도 없이 무나 도가 쓰일 곳도, 천지지심의 발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왕필의 궁극적인 결론이었다. 따라서 왕필은 "하늘은 오행을 낳고 만물을 쓰임이 없도록 하며, 성인은 오 224 륜을 행하고 말없이 교화한다"라고 노자의 철학을 정리하는 것이다. ‘만물을 쓰임이 없도록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해도 만물은 각기 쓰임이 되는 바를 위해 맞추어 나아간다는 것이며, 성인의 다섯 가르침이란 다름 아닌 유가의 강목인 오륜이 행해지는 제도를 일컫는 것이다. - P223

위의 문제에 대해 곽상은 대략 아래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성은 타고난 것으로 운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을 바꾼다는 것은 아무나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고, 바로 자신의 성에 맞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길이다. 또한 성을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성을 벗어나 산다는 것은 곧 불행과 죽음을 뜻하며 성의 굴레 속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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