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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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를 처음 알았을 때 (열정금지 에바로드가 나올 무렵) 조만간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내가 미처 그의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는 너무 유명해져버렸다. 그새 여러권의 소설이 나왔고 여러번 화제가 되었다.
그를 알게 될 첫 소설로 <열정금지 에바로드>를 선택하려고 했던 나는 생각을 바꿨다. 학교 폭력이라는 주제와 가해자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피해자의 어머니라는 인물 때문에.
그런데 처음부터 `우주알`이 나오고 우주에 대한 장광설이 늘어져서 `응? 내가 생각했던 소설이 아니었나?` 했지만 곧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우주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인 듯 하다고 나름 생각했다.
요즘은 영화평에도 보면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인물에 점수를 후하게 주는데 이 소설의 인물들이 모두 그렇다. 이분법적인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패턴을 벗어난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은 모두 그믐달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해가 지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그믐달같다. 그래서 슬프다.
과거와 현재, 미래... 시작과 끝... 인간만이 시간순서대로의 기억을 고집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시간을 한쪽 방향으로만 체험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 단 한번씩만 경험하니까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선별되기도 하는걸까.
그래서인지 시공간을 왔다갔다하며 서술하는 방식의 이 소설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가여운 인간들만이 보인다. 칼자루 하나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자기 손에 잔뜩 상처를 내는 인간들이다. 안타깝고 아프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문장 속에 많은 의미가 함축된 듯하다. 읽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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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예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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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으로 공포소설을 처음 접했다. 나는 공포 분야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고 또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워낙 유명하다는 공포 영화만 몇 편 봤을 뿐, 왜 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편이다.
라디오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을 듣고 제목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도서관에서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읽은 소설 중 가장 무섭다.˝ ˝손 닿는 곳에 책을 놓기조차 두렵다.˝ 는 심사평에 홀려서 책을 펼쳤다. 얼마나 무섭길래.

생소한 제목인 `잔예`에 대해 설명하자면 죄 (일본에서는 보통 제사로 제거해야할 범죄와 재해의 총칭을 의미)가 `더러움`을 낳고 이 `더러움`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정탔다`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데 접촉으로 전염되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멸하고 목욕재계 같은 의식으로 정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빈소를 만들어 의식을 치르거나 공양을 드리는 정화의식들이 생겼다. 잔예는 이런 시간의 흐름과 주술적인 정화의식으로도 채 정화되지 못한 `더러움`의 잔여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큰 억울함을 남긴 죽음의 경우는 `더러움`이 되고 남은 사람들도 그 `더러움`에 방어하기 위해 죽은 이를 공양하고 땅을 정화하고 하지만 그게 너무 강한 탓에 무언가 남는 찌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후대에까지 계속 어떤식으로든 괴이한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설명하자면 뭔가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이 책은 괴담을 쓰는 작가가 괴담 수집을 하던 중 듣게 된 기이한 이야기를 쫓아가는 추리소설처럼 쓰여져서 실제 읽다보면 무섭다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 된다.
최초 제보자인 쿠보씨가 맞닥뜨린 괴이한 일의 일련의 연쇄를 쫓아가다 보면 결국은 메이지 시대의 탄광업자의 가족몰살 사건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사실 크게 흥미를 못 느끼고 있던 나는 이 모든 기이한 일의 원인이 결국 탄광에서 죽어간 수많은 억울한 원혼들에 이르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얼마전 무한도전에서 방송된 일본의 군함도가 떠오른 것이다. 일본은 세계 문화 유산 등재과정에서 그토록 숨기고 싶어했지만 그 당시 강제 징용되어서 탄광에서 무자비한 노동과 배고픔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그 원혼들을 어찌할 것인가. 무한도전에 나왔던, 찾아기기도 힘든 외진 땅에 덩그러니 세워진 `공양탑`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닥칠 잔예가 무서워서 방어막으로 쌓아 놓은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다보니 이 이야기의 결말과는 상관없이 나는 자꾸 군함도 강제징용 노동자의 이야기에 꽂히고 그들을 외면하고 몰랐던 `죄`에 가 닿았다.
군함도에서 가서 일본 근대유산에 환호하는 일이 먼저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먼저 인정하고 최고의 예를 다해 `잔예`를 씻어내는 일이 먼저라고, 일본작가가 쓴 이 책을 그들 일본인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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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21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방영된 심령 관련 동영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옛날 노동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폐쇄된 터널이나 탄광이 영혼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로 많이 나와요. 서프라이즈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고요.

살리미 2015-09-21 22:10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심령을 보았다는 터널이나 옛 탄광이 있던 집터등을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아무래도 탄광노동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많이 당해서 원혼이 된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근대식 설비가 없었던 탄광들은 사고도 잦았고 화재 사고가 나면 갱 속에 광부들이 있는 걸 알고도 산소를 막아야 불을 끄기 때문에 갱을 일부러 막아버렸던 경우도 많았대요. 그러니 얼마나 원한이 많았겠어요. ㅠ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손꼽다보니 그 영화들이 모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였다. 말하자면 그만의 분위기를 나도 모르게 알아챘다는 것인데 이것은 좀 둔한 편인 내게는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에세이집을 냈다고 했다. 처음엔 도서관에나 가서 빌려 봐야지 했다.(아무리 팬이라지만 나는 냉정한 여자^^) 그렇게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길 진득하게 기다리는 중인데 여기 저기에 실린 기사들을 보니 호기심을 참을 길이 없어 결국 주문을 했다. 주문하면서 보니 출간 기념으로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하는 <걸어도 걸어도> 시네마톡 행사가 있었다. 오~ 영화는 이미 봤지만 진작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라이브톡을 함 가봐? 해서 이벤트 참여 댓글을 달아놓고는 사실 잊고 있었다.(명동까지 나가는건 너무 멀기도 하고 토요일 저녁은 너무 바쁘기도 하고...)
그런데 덜컥!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 토요일이 행사니까 일단 사놓은 에세이집부터 빨리 읽어보자고 책을 펼쳤다. 이 책 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첫장부터 들었다. 맘에 드는 문장을 마구마구 줄을 쳐가며 읽다가 문득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아껴 읽고 싶었다. 생각하고 음미하고 걷는 듯 천천히.
이 사람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어! 그의 영화가 빚어낸 아름다움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서 주워서 나에게 `이것 좀 봐` 하고 보여준 것이다. 그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멋진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충만해진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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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1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 <공기인형>의 감독이지요.^^
저도 요즘 이 책 읽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다시 한 번 보았어요~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참 좋았습니다~*^^*

살리미 2015-09-18 08:16   좋아요 0 | URL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보면 볼수록 더 좋은 작품이 많은데 책을 읽다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참 좋았죠? 다음 작품도 기대되요.

해피북 2015-09-18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이웃님들은 책만 좋아하시는게 아니라 영화도 즐기시구 좋아하는 감독도 있으시니 참 멋지고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영화를 못봐서 영화부터 감상해야겠어요^~^

살리미 2015-09-18 13:51   좋아요 0 | URL
<아무도 모른다>를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고레에다의 영화중 가장 강렬한 스토리일 걸요? ㅎㅎ <공기인형>은 배두나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호기심에 봤고 이 때까지만 해도 감독 이름은 모른채 영화만 찾아보다가 나중에서야 모두 한 감독인걸 알았죠. 그래서 고레에다 감독의 모든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지루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 잔잔한 일상에서 오는 감동이 좋더라고요^^

인디언밥 2015-09-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걸어도 걸어도 감독이시군요.. 인상 깊게 봤던 영환데.. 말씀하신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겠어요.. 나약함이 필요하다는 말 좋네요

살리미 2015-09-18 13:53   좋아요 0 | URL
그죠? 감독의 영화에 특별히 쎈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았어요. 에세이집에서는 영화보다 더 직접적으로 자기 말을 하니까 참 좋네요^^

icaru 2015-09-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만 봤는데요, 영화가 참 좋았습니다. 영화보고 나서 찾아보니까, <아무도 모른다>의 동일 감독이었더라요(이 영화는 못 봤고 유명세만 익히^^;;;) 감독이 쓴 에세이라 하니, 꼭 좀 읽었으면 싶으네요 ^__^

살리미 2015-09-18 13:56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에세이집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들게 된 감독의 사연이 나오는데 정말 재밌고도 뭉클해요^^ 더 궁금하시라고 여기까지! ㅎㅎ

blanca 2015-09-1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 읽었는데 역시 감독이 뭐랄까, 아주 진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아쉽게도 <걸어도 걸어도>만 봤는데도 너무 좋아서 얼마나 여운이 오래 가던지... 다른 영화들도 찾아 봐야겠어요. 이벤트 당첨 축하드려요. 너무 즐거운 시간이 되겠어요.

살리미 2015-09-18 15:41   좋아요 0 | URL
그 어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보다도 자신의 일을 소신껏 해나가는 모습이 참 멋지죠? <걸어도 걸어도>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티비로 봤는데 이번 기회에 극장에서 보게되어 또 다른 감동이 올거 같아요^^ 축하 감사합니다~^^
 
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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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 책의 광고와 기대평을 보고 좀 낚인 기분이 든다. ㅎㅎ <앵무새 죽이기>를 재미있게 읽고 그 당시 시대배경에서도 선을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던 소신있는 애티커스에게 매력을 느낀 나는 하퍼리의 전작인 <파수꾼>에서는 그가 변절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해서 대체 무슨 사연인가 했는데...
스포일링이 되니 더이상 언급은 안하겠지만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는 것.
아무래도 이 작품이 먼저 씌여졌고 여기에서 진과 애티커스에 좀 더 초첨을 맞춰 다시 쓴게 <앵무새 죽이기>라서 그런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상씬의 분위기가 많이 겹쳐서 조금은 지루한 감도 있었다.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의 진 스카웃을 보는 재미와 조금씩 인권을 주장 할 수 있었던 흑인 사회를 대하는 백인들의 시선을 새롭게 느껴보는 것은 좋았지만 내가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일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읽는데 오래 걸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집안에 이런 저런 행사로 집중이 안 된 탓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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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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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가 오늘 개봉한다. 올 초 이 책을 읽으며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충분히 영화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도 감독은 이 책에서도 분명 힌트를 얻었을 것 같다. (아! 다시 보니 요즘은 아예 이 책에 띠지로 영화 사도 이준익 감독 추천이라고 붙여나오는 모양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의견이 분분한 역사적 사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영조가 애지중지하던 자기의 아들을 가장 극악한 방법으로 죽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는 최대한 많은 자료들을 분석해서 그동안 주로 논의되던 사도세자의 광증설과 당쟁의 희생양이라던 시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 하나 하나 파헤친다.
그중 가장 놀라울 뿐 아니라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이 영조의 콤플렉스에서 비롯한 아들에 대한 과잉기대가 어떻게 자식을 망쳐가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읽으며 현대의 부모들이 정말 꼭 되새겨 보아야 하겠다고 느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를 보니 영화 <사도>도 그 점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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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 추천’이라기 보다는 츨판사가 영화 제작사에 이 책을 밀어주면서 추천한 듯한 기분이 느껴져요. 영화가 잘 되면 이 책도 다시 한 번 조명 받을 것 같군요. ^^

살리미 2015-09-16 22:21   좋아요 0 | URL
그렇게라도 이 책이 좀 조명을 받으면 좋겠어요. 제목도 시선을 끌기엔 좀 넘 정직한 제목이라 ㅎㅎ 영화를 핑계로 많이 읽히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