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난장이는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질 것 같았던 그들의 존재가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는 듯하다. 거리마다 난장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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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안의 호랑이를 길들여라 - 행복한 삶을 위한 틱낫한 스님의 지혜로운 조언
틱낫한 지음, 진현종 옮김 / KD Books(케이디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화가 날 때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감싸 안아라. 화를 억누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냥하게 그것을 보살펴주어라. 13쪽

화는 화가 아닌 다른 요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차별하는 일 없이 잘 보살펴준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부정적인 씨앗이 가진 힘을 줄임으로써 그것이 우리를 압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2쪽

자기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탄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그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좀 더 아름답게 보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화장을 할 필요는 없다. 편안하고도 차분하게 숨을 쉬며, 마음을 집중해서 미소를 짓기만 하면 그만이다. 31쪽

화는 무지와 잘못된 지각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못된 지각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오해할 수도 있다. 어떤 말과 행동을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37쪽

부처님은 화를 억누르라고 권고하신 적이 결코 없다. 부처님은 자신에게 돌아가서 화를 잘 보살피라고 가르치셨다. 55쪽

다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화를 그저 보듬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아기는 당장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69쪽

전념이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즉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이 에너지는 수행에 아주 중요한 것이다. 전념 에너지는 앓고 있는 동생을 끌어안고 잘 보살펴주는 큰형님이나 큰누님과도 같은 것으로 그 동생이란 바로 우리의 화, 절망 또는 질투다. 73쪽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걷기 명상을 함으로써 전념 에너지를 불러일으켜서 화를 보듬어주어라. 십 분이나 이십 분이 지나면 화는 그 모습을 활짝 드러낸 것이고 그대는 화의 진짜 본질을 알게 될 것이다. 75쪽

화의 본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하라. 그 수행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번째는 다음과 같이 보듬어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 귀여운 화야, 나는 네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너를 잘 보살펴주고 있단다. 두 번째 단계는 화의 본질을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간파하는 것이다. 81쪽

화는 씨앗의 형태로 우리 속에 있다. 사랑과 연민의 씨앗도 거기에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수많은 부정적인 씨앗과 긍정적인 씨앗이 함께 들어있다.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는 일을 피하고, 나날이 긍정적인 씨앗을 확인하고 물을 주는 일이다. 92쪽

전념 에너지에는 지혜 에너지는 물론 집중 에너지도 들어 있다. 집중은 단 한 가지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도움을 준다. 집중하면 보는 힘이 더욱 강력해진다. 그 덕분에 집중은 지혜에 해당되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지혜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힘을 늘 가지고 있다. 전념이 거기에 있고 전념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으면 집중 역시 거기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집중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으면 지혜 또한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전념은 알아차리고 보듬어주고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전념은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지혜를 얻는데 도움을 준다. 지혜는 해방의 인자다.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전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이 바로 화를 보살펴주는 수행이다. 103쪽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은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인간관계에 더 많은 해를 야기할 따름이다. 그보다는 화가 나면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115쪽

스스로를 잘 보살피면 그대가 사랑하는 이도 잘 보살펴주게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하는 능력의 토대인 것이다. 그대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으며, 평화롭지 못하다면,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법이다. 그대는 남을 도와줄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게 된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보살피는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117쪽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을 때는 부디 화가 나지 않은 척하지 마라. 괴롭지 않은 척하지 마라. 상대방이 그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대가 화가 나 있고 괴롭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만 한다. 그이에게 차분하고도 사랑이 깃든 말투로 말하라. 131쪽

다음에 나오는 세가지 문장을 쓰거나 말할 수 있으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 이때 진정한 사랑이 담긴 말투를 써야 한다. 자기야, 난 괴로운데 자기가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자기야, 난 자기를 비롯해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우리는 서로 아주 친밀하고, 서로 서약을 했으니까 괴롭고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자기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와 같은 세가지 문장을 써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이는 금방 기운이 솟고 안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방식은 상대방이나 스스로에게 커다란 신뢰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149쪽

참된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다. 괴롭지 않은 척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정은 자존심에 근거하고 있다. 화가 났다고? 내가? 내가 왜 화를 내야 하지? 난 괜찮아. 그러나 사실 우리는 괜찮지 못하다. 이때 우리는 지옥 속에 있는 셈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배우자, 아들, 딸에게 말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151쪽

연민의 마음 이외에 화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157쪽

연민은 이해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전념하는 자세로 호흡을 하는 수행을 해보라. 그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자신과 상대방이 겪고 있는 고통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기에 화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158쪽

누군가를 미워하고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이나 그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하면 우리가 그 사람과 같은 처지나 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똑같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종류의 이해를 통해 화가 풀리면 그 사람은 곧 적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여전히 적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173쪽

결코 자기를 잃는 일이 없는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라. 189쪽

두려움이 없는 것이 최상의 기쁨이다. 두려움이 없는 지혜를 얻을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214쪽

정말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궁극의 차원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된다. 몸이 곧 자기이며, 사람은 죽는다고 하는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25쪽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명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이다. 두려움이 없으면 슬픔과 비애를 극복 할 수 있다. 233쪽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양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자유의 양에 달려 있다. 253쪽

가장 커다란 자유는 후회, 두려움, 걱정 그리고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55쪽

전념의 힘을 통해 화 또는 그밖의 부정적인 씨앗들을 확인하고는 잘 보듬고 다독거려서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성질을 잃게 만드는 것을 전환이라고 한다. 314쪽

억지로 하는 수행은 고된 업무에 불과할 뿐 더 이상 수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333쪽

불교에서 가장 어렵다는 무아의 가르침을 타이는 분신수행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가 맞물려 있는 존재, 즉 상즉의 관계에 있음을 쉽게 깨달음과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체화시켜 놓은 것이다. 360쪽

새로 시작하기 수행법은 불교의 전통적인 참회 의식인 자자自恣를 매우 적극적으로 현대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행법은 친절이나 말과 자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청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것이다. 또 그것은 승가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인지하고 감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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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안의 호랑이를 길들여라 - 행복한 삶을 위한 틱낫한 스님의 지혜로운 조언
틱낫한 지음, 진현종 옮김 / KD Books(케이디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멈춰야 한다. 빨리가고 싶다고 무시하고 달리면 사고가 난다. 인생을 달려가다보면 화가 나 씩씩대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빨간불이 켜진 순간이다. 바로 멈춰야 한다. 그렇지않고 달리면 내가 망가지고 상대방이 망가진다. 화를 참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 즉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은 바로 전념을 뜻한다.  

 

전념이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즉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이 에너지는 수행에 아주 중요한 것이다. 전념 에너지는 앓고 있는 동생을 끌어안고 잘 보살펴주는 큰형님이나 큰누님과도 같은 것으로 그 동생이란 바로 우리의 화, 절망 또는 질투다. 73쪽

 

이렇게 화나 절망, 질투를 드러다보면 그것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대부분 오해나 편견, 과장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바라보면 연민의 싹이 자라나기도 한다. 바로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감정의 근본 원인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얻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또한 상대에 공감하는 사랑 또한 자라난다. 이것이 모두 전념의 힘이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니 그대 마음의 호랑이를 길들이려면 빨간불을 간간히 켜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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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이 구석기 시대의 용어처럼 들리는 세상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정도를 넘어 자신을 사고파는 시대다. 예쁘고 잘나고 괜찮아 보여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미지가 넘쳐난다. 자칫 잘못하다보면 그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입고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지 관리는 현대인의 필수다. 척 척 하는거다. 쿨한 척, 카리스마가 있는 척, 착한 척, 또는 반대로 나쁜 척도 한다. (나쁜 남자가 대세였을 땐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꾸미다보면 언젠가 실상이 들통나기 마련이다. 화장을 안한 척하는 메이크업도 결국 씻어야하는 순간이 오듯 말이다. (안씻고 버틸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자니 윤은 자신의 성공을 꾸미지 않는 자세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하기까지 가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거나, 파티장에 남들처럼 양복을 입지않고 한복을 입는 등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나를 온전한 그대로 보여줄 때 개성이 드러나고, 이 개성이 성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밑바탕엔 나를 제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자니윤은 5분짜리 스탠딩코미디쇼를 위해 3개월을 공부했다고 한다. 노래실력, 유머감각을 스스로 타고났다고 자평하면서도 말이다. 100% 남을 웃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다. '척''척' 박사보다는 착실히 착실히 준비하는 '착''착' 박사인 셈이다. 이렇듯 개성은 꾸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하게 표현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바야흐로 이제는 개성시대다. 알몸 그대로의 나가 주목받는 시대엔 이 알몸을 가꾸는데 힘을 써야할 모양이다. 알몸을 가리는 예쁜 옷을 모으기 보다는... 자니윤이 말하는 꾸미지 않음이란 바로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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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뜨고 있다. <도가니>의 공유가 아니라 공유경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나 '집카'와 같이 자신이 같고 있는 소유물을 타인과 나누어쓰는 경제행위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는 이 바람이 잔잔하긴 하지만 말이다. 김난도 교수는 정착유형의 사람들은 개인 소유욕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마 그 영향 때문에 내 것을 남에게 빌려준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공유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그 기세를 더 올리고 있는 중이다. 아껴쓰는 차원을 넘어 이미 있는 것을 남들과 함께 향유함으로써 서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의 출발은 빌려쓰는 사람은 적은 돈으로 똑같은 가치를 향유할 수 있다는 욕망에서, 빌려주는 사람은 가욋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됐다. 순전히 경제적 이득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 행위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의 차원을 뛰어넘는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기존의 소유경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인간애에 감동받는 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공유경제가 힘을 얻고 또한 지속가능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빌려쓰고 빌려주는 과정에서 인간적 접촉, 인간적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관계는 불교의 연기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도법스님은 <지금, 당장>이라는 책에서 관계의 삶이 왜 좋은지 예를 들어보인다. 마치 공유경제를 이야기하는 것같다.

 

평소 한 사람의 한 달 생활비가 100만원이면 5인이 각자 살아가는 데, 5백만원이 들어갑니다. 만일 존재의 법칙에 따라 5인이 믿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여 가족처럼 살면 어떨까요. 한 달에 3백만원이면 훨씬 풍요롭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각자 독립해서 산다고 하면, 따로따로 밥을 해먹어야 하니 밥솥을 5개 사야 합니다. 다른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는 온통 내 것으로 만들고 쌓아놓아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단히 소모적입니다. 정말 우리가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KBS시사기획 <창>에서도 실제로 공유경제를 통해 1년 생활비를 2천만원이나 아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공동주택에 공동 보모, 그리고 차 나누어 쓰기 등을 통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공유경제는 도법 스님의 말씀처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공유가 어려운 이유는 소유욕이 강하다는 측면 이외에도 이 신뢰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내것을 빌려간 사람이 그것을 망가뜨리거나, 훔쳐간다면 어떻게 하나?라는 의심이 공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도적 보완장치로 이러한 의심을 가라앉힐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 대 인간간의 관계에서 신뢰가 쌓여야만 완숙한 공유경제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공유경제를 통해 불교의 연기론이 존재의 진리임을 새삼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종교의 교리 차원을 넘어 인간이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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