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일지 6월 11일 - 오전 흐림 오후 흐리다 비 오락가락

 

오늘 한 일 - 토마토 곁순 제거 및 유인줄 매기, 흙살림 22주년 기념행사 준비 및 참여

 

보리가 누렇게 다 익었다. 조만간 보리베기를 해야할 듯 싶다.

옥수수는 키가 가슴높이까지 자랐다.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흐믓한 미소가 절로 생긴다.

노지에 심어둔 가지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방치하다시피 했는데도 필요한 시기에 비가 내리니 잘 크고 있다. 골에 깔아둔 볏짚 덕분에 제초작업도 할 필요가 없어 한결 수월하다. 병이나 해충에 잘 견뎌내주길 기원해본다.

드디어 오늘 하우스 5개 동에 있는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모두 제거하고 유인줄을 다시 매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마치 어지럽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잘라낸듯 개운해 보인다. 덥수룩한 수염을 밀어낸듯 시원해 보인다. 일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기쁨은 바로 이런데서 찾아오는 것같다.

 

오늘은 흙살림이 생긴지 22년이 되는 날이었다. 괴산군수를 비롯해 외부인사들도 많이 참여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졌다. 농민운동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경찰들의 따가운 시선과 협박 속에서 시작한 모임이 어엿한 유기농의 선도자로 자라난 것이다.

지금 몸으로 농사를 지어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22년의 세월을 흙과 농민과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업을 위해 한눈 팔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항상 초심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흙살림도 흙과 생명을 향한 사랑의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유기농업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키워갈 수 있다면 좋겠다. 공존이라는 단어가 그냥 입밖으로 내뱉는 말로 그치지 않고, 이념의 허울에 갇혀 머리속에서만 맴돌지 않고, 손으로 만지고 맨발로 밟을 수 있는 흙을 통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래서 사람들이 남보다 한 발 더 앞서기 위해 자신을 내다 팔아버리는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 손을 맞잡고 감정을 나누며, 나의 경제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키워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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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10일 하루종일 쨍쨍 하우스 온도 43도

 

6월 8일 - 제월리, 삼방리 논에 우렁이 투입

6월 10일 -  방울토마토 곁순 자르기, 유인줄 매기

 

친환경 벼 재배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오리 농법과 우렁이 농법이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우렁이의 경우 겨울을 나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킬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추수 후엔 싹 잡아야 할 일이다. 어쨌든 우렁이 25킬로그램을 제월리와 삼방리에 나누어 던져넣었다. 100평당 1.5킬로그램 정도다. 물 위로 흙이 드러난 부분에 주로 던져넣었다. 우렁이가 깊은 물 속을 좋아한다고 하니 먼저 땅쪽으로 넣어줘 풀을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렁이가 토종은 아니다. 토종벼를 심어놓은 삼방리 논에 토종 우렁이가 아니라니 좀 아이러니하다. 토종 우렁이는 먹이활동이 활발하지 않아서란다. '토종은 좋은 것이여'라며 우길 일은 아닐성 싶다. 우리네 입맛이 변해온 것도 있지만 토종 종자가 꼭 맛이 좋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네 땅에 잘맞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외래종과의 교잡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확보해 갈 수 있는 유전자풀을 지니고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다만 그 중에서도 발군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 종이 있다면 잘 보존해서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어제 딸과 함께 과천의 동물원에 갔었다. 잠시 쉬려고 그늘에 앉아있을라 치면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의 외국어가 귓가에 들려온다. 우리말보다 더 자주 들을 정도였다. 안산에서 음성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올때에도 버스 안에는 동남아인들이 태반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환상, 집착을 버려야 할 시대임을 절실히 느낀다. 토종에 대해서도 지킬 건 지키데 집착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블루베리도 커피도 이젠 우리나라 땅에서 버젓이 잘 자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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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6-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감자, 고구마, 옥수수, 토마토, 담배, 고추...다 토종이 아니네요.

하루살이 2013-06-1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우리나라에서 잘 적응된 외래종들. 이들도 토종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귀농일지 6월 7일 하루종일 햇볕 쨍쨍 하우스 최고 온도 41도

 

오늘 한 일 - 방울토마토 곁순 자르기 및 유인 작업, 토종상추 수확, 둥근마밭 풀 제거

 

둥근마밭에 풀이 무성하다. 시험삼아 뿌려놓은 데다 밭의 위치도 동떨어져 발길이 뜸한 것이 이유다. 보다못해 오늘은 풀을 뽑기로 했다.

 

하지만 한 두둑도 다 못해 급한 일이 생겼다. 당장 토종상추를 수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틀 사이 너무 커버려서 상품화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따가기 시작했다. 포기상추로만 수확하다 찹찹이(낱상추)로 따려니 손놀림이 어색하다. 처음엔 깔끔하지도 못하고 자꾸 찢어먹다가 조금 익숙해지니 나아지는 모양새다. 손을 잘못 놀려 상처를 받았거나 너무 커서 쓸 수 없게 된 것들을 중간중간 입에다 집어넣었다.^^ 맛이 쌉싸름하면서도 달큼한 것이 괜찮다. 하지만 청상추는 조금 밋밋한 맛이었다. 어쨌든 요즘 같은 고온에도 끄떡없이 잘 커준 것이 대견하다. 비료 한 번 물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했지만 이렇게 자라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하우스 안에 방울토마토와 고추는 오늘 실컷 밥을 먹였는데.... 토마토엔 구아노와 마그네슘, 칼슘, 미리근 등의 미량요소가, 고추엔 칼슘이 투입됐다. 이것들도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아니 무서울 정도다. 너무 쑥쓕 크는 바람에 유인줄도 다시 매야 했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갈수록 작물값은 비싸진다.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작물은 농부의 손길만큼 그 값어치도 커진다. 그렇다. 값어치란 단순히 가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손길이 얼마나 자주 가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손길.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따스한 손길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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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6 하루종일 햇빛 쨍쨍 하우스 최고 온도 41도 최저온도 12도

 

오늘 한 일 - 고추 하우스 풀 작업, 토종벼 전시모 만들기

 

숙소 맞은편엔 누추한 집이 한 채 있다.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약간 치매 증상이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아직 그런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인사라도 할라치면 90도로 허리를 숙여 답례를 하신다. 송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길가에선 인사를 해도 아는 체를 잘 안하신다. 그러던 할머니께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시 마당을 거닐고 있을때 숙소로 다가오셨다. "참 깨끗하게 정돈 잘하고 사시네요" 뜻밖의 접근에 당황스러웠다. "네, 얼마 전에 예초작업을 했어요" "풀이란 놈은 참 신기해요. 비료같은 걸 안 줘도 이렇게 잘 자라니" "아, 네"

그렇다. 풀은 참 신기하다. 작물 근처엔 어김없이 풀이 자란다. 자신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지도 않으면서 꿋꿋하게 잘도 자란다. 오전엔 고추 하우스의 풀 작업을 하느라 땀을 한바가지 흘렸다.

 

그냥 놔두어도 될 것 같지만 이 풀을 매개체로 진딧물이 옮겨붙기도 하고, 고추에 들어갈 양분을 빼앗아 가기도 하니 어쩔 수 없이 뽑아야만 한다.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에겐 풀은 적군이다. 이제부턴 완전히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풀을 뽑으면서 한가지 느낀 점이 있다. 바로 뿌리박기의 중요성이다. 똑같은 풀이라 하더라도 어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느냐에 따라 뽑히는 정도가 달랐다. 또 풀마다 뿌리박기의 양태가 달랐다. 뿌리는 비록 얕더라도 줄기가 쉽게 끊기면서 뿌리를 보호하는 풀이 있는가 하면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박는 풀들도 있다.

나는 지금 어떤 땅에 어떤 뿌리를 박으려 이렇게 홀씨의 몸으로 날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나의 뿌리가 강한 생명력으로 흙을 움켜쥐도록 오늘도 이렇게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직 내가 뿌리박을 땅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조급해하진 않으리라. 일찍 뿌리박기보다 더디더라도 확실히 뿌리박고 싶다.

 

오후엔 토종벼 전시모를 위해 화분만들기 작업을 했다.

이렇게 수많은 토종들이 단순히 박물관 속 박제들처럼 모셔지기보다 우리네 산천 곳곳에 뿌려져 자라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토종의 실리성을 키워야 할 터이다. 토종이 단순히 전시가 아니라 생활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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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6월 5일 하루종일 맑음

 

오늘 한 일 - 삼방리 논 모내기, 연못 누수 정비

 

오늘은 삼방리에 있는 논에 모내기를 했다. 800평 정도의 논에 27종의 토종벼를 심었다. 이 논은 작년까지 밭으로 쓰던 것이라 사전에 손이 많이 갔다. 물을 적당히 채우고 로타리를 먼저 쳤다. 흙이 가라앉은 후 모내기를 해야한다는데 일정이 급해 그냥 모내기를 진행했다. 로타리를 친 후에는 평탄작업을 했다. 물길이 막히지 않고 골고루 퍼지도록 논을 고르는 작업이다.

 

 

드디어 모내기 시작이다. 흙살림 농장에 와서 일한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총 11명. 손은 물론 입도 함께 모내기를 하는 사람이 두 분이나 계시니 종일 재잘재잘이다. 무더운 날씨에도 간간히 웃음이 터지면서 일도 빨리 진척됐다. 오후엔 점심 후 맥주와 치킨까지 배부르니 먹고 다시 모내기를 시작했다. 오전에 했던 모내기 속도보다 배는 빨라진듯한 느낌이다. 다들 알코올 기운이니, 닭 기운이니 하며 힘을 낸다.

혼자서 웃는 일은 드물다. 웃음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일부러 웃는 연습도 하지만, 혼자서 웃는 모습은 실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웃음은 그 즐거움의 크기를 몇배로 키우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흥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흥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요, 망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멀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해 봄직하다. 귀농의 선택이 흥하는 길로 가는 교두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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