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함대 1
카이지 카와구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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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균형을 통한 세계평화의 시대. 하지만 이 균형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다. 만화는 핵잠 한대가 이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현재의 평화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허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세상의 평화는 바로 세계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인간이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는 이 만화는 그래서 따뜻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이런 세계평화가 꼭 환상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건 정말 공격이다)에 반대하는 반전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마치 만화속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함성을 듣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정도로 현실적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왜 전쟁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세상의 모든 국가들은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무기를 들어야만 하는가? 국가적 사고를 넘어 세계적 사고를 행함으로써 세계시민, 세계국가는 탄생하고 민주주의는 비로소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만화적 상상력은 현실적 상상력을 키워준다.

하지만 이런 평화를 위한 전단계로써 필요한 침묵의 함대인 핵잠의 연합은 힘으로써 힘을 제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무척 위험해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미국을 바라보면 자국의 이익에 혈안되어 있는 그들에 대한 견제를 과연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등이 전쟁을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폭격은 시작될 것이다. 무엇이 이 독주를 막을 수 있을까? 정말 야마토 같은 핵잠이 등장한다면 미국은 비로소 공정해질 수 있을까?평화를 향한 길에서 꼭 거쳐야만 하는 군축, 하지만 그 군축이 막강한 군부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뒤에 감추어진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인간은 희망이며 또한 절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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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2010-01-1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팡구의 가와구치 작품!
 
드래곤 헤드 1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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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불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하지만 마냥 불을 두려워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류의 문명은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두려움은 바로 그런 상대다.

이 만화는 인간이 느끼는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0권이나 되는 긴 분량을 오직 인간의 한 감정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물론 이 두려움에 대한 밑바탕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섬나라 사람의 불안감이 깔려있다.

두려움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힌다면 두려움을 없애버리면 어떨까? 아니면 차라리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면 어떨까?

만화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움은 인간의 조건임을 강조하지만 또한 그것을 직시하고 이겨내기를 바란다. 두려움속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 깊숙히 숨겨논 악마에 휘둘리는 상태로서 인간으로서의 사회가 지탱해온 모든 도덕이 무너져버린다. 또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처음에 말한 것처럼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나방과 같은 신세가 될 뿐이다.

인간의 문명은 분명 잘못된 길로 접어든 부분도 없지 않으나 인간성이라는 본성 이외의 성상을 만들어 온 것도 사실이다. 도덕은 분명 문명의 산실이며 이 도덕은 끝내 우리 인간의 그릇된 나침반을 고치는 희망의 불빛임을 이 만화는 두려움이라는 어둠, 암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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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숍 오브 호러즈 1
아키노 마츠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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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움, 고독, 질투, 미움......
사람의 존재란 유아독존일순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이란 것도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일순 없다. 즉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살아간다면 도대체 어디서 사랑을 느낄 것이며 누구를 미워할 것인가?

그렇기에 우리들 마음속엔 감정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어렸을 적 나를 사랑해주던 삼촌에 대한 기억, 하염없이 주고 싶었던 하얀 손의 어린아이, 공포스러운 존재로 남아있는 뺨을 치던 선생님 등등.

<펫 숍 오브 호러스>는 자신안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찾아내 내 마음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이야기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애완동물 가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 가게를 찾아오는데 이 가게의 동물들은 그 사람들에겐 그 사연의 사람들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상처가 드러나고 이 사람같은 애완동물들을 통해 이윽고 상처는 아물게 된다.

괴기스러운 느낌마저 감도는 이 만화는 섬세한 감정묘사를 통해 메말라 있던 우리를 촉촉히 젖게 만들뿐더러 우리가 무엇에 목말하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더군다나 이 만화속 등장동물은 상상속의 동물과 함께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동물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런 소재는 마지막회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게 생물을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생존에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멸종동물 이외에도 실제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인간실상-킬러로 키워지고 있는 어린아이등-등을 보여주고 있는데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게된다.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사람들이 어는 순간 악마가 되어 우리를 집어 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감돌게 하는 이야기들은 그러나 끝끝내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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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1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박연 옮김 / 세주문화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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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으례 그렇듯이 걸작이라는 것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책장을 덮는 순간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건 숨막히던 책속의 줄거리가 끝을 맺으면서 머릿속에는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 등장함으로써 흥분을 식혀버리는 것같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퍼즐처럼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서 인간과 괴물을 구별하는 것은 바로 감정의 유무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만든다. 진리는 항상 단순한 법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감정이 메말라간다는 측면에서 몬스터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2. 감정이 없다는 것과 감정을 넘어선다는 것은 다르다. 중용의 덕목이나 노장의 사유속에 드러나는 성인, 도인은 세속인과 같은 감정의 굴곡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몬스터처럼 감정 그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넘어서 있다는 것은 그 감정자체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감정이 없다는 것은 컨트롤할 그 무엇조차 없는 냉혈한임을 구분해야만 한다. 그러나 몬스터 또한 완전히 감정이 메말라 있었던 건 아니다. 복수란 감정의 극한에서 생기는 것이니까.

3. 쌍둥이에 대해선 옛날부터 오해가 많았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쌍둥이는 재앙의 씨앗이라 여겨 그중 하나를 없애는 풍습이 암암리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영화 <쌍생아>를 보면 얼핏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만화는 바로 이 하나의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죽어야만 하는 하나,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 그리고 선택되어진 쌍둥이의 한쪽. 재앙은 바로 그것에서 시작된다. 선택의 상황에서 포기당하는 쪽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선택자의 고민따위를 위로할 여지가 없다. 나는 죽음으로 몰리고 있으니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랑잃은 것들. 악마는 바로 사랑을 잃고 헤메는 모든 생명체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얼핏 본 버림받은 애완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마치 요한처럼 자살을 할 모양이다. 요한과 같은 무한의 힘 대신에 나약함을 내비치지만 결과는 같다. 죽음. 모든 이가 평등하게 갖을 수 있는 유일한 것, 죽음. 그 죽음에의 초대는 바로 그들을 버린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악마를 키우는 사람들. 사랑이란 말은 세상에 그다지도 흔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없다. 아무리 찾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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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 술 12 - 완결
오제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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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 유지태가 여자 주인공 이영애에게 하는 말이다. 어떤 논리나 설명도 없는채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 '사랑이~'는 한동안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남자에게 그것은 어떤 설명도 필요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사랑은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않던가?

<명가의 술>을 읽다보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떠오른다. 물론 이런 말은 만화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 그 자체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대신 사람이란 말을 대입해야지만 정확한 나의 느낌일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다. 이 만화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농약으로 죽어가는 땅, 알코올을 섞어놓은 보통주와 삼증주 따위의 싸구려 술. 그것은 대중적이라는 의미에서 경제적이라는 의미에서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츠코는 사람들을 계속 설득해 나가야만 한다. 왜 땅이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고다와 함께 왜 일본 제일의 음양주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츠코의 뜻을 이해하는 동창생은 시련이 닥칠때마다 회의에 빠진다.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무관심한 이 농촌사람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츠코 또한 몇번이나 실의에 빠지고 포기하려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일어선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동조하는 과정은 정말 감격이다.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에 겨워 눈물이 글썽인다. 변해가는 사람들. 이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터이니 말이다. 아, 난 이 만화속에서 세상의 희망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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