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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 에이지21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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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탁석산씨와 미즈타니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TV 책을 말하다>란 프로그램이 책 소개의 방식을 달리한 듯 패널간의 토론 방식이 아닌 직접 작가를 찾아가는 형식이 새로웠다. 무엇보다 일본의 스산하고 어둔 밤거리를 걸으며 진행된 인터뷰는 진정성으로 가득했다. 전형적인 일본인의 얼굴을 한 마른 체형의 미즈타니 선생님을 보노라니, 세상의 무수한 삶의 유형 중에는 저토록 이타적인 삶도 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청소년의 탈선과 비행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당면한 현실이기에 저절로 관심이 쏠렸다.


흔히 십대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유행과 변화에 민감하고, 감정표현이 서툰 만큼 빠르고, 선택이 빠른 대신 포기도 빠른, 그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그들은 흑 아니면 백이지 기타 회색지대가 없는 사고를 한다. 화는 또 얼마나 잘 내는지, 그 화가 풀리는 속도만큼 다시 화를 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부모 되기란, 스승이 되기란, 어른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거다.


괜찮다고, 괜찮으니 살아달라고 너의 고통과 불행은 어른의 잘못이고 사회의 잘못이니, 네 탓이 아니라고 대답하는 미즈타니 선생님의 내면은 보통의 인간이 가진 마음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연민과 관심과 사랑이 넘쳐서, 들리지 않는 척 보이지 않는 척 모르는 척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는 동정과 이해의 시선을 주지만 돌아서면 잊고 다시 떠올리기를 귀찮아하는 다수의 사람들 속에는 내가 있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고 책임과 의무도 네 몫이라고 단호히 뱉어내고, 사적인 울타리 안에는 타인의 어떤 발자국도 허용치 않는 이기적인 나가 있다.


구태의연하게, 책상에 혹은 전화기 앞에 앉아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나가 도움의 전화 한통도 걸지 못하고 신음하는, 방치된 하나하나의 존재를 찾아 말을 걸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는, 미즈타니 선생님. 절체절명의 기로에 선 누군가의 눈에만 보일 하얀 날개를 가진, 그는 분명 지상에 유배된 거리의 천사다.


행복한 사람이든, 불행한 사람이든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살아가는 가정에는 많은 행복과 슬픔이 함께한다. 그리고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라는 미즈타니 선생님의 평범한 진리는 참 따뜻하다. 죽고 싶다는 아이들의 절규는 살려달라는 구조신호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그 비통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다. 


솔직히 책은, 장르를 무어라 불러야할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얇은 것이 내용도 없다. 작가의 진심이 담긴 기록이나 내면적인 일기를 내심 기대했다가 적잖은 실망도 했다. 그럼에도 단편적인 몇 가지의 실화들을 다룬 이야기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진중하다. 아이들을 향한 어설픈 감상이나 동정이 아닌 오직 애정과 실천만이 담겼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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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 얼마나 아팠을까를 걱정하고 연민하며 소설을 읽은 적이 여태껏 있었던가. 아니, 한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소설 속에 풍덩 몸을 던져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휘몰아치듯 읽어나갔다. 한 글자, 한 문장의 의미가 눈에 마음에 못 박히듯 절절하고 구체적이었던 적은 요 근래엔 없었던 일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소설에 중독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가를 만끽했다. 김형경,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에 정말 감탄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고 실은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지언정, 읽고 있는 순간만큼 나는 온전히 당신 소설의 일부로 있었다. 


소설 속의 두 여자는 어디에나 있다. 질풍노도의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고 또 다른 연애를 하는 인혜와 성의 불능은 사랑의 불능이며 삶 자체의 불능이라는 고통스런 자학과 분석을 거듭하는 세진은 여자들의 속에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두 가지의 기준이다. 자유연애냐 성불능이냐는 독신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서의 성은 안정적인 반면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은 박탈당하기 일쑤니까. 남자의 기대감 어린 눈빛에서 도망치는 인혜의 상처가 치유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대담성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연애방식에는 수긍이 간다.


내 안에 세진이 있었다는 어떤 독자의 글처럼, 세진은 누구에게나 부분으로 혹은 전부로써 존재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을 유년의 상처들과 기억을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끊임없이 분석하고 분열하며 응시하고 분노하는 세진은 비정상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똑같은 상처라도 누구는 쉽게 잊거나 극복을 하는데, 어째서 그녀의 자의식은 그처럼 명료한 것일까. 부모의 이혼, 냉정하고 엄격한 엄마라는 존재는 특별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다. 최소한 학대하거나 버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어디에나 있을 법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오직 나뿐이라는 상처는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 상처를 죽는 날까지 품고 살아갈 것이다. 세진처럼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하여 처절한 몸부림을 치지는 않는다. 상처가 상처인줄도 모르고 억압이 억압인줄도 미처 모르고 일생을 산다고 해서 불행은 아니다. 왜, 너만 유별나게 구냐는 인혜의 의문처럼 세진 같은 부류의 여자는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놓고 떠났다가 돌아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런저런 불신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세진의 정신분석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내 안의 어떤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면서 무뎌졌던 감성의 날을 벼리는 계기가 됐다. 정신분석에의 매혹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는 호기심이지만 한번도 충분히 채워진 적이 없다. 그것은 늘 삶의 언저리를 맴돌고 봉인된 기억 앞에서 서성인다. 멀고도 가깝고, 지식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지만 의미는 모호하고 거대해서 손을 담글 용기가 없다.


아직도 책의 무거움이 온몸과 정신을 짓누른다. 단지 한 권의 책일 뿐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깊이 침몰했다. 책의, 소설의, 인혜 혹은 세진의 심연에 닿았기 때문인가. 천천히 숨을 내쉬지만 여전히 숨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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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4-1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의 책을 딱 한권 읽었거든요.<사람풍경> 너무 "단정적인" 태도에 거부감을 느껴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답니다.
근데...님의 글을 읽으니 읽고 싶어져요. 님이 얼마나 이 소설에 빠졌었는지 잘 느껴지는 글이예요.

겨울 2005-04-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서 산 책이 아닌 우연찮게 얻어 읽은 책인데, 흥미와 재미면에서 소설이 갖추어야할 모든 것이 있더군요. 김형경의 치열한 글쓰기는 어설픈 감상주의와는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그녀의 작품 전부가 좋다는 건 절대 아니구요. 소설을 읽는 사람마다의 방법의 차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처럼 읽기를 바랄 수도 없거니와 가능하지도 않지요.
 
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반면 무겁고 최대한 느리게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소설도 나쁘지 않다. 전자로는 추리, 판타지 등의 모험물이 있는데 어저께 후다닥 읽어치운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가 그런 종류다. 며칠 몇 날이고 침대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진도가 나가질 않는 책들 사이에서 ‘천사와 악마’는 휘리릭 하고 책갈피가 넘어가는 기록을 세웠다. 도무지 일도 생각도 뜻대로 풀리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한 요즘 같은 시절에는 도피 혹은 여행과도 같은 이런 책읽기를 추천한다.


댄 브라운과 ‘다빈치 코드’라는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실상 별로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작에 비해 어떻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떤 종교든 그 안에 깃든 사유와 성찰은 매혹적이고 과거를 거슬러가서 만나는 굴절과 왜곡은 더구나 흥미진진하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또 얼마나 놀랍고도 신비로운 세계인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역사 속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전대미문의 추기경 살인사건을 다룬 이야기 속에서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도시 곳곳을 상상하고 또 상상하는 것, 그런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듯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아쉬움은 암살자의 모호함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암살자가 죽는 시점부터 이야기는 급격하게 긴장감과 설득력을 잃고 추락한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복수심이었다는 결론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교황의 순결서약의 의미가 스승이며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의를 느낄 만큼 절대적인 것인가. 그리고 일루미나티라는 신비로운 집단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일까.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집단에 관한 것이다. 제목도 일루미나티였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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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낯설다. 최근 읽은 책의 종류를 살펴보면 수필, 시, 예술기행, 평전 류가 대부분이다. 소설도 판타지와 로맨스거나 추리 쪽이라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읽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극히 얇은 책을 펴놓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뜨악해서 더듬더듬 느리게 읽어갔다. 종가, 종손, 종부라는 멀고도 먼 관심 밖의 단어들과 이 시대의 무엇과도 닮지 않은 인물들이 하나 둘 나올 때마다 이게 뭐냐고 마음에서는 항의가 빗발쳤다. 내용을 알고서는 결코 손이 가지 않았을 구구절절 분통이 터지고,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는 노인과 손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는 예상대로 비극으로 치달았다. 아들보다 오래 산 며느리라고 자결을 강요받고, 사내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를 낳았다 해서 시커먼 욕망의 발에 밟혀 숨이 끊어지고, 천한 핏줄의 태생이라 하여 구박하고 당하고, 천한 것 보다 더 천한 배냇병신에게 정을 주었다고 내치고, 결국 사람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질기고 질긴 욕망과 집착의 화염 덩어리와 재 뿐 이다. 효계당의 망령과 더불어 불길 속에서 자멸하는 조씨 일가에 대한 생각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우위에 선 가문의 영속에 희생당한 아녀자들의 이야기다. 자자손손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악귀로 변질한 양반네들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어머니까지만 올라가도 흔히 접하는 고난의 역사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누구의 첩으로 살았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종종 만난다. 첩의 자식들이 겪은 핍박과 상처가 소설 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 아이를 혹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자의 반 타의 반 쫓겨난 지난한 여인들의 삶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세대에서는 팔자소관이었다.


요즘은 기억이 흐려지셨지만 예전에는 술이라도 한잔 걸치시면 살아온 이야기를 주절주절 풀어놓고 눈물을 훔치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집안이 넉넉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갔으나 삼 년 만에 과부가 되었고, 자식 셋을 데리고 모진 시집살이에 아들  둘을 여의었는데, 겨우 살아 시집보낸 딸이 이룬 가정은 또 하나의 가부장제 감옥일 따름이었던 할머니의 삶이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이 저주 같기 만한 그 모진 삶을 살아내신 할머니는 아주 곱게 늙으셨다. 운명에 맞서 싸우거나 거부하지 않고 오로지 순응으로만 버티신 할머니의, 인간의 의지력에 감동하고 또 감동할 뿐, 무슨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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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2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들이 지나간 역사의 뒷자락으로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질긴 생명력으로 존재해요. 이 소설 읽으면 막 화가 날 것 같아요. 그래도 읽고 싶네요.

겨울 2005-01-29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더더기 없는 문체, 문장의 소설이지만 다시 읽고 싶지는 않아요. 소설 속의 망령이 나타날까 두렵거든요.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먼저 읽은 이들의 극찬 탓인지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친 후, 이 책은 잠자리에 들기 전의 노곤한 육체와 의식에 작은 기쁨들을 선사했다. 술 마시는 건 싫어해도 술자리는 좋다는 사람을 싫어하고, 책 읽는 건 싫어도 책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저자 소개란을 읽으며 괜한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는데, 역시나, 모름지기 책이란 이렇게 좋아하고 읽어야않겠냐는 주장에는 가르치려 들지 않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탐서주의자의 책’이란 대단한 제목에 기가 질려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책의 내용은 지극히 소소하고 소소하여 실망이 들 정도. 물론 이보다 무거웠다면 읽기가 사뭇 버거웠을 터이지만,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조금만 더 알 찬 고갱이 같았으면 싶은 아쉬움은 남는다.


책과 마주치는 기쁨은 사람과 마주칠 때의 기쁨과 똑같다? 아, 전적으로 동의한다. 새로 산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가슴 떨리는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새로우니까. 뭐니 뭐니 해도 책 읽기의 과정 중에서 제일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두꺼운 책을 완독했을 때의 포만감을 토로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책의 처음을 들여다보던 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책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은 오히려 서운하고 쓸쓸할 뿐이다.


세상의 무수한 책만큼이나 사람마다 책을 좋아하고 읽는 방식도 다양한데, 그 와중에 깨달은 사실 하나는, 나 또한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그 책을 적당한 자리에 놓아두고 보고 즐겼음이다. 그것이 혹여 지적인 허영은 아닐까 전전긍긍하고 누군가 그런 뜻의 말을 비추면 결코 아니라고 발뺌했음이다. ‘지적인 허영’이 뭐 어떠냐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짧은 가방 끈이 부끄러웠나보다.


사람마다 책을 빌려주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나는 절반은 돌려받기를 포기하고 빌려준다. 사실 어떤 책도 반드시 돌려받아야할 책은 없다. 내가 한번 이상은 읽었고 빌려주는 상대가 그 책을 좋아만 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빌려간 상대를 보면 반드시 그 책이 생각나고, 행여나 이제는 돌려줄까 기대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잊어버리면 좋으련만 결코 잊히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금도 얼굴만 보면 떠오르는 책들이 무수하다. 입안에서는 그 책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밖으로는 한마디도 말이 되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다가 늦어서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책 한권이 돌아왔을 때의 감동이란, 눈물겨움 이상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빌려주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읽고 쌓아놓은 책의 두꺼운 먼지도 청소하고, 한권 한권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질 하듯이 아끼고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새로 산 책만이 아니라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이라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일 없이 일생을 함께 하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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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1-1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막 700여쪽의 책을 완독했는데 책장을 처음 넘길때의 황홀함과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의 서운함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이 갑니다. 오래도록 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 2005-01-2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잖이 나이 드신 분들이 눈이 아파서 책 읽기가 힘들다고 하실 때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의식은 명료한데 육체는 노쇠하여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더군요. 잉크냄새님의 일상도 책과 더불어 함께 하기를....

비로그인 2005-04-1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마주치는 기쁨은 사람과 마주칠 때의 기쁨과 똑같다..' 떨리는 문장입니다. 리뷰 잘 보았습니다^^

겨울 2005-04-1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반갑습니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 알아가는 과정을 귀찮아했는데, 그것이 엄청난 오만이고 독선임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책을 대하 듯이 사람 대하기를 한다면 싸울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