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 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이미 혼불이 나가버린 사람의, 껍데기만 남은 어둡고 차디찬 몸을 살아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여!

나는 혼불이 살아 있는 시대를 간절히 꿈꾸면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아픈 일제 강점기

한 가문의 진정한 삶을 일궈내는 상처의 삼십 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눈물 나는 해원의 굿이 열리는 마당으로

나는 소설 혼불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95, 미국 시카고대학 노스팍칼리지 초청강연

<소설 혼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과정>


혼불을 읽는다는 건 어떤 아주 아주 오랜 기억들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사용했는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단어, 고샅은 골목을 의미한다

고샅이라는 말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묻어있어 정겹다

할머니도 여장부셨다. 청암부인처럼 19살에 과부가 되셨고 자식 셋을 거느리고 굴곡 많은 세월을 살아내셨다. 내 유년은 온통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할머니 따라서 밭을 메고 모내기를 하고 뽕을 따고 감을 따고 밤을 딴 소소한 일상들.... 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만 하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다 겪으셨다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살아남은 큰 아들은 군대에서 앗아갔다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온 것이 기적인 할머니의 그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혼불'이라는 소설을 통해 하고 있는 셈이다. 

 

혼불의 언어는 전라도 사투리가 지배한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읽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몇 번을 읽어도 해석이 요원해서 애먹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함보다 더 비틀린 느낌이 낯설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철저히 고증에 입각하여 그 지역 토박이의 언어로 말하듯이 썼다. 

한마디로 어려운 소설이다

올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은  혼불로 태워 활활 타올라  볼까. 

죽고 살고 엎어져서 논 매고 밭 매도
이녘의 목구녘에는 보리죽이 닥상이고
손톱 발톱 다 모지라지게 베를 짜도 내 생에
얻어입는 것은 요 사발만한 두루치 한쪼각이여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종종 가는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너무 반가워 속으로 환호했다. 어슐러 르귄이라니 과거에 좋아하다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작가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듯 신이 난 일이다. 밤잠을 설치며 흠뻑 빠져 살던 시절, 편협하고 심심한 일상에서 양껏 상상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책을 사는 일보다 빌려보는 게 당연해지고 더 이상 책탑을 쌓아 읽지도 않지만 여전히 책을 향한 경외심 로망, 설렘은 있다. 다만 나이와 함께 노안이 와서 안경 없이는 독서가 불가능해지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했다. 아무 곳이건 어디서 건 장소 시간에 관계없이 책을 읽던 때를 향한 그리움과 간절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 그 가치를 발견한다. 책을 읽는 눈을 잃고 읽는 고통에 책장을 덮을 때마다 절망한다. 물론 느리게 조금씩 여전히 읽을 순 있다. 그것도 감사할 일임을 이젠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무한히 주어지는 건 없다. 오늘의 나가 내일의 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세월 앞에 겸손해 졌다. 그리고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녀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긴 여행 중이라고 믿는다. 멋진 일이므로 슬프지 않다. 그저 반가웠다. 안녕히, 어슐러 르귄. 

집에 오너라, 테나! 그만 돌아오렴!
골짜기 깊숙한 곳, 어스름 무렵이었다. 사과나무들은 내일이면 꽃필 듯했다. 어둑어둑 그늘진 가지에는 일찍 벌어진 꽃 한송이가 장밋빛 어린 흰빛을 띠고 희미한 별처럼 빛났다. 비탈진 과수원 길 저 아래쯤, 습기에 젖어 있는 빽빽한 새 풀 위를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달음질해 취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아이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바로 돌아서지 않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달려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머니는 오두막집 문간에 화로 불빛을 등지고 서서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사과나무들 아래 땅거미 진 풀밭을 바람에 날리는 엉겅퀴의 작은 깃털인 양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내 심장을 쏴라 -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은행나무 세계문학상 수상작 5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 당연한 의문이 따라다닌다. 과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일까. 상처가 아물지 않는 사람들, 아팠던 곳이 계속 덧나고 덧나 썩어 문드러진 사람, 그래서 자기 결정권을 상실하고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날들을 반복하는 이의 삶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눈물 나게 웃기다가, 미치도록 슬프다. 또별과 미쓰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승민과 수명은 겨우 스물 다섯 살의 나이다. 같은 날 같은 시에 납치 감금에 가까운 폭력적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서로가 운명적 관계임을 깨닫는다. 둘은 한 영혼의 두 몸처럼 일심동체가 되어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정확히는 승민을 위한 탈출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진심으로 억울한 사람이라서 병동의 모든 환자들이 자기 일처럼 온 힘을 다해 도왔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제대로 된 꿈을 꾸고 있어서 응원의 마음으로?


병동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들은 사실 외면하고 잊고 싶다. 실제도 그럴 것 같아서 불편하고 사실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해도 믿기지는 않는다. 그 곳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여지없이 보여주는 그대로 라면 소설은 상당히 미화된 것일 테다. 점박이 같은 악의 화신은 이 사회 어느 곳이든 있을 수가 있다. 그 곳의 닫힌 공간이라면 당연 있고도 남는다. 한이와 지은이, 만식씨, 김용과 십운산 선생, 그리고 유일하게 인간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최기훈 등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의 희로애락은 삶은 어쩔 수 없이 버티고 견디고 또 버티는 거라는 불변의 진리에 이르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나는 승민이 단지 탈출에 성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 속 히어로처럼 짠하고 나타나 병동 사람들을 구하는 통쾌한 상상을 잠깐 했다. 그는 수명을 두고 떠나는  마지막 비행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탈출에 극적으로 성공한 것은 물론 그의 몫인 재산을 챙겨 비록 실명에 이르렀지만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았길 바랬다. 더불어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발자국을 내 디딘 수명을 찾아내기를.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만의 낙원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고 쓰여지기를.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굴에서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미소를 지으면 얼굴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자제하게 된다. 어쩌다 기자들이 와서 인터뷰를 할 때면 모두들 카메라를 보고 웃어달라고 부탁한다. 웃으려고 하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화난 표정이 된다. 그러면 다시 한번 활짝 웃어보라고 주문한다. 잠깐이면 된다고, 안되는데도 자꾸만 부탁한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도 안 되는게 웃음이다. 이제는 얼굴을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 (233페이지)

 

어쩌면 그는 천상을 엿볼 권리에 그 자신의 삶을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상에서만 가능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의 사진이 과연 현실의 세계일까 의문을 품은 이가 나뿐일까. 사진 속의 세계를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은 이가 나뿐일까. 그의 사진 속 오묘한 색채와 사랑에 빠져 기꺼이 마음을 내어 주고 몸을 던지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리라. 그는 성자가 된 사진가였다.

 

김영갑의 삶과 예술은 열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이해되진 않는다. 마치 악마와의 거래인 냥, 말로도 이해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황홀한 작품이면의 고독, 굶주림, 난치병의 끝없는 고통에 대해 도대체 무어라 할까. 그것은 예술가의 생애니 어쩌니 하면서 우리는 오로지 그의 작품, 사진만을 보고 감동하고 느끼면 된다고 한다면 그 또한 그럴 것이다. 그가 사랑한 땅, 제주와 제주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 그럴 것이다.

 

경이로움. 작가가 헐벗고 굶주린 몸을 굴려 몇 날 며칠을 기다려 찍은 한 장의 사진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로 충분하다. 그를 알게 되어 행복했다. 슬펐지만 설렜고, 놀랐지만 많이 두근거렸다. 쉽지 않은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그의 치열한 삶과 사진을 기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언젠가 꼭 반드시 그의 갤러리를 찾아 여행하기. 기대와 희망 앞에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장바구니담기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고 말한다. 화이부동이란 타자와 차이를 같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삶의 태도다. 공자가 이것을 군자의 법도로 제시한 이유는,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는 자이고, 명령하여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소인배는 무조건 같아지려 하는 자이다. 남이 차를 사면 나도 차를 사야 하고, 남이 여행을 하면 나도 여행을 해야 하고, 남이 자식 유학을 보내면 내 자식도 유학을 보내야 한다.-254쪽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황새를 쫒고자 하는 뱁새 소인배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왜 나라고 못한단 말인가." 소인배들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데 실패하면 그것을 곧 인생의 실패로 간주하며 불행해한다. 그들은 '난 너희와 달라'라고 말할 용기와 배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삶을 그저 타인과 닮고자 하는 허망한 욕구로 허덕허덕 보낸다. 당연히 소인배들은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은 모든 이와 모든 것에서 '같아야 한다.' 여기에 어떤 양보도, 관용도 끼어들 틈이 없다. 당연히 '조화는 깨어지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255쪽

당연히 내가 모두와 모든 것과 완전하게 같아져버린 동이의 상태에서 조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화를 위해서는 차이, 어긋남, 비켜섬, 불일치, 요컨대 다름이 필요한 것이다. 조화만일까. 사랑도 결국은 이 차이에서 시작되는 감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취향은 거북스럽고 짜증스럽기만한 난관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음색이 다른 악기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세상은 독주의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이 무대다. 내 취향이 하나의 악기라면 타인의 취향은 다른 소리를 내는 또다른 악기다. 문제는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내 악기와 다른 악기가 어떻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255쪽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친구 사이에 밀착이 아니라 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이다. 이 틈이야말로 '어울려 다님'을 가능케 해주는 차이에 다름 아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로 함께 사귀고자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작당이지 사귐이 아니다. 조폭들을 보라. 그들은 똑같은 두목, 똑같은 규율, 똑같은 질서 안에서 똑같은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틈, 다름, 차이, 불일치들을 그대로 지키면서, 큰 그림 안에 엮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