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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의외로 얇고 조그만 책이어서 놀랐다. 욕심이 많아서 가능하면 두껍고 작은 글자의 책을 선호하는 내겐 정말이지 허무할만큼.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떤 두꺼운 책보다도 무겁고 벅찬 포만감이랄까. 싸구려 불량식품만 먹다가 오랜만에 정식 풀코스의 식사를 한 듯한. 이 소설은 대단하다.

사랑하고 배반하고 떠나고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두사람이 만났다. 한 여자와 두 남자. 뻔한 삼각관계의 이야기 구조가 이렇듯 비밀스럽게 신비하게 슬프게 보여질줄은 몰랐다. 누구의 잘잘못이 아닌 그것은 단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삶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 더 오래사는 것은 배반일 뿐.

현실에서 도피한 비겁한 겁쟁이와 용서로써 아내를 보호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의 회한 이외에 무엇인가. 죽은 여인을 향한 고통스런 그리움을 끌어안고 두 남자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책을 읽는 자의 몫인가. 급하게 속독으로 읽어치울 책이 아님에도 그렇게 됐다. 뜨겁고 강렬한 뭔가가 남았는데 정확히 그 정체를 모르겠다. 아마 재독을 하노라면 알수있을까.

헝가리는 먼나라다. 그 나라에서 태어난 작가도 낯설다. 그럼에도 이 조그만 소설 한권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거기로 안내했다. 짧은 듯 긴 여행을 다녀온 소감이랄지, 피곤하기도 하고 행복하다. 작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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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6-1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참 인상깊고 흥미롭게 읽었어요. 유언도요... ^^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오석윤 옮김 / 양철북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평소 사물과 사건을 볼 때 편협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하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쯤 되려나 짐작했는데 다 잃고난 지금은 마음이 복잡하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부른다. 잊을만 하면 떠오르고 미워졌다가도 체념하게 되는 이웃나라 일본을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마냥 적대적으로 대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단지 약육강식의 논리 때문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건 개인 대 개인이건 미움과 배척보다는 화해와 타협이 지혜로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용서 무조건적인 타협은 아니다. 이해가 필요하고 분석이 필요하고 포용과 함께 단죄도 필요하다.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을 가슴에 묻은 채 살고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에 시달린다. 일어난 일을 기억을 상실하지 않는 한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일본은 늘 가해자였다.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전쟁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빌 줄 모르는 파렴치한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일본인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그 뻔한 상식을 꽤 오랬동안 잊고 살았다.

태평양전쟁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오키나와 사람들의 무력한 분노가 고스라니 녹아있는 이 이야기를 통해 과거라는 이름으로 잊혀져가는 역사에 대해 다시 배웠다. 태양의 아이 후짱이 전하는 가슴따뜻한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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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1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6월
평점 :
합본절판


오랜 만에 만나는 글이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게으른 탓에 마음이 있어도 손이 닿지않았는데 변명을 접고 진심으로 반가움을 금할 길이 없네요.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동경과 희망 대신에 직접 걸음 걸음을 옮기고 어루만지고 시선 가득 담으신 여행을 따라 참 많이 보고 배우고 느꼈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던 그대로 온전히 아름다운 마음들이 새삼 따뜻하게 가슴사이로 흐릅니다.

거기가 어디건 사람 사는 곳이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고 승리와 패배가 있으며 죽음과 삶이 나란히 한다는 걸, 특유의 잔잔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주시어 그 감동이 배가 되더군요.

세상살이는 나와 타자의 절묘한 조화로움 속에 비로서 완전해진다는 이기심을 버리라 오만이 아닌 겸손을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는 소리 죽인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 읽히는 글들입니다.

매를 맞지만 전혀 아프지 않은 오히려 슬픔이 느껴지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명징한 사상이 세파에 찌들어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줍니다. 이렇게 살라 말해줍니다.

어찌보면 구도인의 설법과도 같아서 한마디 한단어가 못내 가슴을 칩니다. 더불어 숲이 되겠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늘 깨어있겠습니다. 그리고 늘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꿈꿉니다. 세상의 잠든 땅에서 무궁한 역사를 만나는, 인간의 위대함을 인간의 어리석음을 만나는, 반성하며 진보하는 이런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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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 행복한 육아 15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이원영 옮김 / 샘터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0년도 훨씬 전에 처음 이 책을 접한 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도록 만드는 슬픔과 감동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이다. 알 수 없는 아이 딥스의 불행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날 때, 그것이 세상 유일의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받는 대개의 정신적 상처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크다는 것도 아울러 깨달았다.

딥스처럼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치면 마음의 문을 꼭 닫아거는 예는 물론 특수하다. 보통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이따금 꺼내어 들여다보고 가슴 아파할 뿐이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용기가 필요하거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게 할 수도 있는 유예된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듣고 보는 것도 고통이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처럼 상처를 품고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된 사람들이 결국 제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내게는 그런 아픔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있다면 스스로 치유법을 찾아보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어른, 부모노릇을 해야겠다. 딥스는 치유받았다. 그리고 성장한다. 놀랍도록 영특하고 맑은 아이로.

'세상에는 돈이나 힘의 과시보다 훨씬 중요하고, 복수와 처벌, 고통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교육자로서 무지와 편견과 편협의 문을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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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5-03-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읽어 봐야 겠네요 ㅋ
이번에 샘터에서 새로 나온 제이디도 괜찮더라구요 ㅋ
 
달의 아이 1 - 애장판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무엇보다 이 만화의 애장판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작가의 열렬한 팬이며 몇 번을 거듭 읽어도 새롭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꿈을 꾸게 하는 마력이 깃든 만화가 새옷을 갈아입은 모습은 정말 기쁜 소식이죠. 애장판이라고 해서 내용이나 그림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얗고 반듯한 종이에 두꺼워진 분량과 푸른빛을 띠는 표지가 인상적이랄까요. 노랗게 변색된 오래전의 책을 접했던 분들이라면 손뼉을 치며 환호할테죠.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유일하게 비극으로 끝이나는 사랑얘기에 눈물을 펑펑 쏟은 기억이 있을 겁니다. <인어공주>라는 동화죠. 네,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한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말지요. 왕자님은 이웃나라 공주님과 결혼식을 올리고요. 참으로 은혜도 모르고 상상력도 부족한 모자란 왕자라고 욕도 어지간히 했었는데. 금기시된 인간과의 사랑에 빠진 인어족 벤자민의 좌충우돌 모험과 기행과 함께 발레리노 아트의 퉁명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달의 아이>는 지구의 오염된 환경과 인간의 과욕이 부르는 파괴와 멸망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띄우는 가볍지 않은 만화입니다. 짧지않은 내용에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담아서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죠.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참혹함을 묵시록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장면에서는 만화라는 장르가 가진 무한함을 새삼 실감했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아트가 칼끝을 자신의 심장으로 향한것은 구태의연한 동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죠. 이 만화의 단점은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거죠.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은 포화상태에 이르고요. 오래된 기억을 더듬자니 온전치 못한 부분들이 있네요. 내일 당장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기에 가장 빠른 특효약이기 때문이죠. 삭막하고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데에는 만화보다 근사한 세상은 없다고 장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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