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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감독, 츠마부키 사토시 외 출연 / 마블엔터테인먼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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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조제의 모습이 내내 뇌리에 남아 떠나질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의 모포아래 숨어있던 영화의 처음을 생각하면 과연 조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의문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음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조제, 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장애인, 불구, 부끄러워 감춰야할 존재로 취급당하던 조제가 츠네오를 만나면서 세상 밖으로 조금씩 걸음을 내딛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자존심만은 강한 조제가 츠네오의 여자친구를 보고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모습에는 연민을 느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져 있다가 츠네오의 방문에 울음을 터트리는 조제는 슬프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곁에 있겠노라 말하는 츠네오와 생애 처음일 사랑에 빠지는 조제는 정말이지 예쁘다.


그러나 일년 후, 츠네와의 동거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조제는 강하다. 물고기성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츠네오와 하룻밤을 보내며 수많은 물고기들에게 둘러싸여 작별인사를 건네는 조제는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지만 근사하다.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제의 무표정한 눈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한때, 조제를 구원했고, 사랑했고, 살았지만 권태와 무료 그리고 옛 애인과의 만남 속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츠네오는 또 언젠가 그 것을 반복할 것 같다. 버리고 버려지는 통속적인 표현은 절대 어울리지 않을 두 사람의 이별에 오히려 안도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불안과 의심이 그들의 함께 있음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조제의 외로움에 박수를 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고 외롭다. 츠네오가 떠난 빈자리에서도 조제는 여전히 요리를 하고 다이빙을 하듯 떨어진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생활은 영원하다? 남은 삶을 살아갈 조제에게 미래는 무한하다고, 다른 사랑이 머물다 갈 수도 있다고,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내 상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먹먹하다. 츠네오 때문일까. 조제 때문일까. 남겨진 조제보다 떠난 츠네오가 불안한 건 왜일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인 호랑이를 츠네오와 보아버렸으니 이후로 조제에게 무서울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 조제야,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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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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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있어 그림은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감성적이고 주관적이며 본질보다는 스토리, 즉흥적인 느낌이 우선한다. 일상에서 늘 밥상에 올리는 밥과 반찬이 아닌 어쩌다가 한번 무리를 하고, 사치를 부리는 고급의 음식과도 같다. 전에 알지 못하던 그림을 보고, 가슴에 확 안기는 느낌에 만족하여 입맛을 다시는 기분은, 굳이 전문적인 배움이나 지식이 없어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을 주신 지인도 가볍게 읽히고 보인다고 하셨는데, 말씀 그대로다. 마치 그림이 곁들여진 일기 같다. 휙휙 넘어가는 책장이 아까울 정도다. 모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첫인사를 나누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다. 작가들도 누군가 자신의 그림 한점을 유심히 보아주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하지 않을까. 우아한 갤러리는 아니지만 조그만 책을 통해, 비록 손바닥보다 작을 지라도 두 개의 눈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한젬마는 오로지 그림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녀만의 그림보기는 작가의 이력에 대해 긴긴 설명을 아끼지 않는 여타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그리고 반갑게도 국내의 작가들이 많다. 이미 유명해져 누구나 다 알 법한 작가만이 아닌, 내게는 생소한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그림보기,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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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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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놓지 못한 책 중에 하나다. 가볍게 건성으로 읽을 성질의 책도 아니거니와 덮어두었던 상처를 헤집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며 읽느라 속도는 붙지를 않고 생각만 많았다. 스스로를 작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저자에 대한 선입견은 독하고 빈틈이 없으며 서릿발이 뚝뚝 떨어지듯 냉정할 거라는 것. 그녀의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와 ‘세월’을 읽은 선뜩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고,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읽은 바가 없어 조금은 긴장을 하고 펴들었던 책이다. 


책의 처음에서 밝히듯 이 글들은 작가 스스로가 받은 정신분석의 기록임과 동시에 여행 중에 만나거나 겪은 사람과 기억들에 대한 관찰과 사유다. 정신분석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생각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말하지는 못하겠다. 보편적인 적과 지극히 사사로운 것을 적당히 가르고, 어떤 것에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적잖은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대부분은 수긍을 하면서도 모두가 틀린 것이 아니듯 모두가 맞지도 않다고 적당히 에둘러 가려는 내 속에도 어린 시절을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보낸 성장기가 상처가 된 탓일까. 유아기의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사유가 내게는 내내 힘들게 읽혔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심연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 어느 때가 될지는 몰라도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주저앉아 패배를 시인하는 것보다는 싸워 이기고 싶다. 방어기제를 다룰 줄 모르는 유아나 유년의 상처가 일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상처임을 자각하자 분노라는 감정이 먼저 생겼다. 마치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강요받아 듣고 난 후의 불쾌감처럼 온몸에 칭칭 감겨왔다. 분석자들은 이 분노의  파편조차도 이름을 달아 걸어두려 하겠지.


분노가 억압되어 있는 사람의 내면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 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듯한 삶을 산다고? 경악하는 한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수긍한다. 사람에 따라서, 필요에 의해서 저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의 마음이 유리알처럼 깨지기가 쉽고, 상처도 잘 받고 그 상처가 오래도록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화를 잘 내지 않고 참기를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그런 사람 속을 들여다보면 벼랑 끝일 경우가 허다했다. 생각해 보면 진실의 잔혹함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가면을 쓰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존재라면 가능하려나. 가령 신이나 정신분석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기가 수월하니까.


예전처럼 예민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을 수 없어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므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의문에 머리가 지끈댄다.

‘네가 싫어하는 것이 실은 네 자신의 일부이다’

그 혹은 그녀의 미치도록 싫은 점이 사실은 나 자신이라고? 뒷머리를 치는 식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편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아니면 무관심하기라고 할까. 하지만 이것도 어쩌다 보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내 정신의 분석으로 해탈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이후로도 생활은 계속되니까


파란색 볼펜으로 노란 포스트 잇 메모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는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바라보기 위한 목적이다.

‘타인에게 충고하기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심리도 방어의식이다. 그런 이들은 충고와 조언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을 지배할 수 있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어느 정도 신망도 얻고 있어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을 타인의 삶에 충고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게 그러했고, 누군가에게 내가 그러했던 충고라는 이름의 이면은 적잖은 고민꺼리를 안겨주었다. 그랬을까, 정말 그랬을까.


책을 통한 무의식과 내면으로의 짧은 여행은 불편하면서도 유익했다. 정리가 안 된 단어와 생각들이 두둥실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몰랐던 것보다는 백배쯤 낫다는 생각도 한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정신분석의를 만날 일도 없을뿐더러, 적금을 깨서 세계여행을 떠날 일도 없는, 소시민의 평범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란 고작 책읽기가 전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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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의 마음이 유리알처럼 깨지기가 쉽고, 상처도 잘 받고 그 상처가 오래도록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제 친구 중에 이런 친구가 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줘요.

모두를 위한 5분 대기조라고나 할까....자기 생활의 중심이 없어요. 다른 사람과의 만남,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의미를 찾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면서...하지만 에너지를 얻는게 10이라면 100만큼 상처를 받아요.그래서 가끔씩 분노를 폭발시켜요. 저는....그 친구가...부담스러워요.

겨울 2005-01-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배려는 무관심만 못하다는 말을 들은 후로 엄청 고민에 빠졌던 적이..... 그러나 의식적으로 배려하지 않기도 무척 힘이 들더군요. 제 주변에도 배려가 지나쳐 앞서가는 분이 있는데, 그 사람을 향해 웃을 때는 얼굴이 막 당깁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분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kleinsusun 2005-01-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도 그런 경험이 있군요.

배려가 지나쳐 앞서가는 사람.

자신의 배려가 배려의 대상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했다는걸 알았을 때, 앞서가는 사람은 상처 받아요. 그 상처가 쌓여서 분노가 되고...

제가 말한 그 친구, 그 친구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그 친구가 엄청난 배려를 퍼부을 때의 그 갑갑함과 부담감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겨울 2005-01-0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독히도 자기 중심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분노와 씁쓸함만 하겠어요.... 현실의 복잡한 문제와 고민, 혹은 상처를 타인을 향한 관심과 보살핌에 쏟아붓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그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해요. 어쩌면 그것은 SOS 신호일런지도 모르잖아요. 드라마 제목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조금 낯간지럽다면 고맙다라고.....
 
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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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홀로서기란 벼랑 끝에서 사는 것인가. 제목의 의미에 갸우뚱 한 것도 잠시,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기도 전에 수긍을 한다. 사노라면 종종 너무 이질적이어서 생경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닮은꼴에 반해서 무한정의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시인의 산문에서 발견한 익숙한 일화들과 생각에 허허로운 웃음이 자꾸만 터진다. 그다지 유쾌한 얘기도 아닌데 웃는 것이 미안하지만 살아보니 비슷하게 겪었거나 앞으로 닥칠 것만 같아서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 사노라면 이런저런 편견들과 맞서게 된다. 대개는 가벼운 농담반 진담반으로 넘기지만 호기심을 넘어 의도적인 비방을 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타고난 그의 천성이 그러하니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후유증에 며칠을 앓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영악해진 요즘은,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간다. 그리고 어쩌다 운이 나빠 만나더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빈말이라도 자신의 생활이 멋들어지거나 고고하다 말하지 않는다. 때론 어둠 속에서 낯선 이에게 쫓겨 대문을 열기도 하고, 만일을 대비해 종을 달아 놓는가 하면, 주변에 사는 극성스런 아줌마 군단과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삶에는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것이다. 대부분의 독신여성들이 들려주는 적당히 과장된 아름답고도 당당한 삶과는 사뭇 다르지만, 실상 이것은 누구나가 겪는 삶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곁들인 작은 크기의 사진 탓인지, 소탈하고 솔직한 글을 읽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거웠는데, 글 속의 사진은 실제 시인이 사는 집과 마을의 일부를 담은 것이란다. 13. 75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오로지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여류시인의 삶은 어쩔 수 없는 비루함과 함께 한 겨울 푸른 소나무처럼 결백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쉬이 꺾이지 않을 고집이 묻어난다. 오염되지 않은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선 아름다운 영혼을 만난 오늘, 미뤘던 숙제를 하듯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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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척"하지 않은 솔직하고 절제된 글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조은 시은은 이렇게 대답했죠.
"삶을 확장시키고 싶지 않다."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이 저릿저릿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조은 시은의 두번째 산문집 <조용한 열정>도 샀답니다.

2004-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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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땐? 와우! 그랬다. 당장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앉고 싶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여 장문의 글을 써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못해, 안 해, 귀찮아하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충격적 약발도 단 하루가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놀라움 그 자체라는 것은 변함없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는 위대한 작가의 자질을 가진 잠재력의 소유자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드니까. 어쩐지 뭔가가 허전하다 싶은 날, 책꽂이에서 뽑아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곧 기분이 좋아지고 숨어있던 단어와 의미들이 두둥실 머릿속을 유영하리라. 그리고 부족하나마 완성된 한 토막의 에세이가 토해지리라.


일상은 때로 감각을 마비시킨다. 언제 어디서건 쓰라고 하지만 컴퓨터는커녕 펜과 종이도 여의치 못할 경우가 있다. 카페는커녕 어질러진 책상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마음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쓰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질 리가 만무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집엔 물론 컴퓨터도 있고, 펜, 종이는 물론 시간과 여유도 구비되어있다. 그거면 되는 것일까? 정작 제일 중요한 스쳐지나간 영감의 그림자도 희미한데? 어떤 천재는 장소 불문, 시간 불문하고 써내려갈지도 모르지만 보통의 인간에게 그것은 잔인한 요구이다. 겨우 한다는 것이 이러한 푸념뿐.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작품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를 쓰고 배우는 방법이다.


시 속으로 들어가라니 정말로 쉽지 않은가. 아무나 가능하다는 듯, 못 들어가면 바보라는 듯 말한다. 어떤 수단을 쓰든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으면 될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의 변덕이다. 때때로는 선뜻 열어주던 문도 제 기분이 나빠지면 결코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도 에너지라고 말한다. 회피하거나 게으름 피우는 대신 정면으로 문제와 맞서는 방법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다? 오, 간단한 치유법이다. 너무 쉬워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도대체 어디로? 역시 수행의 부족인가. 나는 느리고 더듬거리며 주저앉아 하염없이 허공을 쳐다보며 시간을 흘러 보내기 일쑤다. 그리고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뒤돌아서지만 되돌아 나오는 법도 잊을 때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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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0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한달에 노트 한권은 꼭, 모조건 써야지 생각했는데...

책 읽고 산 노트의 반도 못 썼네요.ㅋㅋ 대단한 책이죠?

이 책을 쓴 나탈리의 글을 틱낫한의 사랑법 소개글로 만났어요. 반갑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