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구판절판


그 시간의 공간적 표상이 바로 시계다. 근대적 시간은 시계에 의해 지배된다. 시계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공간적으로 위치시켜놓은 기계다. 처음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도구였던 시계가 곧바로 인간의 신체를 지배하는 존재로 전도된다. 시계를 신체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문명적 신체가 되는 첫번째 코스다. -40쪽

결국 문명과 비문명 사이의 경계는 시간을 얼마나 잘개 쪼개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어떤 태도로 전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즉, 시간-기계 란 하루를 분 단위로 잘게 쪼개서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이 곧 금 이라는 명제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43쪽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건 대상과 대상 간에 확연한 위계가 설정됨과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가 구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관계 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는 물론 주인조차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우주를 소유할 수 있되, 결코 그것과 함께, 혹은 그 속에서 공명의 춤을 출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인의 시공간이다. -58쪽

근대 이후의 역사서는 구체적인 궤적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민족의 기원과 유래를 설정하고 그 웅대한 자취를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때 역사란 신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지적인 충돌과 차이들을 지우고 '국민'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역사를 공통의 기억으로 전유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역사서술에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사서적 통일성이 요청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연대기적으로 듬성듬성 나열되기보다 사건들 사이가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주체와 동기들이 명료하게 부여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완결되고 잘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민족의 '대서사'로서의 역사, 이 대서사야말로 근대 민족담론에 피와 살을 입힌 장본인이었다. -68-69쪽

결국 근대 역사는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과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현재라는 단 하나의 평면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 평면을 이끌어가는 척도가 바로 진보다. 미개와 진화, 야만과 문명의 차이는 결국 시간적 차이를 지칭하게 된다. '아직 이른' 좀더 늦은' 등의 언표들이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그런 기준에 따르면, 역사가 진보한다는 건 앞의 시기가 뒤의 시기보다 열등한, 달리 말하면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성숙해지는 수직적 위계를 지닌다. -78쪽

노마드의 여정에는 목적지가 없다. 아니,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해야 맞다. 따라서 그는 여정마다에서 마주치는 온갖 대상들과의 능동적 접속을 시도한다. -84쪽

동양적 사유에서 악은 기본적으로 불선(不善), 곧 선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악이란 결코 본래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며 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에 이름 붙인 것일 따름이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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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마늘빵 2006-05-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 속독 했습니다. 음. 이거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읽기엔 제가 부족한듯 합니다. 받은 책이니 서평은 써야겠고 해서 속독했습니다.

가넷 2006-05-1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려는데 제가 볼만한 책인지 모르겠네요..-_-;

마늘빵 2006-05-1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생각보다 쉽지 않군요. 어렵다기보다 정신이 없어요.

비로그인 2006-05-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전 이 책 리뷰써서 벌써 탱스투 2개 받았어요.

마늘빵 2006-05-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방금 리뷰 올렸어요. 제겐 별 소득이 없었던 책입니다.

사마천 2006-05-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집트의 술탄은 근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오래된 오벨리스크를 주고 시계를 받았습니다. 지금 보면 우스은 거래지만 당시에는 상징하는 바가 컸습니다. 문장이 꽤 뛰어나군요. 한번 보아야겠네요.

마늘빵 2006-05-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두번째 장이 전 재밌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시간에 쫓겨 읽었기 때문인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약 10년전인 97년 첫 선을 보인 <맨 인 블랙>. 2002년 여름 그 후속작을 선보였다. 5년의 격차는 충분히 전작을 봤던 관객들로 하여금 아 그때 그 영화!, 하며 한참 전에 봤던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만 했다.

  지구를 지키는 영화는 수없이 많이 봤다. 나의 어린 시절 극장에서 재밌게 봤던 <제타로봇>이라는 만화를 비롯,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 시리즈하며, 근래에 이르러서는 <지구를 지켜라> 까지. 우리나라의 지구지키기 영화도 적진 않다. 하물며 미국의 할리우드 시리즈물이야 오죽 많겠는가. 지구가 외계생물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설정, 혹은 외국 생물체에 의해 점령당할지도 모른다는 설정을 한 영화들, 아니면 우리가 발명한 로봇에 의해 인간이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설정의 영화들. 무지 많다. 언뜻 생각나는 에일리언 시리즈, 터미네이터, 아이로봇, 스타쉽트루퍼스, 화성침공, 우주전쟁, 인디펜던스 데이 등등등. 대개 외계인의 지구침략을 다룬 영화들은 SF 물인데 비해, <맨 인 블랙>시리즈는 코믹물이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연인 윌 스미스의 영향도 무시 못할 터.

  같은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라고 할지라도 주연을 누구로 쓰느냐에 따라 어떤 영화는 정통멜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하며, 어떤 영화는 심각한 SF 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코믹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중훈이 출연하는 영화는 원래 영화의 장르가 액션이건 무협이건 멜로건 상관없이 죄 코믹으로 바뀌어버린다. 그의 캐릭터 자체가 그렇기 때문. 박중훈의 영화들은 대략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그의 캐릭터가 매우 강한 건 인정해야 하는 사실. 윌 스미스가 나온다고 다 코믹이 되는건 아니지만 그만의 코믹한 캐릭터는 분명히 있다. 그것이 잘 드러난 영화가 <맨 인 블랙>과 <미스터 히치>.



* 자 준비 됐습니까?

  검은 양복에 검은 구두,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거리를 누비는 MIB 요원. FBI 나 CIA 처럼 뭐 대단한 단어의 약자인가 싶지만 별 거 없다. Man In Black. 뭔가 뽀대난다. 사건이 터지면 현장을 수습하고, 목격자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빛을 한방! 참 편리한 도구다. 타인의 기억을 지우고 싶을 땐 내가 선그라스를 낀 채로 한방 찰칵. 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사랑고백해놓고 채였는데 어색해진 우리 둘, 다시 예전의 관계라도 유지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선그라스를 끼고 찰칵.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 창 밖에 손내밀고 시끄럽게 노래부르는 불독.
   어 참 귀엽다. 난 얘가 참 귀엽더라. 다리 짧고 뒤뚱뒤뚱거리며 침 질질 흘리는 불독 한번 키워보고 싶군.

  영화 <맨 인 블랙 2>의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말하는 불독. 어찌나 말이 많은지 시종일관 떠들어대고 노래도 부른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그래도 이런 못생긴 귀여운 불독 하나 곁에 두면 심심하진 않을 듯 하다.

  킬링타임용 액션영화와 달리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였다. 오랫만에 다시 보니 재미있군. 나도 윌 스미스의 '찰칵'에 당한 것인가. 마치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듯한 느낌. 혹시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그가 한 방 쏘았을지도. 그럼 나중에 다시 보면 또 재미있을거 아냐?



* 영화를 다 봤으면 한 방 쏴야죠. 여길 보세요.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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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5-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타로봇..?? 게타로봇..?? 어느 겁니까.?

마늘빵 2006-05-1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타로봇은 뭐에요? 전 제타로봇 밖에 기억 안나는데.

비로그인 2006-05-13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내가 왜 여기 들어와있지.? ㅋㅋㅋㅋ
(-> * 영화를 다 봤으면 한 방 쏴야죠. 여길 보세요. 찰칵. )

마늘빵 2006-05-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슈슈님
 


  "사랑이 시작될 때 빠지기 쉬운 오만과 편견" 이라는 영화문구는 정말 딱이다.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지침서. 사랑이라는 것은 연애와 결혼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 그렇다고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필받은 두 남녀가 만나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의 총칭을 '사랑'이라고 칭해도 될 터이다. 사랑은 그만큼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이 쓴 고전작품 <오만과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매우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봤던 인물들의 특징이 영화 속 캐릭터에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이쁘고 똑똑하고 자기주장 강하고 고집센 처녀 엘리자베스도, 무뚝뚝하고 오만하여 본래의 친절함과 겸손함이 종종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는 다아시도, 그리고 베넷과 베넷부인, 빙리, 제인, 위컴 등등의 인물들을 매우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 콜린스에게는 더더욱 눈길이 간다. 콜린스를 연기한 배우가 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쩜 소설 속의 그 코믹하고 엉뚱하고 고지식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콜린스를 그렇게 잘 그려냈는지, 콜린스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 장면은 너무나 재밌었다. 싫다고 됐다고 그만하라는데도 꿋꿋하게 무릎 꿇은 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흐흐.

  자존심 강한 여자와 무뚝뚝한 남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정답은 영화 속에 들어있다. 서로 마음이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자존심녀와 무뚝뚝 오만남은 서로 잘났다 이건가. 내가 쟤보다는 아깝지. 그러니 내가 먼저 쟤한테 마음을 표현할 순 없어. 먼저 내게 다가오렴. 뭐 이런거?

 

* 이토록 사랑했으면서 왜 아닌 척 한거야. 왜 싸운거야. 왜왜.

  두 사람은 첫만남부터 삐걱거리지만 그 삐걱거림은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있고,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홀로 괴로워하는 두 남녀. 사랑의 줄다리기는 어느 정도껏 해야지 너무 당겼다간 뒤로 넘어져버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오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버린 오만남. 고백을 거절해버린 자존심 편견녀. 사랑은 너무나 어렵다. 이루어지기 이토록 힘들어서야. 오만 자존심남이 상처를 받았으니 다시 한번 고백을 할까? 자존심녀는 그가 다시 자신에게 고백해주길 바라지만 스스로는 먼저 표현하지 않고. 아 한편으로 답답하면서 한편으로 재밌구나. 고백은 쉬운 게 아니라고. "사랑해"라는 그 한마디는 너무나 어렵다.

  소설을 먼저 읽은 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소설 속의 이야기를 영화가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관심을 두겠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채 영화를 접하는 이들은 그저 하나의 로맨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원작의 내용을 모른 채 보더라도 이 영화는 참 재밌고 잘 짜여진 한편의 사랑놀음이다. 영화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영화를 본 이후 소설을 읽으며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다양한 사랑의 관계가 등장하고, 사랑의 시작에서 끝까지 벌어지는 각종 오해와 이해의 이야기들은 사랑을 고파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갈 거리들을 안겨준다. 웃으며 재밌게 본 영화지만 생각할 거리도 안겨줬던 영화였다.



* 넘 이쁜거 아냐? 촌티나면서도 매력있다. 키이라 나이틀리. 기억해야지.
  근데 얼마전 이 여자가 섹시화보 찍은걸 봤는데 음. 이미지 확 달라졌다. 배우는 진실을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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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5-11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이쁘네요....ㅎㅎ;;;

비로그인 2006-05-1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예요^^ 사실 사랑에 있어서 밀고 당기기 하는 건 다 비슷한 것 같은데 매번 영화나 책의 주제로 다루어져도 지겹지 않으니 참 신기하죠? ㅋ

마늘빵 2006-05-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좋은 아침입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죠. 모든 연애와 사랑이 다 다르듯이.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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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먼저 접한 <오만과 편견>은 소설 속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아니 거꾸로 소설 <오만과 편견>이 영화로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터이나, 내겐 영화가 먼저였고, 소설이 나중이었으니, 영화가 소설 속에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터이다. 고전이라는 것은 이미 당대의 베스트셀러에서 오늘날의 스테디셀러로 변신을 거듭한 많은 이들로부터 검증받은 책이다. <오만과 편견> 역시 우리가 흔히 고전의 반열에 쉽게 올려놓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이 책은 처음엔 출판이 힘들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퇴짜맞고 집구석에 오래묵혀두었다가 나중에 작가 제인 오스틴의 인생말엽에 가서야 대박 터졌다고 하니, 작품을 알아보는 이를 만나는 것도 '고전'의 조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연애소설이다. 근데 꽤나 긴 연애소설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남자와 여자의 탄생 이후부터 생겨난 케케묵은 진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제나 새롭다.사랑을 주제로 시를 쓰고, 사랑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사랑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고, 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사랑은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써먹힐 소재다. 같은 '사랑'을 주제로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항상 새롭고 신선하다.

  <오만과 편견>은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 오만에 빠진 한 남자와 편견에 사로잡힌 한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재력가이고 미남이지만 사람들에겐 오만방자하고 버릇없는 녀석으로 찍힌 다아시와 도무지 여성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까칠한 엘리자베스. 활동적이며 자기주장 강해 할 말 다하는 지적인 여자다. 어려서부터 정식으로 가정교사에게 뭐 배운 것 하나 없어 피아노도 못치고 그림도 못그리고 당대 '우아한 여성'들이 갖춰야 하는 재능은 하나도 갖춘 것 없지만 성격하나는 화끈하고 깔끔한 여자. 딱 오늘날의 여성상이다.  

  오만한 남자와 까칠한 여자가 만났으니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릴리 없지. 다아시는 그녀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딱 부러지게 말하고 활동적이고 밝고 지적인 그녀가 좋아졌고, 엘리자베스 또한 오만하고 예의 없는 신사답지 못한 다아시가 싫었지만 그의 진면모를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만나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툴툴 거리고 티격태격 싸우던 그들은 정말 '싸우다 정든다'는 우리의 옛말 처럼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으니 이를 어쩐다.

  소설은 매우 오랜 호흡에 걸쳐 두 사람의 감정의 변화를 다루고 있어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 싸우는 꼴이 나에겐 너무나 재밌었다. 좋아하면 괴롭힌다. 어릴 때건 다 커서건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괜히 심술부리고 딴지걸고 장난치고 그런다. 그러면서 상대를 파악하고 좋아지면 사랑에 빠져버린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싸움은 내겐 그렇게 보였다. 서로 좋아하면서 마음을 숨긴채 정반대로 표현하는. 아유 귀여운 것들.

  반면 제인과 빙리의 사랑은 그저 지고지순한 사랑 그 자체다. <오만과 편견>은 오만한 남자와 편견에 빠진 여자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사랑의 유형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 말고도 이 책에선 '제인과 빙리의 사랑' '콜린스와 샬럿의 사랑' 그리고 '위컴과 리디아의 사랑' 이렇게 세 쌍의 커플이 더 등장한다.

  제인과 빙리의 사랑 :  한 눈에 반해버린 사랑. 그러나 오래도록 지속되는 사랑. 순수한 두 남녀의 사랑. 제인과 빙리의 사랑은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눈으로 말하는 사랑. 두 사람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나 사랑한다 말도 못하고 오랜 세월은 흘려보낸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 덕에 오해를 낳고 결국 오해는 이해로 변해 다시 사랑을 되찾긴 했지만 말이지. 정말 순수한 사랑.

  콜린스와 샬럿의 사랑 : 현실적인 사랑. 못생기고 키 작은, 외모로는 도저히 승부가 안되고, 게다가 성격까지 이상한(?) 그는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교구 목사직이라는 직업을 통해 많진 않지만 평생 수입이 보장되고 명예도 가지고 있다. 나이들고 그다지 이쁘지도 않은 샬럿은 청혼하는 이 없어 노처녀로 늙어 죽을까 걱정하지만 콜린스로부터 청혼을 받고 바로 수락한다. 그의 명예와 돈을 보고서 선택한 결혼.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는 현실을 택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많은 커플들이 이렇게 맺어지지 않을까. 서로 말은 안하지만.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p177)

  위컴과 리디아의 사랑 : 한 눈에 반한 사랑은 맞긴 맞는데 한쪽에서만 한눈에 반한 사랑이다. 다른 한쪽은 돈을 노린 사랑. 사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자가 남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걸 어쩌랴. 그것이 사랑인지 열정인지 모르겠다만 좋아 죽겠다는데. 남자가 바람둥이인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여자가 그것도 용인할 수 있다면야 썩 나쁜 맺음은 아니다.

  수많은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다니고 키스를 하고 귀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며 그들 중 일부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공식평생커플로 거듭난다. 넌 내꺼야. 1700-1800년대의 영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장면들은 지금의 우리네와 다르지 않다. 재고 따지고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떤 커플은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지고 어떤 커플은 평생의 경제적 여유를 택하며, 어떤 커플은 한 사람의 사랑으로 맺어지고, 어떤 커플은 원수에서 연인으로 변신한다. 사랑은 하나지만 사랑은 여러가지다. 이 세상 모든 커플들의 사랑은 모두 각각 다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 어떤 것이 거짓이고 그 어떤 것이 진실이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소설 속의 커플들에게서 '제인과 빙리의 사랑'과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만을 진실된 사랑으로 뽑기 쉽지만 그건 우리의 사랑에 대한 또다른 편견.  그 어느 것도 거짓되다 진실되다 말할 수 없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드러난 네 가지의 사랑 방식 중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의 유형을 선호한다. 그들이 소설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난 그런 사랑을 꿈꾼다. 내가 오만방자하고 거만하니 까칠하고 자기주장 분명한 여자 하나 구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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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 -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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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은 감정을 가진 존재,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고통이다. 악은 정신을 통해 즉각 파악되고, 감정에 의해 곧바로 감지되며, 고의로 가해진 고통으로 느껴진다. 악이 존재한다는 데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치 않다. -13쪽

악을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행해진 어떤 사건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악을 즉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나 이웃들에게 아니면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행해진 악을 감정적으로나마 직접 경험한다. 악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16-17쪽

전통적으로 '자연발생적 악'과 '도덕적 악'을 구분하기도 한다. 자연발생적 악이란 토네이도나 암과 같은 '신 또는 자연의 파괴적인 행위'를 말하고, 도덕적 악은 인간의 의지나 여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진지하게 신이라는 개념을 숙고해보면,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신이란 다른 감정을 지닌 존재에 고난을 짊어지우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23쪽

"아브락사스는 신성하고도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데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들어있다. 아브락사스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같은 말과 같은 행동으로 낳는다. 그래서 아브락사스는 끔찍하다"
(융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법> ) -34쪽

악은 왜, 어떻게 인격화되는가? 가장 기본적인 답은 이렇다. 즉, 악을 외부로부터 우리에게로 침입해 들어오는 고의적인 악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격화된다는 설명이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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