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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또 한편의 영화를. 전에 본 영화인가 싶었는데, 이상하게 본거 같은데 감상문이 없다. 아마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기기 전 시기에 봤던 영화인 듯 싶다. 그냥 제목만 말하면 기억이 안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슬슬 머리 속 구석에 박혀있는 장면들이 기어나온다.



* 일본의 기습침공으로 인해 모든 함대가 격침당했다. 선원들은 책을 읽다가, 요리를 하다가, 누워 자다가 어이없이 당해버렸고, 폭탄에, 기관총 난사에, 또 침몰된 항공모함 속에서 바다와 함께,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전형적인 미국식 애국주의 영화이다.  2차 대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 아직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미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인해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모든 함대가 격침당하고 수많은 해군과 공군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일본군은 350대의 전투기를 날렸고, 피해는 그 중 29대. 미국은 모두 싹쓸이 당했다. 병원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밖에. 대통령은 장군들을 모아놓고 복수를 다짐하며 방책을 논의, 지금껏 단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작전을 펼친다.



* 에블린과 그녀가 사랑했던 첫번째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가 된 래프트.

  육군 중위 대니와 래프트, 두 사람은 어릴적부터 형제처럼 자라난 둘도 없는 친구 사이. 래프트는 군에서 만난 간호사 에블린과 사랑에 빠진다. 브리튼 전투에 지원한 래프트, 전투기는 바다로 가라앉고 에블린에게 전해진 사망소식. 옆에서 지켜보던 대니, 에블린을 위로해주다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런. 하지만 래프트는 살아 돌아왔다. 죽은 줄 알았던 연인이 살아돌아오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에블린과 대니.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맞선 도쿄 침공에 두 사람이 차출되고, 그곳에서 대니는 죽었다. 대니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에블린, 또다시 상처를 받고. 대니의 부탁으로 에블린의 예전 연인 래프트는 에블린의 곁에서 대니의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린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다. 그의 친구를 사랑했고, 그는 사망했다. 다시 옛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꾸린다. 이런 가혹한 운명의 장난. 에블린은 차례로 사랑했던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한 사람은 살아왔으나, 한 사람은 죽었다. 아무리 영화지만 참 너무한다. 여자의 심정이 어떻겠느냔 말이다. 사랑했던 첫 남자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홀로  슬픈 나날을 보낸 에블린, 그리고 곁에서 보살펴주던 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일,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래프트가 돌아온 뒤 그의 친한 친구와 자신의 여자가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단 사실에 충격받는 것 역시, 친구 대니를 미워하는 것 역시 또 이해된다. 내가 래프트라면, 내가 대니라면 어찌할까. 영화에서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래프트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대니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각기 두 사람이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말과 행동들을 나 역시 따르지 않을까 싶다.

 제 2 차 세계대전의 진주만 기습 상황을 재현했다는 의미에서 볼 만한 영화, 또 가혹한 운명의 장난질 속에서 보여준 세 사람의 행동에서도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영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 단지 너무나 긴 러닝타임이 다소 지루하기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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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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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선택이었다. 2005년의 12월, 인터넷 서점의 할인행사 물품 중 고를만한게 없을까 뒤지던 중에 <공중그네> <인터폴> 셋트를 발견. 아니 두 권을 한권 값에 준다네. 이런 할인행사 때는 왕창 많이 지를 염려도 있지만, 한 두개쯤은 질러주는 센스도 있어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보통 씨의 책을 다 찾아 읽다가, 연애소설로 나의 관심이 이동, 연애소설에서 이제 일본소설로 관심이 이동 중이다. 그리하여 최근 일본의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골라 맛보고 있는 중. <공중그네> 역시 그 와중에 나에게 발탁(?)된 놈이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기획자, 잡지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슷한 관련 분야의 다양한 직업 변천사 때문인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들에게 묻어나오는 정통 소설의 구도를 과감히 깨버린다.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배운 감독과 생판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로 영화를 배운 감독과의 차이라고 할까.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쾌한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코믹영화라고 해서 그냥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교훈.  

  <공중그네> 는 총 5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사건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방식은 같다. 각각의 단편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 두 사람의 환자 처방법이 특이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맞을까 의심이 들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다퉈놓고 찜찜할 때, 여자친구로부터 시련당했을 때, 나를 보살펴준 부모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등등의 사소한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런 고민들, 누군가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 딴지걸지말고 그냥 그래 그래 네가 맞아 네가 옳다 라고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내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보다 대단한 고수를 만났다. 이 때 느끼는 좌절감. 나를 포함한 누구나 다 느껴봤을 법한 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짧게나마 정식으로 드럼을 배웠고, 이후 독학하며 이런저런 밴드들을 거치고, 프로젝트를 꾸려 공연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내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의 드러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학교 내 여러 밴드들이 공연할 때 보면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은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 이런 못말릴 거만함. 내가 거만하다는 걸 안다. 사람들도. 그러면서도 그들은 날 인정해줬다. 하지만 언젠가 나보다 나이 많은 다른 밴드의 드러머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헉! 이런, 이란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는 방송국의  세션드러머까지 했다고 하니. 아 이런. 그야물로 우울안의 개구리, 정저지와는 이럴 때 하는 말.  

  홍대 앞 라이브 클럽 재머스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때, 정식 인디밴드가 되었다는 자부심. 이제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웅큼의 흙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지만 또 클럽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단한 실력파의 밴드들. 이 이럴 때 같은 클럽 밴드지만 정말 우울. 이렇게 노력했는데 이거 밖에 안되나. 세상이 고수는 너무나 많다. 내가 학교에서 후배에게 드럼을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여기서 아무리 잘해봤자 나가면 고수는 엄청나다.   이럴 때 이라부 의사에게 간다면 딱 좋겠는데.

   소설 속 이라부 의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랜 공부기간에서 나오는 해박한 의학지식과 권위주의적인 거만하고 뻔뻔한 태도의 의사들이 절대 아니다. 아니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오자마다 반말 찍 하더니 처방은 안해주고 자꾸 딴소리만 해. 내가 야구선수라니깐 같이 캣치볼을 하자고 하질 않나. 서커스단이라니깐 자기도 공중그네 해보고 싶다고 정말 서커스장에 와서 매일같이 연습하지를 않나.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당신 의사 맞아? 돌팔이 아냐? 당연 의심이 갈 수 밖에. 요즘 또 흰 가운입은 돌팔이들이 한 둘이야? 게다가 의사는 그렇다 쳐. 가슴 곡선 다 보이게 노출하고, 핫팬츠 입고 다니는,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나 읽고 있는 저 여자는 뭐야. 간호사 맞아? 아니 무슨 일본 포르노 찍나. 하지만 이라부 의사를 찾아온 환자들은 다음 날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마련. 무슨 최면술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말야.  

  이라부의 환자 처방법은 특이하다. 그냥 대놓고 비타민 주사를 시도때도 없이 놓지를 않나. 아니 무슨 처방법이 그래. 비타민 제만 주사하면 다 낫는데? 하지만 다 낫는다. 정말 의학적으로 처방한 것은 비타민 주사가 전부인데도.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그들은 각 분야의 최고의 인물들이지만, 불안과 강박증세, 자신감 부족, 결단력 상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분명히 이분야에서 만큼은 날 따라올 자가 없는데 하찮은 기본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숨긴다.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상담해보고 싶지만 말 할 사람이 없고, 말할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밖에. 이라부는 바로 이 점을 고쳐준다. 일부러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환자와 함께 놀면서 환자는 저절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깨닫고 인정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나니. 마음을 열면 모든 병은 치유된다.

   분명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나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한번 이곳을 찾은 환자들은 다시 방문하게 마련. 그것은 어쩌면 병원에 대해,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깨지면서,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들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안놀아주면 울어버리는, 또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지만, 그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환자를 완치로 이끈다. 우리가 못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도 같이 못된 놈이 되듯이, 착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 마냥 투명한 유리거울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라부의 마음이 환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치유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아직까지 이런 비슷한 의사도 결코 보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차원에서 다른 병원과 경쟁해 이기려는 자들의 컨셉이 아닐까 생각. 

  이 소설 후딱 읽으며 정말 속으로 혼자서 큭큭 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고 난 느낌. 이라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벌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닫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이라부를 찾아가는 길만 남아있도다. 어서 가자 이라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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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1-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에 붙은 말들이 더 재미있어서 추천! ^^

마늘빵 2006-01-3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핫.

토트 2006-01-3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추천하구 가요.

마태우스 2006-02-01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프락사스님 저도 이거 읽고 리뷰 쓰려고 합니다^^ 글구 저를 이라부에 비유해 주셔서 감사!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늘빵 2006-02-01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 ^^

하이드 2006-04-1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왜 지금 봤지? ^^;;
 
촘스키 하룻밤의 지식여행 1
존 마허 지음, 한학성 옮김, 주디 그로브스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노엄 촘스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언어학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이론을 정립했는지 알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노암 촘스키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언어학 이론을 알고 있다기보다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까는 놈쯤으로 알고 있을 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촘스키는 기본적으로 언어학자이자 엄청난 저술가이며, 가장 미국을 신랄하게 까는 비판적 지성인이다. 아니 왜 미국인이 자기 조국을 그렇게 까대? 애국심이 투철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터. 얼마전의 황우석 사건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황우석의 비리(?)를 조사한 MBC를 테러하지 않았던가. 아 이 바람직한 애국심이여.  

  촘스키가 지은 책은 엄청나다. 다 세어 볼 수도 없다. 또 그가 낸 책의 다수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으로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숙명의 트라이앵글>, <불량국가>,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이 있다.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저술활동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 비판적 지성인으로서의 저술활동을 더 많이 벌여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또 언어학자로서 유명하기보다는 지성인으로서 더 유명하다. 되려 그의 언어학 이론은 주류 언어학계의 이론에 속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주류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하여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치루다보니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유명하고, 이처럼 대단한 활동을 벌이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에서 촘스키를 다룬 것은 그런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는 의미로서.

   나는 이 책을 산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촘스키의 저작이 아닌 촘스키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 아마 당시 이 책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촘스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 여럿 있다. 솔직히 이 책을 받아보고 적잖히 실망했다. 촘스키란 인물에 대해서 소개해주기는커녕, 촘스키가 누구에요, 라는 나의 질문에 확실하게 부적절한 대답을 받은 느낌. 나의 질문이 무시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촘스키에 대해서,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서, 촘스키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소개해준다. 하지만 턱 없이 부족하고, 어설프게 나열해놓은 그의 언어학적 이론이나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은 되려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솔직히 이 책 정독해서 끝까지 보진 않았다. 왜냐면 배신감을 느껴서. 차라리 그의 저작인 1차 서적을 꼼꼼히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관한 나의 궁금증은 거기까지 미치진 않아서 그의 저작을 읽어본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읽어볼 생각.

   만화그림과 사진을 조합해 만들고, 그 옆에 간략한 해설을 덧붙인 이 책은 그 구성이 너무나 조잡하다. 또한 한권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듯 하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만 하던지, 아니면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지식으로서의 그의 주장에 대한 이야기만 하던지 해야하는데 - '촘스키'라는 책의 제목대로라면 '인물탐구'에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려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되어버린 책이 되었다. 다시는 김영사의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를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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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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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너의 빛 
  어디서 오는지 나는 모르네.
  바로 곁에 있는 듯, 아스라이 먼 듯 
  언제나 비추건만 
  나는 네 이름을 모르네
  꺼질 듯 꺼질 듯 아련히 빛나는 작은 별아

 - 옛아일랜드 동요에서 -

 

  <모모>는 한편의 동화이고, 한편의 환타지이며, 한편의 모험담이다. 환타지 매니아라면, 미하엘 엔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찌기 이 책을 접했을 테지만, 나는 환타지 매니아도 아니고, 미하엘 엔데를 알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모>를 접한 방식이 그렇듯,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서였다. 드라마 삼순이 속에서 다정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김선아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와닿았나보다. 더불어 읽어주는 동화가 어떤 책일까 궁금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선뜻 구입해보기까지.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책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까진 아니어도 그람시의 책이 좀더 팔렸다고 하지 아마. 한편의 인기드라마는 많은 인기 문화상품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하고 있는 핀에서부터, 옷, 가방, 신발, 들고다니는 책까지도.  

  <모모>는 드라마로 인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링크되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누적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주간베스트 2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정도로. <모모>가 이토록 많이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청소년은 물론이요, 대학생,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까지도 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마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나이대에 걸쳐서 읽혀지듯이 말이다.  

  책 속의 모모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이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모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싸움판에서도 두 사람이 모모에게 와서 다시 싸우고, 모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모모는 조용히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두 사람은 깨닫는다. 각자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또 <모모>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마을에 회색신사들이 닥치면서 사람들은 싸우고, 시간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간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p77)
 

  시간을 객관적으로 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시간에 맞춰하기 위해 시계와 달력을 사용한다. 일초, 이초, 삼초..... 육십초. 어 일분이 갔네. 한시간이 지났군. 하루가 벌써 갔구나. 시계와 달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객관적인 시간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다. 지금은 밤 11시 55분이다. 그게 무슨 의미람? 객관적인 시간은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가간다.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정말 한없는 영겁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한 시간은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시간은 길수도 짧을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p208)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운 동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동화와 환타지라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철학적이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철학적인 주제를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다가가기 쉽게 동화와 환타지로 엮어낸 것이다. 얼마전에 그의 또다른 책 <자유의 감옥>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 솜씨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좀 어려웠다. <모모>는 그보다 더 쉽고 재미나게 사건 중심으로 쓰여졌고, 그 안에서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볼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동화래, 환타지래, 하면서 에이 별로겠다, 라는 생각으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모모> 열풍이 다 끝난 지금에 와서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을 먼저 접하고, 그의 또다른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읽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괜찮았던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이 책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다시한번 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모모>가 다루고 있는 주제, 들음과 시간에 대한 부분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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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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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먼저 접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를 뒤에 접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했을 때가 아마도 99년쯤 인 듯. 대학 2학년 이었을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나는 한동안, 꽤 오랫동안, 쑥맥이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좋아한다 말도 못하고, 가슴 속으로 앓아야했던 바보 같은 놈이었다. 어쩌다 좋아하는 여인이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마음 속으로 만족했던 그런 때, 채이기도 많이 채였지. 모든 걸 다 떠나서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는 넘을 어떤 여인이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 뭐 채인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호감이 있어 데이트 했고 조심스럽게 소극적으로 좋아한다 말했다가 상대의 별로 인 반응, 뭐 그런거 - 나름대로 분위기 잡고 아픔을 달랜답시고 음악도 듣고 조용히 글도 쓰고 그랬던 때가 있었다. 이런 청승맞은 넘.  

  이 시집은 아마 그때 산게 아닌가 싶다.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별로 읽지도 않았던 책이 먼지가 쌓이고 때가 묻어 약간 거멓게 변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제목만으로도 참 가슴 울컥 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데 왜 그대가 그리워. 이해가 안갈 법도 하지만, 이해 간다. 그 느낌 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사랑하는 이는 나의 마음 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그대는 분명 내 곁에, 내 마음 속에 있지만, 그대는 내 곁에 없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시들은 참 우울하고 슬프다. 참고 또 참고 끝내 못참고 가슴 울컥하며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시들이다. 사랑해서, 그리워서, 보고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참고 참았는데 그래도 난 당신이 그립다. 사랑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딱 좋은 시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사랑했던 옛 여인의 향기가 그리울 때, 어둑어둑한 방안에 달랑 스탠드만 켜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 한 편 시를 낭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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