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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구입하지 않고 비록 받아보기는 했지만 책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객관적으로 하겠다. 서민. 알라딘 닉네임 마태우스. 그는 의학계의 김두식이다. 김두식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김두식은 한동대 법학과 교수로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헌법, 다가서기 어려운 헌법, 마냥 무서워보이기만 하고 과거에 우리를 옭아매는 도구로 사용된 법을 그는 매우 단순하고 솔직하고 쉽게 까발렸다. 헌법이라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 재밌는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험담 덕택이었다. 서민. 그는 김두식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 그리고 흰까운의 권력 앞에 무조건 네네 하고 대답해야했던 우리들에게 그는 솔직하게 까발렸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두렵다. 그가 이 책을 낸 뒤에 의학계에서 구타를 당하지는 않을지. 므흣.
책의 내용은 매우 훌륭하다. 그런데 단점은 누구나 다 지적했던, 비록 몇 안되지만, 책의 중간 중간에 실린 고놈의 너무나도 날카롭고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그린 삽입그림. 마치 80년대 과학상식책을 보는 듯 했다. 그냥 대충 그리더라도 동화책에 나온 듯한 거칠고 사실감있는 그림이 어땠을까 한다. 저자 서민은 책의 모든 장에서 풍부한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우리들을 웃겨주고 있지만 고놈의 너무나도 모범생적인 그림이 이내 나의 감성을 닫아버린다. 차라리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내가 처음으로 접한 법에 관한 책은 <헌법의 풍경>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접한 의학에 관한 책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이다.
의학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을 것만 같은 영역이었다. 의학은 너무나 딱딱해서 접하면 찔려 피가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의학도 별거 없네 라는 - 무시는 아니고 - 만만한 영역으로 다가왔다. 니들이 의학을 알어? 응 알어. 라고 이제 대답할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의학적 상식들, 그리고 그렇게 믿었던 것들이 이제 벌거벗은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도대체 헬리코박터는 언제 나와? 라고 속으로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결국 주인공은 나중에 나왔다. 역시 주인공이다. 원래 주인공 처음에 나오면 시시해서 재미없다. 헬리코박터 안녕? 근데 난 헬리코박터는 기억안나고 중간중간의 재미난 까발림이 더 생생하다. 넌 역시 미끼였어. 헬리코박터.
책은 크게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 과 '음지의 질환들' '바른생활을 하자' 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있다. 첫째부분은 병원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경험을 통해 도와주고 있다. 나는 손과 발에 땀이 많이 나서 - 물론 다른데도 마찬가지고 - 큰 병원에 가서 이걸 어디서 검사받아야 할까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한증 수술을 받고 손에는 땀이 덜나는 상태인데 그때엔 어느 과에 문의를 해야할지 몰랐다. 결국 내 생각과는 달리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건 땀이 문제이긴 했지만 수술을 하는 부위가 가슴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그렇게 생각하랴. 당연히 피부에서 땀이 나니깐 피부과인줄 알았지. 피부과로 접수했으면 진료비 날릴 뻔했다. 이런 아주 사소한 어려움들. 몰라서 겪게 되는 것들을 그는 첫 카테고리에서 다뤄주고 있다.
두번째는 음지의 질환들. 우울증, 수면장애, 말더듬, 소아애증, 독감, 탈모, 투석, 냄새, 변비, 설사 등의 에이 더러워 할만한 증상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생명에 지장이 있는건 아니지만 사는데 불편한 것들이다. 그리고 최근엔 어디 아프지 않아도 이런 것들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의 원만함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봤을 때 나는 말더듬이 있는 거 같다. 난 말빨이 없다. 근데 사실 어느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말은 해야겠고 그럴 때 난 말을 더듬게 된다. 이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증상이다.
세번째 카테고리에서는 구더기, 아동학대, 채식과 육식, 포경수술, 정력제, 콘돔, 제왕절개 등에 대한 역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앎의 깨달음을 준다. 난 포경수술을 안했다. 어릴 땐 무서워서 안했고, 커서는 필요없어서 안했다. 어릴 때 엄마는 그랬다. 동네 아이들 다 포경할 때 난 안하니깐 나보고 "그럼 장가 못간다 너" 그랬다. 솔직히 장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안하면 정말 못갈까봐. 그런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시간이 점차 흘렀고 몇살을 더 먹었을 때 난 알았다. 그게 장가랑 상관이 없다는 걸. 그리고 일부 학자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과도하게 실시하고 있는 수술이라고 해서 안해도 되는 것으로 알았고, 지금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사실 나야 그게 섹스를 하는데 더 쾌감을 주는지 안주는지는 모른다. 역시 나아가 콘돔 부분과 또 관련이 되는데 흠 역시 잘 모른다. 섹스에 도통(?)한 자들은 알까? 글쎄 그렇더라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 않을까. 객관적으로 통계를 내긴 뭣한 거 같다.
저자 서민은 이 모든 일상적이고 우리의 관심을 이끄는 주제들을 풀어낼 때 마다 그의 어릴적부터의 온갖 경험들을 다 끄집어내어 해설해주는 통에 책을 다 읽은 뒤에 남는 것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상식과 나머지 하나는 저자 서민의 개인사다. 이건 일종의 의학대중서도 되지만 저자 서민의 자서전도 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적나라하게 다 보여줌으로써 여기 적힌 그의 글들을 독자로 하여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믿음은 화자의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저자를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을 사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줬다 해도 대충 봤을 것이다. 난 그를 알고 있고, 그라면 내가 시간을 들여 이 책을 꼼꼼히 읽어도 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난 그를 믿고 책을 봤고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꽤 두꺼운 책이건만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않았다. 잘때빼고는.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씀. 나아가 난 그의 나머지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를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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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별하나 부족의 결론은, 편집. 인용문구와 저자의 해설이 구분이 안된다. 분명 인용구를 읽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읽다보니 저자의 해설이다. 이런건 출판사에서 조금 더 봐줬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데 넘 성의가 없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