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연히 이 시집 제목을 보고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지요. 시인 이름은 박준인데 김준으로 잘못 안 적도 있습니다. 비슷한 이름 하나 더 있네요. 박연준. 외자가 아니고 남자 이름이지만 여자더군요. 시집 제목은 《당신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예요. 이 제목에서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어다가 먹은 건 밥이다 멋대로 생각했지요. 좋아하는 사람 이름만 생각해도 밥 안 먹어도 배 부를 듯하여. 참 단순한 생각이지요. 이 안에는 제목과 같은 시도 있습니다. 시에서 이 말은 ‘아픈 내가’로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 말을 뺀 말이었다니. 제목에서 말하는 당신 이름으로 지은 건 약이겠네요. 그 약 먹으면 아픈 거 잘 나을까요. 당신 이름은 밥도 되고 약도 되는군요. 그런 당신 이름 있습니까. 그런 이름 가진 사람 부럽네요. 눈에 안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거여서 그런 게 뭐가 좋을까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름은 그래도 그건 사람이 가진 것이니 이름을 생각하면 바로 그 사람이 떠오르겠지요.

 

제가 시를 만난 건 책을 보기 시작한 때와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예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국어와 문학 시간에 시를 조금 보았습니다. 그때는 일제강점기 때 시인 시를 많이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도 책에 나온 것 같기도 하네요. 현대 시 배웠을 텐데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시가 아닌 시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고 산 시집은 어떤 것일지. 그런 건 기억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생각나지 않네요. 책방에 가서 시집이 많이 꽂힌 곳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이 보이면 가끔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 게 좀 오래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오래 하지 못했네요. 책과 멀어진 때가 있었던 것도 조금 아쉽습니다. 아쉬운 건 그것만이 아니군요.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는 일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무언갈 하지 않아서 나중에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떻게 하죠.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 하려고 하는데 어떤 건 왜 했을까 할 때도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바라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요.

 

몇해 전(2013)에 오랜만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 하나 샀습니다. 그건 2012년에 나온 거군요. 이것도 2012년에 처음 나온 건데 책 만듦새가 조금 다릅니다. 새롭게 했다가 다시 바꿨나 봅니다. 책 제본형식 잘 모르는데 두 권이 좀 달라요. 오랜만에 산 시집은 꿰맨 거지만 이건 붙였어요. 이제는 그렇게 만든 거 살 수 없겠습니다. 어쩐지 아쉽네요. 그때 몇권 더 살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게 별로다 여겼는데.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은 예전에도 조금 샀어요. 예전보다 커져서 다른 데서 나온 시집도 달라졌을까 했는데, 문학과지성사와 창비랑 민음사는 그대로더군요. 시집 나오는 곳 더 있을 텐데. 시를 다시 봐야지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책을 보고 그것을 꾸준히 쓴 다음인 것 같네요. 그전에는 시집 봐도 아무것도 못 썼는데, 시집 봐야지 생각했을 때도 그것을 보고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못 봤습니다(이런 말 또 했네요). 시집에 담긴 시 이야기 못하면 다른 거라도 하죠. 지금까지 재미없는 이야기 늘어놓았네요.

 

 

 

지금은 우리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40쪽)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에서, 58쪽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음 한철>에서, 69쪽

 

 

 

한 이삼 일

기대어 있기에는

슬픈 일들이 제일이었다

 

<2박 3일>에서, 96쪽

 

 

 

앞에서 시를 언제부터 보았다고 말하고 박준이 쓴 시가 어떻다 말하려고 했는데, 다른 말만 했습니다. 전에 오랜만에 산 시집은 한번 읽어봤습니다. 그때는 써야 해 하는 마음으로 보기보다 그냥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까 합니다. 박준 시 다 안다 말하기 어렵지만 저한테 맞는 편입니다. 옛 정서가 느껴진다고 할까. 제가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그것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를 슬픔이나 아픔. 기형도 시가 조금 생각나기도 합니다. 기형도 시보다는 덜 어둡습니다.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보다 박준과 같은 시인 허수경이 쓴 글이 더 좋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 잘 몰라서 그렇군요. 그런 것도 자주 보면 조금 알 수 있을까요. 박준이 말하는 너, 미인, 당신은 뭘까 싶습니다. 같은 사람일지. 미인은 좀 별나기도 하죠.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82~83쪽)

 

 

 

시란 무엇일까요. 시를 봐도 시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네요. 박준이 쓴 시를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썼다고 느꼈습니다. 이건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래야겠지요. 시, 잘 보고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을 잘 말할 수 없다 해도. 시가 제게 찾아오는 일도 거의 없겠지만, 스치는 생각 붙잡고 싶기도 합니다. 이것도 있네요. 스치는 생각 붙잡기. 빨리 붙잡지 못하면 놓칩니다. 시를 밥과 약으로 생각해도 괜찮겠습니다, 당신 이름 대신.

 

 

 

아픈 난 시를 지어다가 며칠 먹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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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재난

 

  체르노빌의 목소리   Voices from Chernobyl

  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 (2008)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김은혜 옮김

  새잎  2011년 06월 07일

 

 

 

 

 

 

 

 

 

 

 

 

해마다 여러 분야에서 인류 복지에 이바지한 사람한테 노벨상을 준다. 누가 만든 건가 했는데 노벨이 죽을 때 남긴 말이었다(예전에 노벨이 나오는 책 본 것 같은데 거의 잊어버렸다). 노벨이 여러 가지 일을 했을 텐데 생각나는 건 화약뿐이다. 화약이 인류한테 좋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한 사람과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쓴 거다. 체르노빌을 내가 언제 알았는지 모르겠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알았을지도. 그때 체르노빌 이야기도 나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전에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알고 왜 그런 걸 썼는지 몰랐던 것 같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났다. 그때 바로 몰랐다 해도 나이를 좀 먹은 다음에는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은 알았다. 원자력 발전소 핵과 전쟁 때 쓰는 핵이 다를까. 나도 그게 같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같은 거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다른 곳 사람이 체르노빌 사람을 돌연변이로 보았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벨라루스 국경과 가까웠다. 벨라루스에는 원전이 없었는데,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그곳 사람도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 사람)가 되었다. 지금은 거의 서른 나라에 원자력 발전소 443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거 몰랐는데 엄청난 숫자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곳에서 가까운 나라까지 영향을 받는다. 가까운 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겠다. 사람이 방사선에 오래 쏘이면 암에 걸리고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 내가 아는 건 이만큼이다. 다른 일도 일어날 텐데. 기형아도 있다. 아무리 좋은 거라 해도 거기에 생물한테 해를 끼치는 게 있다면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핵 폐기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사람은 왜 바로 얻을 것만 생각하는 걸까.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사람이 지구 동·식물을 멋대로 잡고 캐내서 사라진 것도 많다. 지구 동·식물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안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이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아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건지 말할 수 없다.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은 맞는 듯하다. 내가 겪은 건 재난이라기보다 재해일까.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원전 사고와는 많이 다르지만. 몇달 전에 원전 사고 난 뒤 후쿠시마를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곳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지진 해일로 집을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후쿠시마 사람은 원전 사고 때문에 아예 돌아갈 수 없다. 오염이 심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몇대에 이어서 산 사람도 있었는데. 작고 보잘것없다 해도 자기 집이 가장 편하다.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간 소방관은 모두 방사선에 오염되었다. 죽은 뒤 시신은 식구들한테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고방사능 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전 해체를 한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주지 않았다. 돈을 줄 테니 하라는 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식구를 위해 그곳에 간 사람도 많을 거다. 가장 많이 간 건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 사람들을 영웅이라 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누군가 그 사고가 넓게 퍼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체르노빌에 간 사람도 있겠지. 보호장비라도 제대로 갖췄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보다 보통 사람은 잘 모른다. 방사선이 사람이나 동·식물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높은 사람은 요오드화칼륨을 먹었다고 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죽는다. 이건 어느 사회든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동물을 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 동물은 사냥꾼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 후쿠시마 다큐멘터리에서 소를 죽이지 않고 그 뒤에도 키우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동물도 불쌍하다.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아픈 사람 많을 거다. 그건 대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는 더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조금 안 것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내가 해야 하는 건 그것이겠지. 후쿠시마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

 

모두 전쟁과 견준다. 하지만 전쟁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셨고, 내가 책에서 읽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는 무덤이 세 개 남아있다. 첫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무덤이고, 두번째 무덤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번째 무덤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249~250쪽)

 

 

 

 

 

 

 

잘 모르던 이야기

 

  전쟁은 여자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2015년 10월 08일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오랫동안 서로 자신이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싸웠겠지요. 세계전쟁은 두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모릅니다. 언젠가 어떤 일 때문에 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 거 봤는데 잊어버렸습니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만이 이 세계에 있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했군요. 그리고 아리안이 아닌 유대인을 엄청나게 죽였습니다. 독일하고 소련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던가요. 2차 세계전쟁 어디와 어디가 싸웠는지 확실하게 몰랐나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과 여러 나라가 연합하고 연합군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는데. 독일이 소련을 점령한 건 잘 몰랐습니다. 소련에서는 제2차 세계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한답니다. 그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요(러시아와 먼저 싸운 다음인지). 세계는 다 전쟁에 휩싸였겠습니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다니. 아프리카나 호주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 잠깐 했습니다. 잘 몰라서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했군요.

 

지난해(2015)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예요.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면 소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어떤 글이든 다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인류 복지에 이바지했다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저널리스트라는 거 몰랐을 때는 이 책 소설인가 했습니다. 먼저 본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소설 제목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랬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씁니다. 책날개에 ‘목소리 소설’이라는 말이 있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에서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난 뒤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를 만나고 그것을 쓰고, 다음에는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을 만난 것을 썼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거였다는 걸 지금 느껴서 말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 말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귀 기울려 들으려면 참을성이 있어야겠습니다. 말을 이끌어내기도 해야지요. 자료를 찾고 여러 사람 말을 듣고 소설 쓰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겠네요. 처음 만났을 때 듣고, 그 뒤에 몇번 더 들으면 그 감정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앞에서 독일이 소련에 쳐들어간 거 몰랐다고 했잖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모두 러시아 여성입니다. 그것도 전쟁에 나간.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과 아이가 가장 힘들잖아요. 아이와 집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러시아 여성 백만명 이상이 전쟁 한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전쟁이 배경인 영화 아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거기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은 거의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간호사일 때가 많았습니다. 다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전쟁을 말하는 건 남자 목소리였다는 말 맞네요. 소련이라 하고 러시아 여성이라 하다니. 어쨌든 소련은 공산주의였지요. 사람들을 세뇌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이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70년대에 ‘나라를 위해서’ 라는 말 많았군요. 한국전쟁 때도 다르지 않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어린 여자아이들도 전선에 가려 하고 갔습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그런 사람은 커서 돌아오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 여성도 그 나이에 끌려갔군요. 전쟁에 나간 러시아 여성도 안됐고,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여성도 안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억지로 끌려간 사람뿐 아니라 속고 간 사람도 있지요.

 

전쟁 한번 겪은 적 없습니다(‘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네요). 총을 쏘고 싸우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저런 곳에 가는 거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총알에 맞을 수 있고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전쟁을 틈타 사람을 죽이고 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이런 생각을 하다니). 어린 여자아이들은 전쟁이 어떤 건지 잘 몰랐기 때문에 전선에 가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여자가 어떤지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예쁜 거 좋아하지만 예쁘게 꾸미는 건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걸 아예 못하는 형편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전쟁터에서는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옷은 여자한테 맞는 게 아니고 남자옷을 입었습니다(속옷도). 예쁜 옷이 있는 독일 어느 곳에서는 그 옷을 입고 잠들고, 모자 가게에서는 모자를 쓰고 잤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도 있었군요.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니 아이가 못 알아보기도 하고, 어떤 어머니는 자기 딸을 못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도 두 가지 삶을 살았다고 하더군요. 남자와 여자.

 

이 책은 1983년에 썼다고 합니다. 두해 동안 책으로 내지 못하고 1985년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더 나중에 만났네요. 40년이 지난 뒤에도 전쟁을 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나라에서는 쉽게 말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전쟁터에서 남자는 여자를 돕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지만, 혼자 쓸쓸하게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는데, 나중에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났습니다. 전쟁에 나가 힘들었는데 돌아와서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어디든 비슷할 수가 있을까요. 남성만 영웅으로 보다니. 스탈린은 포로로 잡힌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면 반역자로 보고 수용소에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평화로운 세상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겠네요. 다른 나라 여성 이야기라 해도 우리나라 생각 안 할 수 없네요. 우리나라에 일본군 위안부가 알려진 것도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였잖아요. 여자와 남자 몸은 확실하게 다르죠. 여자는 이런 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선에 가고 하룻밤 만에 머리가 센 사람도 많더군요.

 

저도 같은 여자여서 여자 쪽을 더 생각했네요. 남자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여자보다 철이 없다 그 정도만 압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걸 알고 알려고 해야겠네요.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사람이 서로를 알려고 하면 전쟁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요. 이제는 나라보다 세계를 생각해야지요.

 

 

 

희선

 

 

 

 

☆―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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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 2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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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79

오다 에이치로

集英社  2015년 10월 03일

 

 

 

밀린 <원피스>를 보고 드레스로자 편을 차례차례 보았는데 마지막을 남겨두고 쉬었다. 마음은 참 이상하다. 나아가는 힘을 받아 앞으로 가고 싶으면서도, 이만큼 했으니 조금 쉬자 하니 말이다. 무엇인가 끝을 보기 위해 밀고 나가는 힘이 나한테 모자란 것인가. 내가 79권 바로 못 본 건 78권 봤을 때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건 핑계구나. 쉬었다 봐서 그런지 여러 권 이어서 볼 때 느낀 그 마음이 조금 줄었다. 사람 마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오래 끌고 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뜨거움이든 차가움이든 줄어들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일상으로 생각하면 괜찮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싫어하는 마음도 어느 순간 커지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일정한 크기일지도 모르겠다. “평상심.” 전에 <원피스> 보고 한두 달 지나니 그걸 봤을 때 느낀 마음이 줄어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다음 권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 것만 이야기하는 게 나을지 지금까지 이야기를 조금 하는 게 나을지.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왕과 드레스로자 사람들을 괴롭게 한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려는 싸움이 일어나려 한 날, 그곳에 해적동맹을 맺은 루피와 로가 나타나고 싸움이 일어난다. 로는 어렸을 때 자기 목숨을 구해준 코라손의 뜻(도플라밍고가 나쁜 짓 못하게 하려는)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루피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로와 동맹을 맺었는데, 드레스로자에서 예전 왕 손녀 레베카를 만나고 도와주기로 한다. 저마다 이야기는 달라도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려는 마음은 같았다. 도플라밍고는 드레스로자 사람을 장난감으로 만들고 무기를 다른 나라에 판 일이 알려지자, 드레스로자에서 아무도 살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새장으로 모두를 가두었다. 루피와 로와 동료, 퀴로스와 톤타타 족과 콜로세움에서 싸운 사람들은 돈키호테 패밀리 간부를 하나씩 쓰러뜨리고 이제 도플라밍고만 남았다. 그때부터 새장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중심으로 모였다. 그곳에 도플라밍고가 루피한테 맞고 떨어졌다. 새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라 안 건물은 모두 부서지고 사람들은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다. 죽을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다시 쓰러뜨리려 했을 때 힘이 빠졌다. 그때 콜로세움에서 싸움 중계를 하던 사람이 나타나서 루피한테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하니, 루피는 십분만 시간을 벌어달라고 했다. 십분 지나면 힘이 돌아온다고. 이것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세고 재주 좋아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끝이 있다는. 조로와 프랑키와 톤타타 족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루피와 싸운 사람에 해군 대장 후지토라까지 새장이 줄어드는 걸 막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도플라밍고가 건 현상금을 노린 다른 사람도 루피한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도플라밍고를 막았다. 비올라와 레베카도. 만화여서 그런 모습이 짧게 지나갔는데 만화영화로는 길게 나올 것 같다. 사보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하루에 일어나는 일인데 오래도 이어지는구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싸움은 루피가 이겼다. 아슬아슬하게 루피 힘이 돌아오고 레베카를 구했다. 도플라밍고도 지금까지 싸워서 힘이 빠진 거였겠지.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자 새장은 조금씩 사라졌다. 한번에 사라진 건가. 그림은 위에서부터 사라지던데. 루피와 동료는 예전에 알라바스타를 칠무해 크로커다일한테서 구한 적이 있다. 그때 신문에는 그곳에 있던 해군(스모커)이 크로커다일을 쓰러뜨린 걸로 나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후지토라는 세계정부가 도플라밍고를 칠무해로 만들고 내버려둔 걸 리쿠 왕한테 사과했다. 그 모습이 방송으로 나갔다. 이런 대장도 있다니. 후지토라 제대로 생각하는 해군이다. 책 맨 앞에 아카이누 얼굴이 있어서 아카이누가 찾아오는 건가 했는데, 후지토라와 전화로 싸운 거였다. 해군본부에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고. 아카이누는 후지토라한테 루피와 로를 잡으라고 했는데 그날은 잡지 않기로 했다. 드레스로자에서 일어난 일은 여기저기로 퍼졌다. 이곳에는 인터넷도 없는데 그렇게 빨리 퍼지다니. 그 소식을 스모커와 타시기도 보았다. 스모커는 자신이 대장이었다 해도 후지토라처럼 할 수 없었을 거다 말했다.

 

루피와 로는 아직 같이 나오겠지. 사황에서 한사람인 카이도와 싸워야 하니까. 다른 해적 키드는 샹크스와 싸우려는가보다. 그때 루피는 어떻게 할까. 그건 언제쯤 나올지. 루피와 사보가 오래 헤어졌다 이제 만났는데, 사보는 혁명군 동료와 그곳을 떠나려 했다. 루피는 지쳐서 자는데. 사보는 내가 생각한 대로 예전에 루피 아빠 드래곤이 구했다. 그때 사보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잊었다. 자기 이름도 모르고 루피와 에이스도 잊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만 기억했다. 사보가 기억을 되찾은 건 에이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실린 신문을 봤을 때다. 사보는 루피를 만났을 때 루피가 죽지 않고 살아서 고맙다고 했다. 그때 루피도 죽을 뻔했다. 사보는 예전에 에이스가 한 말과 같은 말을 조로 로빈 프랑키한테 했다. 루피 때문에 여러 일이 있겠지만 잘 부탁한다고.

 

오랜만에 서니호 나왔는데 뭔가 많이 뛰어넘은 듯한 느낌이다. 빅맘(도 사황) 배에 간다고 했는데, 그건 안 나오고 어딘가 섬에 내렸다. 거기는 다음에 자세하게 나오겠지. 백수의 왕 카이도가 드디어 나왔다. 루피 잘 싸울 수 있을까. 카이도 엄청나게 크고 힘도 세 보이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내가 먼저 걱정하다니. 루피는 일어날 일에 겁먹지 않고 닥치면 그때 온힘을 다한다. 이거 지금 깨달았다. 모두 루피와 조로 상디처럼 힘든 일에 겁먹지 않는 건 아니다. 겁 먹어도 할 때는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보통 사람도 다 그렇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하기. 드레스로자에서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드레스로자 백성도 모두 힘을 합쳤다. 그게 좋게 보였다. 다음 이야기 기다리고 즐겁게 보도록 해야겠다.

 

 

 

*더하는 말

 

만셸리 이야기 못했다. 톤타타 족 공주 만셸리는 아픈 것을 낮게 하는 힘이 있다. 만셸리 눈물 때문에 사람들 힘이 잠시 돌아와서 루피한테 도움을 주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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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3-04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피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해요!^^
저도 빨리 보고싶어요.도피가 어떻게 되는지 눈으로 봐얄것 같아서..^^
잘 읽고 가요!^^

희선 2016-03-06 00:18   좋아요 1 | URL
오래됐지만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한국어로도 벌써 80권 나왔더군요 그거 보고 벌써 나오다니 했습니다


희선

[그장소] 2016-03-06 00:19   좋아요 0 | URL
책으로 소장하고픈 ㅡ만화중 하나!^^ㅎㅎ욕심이 끝도 없어요..큰일예요!
보셨다니 부러울 뿐이고...^^
 

 

 

 

에도시대의 어둠

 

  범죄자의 탄생   無宿人別帳 (1958)

  마쓰모토 세이초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15년 11월 16일

 

 

 

 

 

 

 

 

 

 

 

 

 

조금 다르지만 이 책 미야베 미유키가 쓴 에도시대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책 내용이 아닌 만듦새가. 이 책이 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소설을 많이 낸 북스피어에서 나와서겠다.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을 마쓰모토 세이초 첫째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국 사람인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을 보고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떠올렸다. 마쓰모토 세이초보다 미야베 미유키를 먼저 알고 책도 더 많이 보았다. 이 책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책소개 자세하게 안 봤다. 책을 보고 이게 에도시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에도시대 소설 썼구나 했다. 역사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지금까지 많이 못 보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일본을 많이 썼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그건 요코미조 세이시인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소설 쓰기 시작한 게 그때가 조금 지난 뒤부턴가보다. 1951년 마흔하나에 역사소설 《사이고사쓰》를 쓰고 소설가가 되었다. 맨 처음 쓴 게 역사소설이라니. 이 말 처음 보는 거 아닐 텐데 잊어버렸나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꽤 오랫동안 글을 썼다. 늦게 시작해서 오래 쓴 건가 싶기도 하다.

 

에도시대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가 쓴 걸 많이 보고, 교고쿠 나쓰히코가 쓴 것하고 이름 잊어버린 사람이 쓴 《한시치 체포록》을 보았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리는 에도시대는 따듯하다. 욕심을 내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사는 사람 이야기가 많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조금 다르다. 아니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민을 이야기하고, 마쓰모토 세이초는 서민보다 더 밑에 사람을 이야기한다. 호적이 없는 무숙자다. 미야베 미유키는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을 보았기에 따듯한 이야기를 썼겠다. 마쓰모토 세이초 이야기에는 환상이 없다. 현실뿐이다. 에도시대에는 자신이 살던 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다. 떠난다 해도 사찰에서 증명서를 받아야 무숙자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할 때는 언제일까. 잘못을 저지르거나 농사가 잘 안 돼서 그곳을 떠나야 했을지도. 그런 사람은 에도로 갔다. 에도에 간다고 해도 일자리가 없을지도 모를 텐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로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한번 형무소에 갔다 온 사람은 다시 시작하기 어렵기도 하다.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뉘우침 없는 사람도 있다. 에도시대 무숙자하고는 좀 다를까. 무숙자는 살 곳이나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기 어려웠다. 나라에서 무숙자만을 잡아다 금광에 보내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섬으로 보냈다.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풀려날 수 있지만, 금광에는 한번 가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섬으로 가는 사람은 먹을거리도 자신이 구해야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곳에서는 일을 하면 밥을 주고 돈을 모아주었다. 돈 정말 모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유가 없어서 그곳에서 달아나려는 사람도 있었다. 달아났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감방에는 아주 많은 사람을 가두었다. 감방 안에서도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힘있는 사람은 사람이 많아서 좁아진 감방을 넓힌다면서 자기 밑에 사람한테 죽일 사람을 고르게 했다. 오캇피키가 무숙자와 사귀는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 없는 죄를 만들어서 섬으로 유배 보내기도 했다. 그 무숙자가 섬에서 돌아오자, 그때는 무숙자가 일하는 곳마다 찾아다녀서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도 여자는 오캇피키한테 오지 않았다. 사람 마음은 억지로 얻을 수 없는데.

 

처지가 비슷하면 서로 사정을 잘 아니 돕고 살아야 할 텐데 여기 나오는 무숙자는 그러지 않았다. 섬에서 달아나기로 하고 사람을 모으고는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하고만 달아나려고 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무숙자한테 그 죄를 뒤집어 씌웠다. 억울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 잘못을 말하고 감방에서 나오다니. 감옥 서기가 잘못해서 섬에 오랫동안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촌장은 나라에서 하는 일에 잘못이 있을 수 없다 말했다. 나라든 높은 사람이든 다 잘못할 수 있다. 에도시대에는 무숙자를 차별했다.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누군가 저 사람이 범인이다 하면 감방에 가두고 섬으로 유배 보냈다. 다시 돌아와서 제대로 살려고 해도 무숙자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 사람들은 다시 범죄에 손을 물들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나라가 죄인을 만들었다 말한다.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지금도 일어난다. 한번 잘못한 사람은 다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처지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내리려는 것도. 이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비슷한 처지에서는 서로 돕고 사는 게 훨씬 좋을 텐데.

 

 

 

 

☆―

 

“긴스케, 너는 무숙자야. 무숙자 놈들이 하는 짓은 가택 침입 강도질, 날치기, 불지르기, 아녀자 희롱 따위로 정해져 있지. 확실한 증인이 있는데도 버티는 거냐.”  (178쪽)

 

 

 

 

 

 

 

처음인데 마지막

 

  시노부 선생님 안녕

  しのぶセンセにサヨナラ 浪花少年探偵団・独立篇 (1996)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5년 08월 07일

 

 

 

 

 

 

 

 

 

 

 

 

책을 다 읽고 생각한 건 나도 잘 쓰고 싶다예요. 소설이 끝나고 작가가 하는 말이 있고 다음에는 해설입니다. 해설 보고 그런 생각했습니다. 히가시도 게이고가 예전에는 짧게 글 썼네요. 지금은 소설만 쓰고 다른 건 안 쓰잖아요. 이 책 삼분의 이쯤 보고 난 다음날 새벽 인터넷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 한번 찾아봤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 찾으려고 한 건 아니고 이 책 제목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였어요. ‘시노부 선생님, 안녕!’ 다음 말이 ‘나니와 소년 탐정단 독립편’이 맞는지(해설 보니 쓰여 있더군요. 해설은 나중에 봤지요). 소설가여도 가끔 산문 쓰기도 하잖아요. 아니 쓰는 사람도 있고 안 쓰는 사람도 있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것 같은 산문이 있더군요(다른 것도 있을지도). 《아마 마지막 인사 たぶん最後の御挨拶》예요. 2007년에 나왔더군요.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 조금 들었는데, 이런 마음이 든 건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많이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데 2015년에 두권 다 나왔네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인데 중심은 초등학교 선생님인 다케우치 시노부군요. 《오사카(나니와) 소년 탐정단》을 먼저 만나고 이 책을 만났다면 더 나았을 것 같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요.

 

다케우치 시노부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지금은 가르치는 일 쉬고 대학에 다니더군요. 첫째권 마지막에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대학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을 것 같네요. 학교 아니면 교육청 같은 데서 보내주는 거였을지도. 이 책이 나온 건 1990년대예요(첫번째는 1980년대 말일까 했는데 1991년에 나왔네요). 오래전에 나왔다고 말하고 싶어서. 오래전에 나왔지만 읽는 데 문제없습니다. 맨 처음 이야기에서는 지금과 다른 시대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겠네요. 회사에서 하는 일을 컴퓨터로 바꾸기 시작할 때 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컴퓨터 배우기 어려운 사람 많았을 것 같네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생각한 사람 많았겠지요. 가벼운 듯 보여도 사회문제도 건드렸네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도 했군요(기계를 이용해 사람을 죽인 거였지만). 시노부는 여성이 사회에 나간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 결혼과 일을 생각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시노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니. 시노부 마음은 경찰인 신도 쪽에 기운 것 같아요. 바로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좋은 대답을 하겠습니다.

 

나니와 소년 탐정단 아이는 몇이었을까 싶군요. 이번에 나온 건 뎃페이와 이쿠오예요. 둘이 친한가 봅니다. 둘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시노부를 만납니다. 시노부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선생님이라고 합니다(한번 선생님은 언제까지고 선생님이군요). 이쿠오 엄마는 시노부와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운전 연습하다 사건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범인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 됐습니다. 욕심을 내면 안 되겠지요. 그걸 알았다면 처음부터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겠습니다.

 

이 책 배경은 오사카예요. 한번은 시노부가 뎃페이, 이쿠오와 함께 도쿄에 갑니다. 오사카에서 초등학교 다니다 도쿄에 간 아이도 만나기 위해. 시노부는 유타가 쓴 편지를 보고 조금 걱정했는데. 셋이 도쿄에 간 날 유타 동생이 유괴 당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유타 동생이 나쁜 사람한테 끌려간 건 아니고 유타와 유타 누나 그리고 뎃페이와 이쿠오가 꾸민 일이었습니다. 오사카와 도쿄 둘 다 도시겠지만 도쿄가 더 살기 어렵겠지요. 유타 부모는 도쿄로 이사하고는 사이가 나빠지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이는 그런 부모 모습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요. 위조 지폐 소동이 일어나고 모르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보면 알기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누군가와 관계가 있기도 하더군요(이건 제가 책을 봤기에 말할 수 있는 거네요). 사람은 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는군요. 그게 늘 좋지만은 않다는 게 아쉽네요. 좋기만 하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마지막에서 시노부는 다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하는데 잘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시노부 같은 선생님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지만 친구 같기도 하네요. 중학생이 되고도 뎃페이와 이쿠오는 시노부를 만났잖아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 독립이면 이제 시노부 만나지 않을까요. 아이는 자라니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스스로 해결할지도. 모든 사람이 홀로서기를 잘 하는 건 아니군요. 시노부가 가진 좋은 점 생각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아이 마음을 잘 알려고 애쓰는 거였을지도. 마지막에 그런 모습 잘 보입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이라 하지 않고 나니와 소년 탐정단이라고 했네요. 그걸 먼저 봤다면 나니와라 하지 않았을지도. 나니와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본래 나니와 소년 탐정단이고 오사카 옛이름이 나니와예요.)

 

 

 

희선

 

 

 

 

☆―

 

“사무직만 그런 건 아니예요. 공장 사람들도 기계에 쫓기느라 즐거움이라고는 거의 못 느끼는 얼굴이었어요. 그렇다는 것도 모르면서 뭐가 합리화인가요? 이러다간 정말로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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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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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7 0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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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라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만난 게 확실하게 언제였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애를 나만은 기억한다. 내가 친구를 잊지 못하는 건 부럽기 때문일까.

 

그냥 친구라고 했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날 난 어떤 책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여행기였다. 그 책에는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작가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도서관 한구석에서 찾아냈다. 여행기 잘 안 보던 내가 그런 책을 왜 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책 어때, 재미있어?” 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친구와 나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한 적 없었는데, 마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것처럼 말을 걸었다. “여행긴데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어. 상상으로 쓴 것 같기도 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등학생 때였던가보다. 친구는 내 뒷자리에서 내 손에 들린 책을 힐끔 보더니, “그 책 내가 쓴 건데, 가짜 같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정말 니가 쓴 거야?” 하고 되물었다. 친구는 겉으로는 내 나이와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깊었다. 나와는 아주 다른 일을 겪은 눈이었다.

 

소설, 아니 내가 보던 책은 소설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판타지 소설 같은. 가짜처럼 보이면서도 어쩐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 책을 쓴 사람도 우연히 그곳으로 갔다. 책 읽기를 좋아한 그 사람은 거의 도서관에서 지냈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해도 재미가 없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그 사람한테는 언제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 친구였다. 그날도 학교에 가서 교실에는 가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책 한권을 골라서 보았다. 그때 본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으로 작가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책을 보다 잠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잠속에 빠져들면서도 잠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은 깜짝 놀란 듯이 깨어났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천천히 그곳이 도서관이 아닌 걸 깨달았다. 그곳은 숲속이었다.

 

“그때 내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행이었어. 책을 읽고 사는 거 괜찮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많았거든.” 하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간 곳은 어디였을까. 가끔 이 세계와 다른 세계가 비틀려서 틈이 생긴다는 말을 어떤 소설에서 본 것 같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정말 그 일을 경험한 걸까. 도서관에 그런 틈이 생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여행 하는 이야기를 보면 지난날로 간 사람은 자신이 살던 시대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 친구는 그곳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이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고 사람들은 모두 따듯했다. 어쩌면 친구가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하지 못한 걸 그곳에서는 했다. 친구도 그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게 지냈다. 한두 해는 갑자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누군가 한 사람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곳에 간 지 세해째 친구는 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친구는 그곳에서 그 사람과 평생을 살리라 생각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 걸까, 얼마 뒤 친구는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책》을 읽다 잠든 도서관으로. 친구가 도서관에 왔을 때 그 책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을 찾았지만 그 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책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친구는 다른 세상에 가고, 그곳에서 만나고 겪은 일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고 책으로 묶었다.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이라 했다. 친구는 그 책이 자신을 다시 다른 세상에 데려다 줄 《여행자의 책》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친구가 썼다고 한 여행기를 본 다음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내 뒷자리 아이 학교에 안 오네.” 하고 짝한테 말하니, “무슨 말이야, 본래 저기 빈 자리잖아.” 했다.

 

여행기 마지막에는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해줄 거다.”는 말이 쓰여 있다.

 

 

 

 

*더하는 말

 

전에 한번 책을 보고 이야기를 써 보기는 했지만(짧은 이야기도 가끔, 그게 이야기야 할지 몰라도), 그때는 책 이야기도 썼다. 그 뒤 언젠가 책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쓴 건 아니고 《여행자의 책》(폴 서루)을 보다보니 쓰고 싶은 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나’가 다른 곳으로 이어진 틈을 우연히 알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곳에 가서 떠나는 것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좀 달라졌다. 생각한 대로 쓸 때도 있고, 생각한 것과 달라질 때도 있다. 바뀔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얼마나 써 봤다고 이런 말을. 앞으로 이야기가 가끔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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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부 남기고 가요 ㅡ^^

희선 2016-02-21 02:45   좋아요 1 | URL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그장소] 2016-02-21 11:43   좋아요 0 | URL
희선 님도요!^^

2016-0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