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연히 이 시집 제목을 보고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지요. 시인 이름은 박준인데 김준으로 잘못 안 적도 있습니다. 비슷한 이름 하나 더 있네요. 박연준. 외자가 아니고 남자 이름이지만 여자더군요. 시집 제목은 《당신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예요. 이 제목에서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어다가 먹은 건 밥이다 멋대로 생각했지요. 좋아하는 사람 이름만 생각해도 밥 안 먹어도 배 부를 듯하여. 참 단순한 생각이지요. 이 안에는 제목과 같은 시도 있습니다. 시에서 이 말은 ‘아픈 내가’로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 말을 뺀 말이었다니. 제목에서 말하는 당신 이름으로 지은 건 약이겠네요. 그 약 먹으면 아픈 거 잘 나을까요. 당신 이름은 밥도 되고 약도 되는군요. 그런 당신 이름 있습니까. 그런 이름 가진 사람 부럽네요. 눈에 안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거여서 그런 게 뭐가 좋을까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이름은 그래도 그건 사람이 가진 것이니 이름을 생각하면 바로 그 사람이 떠오르겠지요.

 

제가 시를 만난 건 책을 보기 시작한 때와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예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국어와 문학 시간에 시를 조금 보았습니다. 그때는 일제강점기 때 시인 시를 많이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도 책에 나온 것 같기도 하네요. 현대 시 배웠을 텐데 거의 생각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시가 아닌 시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고 산 시집은 어떤 것일지. 그런 건 기억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생각나지 않네요. 책방에 가서 시집이 많이 꽂힌 곳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이 보이면 가끔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 게 좀 오래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오래 하지 못했네요. 책과 멀어진 때가 있었던 것도 조금 아쉽습니다. 아쉬운 건 그것만이 아니군요.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는 일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무언갈 하지 않아서 나중에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떻게 하죠.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 하려고 하는데 어떤 건 왜 했을까 할 때도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바라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요.

 

몇해 전(2013)에 오랜만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 하나 샀습니다. 그건 2012년에 나온 거군요. 이것도 2012년에 처음 나온 건데 책 만듦새가 조금 다릅니다. 새롭게 했다가 다시 바꿨나 봅니다. 책 제본형식 잘 모르는데 두 권이 좀 달라요. 오랜만에 산 시집은 꿰맨 거지만 이건 붙였어요. 이제는 그렇게 만든 거 살 수 없겠습니다. 어쩐지 아쉽네요. 그때 몇권 더 살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게 별로다 여겼는데.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은 예전에도 조금 샀어요. 예전보다 커져서 다른 데서 나온 시집도 달라졌을까 했는데, 문학과지성사와 창비랑 민음사는 그대로더군요. 시집 나오는 곳 더 있을 텐데. 시를 다시 봐야지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책을 보고 그것을 꾸준히 쓴 다음인 것 같네요. 그전에는 시집 봐도 아무것도 못 썼는데, 시집 봐야지 생각했을 때도 그것을 보고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못 봤습니다(이런 말 또 했네요). 시집에 담긴 시 이야기 못하면 다른 거라도 하죠. 지금까지 재미없는 이야기 늘어놓았네요.

 

 

 

지금은 우리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40쪽)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여름에 부르는 이름>에서, 58쪽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마음 한철>에서, 69쪽

 

 

 

한 이삼 일

기대어 있기에는

슬픈 일들이 제일이었다

 

<2박 3일>에서, 96쪽

 

 

 

앞에서 시를 언제부터 보았다고 말하고 박준이 쓴 시가 어떻다 말하려고 했는데, 다른 말만 했습니다. 전에 오랜만에 산 시집은 한번 읽어봤습니다. 그때는 써야 해 하는 마음으로 보기보다 그냥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볼까 합니다. 박준 시 다 안다 말하기 어렵지만 저한테 맞는 편입니다. 옛 정서가 느껴진다고 할까. 제가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그것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를 슬픔이나 아픔. 기형도 시가 조금 생각나기도 합니다. 기형도 시보다는 덜 어둡습니다.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보다 박준과 같은 시인 허수경이 쓴 글이 더 좋네요. 평론가가 쓴 해설 잘 몰라서 그렇군요. 그런 것도 자주 보면 조금 알 수 있을까요. 박준이 말하는 너, 미인, 당신은 뭘까 싶습니다. 같은 사람일지. 미인은 좀 별나기도 하죠.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82~83쪽)

 

 

 

시란 무엇일까요. 시를 봐도 시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네요. 박준이 쓴 시를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썼다고 느꼈습니다. 이건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래야겠지요. 시, 잘 보고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을 잘 말할 수 없다 해도. 시가 제게 찾아오는 일도 거의 없겠지만, 스치는 생각 붙잡고 싶기도 합니다. 이것도 있네요. 스치는 생각 붙잡기. 빨리 붙잡지 못하면 놓칩니다. 시를 밥과 약으로 생각해도 괜찮겠습니다, 당신 이름 대신.

 

 

 

아픈 난 시를 지어다가 며칠 먹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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