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사라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만난 게 확실하게 언제였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애를 나만은 기억한다. 내가 친구를 잊지 못하는 건 부럽기 때문일까.

 

그냥 친구라고 했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날 난 어떤 책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여행기였다. 그 책에는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작가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도서관 한구석에서 찾아냈다. 여행기 잘 안 보던 내가 그런 책을 왜 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책 어때, 재미있어?” 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친구와 나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한 적 없었는데, 마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것처럼 말을 걸었다. “여행긴데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어. 상상으로 쓴 것 같기도 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등학생 때였던가보다. 친구는 내 뒷자리에서 내 손에 들린 책을 힐끔 보더니, “그 책 내가 쓴 건데, 가짜 같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정말 니가 쓴 거야?” 하고 되물었다. 친구는 겉으로는 내 나이와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깊었다. 나와는 아주 다른 일을 겪은 눈이었다.

 

소설, 아니 내가 보던 책은 소설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판타지 소설 같은. 가짜처럼 보이면서도 어쩐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 책을 쓴 사람도 우연히 그곳으로 갔다. 책 읽기를 좋아한 그 사람은 거의 도서관에서 지냈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해도 재미가 없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그 사람한테는 언제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 친구였다. 그날도 학교에 가서 교실에는 가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책 한권을 골라서 보았다. 그때 본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으로 작가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책을 보다 잠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잠속에 빠져들면서도 잠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은 깜짝 놀란 듯이 깨어났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천천히 그곳이 도서관이 아닌 걸 깨달았다. 그곳은 숲속이었다.

 

“그때 내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행이었어. 책을 읽고 사는 거 괜찮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많았거든.” 하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간 곳은 어디였을까. 가끔 이 세계와 다른 세계가 비틀려서 틈이 생긴다는 말을 어떤 소설에서 본 것 같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정말 그 일을 경험한 걸까. 도서관에 그런 틈이 생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여행 하는 이야기를 보면 지난날로 간 사람은 자신이 살던 시대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 친구는 그곳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이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고 사람들은 모두 따듯했다. 어쩌면 친구가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하지 못한 걸 그곳에서는 했다. 친구도 그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게 지냈다. 한두 해는 갑자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누군가 한 사람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곳에 간 지 세해째 친구는 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친구는 그곳에서 그 사람과 평생을 살리라 생각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 걸까, 얼마 뒤 친구는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책》을 읽다 잠든 도서관으로. 친구가 도서관에 왔을 때 그 책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을 찾았지만 그 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책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친구는 다른 세상에 가고, 그곳에서 만나고 겪은 일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고 책으로 묶었다.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이라 했다. 친구는 그 책이 자신을 다시 다른 세상에 데려다 줄 《여행자의 책》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친구가 썼다고 한 여행기를 본 다음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내 뒷자리 아이 학교에 안 오네.” 하고 짝한테 말하니, “무슨 말이야, 본래 저기 빈 자리잖아.” 했다.

 

여행기 마지막에는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해줄 거다.”는 말이 쓰여 있다.

 

 

 

 

*더하는 말

 

전에 한번 책을 보고 이야기를 써 보기는 했지만(짧은 이야기도 가끔, 그게 이야기야 할지 몰라도), 그때는 책 이야기도 썼다. 그 뒤 언젠가 책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쓴 건 아니고 《여행자의 책》(폴 서루)을 보다보니 쓰고 싶은 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나’가 다른 곳으로 이어진 틈을 우연히 알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곳에 가서 떠나는 것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좀 달라졌다. 생각한 대로 쓸 때도 있고, 생각한 것과 달라질 때도 있다. 바뀔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얼마나 써 봤다고 이런 말을. 앞으로 이야기가 가끔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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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부 남기고 가요 ㅡ^^

희선 2016-02-21 02:45   좋아요 1 | URL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그장소] 2016-02-21 11:43   좋아요 0 | URL
희선 님도요!^^

2016-0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