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재난

 

  체르노빌의 목소리   Voices from Chernobyl

  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 (2008)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김은혜 옮김

  새잎  2011년 06월 07일

 

 

 

 

 

 

 

 

 

 

 

 

해마다 여러 분야에서 인류 복지에 이바지한 사람한테 노벨상을 준다. 누가 만든 건가 했는데 노벨이 죽을 때 남긴 말이었다(예전에 노벨이 나오는 책 본 것 같은데 거의 잊어버렸다). 노벨이 여러 가지 일을 했을 텐데 생각나는 건 화약뿐이다. 화약이 인류한테 좋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한 사람과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쓴 거다. 체르노빌을 내가 언제 알았는지 모르겠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알았을지도. 그때 체르노빌 이야기도 나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전에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라는 책 제목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알고 왜 그런 걸 썼는지 몰랐던 것 같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1986년 4월 26일에 일어났다. 그때 바로 몰랐다 해도 나이를 좀 먹은 다음에는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핵폭탄은 알았다. 원자력 발전소 핵과 전쟁 때 쓰는 핵이 다를까. 나도 그게 같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같은 거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다른 곳 사람이 체르노빌 사람을 돌연변이로 보았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벨라루스 국경과 가까웠다. 벨라루스에는 원전이 없었는데,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그곳 사람도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 사람)가 되었다. 지금은 거의 서른 나라에 원자력 발전소 443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거 몰랐는데 엄청난 숫자다. 이 책을 봤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곳에서 가까운 나라까지 영향을 받는다. 가까운 나라만 그런 건 아니겠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겠다. 사람이 방사선에 오래 쏘이면 암에 걸리고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 내가 아는 건 이만큼이다. 다른 일도 일어날 텐데. 기형아도 있다. 아무리 좋은 거라 해도 거기에 생물한테 해를 끼치는 게 있다면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핵 폐기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사람은 왜 바로 얻을 것만 생각하는 걸까.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는 것도 있는데. 사람이 지구 동·식물을 멋대로 잡고 캐내서 사라진 것도 많다. 지구 동·식물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안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이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아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건지 말할 수 없다.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은 맞는 듯하다. 내가 겪은 건 재난이라기보다 재해일까.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원전 사고와는 많이 다르지만. 몇달 전에 원전 사고 난 뒤 후쿠시마를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곳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때 지진 해일로 집을 잃은 사람도 많았지만, 후쿠시마 사람은 원전 사고 때문에 아예 돌아갈 수 없다. 오염이 심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몇대에 이어서 산 사람도 있었는데. 작고 보잘것없다 해도 자기 집이 가장 편하다.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간 소방관은 모두 방사선에 오염되었다. 죽은 뒤 시신은 식구들한테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고방사능 입자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전 해체를 한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주지 않았다. 돈을 줄 테니 하라는 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식구를 위해 그곳에 간 사람도 많을 거다. 가장 많이 간 건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 사람들을 영웅이라 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누군가 그 사고가 넓게 퍼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체르노빌에 간 사람도 있겠지. 보호장비라도 제대로 갖췄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보다 보통 사람은 잘 모른다. 방사선이 사람이나 동·식물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높은 사람은 요오드화칼륨을 먹었다고 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죽는다. 이건 어느 사회든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동물을 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 동물은 사냥꾼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 후쿠시마 다큐멘터리에서 소를 죽이지 않고 그 뒤에도 키우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동물도 불쌍하다.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아픈 사람 많을 거다. 그건 대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는 더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조금 안 것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내가 해야 하는 건 그것이겠지. 후쿠시마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

 

모두 전쟁과 견준다. 하지만 전쟁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셨고, 내가 책에서 읽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는 무덤이 세 개 남아있다. 첫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무덤이고, 두번째 무덤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번째 무덤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249~250쪽)

 

 

 

 

 

 

 

잘 모르던 이야기

 

  전쟁은 여자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2015년 10월 08일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오랫동안 서로 자신이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싸웠겠지요. 세계전쟁은 두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모릅니다. 언젠가 어떤 일 때문에 2차 세계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 거 봤는데 잊어버렸습니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만이 이 세계에 있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했군요. 그리고 아리안이 아닌 유대인을 엄청나게 죽였습니다. 독일하고 소련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던가요. 2차 세계전쟁 어디와 어디가 싸웠는지 확실하게 몰랐나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과 여러 나라가 연합하고 연합군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는데. 독일이 소련을 점령한 건 잘 몰랐습니다. 소련에서는 제2차 세계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한답니다. 그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요(러시아와 먼저 싸운 다음인지). 세계는 다 전쟁에 휩싸였겠습니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다니. 아프리카나 호주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 잠깐 했습니다. 잘 몰라서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했군요.

 

지난해(2015)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예요.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면 소설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어떤 글이든 다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인류 복지에 이바지했다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저널리스트라는 거 몰랐을 때는 이 책 소설인가 했습니다. 먼저 본 《체르노빌의 목소리》도. 소설 제목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랬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씁니다. 책날개에 ‘목소리 소설’이라는 말이 있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에서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난 뒤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를 만나고 그것을 쓰고, 다음에는 옴진리교 신자였던 사람을 만난 것을 썼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거였다는 걸 지금 느껴서 말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 말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귀 기울려 들으려면 참을성이 있어야겠습니다. 말을 이끌어내기도 해야지요. 자료를 찾고 여러 사람 말을 듣고 소설 쓰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겠네요. 처음 만났을 때 듣고, 그 뒤에 몇번 더 들으면 그 감정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앞에서 독일이 소련에 쳐들어간 거 몰랐다고 했잖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모두 러시아 여성입니다. 그것도 전쟁에 나간.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과 아이가 가장 힘들잖아요. 아이와 집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러시아 여성 백만명 이상이 전쟁 한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전쟁이 배경인 영화 아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거기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은 거의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간호사일 때가 많았습니다. 다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전쟁을 말하는 건 남자 목소리였다는 말 맞네요. 소련이라 하고 러시아 여성이라 하다니. 어쨌든 소련은 공산주의였지요. 사람들을 세뇌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이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70년대에 ‘나라를 위해서’ 라는 말 많았군요. 한국전쟁 때도 다르지 않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어린 여자아이들도 전선에 가려 하고 갔습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그런 사람은 커서 돌아오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 여성도 그 나이에 끌려갔군요. 전쟁에 나간 러시아 여성도 안됐고,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여성도 안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억지로 끌려간 사람뿐 아니라 속고 간 사람도 있지요.

 

전쟁 한번 겪은 적 없습니다(‘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재난이 전쟁과 같다는 말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네요). 총을 쏘고 싸우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저런 곳에 가는 거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총알에 맞을 수 있고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전쟁을 틈타 사람을 죽이고 다닌 사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이런 생각을 하다니). 어린 여자아이들은 전쟁이 어떤 건지 잘 몰랐기 때문에 전선에 가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여자가 어떤지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예쁜 거 좋아하지만 예쁘게 꾸미는 건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걸 아예 못하는 형편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전쟁터에서는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옷은 여자한테 맞는 게 아니고 남자옷을 입었습니다(속옷도). 예쁜 옷이 있는 독일 어느 곳에서는 그 옷을 입고 잠들고, 모자 가게에서는 모자를 쓰고 잤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도 있었군요.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니 아이가 못 알아보기도 하고, 어떤 어머니는 자기 딸을 못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도 두 가지 삶을 살았다고 하더군요. 남자와 여자.

 

이 책은 1983년에 썼다고 합니다. 두해 동안 책으로 내지 못하고 1985년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더 나중에 만났네요. 40년이 지난 뒤에도 전쟁을 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나라에서는 쉽게 말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전쟁터에서 남자는 여자를 돕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지만, 혼자 쓸쓸하게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는데, 나중에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났습니다. 전쟁에 나가 힘들었는데 돌아와서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어디든 비슷할 수가 있을까요. 남성만 영웅으로 보다니. 스탈린은 포로로 잡힌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면 반역자로 보고 수용소에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평화로운 세상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겠네요. 다른 나라 여성 이야기라 해도 우리나라 생각 안 할 수 없네요. 우리나라에 일본군 위안부가 알려진 것도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였잖아요. 여자와 남자 몸은 확실하게 다르죠. 여자는 이런 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선에 가고 하룻밤 만에 머리가 센 사람도 많더군요.

 

저도 같은 여자여서 여자 쪽을 더 생각했네요. 남자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여자보다 철이 없다 그 정도만 압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걸 알고 알려고 해야겠네요.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사람이 서로를 알려고 하면 전쟁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요. 이제는 나라보다 세계를 생각해야지요.

 

 

 

희선

 

 

 

 

☆―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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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 2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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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0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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