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라반, 누가 더 교활한가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자식이 늘고 재산이 불어나자 야곱은 고향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저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눈먼 아버지와 자신을 끔찍히 사랑하시던 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계신지 궁금했다.
또한 형 에서가 아직도 자기를 증오하며 죽이려고 하는지도 궁금했다.
형과는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형을 생각하면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는 야곱이 라반에게 청했다. (30:25-34)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라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듣고 보니 야곱의 제의가 자기에게 유리할 것 같아 라반은 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그날로 희끗희끗한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점이 있는 숫염소와 염소, 검은 양 새끼들을 모두 빼돌려 자신의 아들이 돌보게 했다.
또한 야곱을 사흘을 갈 만큼 먼 곳에 떼어 놓고 그곳에서 나머지 양들을 치게 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꺾어 희끗희끗한 줄무늬가 나도록 껍질을 벗겨 내었다.
그리고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 안에 그 껍질을 벗긴 가지들을 세워 놓고 양떼가 그것을 보면서 물을 먹도록 했다.
양들은 물을 먹으러 왔다가 거기서 교미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나뭇가지 앞에서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진 새끼들을 낳았다.
야곱은 이런 양 새끼들을 따로 놓고 먹였으며 또한 라반의 양떼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이나 검은 것은 따로 가려내었다.
야곱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양떼가 라반의 양떼와 섞이지 않게 한 것이다.
또한 야곱은 양떼 가운데서도 튼튼한 놈들이 교미할 때만 나뭇가지를 물구유 안에 세웠으며 허약한 양들이 교미할 때는 나뭇가지들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허약한 새끼들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새끼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
야곱은 이런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켰는데 양떼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그리고 낙타와 나귀도 많았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 재산을 다 빼냈다.
그 녀석이 우리 아버지의 것을 가로채 저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시기했다.
이에 야곱은 외삼촌이 자기에게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31:3)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은 라헬과 레아에게 사람을 보내서 양떼가 있는 들로 오게 하며 그들과 의논했다. (31:5-13)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조카이자 사위에 대한 라반의 처사도 교활했지만 야곱의 사기행각은 더욱 뛰어났다.
그는 교활한 짓으로 장인을 속이고도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아내들을 기만했다.
야곱은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믿었다.
야곱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늘 만물의 하나님보다는 자기만의 하나님을 믿는 편견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라헬과 레아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두 사람은 한결같은 생각으로 말했다. (31:14-16)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아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자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가족들을 낙타에 태우고 모든 가축 떼를 몰고 고향으로 향할 준비를 완료했다.
가축 떼는 야곱이 여태까지 노동으로 번 재산이었다.
라헬은 한술 더 떠서 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들로 나간 틈을 타 친정집 수호신인 드라빔(theraphim, 6-8인치 높이의 돌로 만든 우상)을 훔쳤다.
야곱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길르앗(Gilead) 산악지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라반은 야곱을 속여서 가능한 한 오래 부려먹을 심사였지만 그의 꾀는 야곱의 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야곱이 재산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도망친 사흘 후에야 그 사실을 안 라반은 일가친척을 이끌고 7일 동안 달려서 야곱 근처에 당도했다.
길르앗 산에서 야곱의 천막을 발견하자 그들도 천막을 쳤다.
마치 야전군의 전투준비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다.
그날 밤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이에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다. (31:26-32)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네 소위가 실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야곱은 라헬이 아버지의 수호신을 훔쳐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라반은 야곱의 천막과 레아의 천막 그리고 두 여종의 천막을 차례로 들어가 뒤져보았지만 수호신을 찾지 못했다.
라반은 레아의 천막에서 나와 라헬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라헬은 수호신들을 낙타 안장 속에 집어넣고 그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라반은 천막 안을 모조리 뒤져보았으나 역시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 라헬이 아버지에게 마침 쥐가 나서 일어나 영접할 수 없으니 화내지 말라고 둘러대었다.
라반이 천막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호신들을 찾지 못하자 화가 난 야곱은 라반에게 따졌다. (31:36-44)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 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 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야곱이 항상 정의이신 하나님이 자기의 편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야곱은 이문에 대단히 밝은 사람이며, 욕심이 많고, 이기주의자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누리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유대인의 전형적인 선민사상이 되었다.
라반이 계약을 맺고 그것을 함께 지키자고 제의하자 야곱은 이에 대해 돌을 세운 석상으로 증거를 삼으려 했다.
그는 집안사람들에게도 돌을 주워 그곳에 모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돌무더기를 만든 곳에서 잔치를 벌이게 했다.
라반은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Jegarsahadutha)라 불렀으나 야곱은 길르엣(Galleed)이라고 했다. 라반이 “오늘 이 돌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의 증거가 될 것이다”라고 했으므로 그곳을 길르엣이라 부른 것이다.
그곳은 또한 미스바(Mizpah)라고도 불렀는데 라반이 “우리가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우리를 감시하실 것이다.
네가 내 딸들을 구박하거나 내 딸들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를 들면 누가 우리를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너와 나 사이의 증인이 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사위에게 사기를 당하고 재산을 찾기 위해 한 소대를 이끌고 전투도 불사할 만큼 추격해 왔지만 막상 사랑하는 딸들과 손자들을 보니 가련한 생각이 앞섰다.
이에 라반은 자식들만 잘 살면 그만이지 재산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야곱에게 딸들의 앞날에 대해 단단한 맹세의 서약을 받았던 것이다. (31:51-53)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돌보신 두려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면서 외삼촌과 서약하고 그 산에서 제물을 드렸다.
이튿날 아침 라반은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며 축복해 준 뒤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야곱도 고향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하나님의 사역꾼들과 마주쳤다.
야곱은 그들을 본 장소를 “마하나임Mahanaim(이곳이 하나님의 진지로구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