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라반, 누가 더 교활한가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자식이 늘고 재산이 불어나자 야곱은 고향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저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눈먼 아버지와 자신을 끔찍히 사랑하시던 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계신지 궁금했다.
또한 형 에서가 아직도 자기를 증오하며 죽이려고 하는지도 궁금했다.
형과는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형을 생각하면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는 야곱이 라반에게 청했다. (30:25-34)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라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외삼촌께서 아무 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듣고 보니 야곱의 제의가 자기에게 유리할 것 같아 라반은 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그날로 희끗희끗한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점이 있는 숫염소와 염소, 검은 양 새끼들을 모두 빼돌려 자신의 아들이 돌보게 했다.
또한 야곱을 사흘을 갈 만큼 먼 곳에 떼어 놓고 그곳에서 나머지 양들을 치게 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꺾어 희끗희끗한 줄무늬가 나도록 껍질을 벗겨 내었다.
그리고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 안에 그 껍질을 벗긴 가지들을 세워 놓고 양떼가 그것을 보면서 물을 먹도록 했다.
양들은 물을 먹으러 왔다가 거기서 교미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나뭇가지 앞에서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진 새끼들을 낳았다.
야곱은 이런 양 새끼들을 따로 놓고 먹였으며 또한 라반의 양떼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이나 검은 것은 따로 가려내었다.
야곱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양떼가 라반의 양떼와 섞이지 않게 한 것이다.


또한 야곱은 양떼 가운데서도 튼튼한 놈들이 교미할 때만 나뭇가지를 물구유 안에 세웠으며 허약한 양들이 교미할 때는 나뭇가지들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허약한 새끼들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새끼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
야곱은 이런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켰는데 양떼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그리고 낙타와 나귀도 많았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 재산을 다 빼냈다.
그 녀석이 우리 아버지의 것을 가로채 저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시기했다.
이에 야곱은 외삼촌이 자기에게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31:3)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은 라헬과 레아에게 사람을 보내서 양떼가 있는 들로 오게 하며 그들과 의논했다. (31:5-13)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조카이자 사위에 대한 라반의 처사도 교활했지만 야곱의 사기행각은 더욱 뛰어났다.
그는 교활한 짓으로 장인을 속이고도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아내들을 기만했다.
야곱은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믿었다.
야곱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늘 만물의 하나님보다는 자기만의 하나님을 믿는 편견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라헬과 레아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두 사람은 한결같은 생각으로 말했다. (31:14-16)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아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자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가족들을 낙타에 태우고 모든 가축 떼를 몰고 고향으로 향할 준비를 완료했다.
가축 떼는 야곱이 여태까지 노동으로 번 재산이었다.
라헬은 한술 더 떠서 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들로 나간 틈을 타 친정집 수호신인 드라빔(theraphim, 6-8인치 높이의 돌로 만든 우상)을 훔쳤다.
야곱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길르앗(Gilead) 산악지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라반은 야곱을 속여서 가능한 한 오래 부려먹을 심사였지만 그의 꾀는 야곱의 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야곱이 재산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도망친 사흘 후에야 그 사실을 안 라반은 일가친척을 이끌고 7일 동안 달려서 야곱 근처에 당도했다.
길르앗 산에서 야곱의 천막을 발견하자 그들도 천막을 쳤다.
마치 야전군의 전투준비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다.
그날 밤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이에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다. (31:26-32)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네 소위가 실로 어리석도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야곱은 라헬이 아버지의 수호신을 훔쳐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라반은 야곱의 천막과 레아의 천막 그리고 두 여종의 천막을 차례로 들어가 뒤져보았지만 수호신을 찾지 못했다.
라반은 레아의 천막에서 나와 라헬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라헬은 수호신들을 낙타 안장 속에 집어넣고 그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라반은 천막 안을 모조리 뒤져보았으나 역시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 라헬이 아버지에게 마침 쥐가 나서 일어나 영접할 수 없으니 화내지 말라고 둘러대었다.


라반이 천막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호신들을 찾지 못하자 화가 난 야곱은 라반에게 따졌다. (31:36-44)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 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 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야곱이 항상 정의이신 하나님이 자기의 편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야곱은 이문에 대단히 밝은 사람이며, 욕심이 많고, 이기주의자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누리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유대인의 전형적인 선민사상이 되었다.


라반이 계약을 맺고 그것을 함께 지키자고 제의하자 야곱은 이에 대해 돌을 세운 석상으로 증거를 삼으려 했다.
그는 집안사람들에게도 돌을 주워 그곳에 모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돌무더기를 만든 곳에서 잔치를 벌이게 했다.
라반은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Jegarsahadutha)라 불렀으나 야곱은 길르엣(Galleed)이라고 했다. 라반이 “오늘 이 돌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의 증거가 될 것이다”라고 했으므로 그곳을 길르엣이라 부른 것이다.
그곳은 또한 미스바(Mizpah)라고도 불렀는데 라반이 “우리가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우리를 감시하실 것이다.
네가 내 딸들을 구박하거나 내 딸들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를 들면 누가 우리를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너와 나 사이의 증인이 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사위에게 사기를 당하고 재산을 찾기 위해 한 소대를 이끌고 전투도 불사할 만큼 추격해 왔지만 막상 사랑하는 딸들과 손자들을 보니 가련한 생각이 앞섰다.
이에 라반은 자식들만 잘 살면 그만이지 재산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야곱에게 딸들의 앞날에 대해 단단한 맹세의 서약을 받았던 것이다. (31:51-53)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돌보신 두려운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면서 외삼촌과 서약하고 그 산에서 제물을 드렸다.
이튿날 아침 라반은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며 축복해 준 뒤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야곱도 고향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하나님의 사역꾼들과 마주쳤다.
야곱은 그들을 본 장소를 “마하나임Mahanaim(이곳이 하나님의 진지로구나)”이라고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서를 만날 준비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야곱은 고향을 향해 가면서도 기쁨보다는 근심이 앞섰다.
늙으신 부모님은 살아 계실지 형은 아직도 자기를 죽이려 하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고향을 향하는 그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야곱은 에돔(Edom) 땅 세일(Seir) 지방에 있는 형 에서에게 종들을 앞서 보내며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일렀다. (32:4-5)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종들이 야곱의 분부대로 행하고 돌아와 고했다. (32:6)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은 심히 걱정이 되어 일행, 양떼, 소떼, 낙타떼를 두 패로 나누었다.
에서가 달려들어 쳐 죽이려 한다면 나머지 한 떼라도 피해 보자는 속셈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32:9-12)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날 밤 야곱은 그곳에서 묵으며 자기 재산에서 형에게 보낼 예물을 골랐다.
그것들은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낙타 30마리와 딸린 새끼들,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수나귀 10마리였다.
야곱은 이것들을 한 떼씩 종들의 손에 맡기며 앞서 가되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라 이르며 앞장 설 종에게 지시했다. (32:17-18)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에 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꾀는 많지만 겁쟁이인 야곱은 둘째, 셋째, 그리고 나머지 떼를 몰고 가는 종들에게도 에서를 만나면 똑같은 말을 하도록 당부했다.
예물을 먼저 보내서 에서의 노여움을 풀게 한다면 행여 자기를 해치지 않고 반겨주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야곱은 예물을 보내 놓고 그날 밤을 천막에서 묵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천사와의 씨름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압복(Jabbok) 나루를 건넜다.
개울을 건넌 야곱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그들 편에 주어 보내고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혼자 들판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니 20년 전 형이 무서워 하란으로 도망치던 때가 생각났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형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날 형에게 잘못한 일을 후회하고 뉘우쳤지만 그것으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들판에 버려진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 애통하기 그지없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매달렸다.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다.


야곱은 기도하다 잠이 들었다. 그때 어떤 분이 그에게 나타났는데 야곱은 그분을 놓치면 소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동이 트기까지 그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야곱이 하도 집요하게 붙들고 놓지 않자 그분은 야곱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하지만 환도뼈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분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기로에서의 필사적인 투쟁이자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마침내 동이 밝아오자 그분이 말했다. (32:26-29)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그분은 야곱에게 축복했다.
야곱은 “내가 여기서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라고 하며 그곳을 브니엘(Peniel)이라고 불렀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 the Face of God”이란 뜻이다.
앞서 보았듯이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사람”이란 뜻인데 하나님이 더 이상 야곱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과 투쟁한 한 사람 He Who Has Struggled with God”이란 뜻인 이스라엘(Israel)이라 하라고 했다.
이는 또한 야곱이 이제 이스라엘 국가의 국부가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 것은 그때 야곱이 환도뼈를 얻어맞아 힘줄이 상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지자 호세아는 훗날 이때의 일을 빗대어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할 때 “야곱을 그 행실에 따라 벌하시리라. 그 한 짓을 따라 갚으시리라. 모태에 있을 때에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늘어졌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하나님과 겨루다가 하나님의 천사에게 짓눌리자 울며 애걸하지 않았더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거기에서 약속을 받지 않았느냐?”라고 했다(호세아 12:3-5).


야곱이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떠오르며 새 날이 밝아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용서받은 야곱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야곱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에서가 400명의 종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야곱은 자식들을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나누어 맡긴 후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따라 오도록 했다.
야곱은 앞장서서 걸어가다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형에게로 나아갔다.
에서는 마주 뛰어와서는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음을 터뜨렸다.
뜻밖의 반김에 야곱도 엉엉 울었다.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33:5)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자식들이 앞으로 나와서 에서에게 엎드려 절했다.
레아와 그의 자식들도 나와서 절했으며 라헬과 요셉이 마지막으로 나와서 에서에게 엎드려 절했다.
절을 받은 에서가 야곱에게 말했다. (33:8-15)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내가 오다가 만난 가축 떼들은 웬 것들이냐?)”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어라”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우리가 떠나 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어찌하여 그리 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꾀 많은 야곱은 기지사경에서 살아나자 크게 한 숨을 돌렸다.
그는 형에게 가능한 한 존경심을 다 표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같다는 말로 아첨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에서가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다. 어서 가자. 내가 앞장을 서마” 하고 말했을 때 야곱은 에서가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형님도 보시다시피 저에게는 약한 어린 것들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새끼 딸린 양, 새끼 딸린 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 먼저 떠나가십시오. 저는 이 가축 떼와 아장거리는 어린 것들을 앞세우고 천천히 형님이 계시는 세일(Seir)로 뒤따라 가겠습니다”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과연 야곱은 용의주도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에서는 “그러면 내 부하 몇 사람을 남겨 두고 갈까?” 하고 물었지만 야곱은 기어이 사양했다.
동생이 사양하자 에서는 더이상 권하지 않고 세일로 돌아갔다.
야곱은 숙곳(Succoth)으로 가서 그곳에 천막을 치고 가축 떼가 쉴 수 있는 우리도 여러 개 세웠다.
그곳이 숙곳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피땀을 흘리다 Sheds”라는 뜻에서 연유한다.


야곱은 마침내 가나안 땅 세겜 마을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그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자기가 천막을 친 땅을 세겜(Shechem)의 아버지 하몰(Hamor)의 아들들에게서 은 백 냥을 주고 샀다.
그리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을 엘엘로헤이스라엘(El-Elohay-Yisrael)이라고 불렀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엘 God Is the God of Irrael”이란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열한 약탈과 학살극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세겜에서 일어난 사건은 야곱 역사에 가장 치욕적이고 배신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이 이 같은 사건을 남김없이 기록한 것을 보면 과연 선민의 자격을 갖춘 민족이란 생각이 든다.
여태까지 보아온 대로 이스라엘 사람은 조상의 옳은 일만을 골라서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관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스란히 후세에 전하는 것이었다.
이는 조상들의 불의한 일들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려는 아량으로 볼 수 있다.


레아가 낳은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고장 여자들을 보려고 외출했다가 세겜(Shechem)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겜은 그때 그 지방의 원주민 히위 족(Hivite)의 추장 하몰(Hamor)의 아들이었다.
세겜은 디나에게 사랑을 호소하고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야곱이 딸 디나가 강간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의 아들들은 들에서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야곱은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아들의 청혼을 요청하러 왔을 때는 이미 야곱의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와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다.
세겜이 감히 야곱의 딸을 겁탈하다니!
뻔뻔스럽게 이스라엘을 욕보이다니!
가문에 대한 수치로 이렇게 화가 잔뜩 나 있는데 하몰이 그들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34:8-10)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 야곱과 아들들에게 말했다. (34:11-12)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누이 디나가 욕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세겜과 하몰에게 대답했다. (34:14-17)


“우리는 그리 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하몰과 세겜 부자는 야곱 부자가 제시한 조건을 수락하고 세겜은 서둘러 할례를 받았다.
세겜은 진정으로 디나를 사랑했다.
하몰은 그 고장에서 가장 세도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하몰과 세겜 부자는 성문에 나가 자기들이 다스리는 주민들을 향해 공포했다. (34:21-23)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로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취하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그러나 우리 중에 모든 남자가 그들의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들의 생축과 재산과 그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 말대로 하자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리라”


성문으로 나온 모든 주민은 하몰과 세겜의 말을 따라 그날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 고통스러워하며 거동이 불편한 틈을 타 야곱의 아들 중 디나의 친오라비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빼들고 당당하게 성 안으로 들어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였다.
하몰과 세겜도 칼로 쳐서 죽이고 세겜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죽은 자들에게 달려들어 시체를 털고 온 성을 약탈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비한 배신인가!
이 같은 야만적인 학살은 이스라엘 역사의 치욕으로 남는다.
딸을 욕보인 죄 값이라고는 하지만 야곱다운 교활한 방법이었다.
야곱은 딸의 강간을 빌미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그들의 양떼, 소떼, 나귀 떼뿐만 아니라 성 안의 모든 것들을 약탈했다.
또한 재산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의 자식들과 아낙네들도 사로잡았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시므온과 레위를 불러 나무라면서 “너희 때문에 나는 이 지방에 사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인들에게 상종할 수 없는 추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수가 얼마 되지 않는데 그들이 합세하여 나를 친다면 나와 내 가족은 몰살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의 허락 없이 이 같은 큰 일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야곱은 약탈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