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주 : 영원의 총탄 윤세주 - 제1차 위대한 시민의 역사 33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
이상훈 지음, 양광민 그림 / 광복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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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의 최고 사나이 윤세주.
김원봉과 형제의 우애를 나누고, 이육사와도 함께 의를 나눈 항일의사.
우리나라에서 만주로 다시 화북으로 중국 팔로군과 연합하여 항일 전쟁에 젊음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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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로군?
정식명칭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이며, 1927년 난창[南昌] 폭동 때는 홍군(紅軍)으로 불렸다.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 후에 국민혁명군 제팔로군으로 개칭하고 신사군(新四軍)과 함께 항일전의 최전선을 담당한 부대이다. 1947년에 인민해방군으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당시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망 위기에 처해 있던 중국공산당은 국민정부(國民政府)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蔣介石]에게 마오쩌둥[毛澤東]·주더[朱德]·펑더화이[彭德懷]·린뱌오[林彪] 등의 이름으로 전문을 보내, 전체 홍군은 장제스 위원장의 지휘하에서 국민혁명군으로 개명하여 항일전쟁에 임할 것을 표명했다.

7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부국난선언(共赴國難宣言)’을 발표하고, 국민정부에 국공합작을 요구했다. 그들은 삼민주의(三民主義)의 실현, 국민당정권의 전복운동 및 적화운동의 취소, 폭력에 의한 지주들의 토지몰수정책 중지, 소비에트 정부 취소, 홍군 명칭 취소 및 국민혁명군으로의 개편을 조건으로 제시했고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의 명령에 따를 것을 약속했다.

1937년 8월 22일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이 제의를 받아들였고, 중공군을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편했다. 총지휘에 주더, 부총지휘에 펑더화이를 임명하는 한편, 총 3개사(師)에 병력수를 2만 명으로 제한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팔로군 산하에는 린뱌오의 제115사, 허룽[賀龍]의 제110사, 류보청[劉伯承]의 제129사가 있었고, 팔로군에 대한 지휘권은 여전히 중국공산당이 가지고 있었다.

마오쩌둥이 팔로군 간부들에게 ‘중일전쟁은 본당의 발전에 좋은 기회이고, 우리들이 결정한 정책은 70%를 자기발전에, 20%를 타협에, 10%를 대일작전에 두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제2차 국공합작은 항일전을 위한 중공군의 일시적인 전략이었다. 신사군이 화중(華中) 지방에서 활약했던 데 비해, 팔로군은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항일전을 벌였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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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 6.
경남 밀양 출생

- 1910.11.
천장절(일왕의 생일)에 일장기를 학교 똥통에 처박아 버리고 김원봉과 함께 자퇴

- 1911.
김원봉의 연무단(체력단련모임)에 가입

- 1919. 3. 13.
밀양 3.13 만세시위 기획 및 주도

- 1919. 11.
만주 길림에서 의열단 창립 멤버

- 1932. 10.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 1기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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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란?

1932년 중국 난징(南京)에 설립되었던 군사간부양성학교.

1932년 의열단(義烈團) 단장 김원봉(金元鳳)이 중국 장개석(蔣介石)의 지원으로 독립운동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난징(南京)교외 선사묘(善祠廟)에 설립한 학교이다.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여 동안 운영된 이 학교의 명칭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인데 정식명칭은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이다.

이 학교의 설립목표는 ‘한국의 절대독립’과 ‘만주국의 탈환’에 두고 동교 졸업생은 국내와 만주로 파견되어, ① 일만요인 암살, ② 재만항일단체와의 제휴, ③ 선만 노동농민층에 대한 혁명적 준비공작, ④ 위조지폐 남발을 통한 만주국의 경제교란, ⑤ 특무활동에 의한 물자획득 등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 훈련반은 6개대로 편성되어 제5대까지는 중국인들이 수용되었고 한인은 제6대에 소속되어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의 임원도 교장 김원봉 이하 간부들은 한중 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육내용은 정치과목·군사과목·실습과목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과목은 파괴·기습·유격전 등 특무공작에 필요한 과목들이었다. 1932년 개교 이래 1935년 9월 폐교까지 1기생 26명, 2기생 55명, 3기생 44명 등 총 12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선혁명간부학교(朝鮮革命幹部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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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 7.
민족혁명당 창립대회 중앙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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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혁명당이란?
중국 난징에서 결성된 민족연합전선의 성격을 띤 독립운동단체.


1930년대에 들어서 만주사변·상하이사변 이후 중국지역의 민족운동이 활성화하자, 1920년대 후반 이후 분산되어 침체상태에 있던 독립운동 세력이 전선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32년 10월 한국광복동지회·한국독립당·한국혁명당·조선혁명당·의열단(義烈團)의 5개 단체를 중심으로 중국 지역 통일전선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을 결성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연락기관의 역할밖에 못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더 견고한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해, 1935년 7월 난징[南京]에서 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조선혁명당·대한독립당·의열단의 5당 대표 14명이 모여 민족혁명당을 결성했다. 이것은 동맹의 연합체적 성격을 넘어서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통일전선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임시정부를 옹호하는 한국독립당 내의 일부 세력이 불참했다.

조직체계는, 중앙에는 중앙집행위원회 아래 실무기관으로 서기부·조직부·선전부·조사부·훈련부·군사부·국민부를 두었으며, 지역에는 지부(支部)·구부(區部)·조(組)를 두었다. 1936년 초에는 화중(華中)·화남(華南)·화동(華東)·화서(華西)·화북(華北)·만주·조선의 7개 지부가 있었다.

강령은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표방하고 민주공화국 수립, 토지 국유화, 대규모 생산기관의 국유화, 민주적 권리의 보장 등 통일전선이었으며, 군사공작·당원훈련·정보수집·자금조달 등의 활동을 수행하면서 기관지 《민족혁명(民族革命)》을 간행하였다.

민족혁명당은 인민전선론의 영향으로 1937년 12월 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청년전위동맹·조선혁명자동맹 등과 연합하여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결성했으며, 1938년 10월에는 산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조직하여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41년부터는 독립운동 정당과 단체가 연합전선을 이룬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1942년 7월 산하 군사조직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다. 8·15광복 후인 1946년 2월 좌익계 정치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6월 인민공화당(人民共和黨)으로 개칭했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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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
항일가요 ˝최후의 전선˝ 작사

- 1939. 9
한구에서 조선의용대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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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조선의용대는 1938년 우한에서 김원봉이 만든 중국관내 최초의 한국인무장단체.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 중국과 한국이 공동전선을 형성하면서 만들어짐. 중국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제2차 국공합작이 나타나 힘을 합침.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중국공산당이 있는 옌안에서 중국공산당과도 활동하였고, 그들은 따로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부르기도 함.
그리고 중국국민당과도 활동하였는데, 1942년 김원봉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되면서 옌안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고 군단체로 조선의용군을 만들게 됨. 따라서 완전히 별개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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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 6.
중국 화북성에서 일본군에게 피격되어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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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것이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것들이 점점 불어나는 것처럼

사면 살수록 사야할 책들이 점점 늘어나는 애증의 대상이다. 애증이란 것이 본디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라 친다면 그만큼 소중하다 할 것이다.

특히나 소장하고 싶은 책이 중고책으로 나왔을 때, 그 순간을 참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가면

만감이 교차한다. 참아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왠지 섭섭한 무언가가 함께하는 것처럼.

 

이번에 구입한 책 3권은 알라딘 중고서점 등록 알리미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표적 구입한 책들이다.

예전보다 책 구입이 많이 줄었지만 소장하고픈 집요함은 여전하다.

 

 

 

1

첫번째 구입한 책은 김태권의 <불편한 미술관>이다.

김태권은 사실 진중권과 함께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출판 미술의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한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좌, 우, 옳고 그름을 떠나 비판을 예(禮)로써 하지 않는 자는 별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미학은 김태권만 남았다.

책과 작가는 서로 한몸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적어도 책에 대한 예우는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 존경까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호감이 바탕이 되어야 책장을 펼치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는 1편에서부터 흠뻑 매료되었다. 그 후 <르네상스 미술이야기>로, 가장 최근작인 <불편한 미술관>에 이르게 되었다.

 

 

 

 

 

 

 

 

2

두번째 구입한 책은 빌브라이슨 영감님의 <바디>다.

<거의 모든것의 역사> 개정판에 맞춰 깔끔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읽은 사람들의 평을 보면 구구절절 잡학다식한 그의 면모를 실감하는 리뷰가 많다.

한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책장에 깔맞춤으로 꽂았는데 높이가 달라요..!! ㅠ

 

 

 

 

 

 

 

 

 

 

3

세번째 구입한 책은 내 인생에 있어 몇손가락 안에 꼽는 멘토, 도올선생이다. 

논어1~3권을 엄청 감명깊게 읽었는지라..전체 논어의 일부분밖에 집필하지 않은 미완성작이고 해서

논어 한글역주를 다 사서 다시 차근차근 읽기 위해서 구입했다.

죽기 전에 한번 만나뵙고 단 몇분만이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도올선생은 동양철학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확 벗겨준 최고의 선생이다.

늘 공부하는 사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더러운 정치판에 기웃대지 않는 학자적 양심, 학문에 대한 깊이와 품격.

학문과 인생을 사랑하고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고 즐기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

논어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깊을수록 몇 천년전의 공자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예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삶을 사랑하는 철학이다 라는  자신의 희망을 빗대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따뜻하고 존경스럽다.

무릇 인문학의 깊이는 도올처럼 기개와 부드러움이 상응하면서 어우러지는 향기가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거리낌이 없을 때 느끼는 도올의 호통, 나이가 들면서 한없이 폭이 넓어지고 부드러워지는 성찰.

도올은 논어에서 지식의 분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논어와 수많은 노자 등 동양철학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만약 내 딸에게 권한다면 단연코 도올 선생의 책이다.

공자의 말씀이, 노자의 말씀이, 맹자의 말씀이, 자사의 말씀이, 그리고 도올 선생의 생각이 어느 것인지 분별할 필요 없는

또 하나의 동양철학서가 바로 도올 선생의 저작이다.

모든 인문학은 바로 자신에 대한 글쓰기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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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2-1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적 구입한 책들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조명하 : 타이완 의열투쟁 조명하 - 제1차 위대한 시민의 역사 33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
조명원 지음 / 광복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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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보다 30년 일찍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대만으로 건너가 천황의 장인 구니노미야 육군대장이 대만을 시찰하러 왔을 때 독이 묻은 칼로 차에 뛰어 올라 목숨을 노렸으나 스치기만 하고 미수에 그쳤다.
1928년 6월 15일 중외일보에 의거소식이 실리고 10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순국한다.

조명하 선생 의거 이후 구니노미야는 일본으로 귀환하였으나 의거 8개월 후 사망한다.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복막염이었으나 조명하 의사가 던진 독 묻은 칼에 스친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평생을 천황을 죽이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한 그였다.



˝이곳 대만에서 구니노미야를 척살하여 조국독립의 불쏘시개가 될 것인가? 아니면 뜻한 바대로 상해로 건너가 김구 선생의 동지들과 함께 할 것인가˝ 고민했던 조명하 선생.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듯,
목숨을 던지는 일에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새겨진 독립에 대한 열망의 꽃은 지금도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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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의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는 성남시, 성남문화재단의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 제1차에 참여한 33인 작가들의 글과 그림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 사업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혹시나 도서관마저 문을 닫게 될까봐 부랴부랴 1인 대출한도 10권을 채우기 위해 빌려 읽고 있는 2권의 책을 뺀 나머지 8권을 빌려왔다.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이러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올해 출간된 33인의 독립운동가 중 21번째부터 28번까지 8권의 책을 소개해 본다.(연번은 임의로 달았다.)
올해 33권의 끝이 보인다. 다 읽고 나면 읽은 것 중에 좋았던 책들을 딸에게 읽힐 예정이다. 읽힌다(?)라고 하니..무릇 독서란 게 이런게 아닐진대...


TV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지난 회차를 보면 3.1절 특집, 광복절 특집 편에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같이 병행하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자세한 일화들을 공부할 수 있겠다.



21번, 윤세주 <영원의 총탄, 윤세주>
22번, 남상목 <의로운 총, 민족의 탄환이 되어>
23번, 김용환 <파락호, 김용환>
24번, 김익상 <독립을 드림>
25번, 이봉창 <나, 이봉창>
26번, 고광순 <불원복 고대장>
27번, 김상옥 <그가 찾던 나라>
28번, 조명하 <타이완 의열투쟁, 조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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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 ~
자우메 카브레의 작품이 3권 연달아 나왔네요. 369번, 370번, 371번으로 스페인 문학입니다.
알라딘에서 자우메 카브레를 검색하니
딱 이 책만 검색이 될 정도로
생소한 작가네요

민음사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 서로 중복되지 않게 출판되니 좋으네요.
잊을만하면 적당한 텀을 두고 툭툭 신간이 나오니 부담도 안되고 돈쓸 맛(?)이 납니다.ㅠ 흐 책표지가 구매욕을 자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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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1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소한 작가네요.
읽으면 좋을 것 같긴한데 넘 두껍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