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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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한탸는 삼십오 년째 폐지 압축공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책과 종이를 압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드물게 폐지 더미 속에서 귀한 책을 발견한다. 그는 그 귀한 책을 몰래 숨겨 집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가져간 책들이 그의 아파트를 가득 채운다. 그의 머릿속은 그 책들로부터 주입된 문장들로 찬다. 니체, 데카르트, 괴테, 노자, 예수 ......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 문학가, 사상가를 그는 폐지를 통해 만난다.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폐지 압축공의 찬란하고도 비극적인 생애를 통해 삶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탸는 매일같이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지만 가난한 생활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외려 이 일자리조차 젊은 사람들과 신식 기계에 밀려 잃을까 봐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는 폐지 더미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는 귀신같은 능력을 가지지만, 사장은 그가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책이나 읽는다며 타박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여인 몇 명과 사귀지만, 그녀들은 그의 넓은 아량에 감사하기는커녕 그를 스쳐 지나간다. 그가 그동안 귀한 책과 종이들을 사정 없이 파괴한 것을 벌하기라도 하듯, 삶은 그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고 잔혹하게 대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쓴 보후밀 흐라발은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흐라발은 '프라하의 봄' 이후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하고 자신의 작품이 이십여 년간 출판 금지되는 상황 속에서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작품을 썼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책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책을 파괴해야 하는 한탸가 느낀 절망과 비슷하지 않을까? 작가의 생애를 알고 나니 이 얇은 책이 훨씬 두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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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줄거리가 매우 흥미진진하군요. 제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었으면 버리기 아까운 책들을 몰래 따로 숨겼을 겁니다. ^^;;

키치 2017-02-02 14:01   좋아요 1 | URL
저도 폐지 속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 공짜로 집을 채운 주인공이 살짝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보물선 2017-02-02 14:01   좋아요 1 | URL
진짜 숨겨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