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루이비통]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인터넷에서 옷 몇 벌을 구입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옷을 만져보고 입어본 다음에 사는 것이 훨씬 좋겠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다양한 옷을 볼 수 있고 (매장 언니의 추천이 아닌) 내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를 수 있어서 최근 부쩍 애용하고 있다. 처음에 온라인 쇼핑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선뜻 사기가 힘들었다. 직접 본 게 아니니까 품질이 좋은지도 알 수 없고, 사이즈도 잘 모르고, 쇼핑몰마다 제품이 비슷비슷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자주 드나드는 쇼핑몰이 생기고, 좋아하는 모델도 생기고, 장바구니에 담는 옷이 하나둘 쌓이는 것을 보니 옷보다도 더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취향'.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살 때는 유행하는 옷, 디스플레이 된 옷, 매장언니가 추천해 주는 옷, 그것도 아니면 그냥 몸에 맞는 옷(;;;)을 고르기 일쑤였는데, 온라인 매장에서는 (가끔 제일 잘 팔리는 품목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는 하지만)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좋아하는 옷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취향도 알게 되었다. 무려 세상에 나온지 스물 다섯 해만에.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쓴 대한민국 사람들의 소비심리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여러가지 일로(!) 언론에 자주 거론된 분이라서 언론 밖에서는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책을 통해서 받은 인상은 괜찮았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이라는 책 제목만 봐서는 신선함을 넘어 살짝 트렌디하기까지 한데, 내용은 학계에 계신 '교수님'이 쓰신 책답게 웬만한 소비자 심리학, 마케팅 심리학 교과서 못지 않게 체계가 잘 짜여 있고 단단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책 곳곳에서 저자가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고자 한 의도도 잘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워낙 일반화되어 마케팅 믹스, 4P 같은 기본적인 용어는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주워 들어서 알 정도다. 하지만 마케팅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과는 달리, 시장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품은 왜 몇 가지가 안 되는 것일까? 딱 떠올려도 최근 몇 년 간 히트상품으로 불릴만큼 '대박'을 친 제품은 '꼬꼬면', '스마트폰', '앵그리버드'나 '애니팡' 같은 게임 정도뿐이다. 게다가 이 사례들은 기존의 마케팅 전략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의 실제 소비 '심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업이 마케팅에 이용하는 자료는 설문조사, 통계 등으로 얻어진 '평균치' 내지는 '근사치'에 불과하지, 소비자 한사람 한사람의 심리까지 파악하지 못한다. 게다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기업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대부분의 소비자는 시장에 나온 제품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조차 모른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최신 기종의 피처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거워했던 때를 떠올려 보라. 스마트폰 이후에는 어떤 디바이스가 나올까? 소비자는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야구팬문화, 휴대폰 요금제 등 가까운 사례에 적용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가장 핫한 이슈인 '대통령 선거'에도 적용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선거 전략을 짜고, 유서 깊은 설문조사 기관들이 수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한들 선거 당일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는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선거 전략을 벗어나 있기도 하고, 설문조사 항목에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후보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고 해도, 환경문제라는 것이 기업 입장과 소비자 입장이 다르고, 환경문제만 해도 대기오염, 해양오염, 쓰레기처리, 친환경 기술개발 등 수많은 하위이슈가 있다. 이것까지, 이런 세부적인 유권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대선 이슈와 함께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명품 열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대통령과 루이비통. 언뜻 봐서는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둘 다 소비자의 심층적인 소비심리가 반영되는 이슈이자, 무엇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는 '주류에 대한 갈망'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방이 아니라 상위 1%, 아니 0.001%에 속하는 '청담동 며느리'들이 들고다니는 명품백을 사는 것처럼, 대한민국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주류의 모습을 반영한 대통령을 뽑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명품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거리에 나가면 똑같은 홀로그램이 찍힌 루이비통백이 판을 쳐서 명품도 짝퉁처럼 보인다. (확률상 내가 본 '명품'이 짝퉁일 가능성이 더 높다.) 마찬가지로 내가 되고 싶은 주류의 모습을 반영한 대통령을 뽑는다면 얼마 안가 그 사람이 명품인지 짝퉁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짝퉁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마케팅과 소비심리에서 시작하여 대선을 비롯한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지는 흐름이 좋았고 다양한 사례가 나와서 흥미롭고 신선했다. 앞으로 저자의 책을 좀 더 찾아서 읽어볼 계획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