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약정으로 구입한 폰이 10개월 정도 약정기간이 남았는데 사용하기에 약간 부족할 정도로
고장이 난 모양이다. a/s를 맡기지 않고 새로 구입하겠다는 것부터 마음이 언짢았지만 공짜폰이
있다는 말에 그냥 삼켰다. 그러나 막상 매장에 가서 본 결과 기존 폰의 할부금도 결국 모두
내야하며, 공짜폰이란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스마트폰 구입을 꺾을 기세는
전혀 없었다. 매사에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해야하고 아이들에겐 부족한 듯 한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울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사업을 하니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이 벌이가 있는 것도 아닌 학생의 신분
이고, 고가의 노트북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정보가 많다는 이유로 기어이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마는 그녀을 보며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음은 이또한 엄마라는 이름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아온 세대와는 사고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종종 받아들이는데 애를 먹고, 치미는 울화를
삼켜야 할때가 빈번하다.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기 보단 자신의 내면이 텅텅 비어 있음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허황된, 과분한 기대일까?
어느 고등학생이 그런다. 엄마께는 제네시스를, 아빠께는 에쿠스를 사드릴 것이라고... 그것이
마냥 효인양 들린다. 되돌린 나의 대답은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였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그것을 알리가 없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찰나라는 것을 그 어린 것들이 어찌 알겠는가?
아마 영원히 그들은 모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점점 물질로 인격조차 판단되어지고 있는
흐름을 타고 있으니...
오늘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수마디 언짢음을 토해내는 나는 최신형 기계를 안겨
주고도 즐겁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