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토니 모리슨이 타계했다. 외국 작가들에 대해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다룬 작가들은 꽤 알려진 작가라는 생각, 그리고 토니 모리슨에 대해서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타계 소식을 듣고 모리슨이 쓴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작품은 예의상(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호기심에... 도대체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품들이 어떤지 알고 싶다는 그런 마음) 읽어보곤 했는데, 어째서 이 작가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을까?

 

아마도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흑인 작가라서, 흑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어쩌면 먼 과거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선입견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흑인에 관한 이야기가 과거라고?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 아니다... [헬프]라는 영화나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 또는 책이 다 흑인들이 겪어야 했던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아주 먼 이야기,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도 많은 과거가 있지만(이런 표현은 이 책에도 나온다), 이들이 언제든 과거에만 갇혀 살아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는 그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고, 또 미래를 살아가는데도 장애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주인공은 '세서'가 살고 있는 집에 두 사람이 방문한다. 순차적으로. 한 사람은 과거 백인 주인의 집에서 함께 살았던 '폴 디',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죽인 딸이라고 추정하는 '빌러비드'

 

둘 다 과거와 관련된 인물이지만, 이들이 세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폴 디는 미래로 나아가는, 즉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세서를 사회로 나서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와 함께 세서는 페쇄된, 유령이 나온다고 하는 124번지 집에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때 빌러비드가 등장한다.

 

밖으로 나오려는 세서를 다시 안으로 몰아가는 인물. 빌러비드와 폴 디는 함께 할 수 없다. 결국 폴 디가 쫓겨나고 세서는 빌러비드와 함께 집 안에만 있게 된다. 직장도 그만두게 되고... 계속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 이야기하게 된다.

 

현재 함께 살아가고 있는 딸 덴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많은 과거를 현재에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살아가는 세서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속에 갇힌 인물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세서를 구해주는 인물은 바로 딸 덴버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느낀 덴버가 어려운 발걸음을 떼고 밖으로 나온 것.

 

덴버가 밖으로 나옴으로써 안에 갇힌 세서의 일이 알려지고 결국 세서는 빌러비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자신을 옭아매던 과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소설은 그 희망을 이야기한다.

 

빌러비드에 의해 쫓기듯이 나갔던 폴 디가 다시 돌아와 세서를 돌보겠다고 한 것. 집 안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온 덴버가 이제는 어엿한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환상적인 장면과 현실적인 장면이 겹쳐지면서 소설은 묘미를 더해가는데... 세서의 삶을 통해, 또 폴 디의 삶을 통해서 남북전쟁 전후를 살아가는 흑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들을 만날 수가 있다.

 

백인 주인에게 잡혀가게 하느니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이겠다는 세서의 행동을 중심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할 수 있는데... 착한 백인, 나쁜 백인으로 구분할 수 없다.

 

인종차별주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주인으로 나오는 가너도 결국은 백인일 뿐이며, 흑인들의 탈출을 돕는 보드윈에게 세서가 달려드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개인의 좋고 나쁨으로 흑인들의 삶이 행복하다 말다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보드윈은 노예제를 반대한다. 그래서 흑인들의 탈출을 돕는다. 이런 사람에게 달려드는 세서의 행위는 특정 개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노예제, 인종차별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해자에게 분노를 폭발하기보다는 자기 자식들에게 해를 가하는 쪽으로 행했던 과거의 행동과는 달라진 것이다. 세서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결말 쪽의 행동이다.

 

그렇다고 자식을 죽인 세서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영화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에 계백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으라고 하는 장면에서, 아내가 거부하고, 결국 계백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산벌]과 이 소설이 지닌 차이는 계백은 죽어서 더이상 고통을 받지 않는다. 자기 손으로 죽인 가족에 대한 고통을, 하지만 이 소설에서 세서는 살아 있기에 계속 고통을 받는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또 살아남아 자기 곁에 있는 딸인 덴버에게도.

 

이 장면이 이 소설의 장면과 겹쳐지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이 겪었던 인간 이하, 동물처럼 취급당했던 일들을 자식들이 겪에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 그 생각에 백인에게 끌려가게 하느니 차라리 죽어서 함께 저 세상에서 살자고 하는 몸부림.

 

그렇게까지 나아가게 했던 노예제의 비극. 흑인들이 몸으로 겪어야 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라지지 않는 고통들. 그 고통들을 소설은 전달하고자 한다. 독자들에게 그 고통이 전해졌을 때 읽는 이는 형식적인 노예제는 사라졌지만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이 노예제와 별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차별이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가게 됨을, 그래서 쉽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을,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흑인들이 옛날에 참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어야 했고, 또 지니고 살아야 했던 고통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이 알게모르게 차별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착한 쪽이라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몸에 가시를 두른 고슴도치가 있다. 다른 존재의 접근을 막는 가시. 그러나 이 가시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가지 못하게 한다.

 

  소위 소년원이라는 곳에 있는 사람들. 사회에서 이미 밀리고 밀려 결국 그곳까지 온 아이들.

 

  이들이 온몸에 두른 가시들. 밖으로 나 있는 가시에 자신들조차도 찔리고 있는 고슴도치들.

 

  학교 밖 아이들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스스로 학교를 박차고 나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기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그들이 학교 밖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해줘야 함을 생각하는데... 그냥 내몰기만 하지 말고.

 

소년범 돕는 일을 한다는 조호진이 쓴 시집이다. 소년원의 봄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집에는 단지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고, 또 그들을 외면하는 종교인들에 대한 시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그런 시들이다.

 

이 중에 고슴도치라는 시를 본다.

 

고슴도치

 

1만6천 개의

가시를 두른 것은

찌르려는 게 아니랍니다.

 

사랑한다고 다가와

불쌍하다며 다가와

하도 찌르고 따돌리고 놀려서

그만 당하려고 두른 가시랍니다.

 

제발 다가오지 마세요.

동정의 눈빛 좀 그만하세요.

안아주는 척하다 가버릴 거잖아요.

 

됐어요, 그냥 놔둬요

다가오면 찌를 거라고 씨팔.

 

접-근-금-지

 

조호진, 소년원의 봄. 삼인. 2015년. 7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푸가 - 파울 첼란 시선
파울 첼란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을 많이 들은 시인. 파울 첼란. 유대인으로 태어나 학살을 경험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를 쓴 사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서정시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시인.

 

그러나 독일어로 쓰인 시를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의미만이 아니라 시가 주는 울림도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시를 번역하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첼란은 시를 유리병 편지에 비유했는데, 유리병 속에 담긴 사연은 길 수가 없다. 짧다. 그 짧음을 해석해 내는 것. 바로 시를 읽는 사람의 역할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이 시집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 건너 저 편에서 온 유리병 편지를 읽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언어는 어떤 울림을 준다. 그냥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이 있다. 우선 파울 첼란이 시에 대해서 한 말을 보자.

 

시는, 언어의 한 현상 형태로, 그 본질상 대화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유리병 편지' 같습니다. -분명 희망이 늘 크지는 않은 - 믿음,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마음의 땅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요. (223쪽)

 

시는 하나의 타자에게로 가려 합니다. 타자를, '마주 섬'을 필요로 하지요. 시는 그걸 찾아갑니다. 자신을 그것에게 줍니다.

타자를 향해 있는 시에게는 사물 하나하나, 사람 하나하나가 그대로 타자의 형상입니다. (240쪽)

 

이 말들을 통해서 그의 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시선집에 실린 마지막 시 제목이 '시 닫고, 시 열고'이다.

 

시집을 닫으면서 시는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닫힘과 열림이 함께 있다.

 

시(詩) 닫고, 시(詩) 열고

 

여기서 빚깔들은

보호받아 본 적 없는

맨이마

유대인에게로 간다

여기 떠오르고 있다

가장 무거운 사람이.

여기 내가 있다. (218쪽)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말들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말도 안 되는 말들이 나돌아 다니게 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첼란이 의미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시가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는 말이 칼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파리 하나, 나무도 없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하여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대화가

거의 범죄이니

그 많은, 이미 말해진 것을

포함하기에. (208쪽)

 

유리병 편지가 오는 동안 시대가 바뀌었고, 말에 대한 판단이 바뀌었다. 정말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말이 아닌 말들이 말이라는 탈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는 이 시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생, 생명은 서로 돕는다 - 인간과 자연, 생명의 아름다운 공존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요한 브란트슈테터 그림,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만큼 공생이 필요한 시대가 있을까? 공생이 무너져 가고,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각자도생이 결국은 서로의 멸망을 초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계적으로 공생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연 속에서 식물들끼리, 또 식물과 동물끼리, 아니면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공생을 이야기 하더라도, 공생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공생이 무너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이룬 산업화가 자연의 공생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다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이미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생활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공생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30가지의 공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인간이 떠나지 않고 있다.

 

소개된 공생 중에 인간에 의해서 사라질 공생들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된 공생이 아주 짧은 시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관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즉 한 생명이 멸종한다는 것은 공생관계에 있는 다른 생명도 역시 멸종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을 다루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끼리의 공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히 농촌과 도시의 공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첫시작은 꿀잡이새와 인간이다. 인간을 벌집으로 인도하는 새, 꿀잡이새. 도대체 이 새는 어떤 이익을 얻을까 했더니, 인간이 가져가고 남은 밀랍을 얻는다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하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들의 공생을 다루고 있다.

 

그림도 곁들여 있어서 좋고 공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자세히 들어서 더 좋다. 여기에 끊임없이 인간을 생각하게 해서도 좋다.

 

최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생충'이란 영화가 있었다. 기생은 공생과 달리 한 존재에게만 이로운 관계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게 기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었지만, 과연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기생하는 것일까?

 

오히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생해서, 즉 가난한 사람들을 숙주로 삼아 자신들의 부를 늘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의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 사이에 기생관계가 아닌 공생관계가 이루어져야만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들 사이에 공생관계가 된다면 지나치게 많은 생산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생은 약자들끼리의 협동생활도 의미하지만, 강한 자와 약자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강자들이 일방적으로 약자들을 착취하는 관계에서는 기생이 이루어지고, 한 존재의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승자독식 사회, 1%사회라는 말이 들리는 바로, 지금이 공생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염 사회 -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폭염사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마치 우리 사회가 열로 들끓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제목인데, 책 내용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미를 지닌 책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실행이 되지 않았을 때 탄식하면서 하는 말로 주로 쓰이는데...

 

그런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더 문제가 된다. 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지하철에서, 배에서, 그리고 도로에서, 또 하늘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재난도 계속되고 있고, 태풍이나 지진,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도 계속되고 있다.

 

소를 계속 잃으면서도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부터 미세먼지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대책은 여전히 없는 상태. 올해는 석탄발전을 많이 멈추겠다는 말을 하는데... 올해만이 아니라 석탄발전을 지속적으로 줄여가야 하는데, 에너지 사용량이 줄지 않고 계속 늘고 있으니, 기후변화나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카고 폭염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다른 재난에도 적용할 수 있다. 폭염으로 사망한 시카고를 분석해서, 그것을 사회적 부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몇 가지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혼자 사는 도시 주민 중 나이 든 인구가 증가한 것(386쪽)이라고 하고, 둘째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공간적인 집중과 사회적 분리의 증가(387쪽), 셋째는 이러한 불평등을 바로잡고 도시 취역계층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정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389쪽)이라고 한다.

 

폭염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인데, 이들을 인종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또 가난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충분히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번째 정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프게 다가온다. 정부의 기본적은 목적은 국민들이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 시카고는 1995년 폭염 이후로 나름 대책을 세운다. 그 결과 1995년 이후에도 폭염이 발생했지만, 사망자 수는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친' 격이 된 것이다.

 

미리 막을 수 있었던 폭염으로 인한 재난 상황은 주요 보건 및 지원 서비스를 소방서와 경찰 등 준군사 조직에 위임해 생긴 구조적인 불균형. 노인과 약자를 포함한 도시 주민들이 공공 재화의 능동적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시의 행정관과 이들의 봉사 대상인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짐, 정부가 점차 홍보활동과 마케팅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경우가 많아짐 (389-390쪽)으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고 하는데, 이것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적용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까지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재난 상황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들,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미루는 책임자들, 그리고 심층보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들... 이들이 중첩되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특정한 시대의 재난을 다룬 책으로 읽어도 되지만, 그것을 앞으로도 지속될 재난 상황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가 아니라 '유비무환'이 되는 그런 계기로 삼는 책으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피아 2019-10-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갑습니다

kinye91 2019-10-0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