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그리다
김점선 글.그림, 김중만 글.사진 / 문학의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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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은 열정적이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서로 닮았고 그가 그린 말과 오리와 꽃은 동심이 뚝뚝 묻어나고 무엇보다 그가 글을 통쾌하게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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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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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라고는 하지만 실린 글들은 이미 20여 년 전에 발표되었던 글들이다.

오래된 글이다. 그러나 권정생의 문제의식이나 그가 안타까워했던 농촌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 쓴 글인가 다시 들여다 본 것도 아마 바로 오늘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권정생이 안타까워 하고 속상해 하고 불쌍해 하는 모든 일들이 지금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는 일들인 까닭이다.

권정생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것이 나라의 통일인데, 요며칠 NLL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모든 일들이 잊혀질 새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도 남북이 갈라져 사는 까닭이리라.

 

권정생 글이 재미있는 것은 그가 더러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안동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거나 거기 담긴 입담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시골 할머니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말하는 지 알고 있다. 그 할머니들과 한나절만 밭에서 함께 김을 매보면 안다.

고등학생일 때, 엄마 품앗이로 동네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김을 매던 때가 있다. 일은 서툴고 도저히 그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엉덩이를 쳐들고 김을 매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주고 받는 말에 웃느라 내 밭고랑만 저만치 뒤쳐졌다. 그래도 누구하나 왜 일을 그렇게 못하는가 타박하지 않았다.

 

했니더혹은 했니껴와 같은 독특한 끝말은 내 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더러 썼던 말이다. 그것이 안동 지역말이라는 것을 권정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에 살던 아버지가 어찌 그 말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염무웅도 발문에서 썼듯이 권정생은 사상가가 아니다. 사상가가 아니라서 그가 속상해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쉽다.

책상 앞에 앉아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온 몸으로 겪어내고 깨달은 일이라 그가 전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잘 알아 듣는 것이다.

 

개발 논리로 망가지는 농촌과 자연, 돈의 노예가 되는 현실, 망가져 가는 교회, 비극적인 개인사, 전쟁 체험, 육체적 병이 주는 고통, 가난 등은 고스란히 우리 현대사다. 권정생 개인이 체험한 인생 역정이 그 세월을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본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체험한 사람이 권정생이고, 그래서 그가 보여준 삶이 감동인 것이다.

 

그가 어떻게 동화와 동시를 쓰게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오래 전부터 책을 읽어왔고 글을 써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썼던 글 때문이다.

이름을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살고자 했던 일이다.

 

더러 들은 이야기가 비극적이고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과한 일인 듯하여 머뭇거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권정생이 그런 사람이다. 나하고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그가 여전히 올려다보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살아낸 삶이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낮고, 가난하고, 목숨 있는 것은 1cm 벌레도 죽일 수 없고, 골무만한 쥐도 제 방에 들어오면 함께 뒹굴고, 망가지고 파헤쳐지는 것을 못견뎌하고, 가난하여 굶어 죽는 것을 못견뎌하고, 나라가 갈라져서 할아버지가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사치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교회가 부자가 되는 것을 못견뎌하도록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과 전혀 다르게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에 눌리고 눌려 숨이 막히고 답답해도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비겁한 말이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빌뱅이 언덕>을 내려오면서 내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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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사냥꾼 - 박물학자를 꿈꾸었던 국문학박사의 자연이야기
기태완 지음, 기성재 그림 / 보고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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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줍은 곤충 사냥꾼!

지금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 되어있겠지만 책 속이니까 나도 나이를 바꿔 네 나이가 되어보고 싶어. 친구 먹자는 얘기야. 괜찮지?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내내 너는 참 재미나게 지내는군.

별 놀이거리가 없었겠지. 그래도 사냥꾼은 좀 달랐던 것 같아. 전문가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남다른 눈을 가진 것 같아 부럽더군.

이 책을 읽으면 곤충 사냥꾼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너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 할 것 같아. 만약 어른들이 읽는다면 어린 시절 자기를 닮았다고 오랜만에 추억에 잠길거야. 아이들이 읽으면 당장 잠자리채를 들고 참나무 숲으로 가자고 할지도 모르지. 가까이 참나무 숲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아이가 도시에 산다면 맥 빠질거야.

그만큼 곤충 사냥꾼의 생활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더군.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사냥꾼의 놀이였잖아. 놀이 같은 삶!

 

벌집을 건드렸을 때는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 했어. 황구렁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나도 소름이 돋았지. 나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뱀이거든.

나도 밭에 가려면 산길을 걸어가야 했어. 그런데 그 길에는 뱀이 꼭 나타났지. 산 입구에 들어서면 돌맹이를 하나 보지 않고 뒤집어. 속으로 비는 거지. 오늘은 뱀을 보지 말게 해주세요. 효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뱀을 보지 않았지.

누가 뱀을 잡아 나뭇가지에 걸어놓으면 그게 말라 쪼그라질때까지 매달려 있어. 그 밑을 지나가려고 하면 그게 내 머리꼭지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후다닥 지나가야 했지.

아무튼 나는 뱀이 무섭고 싫어.

 

그나저나 너는 정말 곤충을 좋아했나봐!

나 같으면 좀이 쑤셔서 몇 시간 씩 개미 군대의 싸움을 들여다 보지 못할 거야. 사슴벌레를 사냥하는 법도 모르지.

사슴벌레를 사냥하고 기르면서 이것 저것 먹을 것을 갖다 바치는 사냥꾼 모습이 웃겼어. 사냥꾼 말처럼 처지가 바뀌었더군. 가재 잡는 데 개구리 뒷다리를 미끼로 쓰는 건 처음 알았어.

 

삼촌이 좋은 분이셨나 봐. 나는 삼촌이라고 부른 사람이 없어서 잘 몰라. 함께 토끼를 잡고 연을 만들어 날리는 삼촌이 있는 사냥꾼이 부러워지더군.

 

설마 곤충 사냥꾼의 이야기를 곤충 과학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절대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 이건 과학책이 아니라 이야기니까 말이야. 곤충을 지독히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 그래서 곤충사냥꾼을 통해 자연의 이야기를 듣기를 바래. 소년과 자연이 어떻게 사랑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풍요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지.

나는 오랫동안 곤충 사냥꾼을 기억할 것 같군. 언젠가 참나무 숲에 갈 일이 있으면 저녁때를 기다려 나무를 한 번 흔들어 볼 생각이야. 도토리가 떨어져 있으면 그 주변도 한 번 둘러봐야겠지? 혹시 거위벌레가 드릴로 구멍 내는 걸 보는 행운이 올지도 몰라. 돋보기가 없어서 힘들까?

곤충사냥꾼이 나비잠자리라고 부르는 잠자리 있잖아. 책 표지를 꾸미고 있는. 어쩌면 그리도 매혹적인 날개를 가진 잠자리가 있을까!

우리 동네에는 나비 잠자리와 아주 조금 닮은 물잠자리가 있었어. 그 잠자리도 너무나 가볍고 재빨라서 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지. 나도 잠자리를 제법 잡는데, 그 잠자리는 어찌나 도도한지 쉽게 잡히지 않아서 애 좀 탔어. 어쩌다 잡으면 전혀 느낄 수 없는 날개의 가벼움에 분명 손에 잠자리가 있어도 없는 듯. 까만 날개의 물이 손에 들까봐 약간 겁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

 

사실은 내가 살던 동네를 떠나 온지 오래 되었어. 잠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꼬마들이 있기나 할까? 멱 감던 아담한 도랑도 진즉 없어졌지.

그래서 더욱 사냥꾼 이야기가 나를 안달나게 하는가봐.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놀이들이, 그 호기심이, 영영 추억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무튼 곤충사냥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무척 행복했어.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완전 날쌔고 치밀한 사냥꾼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도 놀라웠지. 넌 좀 멋있었어!

 

뭐니 뭐니 해도 곤충 사냥꾼이 말한 그 많은 곤충을 사진이 아닌 손그림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 사진보다도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더군. 멋진 동무를 두었나봐.

 

더 긴 이야기를 나눌려면 아마 너를 만나야겠지? 그럴 수 없으니까 이쯤에서 마음을 접고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 생각나면 책을 들쳐보면서 사냥꾼을 불러볼게.

수줍은 곤충사냥꾼! 널 만나서 반가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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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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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가도 만나면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탁동철 이름 석자도 그렇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보리출판사에서 어른용으로 내는 잡지 <개똥이네 집>에서다. 딱 한번 이름을 보았고 그 때 그는 그림책 <야쿠바와 사자>를 읽고 아이들과 무슨 연극을 하였다고 했다.

그즈음 나도 그 책을 읽고 이 좋은 그림책을 아이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의 글은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인상에 남았다. 글로 남은 사람을 <달려라 탁샘>의 저자로 확신한 것은 자세하게 말할 수 없다. 그냥 그랬다.

 

교사가 쓴 교단 일기는 학생과 교사에게 우선 소용된다. 그 학교의 학부모까지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 들어간다면 독자의 자리는 조금 더 밀려난다. 그러나 교단 일기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독자에게 이 책은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시골 분교 학교 아이들과 생활하는 탁쌤은 자주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이들과 선생이 투덕투덕 싸우는 것은 다반사고 더러 선생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학생과 맞짱을 뜨기도 한다. 학교 운동장에 쓰레기를 버리는 얌체들을 몰아내기 위해 일일이 편지를 쓴다. 아이들을 몽땅 앞세워 경찰서에 가서 시위도 한다. 막대과자 주는 날에는 애들하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데, 이 과정도 볼만하다. 우선 읍내에 맛있다고 소문난 집 세 군데를 정해서 그 집 떡볶이를 맛본다. 물론 차비는 탁쌤이 낸다. 그대로 따라 하거나 입맛대로 손맛을 내도 된다. 이렇게 모둠이 만든 떡볶이는 급식소에 가서 전문가(?)에게 심사를 받는다. 빼빼로데이가 어쩌구저쩌구 잔소리는 단 한마디도 없다. 그냥 그날은 지들 멋대로 맛대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은 날이다.

 

우리 동네 알아보는 사회시간에는 누구는 어른들의 별명을 조사하고, 누구는 처마에 무엇이 있나 조사하고 누구는 김장을 몇 포기 했고 거기에 무슨 재료가 들어갔나 조사한다. 옛날에 쓰던 농기구에 대해 알아볼 일이 있으면 아이들을 앞세워 동네 아저씨를 찾아간다. 아저씨는 말도 천천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아이들의 일일 선생님이 되어준다.

 

밤낚시도 가고 밤 떨어지면 밤주우러 가고 눈 내리면 비료푸대 들려서 눈썰매 타러간다. 온도에 따라 물고기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보려고 얼음과 실험도구를 챙겨 냇가로 간다. 직접 잡아 실험하고 냇가에 다시 풀어준다.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는다. 일이 생기면 바로 토론에 들어가고 반장은 일주일씩 돌아가며 한다. 사정에 따라 상황극을 펼쳐 한 가지 일을 여러 가지로 경험하게 돕는다. 방학숙제도 시 몇 편 쓰겠다하면 그게 그 아이의 방학숙제다. 단 30편을 쓰겠다하고 세 편만 써오면 30편을 다 쓸 때까지, 쓰지 못하고 졸업해도 반드시 채워야한다. 맨 이런 식이다. 짧은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웃기고 신나고 재미있다. 사계절의 변화가 교과서고 그와 아이들이 사는 동네가 교실이다.

 

부럽다고 하고 말 일이 아니고 시골이니 그렇게 즉석 현장 체험이 가능하지 하고 말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태도이며 부모로서 자식을 대하는 태도다.

 

학생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직접 보았어도 그 아이가 끝내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는 그 아이가 충분히 고통 받았음을 이해한다. 말을 안 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말을 하라고 하지 않고 싸우는 아이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의 이유, 아이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오히려 제 할 말을 못하고 기계적으로 사는 것을 싫어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자 거짓으로 꾸며 사는 것을 못견뎌 한다. 헐렁해보이지만 그 속에 단단한 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교사 생활을 한 양양은 그의 고향이다. 마을 어른들은 학교 선배이거나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는 그 선배의 아이들이다. 그 상황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그가 마을을 교실로 삼고 마을어른들을 다 선생님으로 생각하는데 그가 선생입네 고개들고 다닐 위인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이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자신의 말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그의 마음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말하라는 그의 다그침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어린 학생이었을 때, 나에게 그런 가르침을 준 선생님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모범생 딱지가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얼마나 최근 일인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말은 그래도 어찌어찌 지금껏 읽어온 책 속의 스승에게 들은 말이 아니던가.

 

아직 어린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마음을 다 알리라고는 그도 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지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좋아하리라 마음 놓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사람에게 존재 이유가 있다면 증명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할 줄은 안다. 나는 못하고 산다는 것도 알고 그걸 하며 사는 사람을 알아볼 줄도 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사는 사람이다. 가슴을 탕탕 치면서, 더러는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부당한 일을 보고서야 어찌 가만히 있어야하느냐는 그의 말을 따라 내가 한 짓거리를 고백한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 ‘어’ 하는 마음에 저지르는 어설픈 짓거리다.

지난 일요일,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자해서 동네 슈퍼에 갔다. 라면을 사들고 나오는데 부동산 앞에 늘 있던 차 한 대가 턱하니 눈에 들어오겠다. 보니 그곳은 인도요, 아이들이 학교가고 올 때 드나드는 길이다. 가뜩이나 좁은데 덩치 큰 차가 길을 반 넘어 먹고 있다. 이것들이.

경비 아저씨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말 해도 듣지 않고 상가 건물이라 할 말도 없다나. 그렇겠지. 차 주인에게 차를 여기다 두는 게 옳으냐 물으니 아니라고 하고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물으니 아파트 주차장을 못쓰게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나 참, 이사람들이.

관리소장에게 말하겠다 하고 돌아오는데 아차, 우리 집 아파트 그 부동산에 내 놨는데, 그럼 그 차 주인이 부동산 사장의 남편인가. 뭐야, 이거 집도 안나가는데 입방정을 떤거야? 처음부터 관리소장에게 말하거나 조용히 관리관청에 신고전화를 할 걸. 그나 저나 내가 왜 이랬지? 이게 다 탁동철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가만 두지 않을꺼라고 생각하고 내가 대신 한 거야. 계속 가? 그래도 차 주인한테 항의라도 했으니 그도 괜찮다고 할까? 그래, 그 정도면 적어도 말이라도 했으니 됐소라고 인정해줄까?

나는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 뜯었다. 훈련 받지 못하고 억압된 권리는 이렇게 맥을 못쓴다. 이만한 일에도 겁을 먹으니. 그리고 권리와 이득 앞에서 저울질이나 하고 있으니 정말 비겁하다. 움추러든 마음이 펴지질 않는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와 임길택이 겹쳐 보인다고 하는데 동의한다. 자연스러움과 체하지 않는 모습, 자신 또한 한 사람의 욕망 덩어리요,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낮은 마음, 아이들에게 ‘나 좀 가르쳐 다오, 오늘 내가 너에게 배웠다’ 하는 모습은 내가 아는 임길택과 탁동철이 통한다.

밑줄 그을 데가 많고 배꼽 잡을 때 또한 많은 책이다. 너무나 친근한 내 고향말도 눈에 띄어 더 반갑다.

마음에 새기고 싶어 여러번 되돌아 읽은 부분을 다시 잊지 않으려고 옮겨적는다.

 

“이제부터 2학기다. 또 시작이 아니라 세상에서 처음 맞는 시작이다. 굳지 않은 말, 닿아 있는 말들로 잇고 쌓아서 세계를 새로 지어 나가고 싶다.(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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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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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나는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여 오랫동안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열등감에 빠져 있어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인가.

심리훈습에세이라는 낯선 이름표를 단 김형경의 <만가지 행동>을 읽고 내가 얻은 결론은 후자인 것 같다. 마음이라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또한 분명하지 않다. 행동대로 하면 되는가 했는데 실천이란 그 마지막 단계다. 누구나 알되 실천하지 못하는 한계와 만나게 되어 있다. 이 책은 그녀가 앞서 쓴 심리에세이 완결편인데 산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힘을 써야 하는 것 만큼 큰 고비로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정신분석에 대해 이미 가진 지식이 있는 사람한테 해당한다. 즉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실천의 방법은 너무 높이 있는 것 같고, 나는 아직 내 마음 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그 사이 몇 년이 흘렀는데,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나는 ‘살았는가, 살아졌는가’. 이런 반응 뒤에 또 허겁지겁 이것저것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밑줄을 그으며 오래 새기고 싶은 말들이 많다. 위로를 받을 만한 조언들도 많다. 프로이트와 융, 예수와 부처, 혹은 요가수행과 노자, 장자, 그리고 수많은 여행에서 그녀가 경험한 내적인 사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지금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맺어진 결과 혹은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오랜 훈습 과정을 겪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과정이 어디 쉬이 나오는 것이던가.

이건 분명 ‘저항’의 마음인 것 같다. “흠, 당신은 이토록 많은 공부와 여행,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인류에게 성인으로 받들어지는 사람들이 한 말의 본질에 다가갔군요. 그런데 오늘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도 모른채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전혀 없잖아요. 그 사람들은 몰라서 행복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마음이고 뭐고 그런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죠 뭐. 그럴 수 있다면. 문제는 그런 사람들과 난 좀 달라 하는 저 같은 사람은요, 도무지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쑥대밭이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지 알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하나요? 혼자 책읽고 공부하는 것도 제자리고요. 여행은 꿈도 못꾸지요.” 이런 말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

늘 이랬던 것 같다. 당신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마음 밑바닥에는 열등감이 자리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의 말이나 마음에 관심을 두겠는가 하는 마음 안에는 인정받고 지지 받고 싶은 어린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 속에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있지만 낮은 자존감은 그 마음 조차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찐득허니 자라지도 않고 딱 그만큼으로.

김형경은 원인을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과 지지와 인정을 받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아마 내가 또다시 울고 말았던 대목이 여기쯤이었다. 친정 엄마와 가족에게는 단 한번도 내색해보지 못했던 깊은 우물 속 자갈처럼 분명한 마음의 돌. 확실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내 부모의 처지 또한 가엽다는 것이 내가 조금 변한 부분이다.

책의 어느 대목 쯤에 안 좋은 상황이 3대쯤 세습되면 그 3대 누군가에게 정신병증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몰래 안도의 숨을 내 쉰 것은 내 부모가 열등감을 물려주었으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나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과 나는 내 아이에게는 절대 이것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십 년이 흘러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의 원인을 안 것은 꽤 지난 일이다. 늘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좋은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갖게 한 것이 이 열등감이다.

남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분별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이 생기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정답을 알려주듯이 보편적인(그런것이 있을수가 있겠는가마는)행동 강령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은 저자 자신이 훈습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라 그것을 나에게 적용해도 되는 지 의문이 생기고 말았다. 그 전의 책에서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고 얻은 결론은 처음부터 다시였다.

이미 김형경은 정신분석을 끝내고 어느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독서모임을 통해 분석가 혹은 치료자의 위치에 서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 단계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다. 어느 위치, 어느 단계는 꿈도 못꾸고 다만 현재의 내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알아내서 내게서 끝나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내 가족이 나를 규정지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 대가로 누리는 지금의 여행이 즐겁다는 칠십 대 할머니 같은 존재감을 획득하고 싶은 것이다.

정신분석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대상이 신이라는 결론에 동의하면서 특정 종교가 아닌 일반적이 종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아주 소박하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래도 된다는 것, 좋은 사람 페르소나에 억압되어 있는 자유 의지를 이제 꺼내어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만가지 행동>을 읽으며 프로이트나 융, 예수, 부처, 노자, 인도의 수행자 같은 대상들을 걷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기대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책과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그들을 다 알아야 하는가라는 저항의 마음이 책을 다 읽을 즈음에 가서야 이런 마음으로 바뀌었다. 즉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기를 한 것이다.

가장 소중한 거둠은 유효기간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마음과 접속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에 집중하고 묻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위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전이와 역전이가 일으키는 소란스러움 혹은 싸움들도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고 힘있게 늙어가기를 희망한다.

내 삶의 결론은 죽음으로 끝날테고 죽음의 순간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단계를 소망한다.(가장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많은 감정의 입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지만 <만가지 행동>을 읽는 과정 속에서 생긴 지금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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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6 14:32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