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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서 바람 불어 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굳이 정호승의 '풍경 달다'라는 시를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깊어가는 밤, 타박했던 겨울비 그치고 이내 바람이 분다. 서재 처마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따라 흔들거리며 맑고 청아한 소리로 부른다. 혹 그믐달 비출까 싶어 격자문 열고 토방을 내려서는 찰라 쨍그랑 한번 더 풍경 소리 들린다. 서둘러 서툰마음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경종을 울리나 보다. 별 두개뿐인 하늘 한번 처다보고 쫒기듯이 격자문 걸어닫고 이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물거리는 꿈 속 인듯 가만히 풍경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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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사는 나는... "


*윤보영 시인의 '가슴에 내리는 비'라는 시의 일부다. 이 시는 "내리는 비에는/옷이 젖지만/쏟아지는 그리움에는/마음이 젖는군요/벗을 수도 없고/말릴 수도 없고"라며 처절하게 열어간다. 그리움에 젖지도 못하는 마음이 내리는 비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가고만다. 시의 힘인지 비의 끌림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


스스로 진 멍에가 버겁고,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 더 무거운 시기를 건넌다.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추워서 억지로 마알개진 정신으로 건너야할 이 겨울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몽개몽개 피어나는 비라니 도대체 어쩌자고 이럴까 싶다.


비로 내려 가벼워진 구름이 산을 넘어와 안개로 변하더니 헐거워진 옷깃 사이로 자꾸만 파고 든다. 속절없이 당할 판이다. 별수없이 옷깃을 여미고 마음깃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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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 먼 산들이 모여 골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안개가 드리웠다. 화순 백아산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그 품이 넉넉하고 아늑하다.

어쩌면 산에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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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서재 책장을 둘러보는 사람들 중 조심스럽게 책을 빌려보기를 청하는 경우가 있다. 기꺼이 응하지만 돌아오리란 기대는 크지 않다. 그렇게 책을 빌려간 분이 책을 돌려주며 책 사이에 담아온 물건이다.

잘 다듬어진 나무의 결이 살아있다. 얇고 매끄럽고 단단하다. 가볍고 부드러워 손에 착 감겨든다.

하여, 책을 읽는 동안 손에서 떠나지 않은 놀잇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책갈피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마음이 가는 책갈피를 만난적이 없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했던가. 쓸 데 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의 의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상지喪志하지는 말자.

썩 마음에 드는 완물玩物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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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나면서부터 꽃 피워 절정으로 살다 질 때까지 수고로움이 담겼기에 꽃 지고 말라버린 후 불에 타면서도 향기와 함께 한다.

다양한 종류의 국화와 구절초, 작약, 꽃범의꼬리 등 꽃이 지고 난 흔적을 정리하고 텃밭에서 태우고 다시 생명을 키울 땅으로 돌려보낸다. 게으른 이가 조그마한 뜰을 가꾸며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일 중 하나다.

지고난 꽃 태우니 꽃향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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