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후로 시장에는 생대추가 나온다.

아삭아삭하면서 살짝 단맛이 나는 생대추.

사과나 배는 일정 온도에서 저장되어 마트에서 늘 만날 수 있지만

대추만큼은 지금에만 맛볼 수 있는 열매다.

일 년에 한 번, 지금에만 있는 것 중 하나다.

    

 

 

보름달이야 한 달에 한 번 늘 하늘에 뜨는 거고, 추석 보름달이라고 뭐 다른 게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보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평소보다 보름달이 좀 더 크고 환했으며,

그 안의 토끼도 선명해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 모습을 그대로 다 담아내고 싶었으나 내 카메라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후후훗...

열 번 이상은 찍은 거 같은데 달 안의 토끼를 담는 건 욕심이고, 

죄다 달빛이 흔들려서 그나마 저 사진 하나 건질 수 있었다.

어쨌든, 추석 보름달,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8-09-27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 모습 사진으로 잘 담으신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쬐~그맣게 밖에 못찍겠더라고요. 그래도 달 구경은 실컷 했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아주 환하고 선명했어요.
생대추도 이번 추석에 타이밍이 잘 맞아 먹을 수 있었는데 대추 크기가 해가 갈수록 커지는 것 같아요 ^^

연두빛책갈피 2018-09-27 19:19   좋아요 0 | URL
못난 사진이라는 생각에 살짝 머쓱했었는데, 사진으로 잘 담아냈다는 hnine님의 댓글 덕분에 기분 좋아지네요. 감사합니다.^^
생대추! 건대추와는 다른, 열매만의 싱싱함이랄까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
김연숙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책이 있다.
이미 완독을 한 사람들에 의하면 꼭 한 번쯤 읽어보라며 추천되는 그 책, 바로 박경리의 『토지』이다. 그러나 무려 2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고, 수많은 사람이 등장해 수많은 관계가 얽히고설킨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혹시나 어렵지는 않을까, 복잡하지는 않을까 염려부터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한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토지』 [인간, 계급, 가족, 돈, 사랑, 욕망, 부끄러움, 이유, 국가]라는 9개의 키워드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삶을 두루 살펴보는 인문학 책이다.

 

 
  『토지』에서 중심인물은 최참판댁의 무남독녀 ‘서희’다. 그녀는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가로챈 조준구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하고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토지』는 이외에도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인물에 대한 구분 없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두고 저자는, 『토지』는 수많은 삶의 굴곡을 마주 볼 수 있는 ‘인간백화점’이라며 주어진 운명이나 굴레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거복이와 한복이 형제가 그러했다.
최치수 살인죄로 아버지는 사형을 당하고 어머니는 목매달아 죽었을 때, 형제는 외갓집에서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는다. 외갓집을 뛰쳐나간 거복이는 간도로 가서 김두수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 밀정 노릇을 하다 나중에는 일본 순사 부장이 되는 한편, 한복이는 외갓집이든 고향이든 구박을 견디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간다. 두 형제 모두 부모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산다고 여겼지만, 한복이는 어느 순간 "나는 나다! 아버지도 형님도 아니다"라며 자기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꼽추 도령”으로 나오는 조병수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탐욕스럽고 극악한 부모의 행태(아버지 조준구는 서희 집안의 재산을 가로챈 인물이다)와 자신의 장애로 인해 늘 자책하고 살았는데 목공 일을 시작하면서 삶의 가치라든가 능동성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자신이 혹으로 느꼈던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더 이상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뭔가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어디 어디에는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 틀에 얽매이지 말아야지, 그저 다짐한다고 혹은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달라져야, 다른 일을 해봐야, 다른 행동에 나서야 그야말로 다르게 살게 된다는 것을 한복이를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p.70)

 


  다르게 산다는 것,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삶의 재배치’를 언급한다. 삶의 재배치란 “모두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흐름을 벗어나 새로운 장 속으로 자신을 옮겨 가는 일(p.78)”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집에서 공부하는 대신 독서실에 간다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듦으로써 자신을 그러한 관계, 그러한 장소로 옮겨놓는 것이다. 서희 역시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가서 사업을 하고(새로운 공간), 길상이와 결혼을 해서(새로운 관계)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저자의 설명과 함께 『토지』의 여러 인물을 들여다보니,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남편보다 아들보다 돈이 중요한 임이네, 질투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친 강청댁,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게 다 너 때문이라며 구천이를 패는 봉기와 마당쇠, 최치수의 아들을 낳고 작은 마님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던 하녀 귀녀 등. 이들은 늘 남 탓을 하고 무엇무엇 때문이라는 이유도 책임도 다 외부로 돌리며 남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물론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도 있다.
자기들의 잘못을 알고 본인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았던 두만네 내외, 타인의 입장에서 그 고통을 상상해보고 공감할 줄 아는 영팔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아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거리낌 없을 수 있었던 윤보, 서럽고 힘든 가운데서도 사는 것의 소중함을 찾아내는 주갑이 등등. 이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삶, 삶 중심에 자신을 두는 삶을 살았다.

 


  이 책은 『토지』를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줘서 여러모로 고마웠다. 특히 9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큰 범주는 『토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인간관계나 삶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삶은 열심히 가다듬는 작업과 수고와 노력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서, 더불어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토지』의 수많은 인물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수단이 아닌 목적을 중시하는 삶을 살 것. 그리하여 우리는 나도 너도 비교 불가능한, 특별한 그 무엇임을 마음에 늘 새겨야 할 것이다.

 

결국 목적으로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개개인마다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그 무엇이 됩니다.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나의 목적이고, 너의 삶은 너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각각의 목적과 각각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비교 불가능한 '나'인 것입니다. (p.239~p.2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현실주의작가 롭 곤살베스(Rob Gonsalves)의 책 『 Imagine a Day』의 어느 한 페이지.

책 가격이 살짝 비싼 편이라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한참을 고민했지만, 

구입한 뒤 그림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어서 정말 만족한 책이다.

아끼는 책이라 아주아주 가끔씩 펼쳐보고 있다. 오늘 마음에 든 그림은 바로 이것.

내가 저 아이이겠거니, 하며 마음껏 그네를 타는 상상을 하는 중이다.

그네가 저만치 뒤로 갔다가 앞으로 쭉 뻗어 나올 때,

자꾸만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치고 싶어지는 건 안 비밀이다.

얏호~신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하면 떠오르는 추억 중 하나는 바로 놀이공원에 관한 것이다. 하나같이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기구들과 알록달록한 장식들, 그리고 흥겨운 음악 소리. 그곳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혼을 쏙 빼놓는 곳이자 마치 동화 속 세상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 거대함과 화려함이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먼 훗날 그곳을 다시 갔을 때는 어렸을 적의 감동과 감흥을 그대로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신나고 즐거운 곳이기는 했으나 어린아이가 느꼈던 반짝임과 마법 같은 분위기는 사라졌다고나 할까. 이런 말에 어쩌면 누군가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하지 않냐고,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펼치는 세계명작동화마다 공주님과 왕자님이 나오고, 마법사는 이런저런 마법을 부리며 뭐든 이루어지게 하는 만큼 자유롭게 어떤 상상이든 가능하다. 그러니 그것이 정말 실존하는지의 여부는 잠시 내려놓고 그것 또한 아이들의 세상이라고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에서 소녀가 “여왕이 어린 여자아이를 잡아가서 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남자로 변장을 해서 여왕을 속여야”(p.24)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굳게 믿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일곱 살 생일까지는 남자애이고 이후에는 여자애가 된다는 말에 어쩐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게는 말이 안 되는 얘기더라도 아이 자신에게는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우리가 같은 세계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이들 측면에서는 그들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나름의 세상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배수아의 소설집 『뱀과 물』 속 단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어린 시절 분위기와는 많이 다름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보통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이들만의 순수함, 해맑음, 환하고 밝은 느낌들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 책의 작품들은 어딘가 무겁고 거무스름하고 괴이하며 불분명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꿈과 현실을 오가는 생생한 경험들이 인상적이다. 배수아 작가의 글은 그 혼돈스러운 경계 속에서 삶과 죽음에 밀착하며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중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에서는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찾아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다른 단편 「노인 울라(Noin Ula)에서」로 이어진다. 노인 울라는 가장 북쪽에 있는 기차역으로 그곳에 도착한 소녀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외모를 설명한다. 역장도 부관도 그것은 사령관의 외모라 말하자 소녀는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머무르게 되고, 그러던 중 긴 머리를 붉은 리본으로 묶고 있는 눈먼 소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 눈먼 소녀는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에서도 잠깐 등장했었다. 소녀는 그녀를 경찰서 분실물-미아 센터에서 본 적이 있다.

 


  「노인 울라(Noin Ula)에서」는 소녀와 눈먼 소녀와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두 소녀는 여러 부분이 비슷하다. 둘 다 이름이 ‘눈 아이’라는 점, 눈먼 소녀도 소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찾고 있다. 그리고 소녀의 어머니는 서커스의 여자마술사로 특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마술인데, 눈먼 소녀의 어머니는 흉노 여왕을 위해 일하는 마법사로 그 자리에서 모습이 쓱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소녀는 눈먼 소녀와 다른 존재임에도 둘은 때때로 겹쳐 보인다. 눈먼 소녀가 교수형을 당해 죽고 붉은 리본만이 남았을 때, 소녀는 그것을 주워 자신의 짧은 머리에 묶고 그대로 사라진다. 그날은 소녀의 일곱 살 생일이었다.

 


  이 책은 꽤 흥미롭다. 어떤 요소들은 다른 소설 속에서 조금씩 다른 구성으로 재등장하거나 반복되었는데 그럼으로써 각각의 소설은 다르면서도 닮아 있었고, 불안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뽐내면서도 저마다의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오지 않은 나에게, 누나는 넌 여자애인데 언제까지 사내아이처럼 하고 다닐 거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가 하면(「얼이에 대해서」), 교사는 반에서 키가 가장 작은 아이 리우진을 두고 사내아이가 아니었냐며, “일곱 살처럼 보이는 열두 살 여자아이가 정말로 앉아 있었던 걸까.”(「1979」, p.102)라며 문득 기묘한 의문에 휩싸인다.
  이웃에 사는 아이이자 내 짝인 얼이는 나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마술사가 되기 전에 반두의 왕이었다고 하고(「얼이에 대해서」), 언덕 꼭대기 작은 식당에서 열린 시낭독회에 방문한 화자는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할머니가 반두의 여왕이었을지도 모른다 말한다.(「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소녀와 소녀가 짝을 이루는 조합 역시 이 책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소녀와 눈먼 소녀(「노인 울라(Noin Ula)에서」), 키 큰 소녀와 리우진(「1979」), 나와 “나는 네 언니야.”라고 말하는 소녀(「도둑 자매」)들은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결속력과 동질감을 형성한다. 같이 집에 간다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가끔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때로는 비밀을 공유하며 아무에게 말하지 말아달라 약속을 주고받는다. 반면 소녀와 소녀는 아니지만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면 나와 얼이(「얼이에 대해서」)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어쨌든 이들에게 있어 나와 너라는 구분은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의 우리라는 것은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웃으면서, 춤추는 듯한 걸음걸이로 나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친 최초의 낯선 것이었다. 그 마주침으로 인해 소녀는 나이자 곧 세계가 되었다. (「도둑 자매」, p.154) 

 


  이 책의 표제작인 「뱀과 물」은 읽으면서 어렵게 느낀 작품이고,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이 떠오른 작품이다. 여기서는 한 인물이 내면의 여러 인물로 분열되는데 여교사 김길라는 상황에 따라 전학생 김길라가 되기도 하고 늙은 김길라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뱀과 물이 나오는 꿈을 꾸고는 한다. 그런데 꿈의 내용이 무척 기괴하다. 오물과 배설물과 피, 찢기는 장기와 잘리는 머리, 끔찍한 태아의 모습이 가학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여교사는 이 모든 광경을 거울을 통해 본다. 자신의 모습에 충격에 빠진 그녀는 거울을 깨뜨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깨진 거울이 참혹한 그녀의 모습을 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교사는 자신을 죽여달라 애원하지만 뱀과 물은 그러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이다.

 


  그런데 자주 꾸는 그 꿈이 여교사에게는 어린 시절보다 오히려 더 선명한 시간이고 직관적 인식에 가깝게 한다. 오래전의 일은 “피부 아래의 아득한 감각”으로 남아 있을 뿐, 여교사는 어린 시절을 두고 “그것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고”(p.223) 생각한다. 한편 「1979」에서 교사의 동생은 어린 시절에 대해 그런 건 없다며 그 자체를 망상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1979」, p.94)


 

  이들의 의견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늘어놓거나 혹은 어린 시절은 그런 게 아니라며 부정할 마음은 없다. 어린 시절은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니까. 간혹 선하고 아름다운 관점으로 무조건 좋은 점만 바라보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도 왠지 조금 불편하다. 당사자가 경험하고 느낀 것은 무시됨과 동시에 어느 일방적인 면만 주장되는데 그 역시도 어찌 보면 일종의 편협적인 사고가 아닐는지. 그리고 그러한 태도 자체가 사람을 압박하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 약간 거북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소녀였고, 교사였다가 여교사 김길라였다가 할머니의 푸른 양철 가방을 들고 여행하는 화자였다. 등장인물들을 따라 여러 어린 시절을 겼었으며, 그들의 꿈을 따라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과수원집을 갔다가, 해변을 가기도 했다. 「도둑 자매」에서 소녀가 눈을 감았다 뜨니 “그사이에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p.169)라고 하는데 나 역시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어린 시절) 대신, 지금에 집중하며 앞으로 현재와 미래를 잘 이어나가자 다짐해본다. 그런데 어떻게?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언제 어디서든 몇 번이고 되뇔 수 있는 문장부터 정해볼까 한다. 소설에서는 화자들을 맴돌며 반복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니 이 부분을 자신에 맞게 활용해 “한번 소리 내어진 말들은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도둑 자매」, p.152)” 여기고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키워나가면 어떨까 싶다. 자기만의 주문을 만들어 틈틈이 말해볼 것. 어느 순간에는 분명 그 자체로 환기가 되고 큰 힘을 발휘해주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 하늘은 더없이 높아지고,
구름은 매 순간 모양을 달리하며
나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검푸른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자리하는데
어쩜 그렇게 쉼 없이 반짝이는지
별 하나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별을 좋아하면서도 별자리는 모르는 나.
그러면 뭐 어떠한가, 그냥 그 자체가 좋을 따름이다.
잠시 뒤 큰 삼각형 사이로 비행기 하나가 지나가고,
그 모습에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는 기분이겠거니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이 더 설레기 시작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별이랑 2018-09-1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별자리 이름쯤 모르면 어떤가요~ 알면 좋겠지만...
밤하늘 사진에 뭔가 움직이는 듯해서 클릭해보니, 연두빛책갈피 님 밤하늘에 유혹당하셔서 꽤 오래도록 찍으셨나봐요. 저 미세한 움직임들 !

연두빛책갈피 2018-09-12 20:22   좋아요 1 | URL
눈으로 봤을 때는 더 멋졌는데 그대로 못 담아내서 살짝 아쉬워요~요즘 밤하늘 깨끗하고 맑고 나름 멋지더라고요

hnine 2018-09-1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반전이고 압권이예요!

연두빛책갈피 2018-09-12 20:22   좋아요 0 | URL
모기한테 물려가며 찍은 보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