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 쓸모 있는 인간 -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
김연숙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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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책이 있다.
이미 완독을 한 사람들에 의하면 꼭 한 번쯤 읽어보라며 추천되는 그 책, 바로 박경리의 『토지』이다. 그러나 무려 2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고, 수많은 사람이 등장해 수많은 관계가 얽히고설킨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혹시나 어렵지는 않을까, 복잡하지는 않을까 염려부터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한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토지』 [인간, 계급, 가족, 돈, 사랑, 욕망, 부끄러움, 이유, 국가]라는 9개의 키워드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삶을 두루 살펴보는 인문학 책이다.

 

 
  『토지』에서 중심인물은 최참판댁의 무남독녀 ‘서희’다. 그녀는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가로챈 조준구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하고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토지』는 이외에도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인물에 대한 구분 없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두고 저자는, 『토지』는 수많은 삶의 굴곡을 마주 볼 수 있는 ‘인간백화점’이라며 주어진 운명이나 굴레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거복이와 한복이 형제가 그러했다.
최치수 살인죄로 아버지는 사형을 당하고 어머니는 목매달아 죽었을 때, 형제는 외갓집에서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는다. 외갓집을 뛰쳐나간 거복이는 간도로 가서 김두수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 밀정 노릇을 하다 나중에는 일본 순사 부장이 되는 한편, 한복이는 외갓집이든 고향이든 구박을 견디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간다. 두 형제 모두 부모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산다고 여겼지만, 한복이는 어느 순간 "나는 나다! 아버지도 형님도 아니다"라며 자기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꼽추 도령”으로 나오는 조병수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탐욕스럽고 극악한 부모의 행태(아버지 조준구는 서희 집안의 재산을 가로챈 인물이다)와 자신의 장애로 인해 늘 자책하고 살았는데 목공 일을 시작하면서 삶의 가치라든가 능동성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자신이 혹으로 느꼈던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더 이상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뭔가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어디 어디에는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 틀에 얽매이지 말아야지, 그저 다짐한다고 혹은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달라져야, 다른 일을 해봐야, 다른 행동에 나서야 그야말로 다르게 살게 된다는 것을 한복이를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p.70)

 


  다르게 산다는 것,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삶의 재배치’를 언급한다. 삶의 재배치란 “모두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흐름을 벗어나 새로운 장 속으로 자신을 옮겨 가는 일(p.78)”을 말한다. 예를 들면 집에서 공부하는 대신 독서실에 간다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듦으로써 자신을 그러한 관계, 그러한 장소로 옮겨놓는 것이다. 서희 역시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가서 사업을 하고(새로운 공간), 길상이와 결혼을 해서(새로운 관계)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저자의 설명과 함께 『토지』의 여러 인물을 들여다보니,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남편보다 아들보다 돈이 중요한 임이네, 질투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친 강청댁,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게 다 너 때문이라며 구천이를 패는 봉기와 마당쇠, 최치수의 아들을 낳고 작은 마님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던 하녀 귀녀 등. 이들은 늘 남 탓을 하고 무엇무엇 때문이라는 이유도 책임도 다 외부로 돌리며 남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물론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도 있다.
자기들의 잘못을 알고 본인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았던 두만네 내외, 타인의 입장에서 그 고통을 상상해보고 공감할 줄 아는 영팔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아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거리낌 없을 수 있었던 윤보, 서럽고 힘든 가운데서도 사는 것의 소중함을 찾아내는 주갑이 등등. 이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삶, 삶 중심에 자신을 두는 삶을 살았다.

 


  이 책은 『토지』를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줘서 여러모로 고마웠다. 특히 9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큰 범주는 『토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인간관계나 삶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삶은 열심히 가다듬는 작업과 수고와 노력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서, 더불어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토지』의 수많은 인물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수단이 아닌 목적을 중시하는 삶을 살 것. 그리하여 우리는 나도 너도 비교 불가능한, 특별한 그 무엇임을 마음에 늘 새겨야 할 것이다.

 

결국 목적으로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개개인마다 아주 고유하고 특별한 그 무엇이 됩니다.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나의 목적이고, 너의 삶은 너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각각의 목적과 각각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비교 불가능한 '나'인 것입니다. (p.239~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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