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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ㅣ 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시는 긴 문장을 이루는 산문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의 단어로도 얼마든지 풍성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가 주는 매력 중 하나다. 시에서는 종종 주어나 목적어의 생략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독자들은 알아서 그 여백을 채워 넣고 공감을 하며 긴 여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시라도 때로는 반대로 느껴질 수도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어휘나 간단한 단어들임에도 그것들이 나열 혹은 연결되었을 때, 시의 흐름을 따라가기 좀처럼 어려운 시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온』은 내게 그런 시집이었노라 솔직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지 않고 바로 시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온』은 시의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아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어려워 우왕좌왕했다.
슬픔과 침묵, 낮은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시인만의 어조와 서술 방식.
시인의 독특하고도 낯선 감각 속에 유영하면서 최선을 다해 시를 읽는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버리고 시에 다가서기로 한다.
그 안에서 생략된 것들을 다 읽어내고 온전히 작가의 생각과 시선을 이해하면 좋겠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언어를 빚어낸 사람만이 오롯하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삶은 인생의 경험에 따라 저마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단어 하나에도 독자들은 아마 다 다른 것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부분 부분만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만족한다. 그것이 내가 시를 읽고 즐기는 방법이다.
시를 읽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물, 여름, 꽃, 뿌리, 소문, 거울, 아이, 마음)이나 표현(구부러지거나 휘어진다와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거울’은 보통 옷매무새나 외모를 점검할 때 많이 쓰인다. 꼭 그 용도가 아니더라도 거울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아닌 사람도 있다. 비추는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 그런데 『온』에서의 거울은 주로 '마음'을 투과시킨다. 어떤 이유나 감정에서든 거울은 마주하는 게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리하여 깨뜨릴 수밖에 없고 그 파편들은 결국 얼굴 또한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날카로운 세계가 된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비틀린 목소리로 말하고 휘어진 거울을 들고 다녔어.(...)
눈물의 모양을 감춰둘 수 없어서 다 깨뜨렸다. 거울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네가 태어나기 전에」中)
거울은 칼날의 세계, (「인디언 텐트」中)
정면에서 찍은 거울 안에/아무도 없다//(「질의응답」中)
거울이 잠깐씩 놓치고 있는 것, 슬프고 비참한 것(「정결中」)
슬프고 무너지는 마음, 부드럽게 부서지고 쉽게 상할 수 있는 마음.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 거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때일수록 무조건 긍정을 외치고 남에게 왜 그런 마음이 되지 않느냐며 가르치듯 타박하는 사람도 있던데 글쎄, 마음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긍정과 밝음도 좋지만 억지로 했다가 오히려 더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점, 그러니 제발 강요하지는 말자. 지금은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두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버팀이자 나름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이다.
버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불 꺼진 고백」中)
슬픔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드러움에 닿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中)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톱니」中)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한 사람이 있는 정오 」中)
그러다 “'요가학원에 갔다가/ 숨 쉬는 법을 배웠다”로 시작하는「문턱에서」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이 시는 가슴을 끝까지 열어서 발밑까지 숨을 채우는 것, 몸을 여는 호흡법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이미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몸을 열어 숨을 편하게 쉬는 이러한 호흡법도 연습해볼 일이다. 턱 밑으로 내쉬는 숨이 아닌 온몸으로 채우는 숨을. 천천히 숨을 들이 마신 후 다시 끝까지 숨을 내쉬어 본다. 거울도 마음도 잠시 잊어두기를. 지금은 더 좋은 숨을 쉬기 위해 호흡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