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사를 앞두고 있어 심란하다. 남편은 이주간의 해외 출장에, 한 주는 집 보러 다니고, 또 한 주는 집계약에 돈 빌리러 다니느라 한 달째 못 내려오고 있다. 난 완도에 앉아 전화로 지시하고 결정하고... 몸은 편안한데 마음은 무지하게 심란. 한달음에 달려가기엔 서울도 원주도 멀기만 하여 남편의 눈과 마음을 믿으며 모든 걸 맡기고 있다.

어제 아침 싱가폴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쉬지도 못하고 원주에 가서 그동안 가계약 상태였던 집을 정식으로 계약하고, 대출 문제까지 해결했다. 시끄러운 은행에서 전화로 오랫동안 삼각 상담(은행 담당자와 남편과 나)을 한 후 서울로 간다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울적해져서는 방에 들어가 잠시 누웠는데, 돈 없는 것도 남편이 안 오는 것도 다 서글퍼져서리 눈물이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눈물은 계속 나오고... 전화해서 누군가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은데 6시가 넘어가고 있으니... 아줌마들은 저녁 준비할 시간이겠구나 싶어 포기...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딸아이를 불렀다. 

"딸아, 엄마가 눈물이 난다. 우리집엔 왜 이렇게 돈이 없냐? 자꾸 우울해진다야." 했더니 울 딸,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가 돈은 없지만 여행 많이 다녀서 마음이 넓어졌잖아. 엄마, 괜찮아!!!"  

아우 참, 딸의 이 한마디에 눈물이랑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우리가 여행 다니느라 돈을 못 모으는 줄 아는 딸. 

다시 내 말, "아빠가 피곤하다고 하길래 내려오지 말랬더니 진짜 안 오고 서울로 가는 거 있지! 혹시 아빠 올지 몰라서 샤브샤브 해 먹을려고 고기 사다 놨는데... " 울 딸, "엄마, 그랬어? 내가 나중에 아빠 교육 단단히 시켜줄게. 엄마 속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딸이랑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좀 풀려서는 아이들이랑 샤브샤브 칼국수해서 배 뚜들겨가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딸, 저녁 먹으며 하는 말, "엄마 우울증 걸리면 큰일 나. <화려한 거짓말>에 천지도 우울증 걸려서 죽었잖아." 그래서 또 웃었다. "알았어. 너 같은 딸이 있으니까 우울증 걸릴 일은 없겠다!"  이러면서 웃고...

어젯밤 잠든 딸 옆에 누워서 위로받을 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던지, "고마워, 딸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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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2-0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딸이 크면 친구가 돼서, 불행하게도 남편보다 훨 나을 때가 무지 많아요.^^

소나무집 2009-12-06 22:47   좋아요 0 | URL
울 딸 열두살인데 벌써 남편보다 제 마음 알아줄 때가 더 많아요.^*^
님은 딸이 둘이나 있어서 더 좋지요?

세실 2009-12-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예쁜 아이들이 소중한 재산이죠. 뭐 나중에 자식 덕 보고 살면 되잖아요. 쿄쿄쿄

소나무집 2009-12-06 22:48   좋아요 0 | URL
우리 세대에서는 진짜 자식 덕 보는 건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잘 키워놓고 덕 좀 보고 싶기는 해요.ㅋㅋㅋ

꿈꾸는섬 2009-12-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게 딸이 꼭 필요하다잖아요. 그 역할 톡톡히 해내니 더 예쁘고 사랑스럽네요. 엄마 마음 헤아려주는 딸이 부럽기도 하구요. 이사 준비로 너무 분주하시겠어요. 힘내세요.^^

소나무집 2009-12-06 23:17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걱정되는 일들은 많은데 부부가 늘 잘 되겠지주의자다 보니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요즘 남편이랑 수다 떤 지가 오래 돼서리 더 울적했던 것 같아요.

마노아 2009-12-0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제가 다 위로가 되는데 소나무님은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요. 이렇게 속깊은 딸내미가 있으니 소나무님은 참으로 부자세요. 여행으로 마음이 넓어졌다는 표현도 정말 근사해요. 제 마음이 다 넓어집니다.^^

소나무집 2009-12-06 22:53   좋아요 0 | URL
울 딸이 속이 좀 깊기는 해요.
제가 늘 끼고 살면서 엄마의 깊은 속을 다 보여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딸 표현대로 되려면 돈 없어도
아이들 마음을 더 넓혀준다 생각하고 여행은 계속 다녀야 할듯 하네요.

2009-12-0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9-12-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정말 의젓하고 대견하네요.
우리 딸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소나무집 2009-12-06 23:3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민이네 삼남매도 엄마 마음 헤아리면서 잘 클 거예요.
님이 자연 속에서 잘 키우고 있잖아요.

치유 2009-12-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권도 심사는 잘 마쳤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왔더니 이사날짜가지 잡으셨군요..
이래 저래 맘스시고 애스셨을 남편분에게 위로해드려야겠네요.

옆에 이런 딸이 있다는것은 행운중의 가장 큰 행운일거에요..아는 사람만 알지요??ㅋㅋ
기특하고 대견스럽고 그래요..그냥 듣기만 해두요..여행은 맘을 넓게 해주는게 확실한것 같아요.

샤브샤브 셋이서 맛나게 배부르게 먹고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었을 모습들이 참 이쁘다오^^_.

무슨 아파트 몇동 몇호에여??
오후 늦게나 도착하시겠네요..

소나무집 2009-12-07 16:53   좋아요 0 | URL
아이들 기말 시험 끝나는 거에 맞춰서 이사 날짜 잡았는데 시험이 일주일 미뤄져서는 결국 시험도 못 보고 이사 가게 생겼네요. 원주는 이번 주에 볼 것 같은데 울 얘들 기말 시험 없이 학년을 마칠 듯... 딸이 있는 사람만 그 마음 알지요?^*^

2009-12-07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2-0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두살 딸아이가 속이 참으로 깊네요. 부럽부럽~~~
전 님들이 딸자랑 할때 정말 속상한 사람이랍니다.^^
마음 편하게 이사 잘하시길 바래요~~~

소나무집 2009-12-10 09:12   좋아요 0 | URL
동생하고 싸울 땐 아기 같아요.
고마워요.

2009-12-0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12-09 11:26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