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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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술을 못 마신다. 불행하게도 내 몸에는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아세트 알데하이드를 제거하는 효소가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타인에 비해 대단히 적다는 것이다. 내가 술을 해독하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건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속이 거북해서 토하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보고 선배들은 자꾸 마시다 보면 술도 늘고 그런 증상도 사라질 거라며 위로와 함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러나 선배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의 체질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면서 어쩌다 참석한 술자리에선 언제나 술에 취한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단한 일과를 보내곤 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차라리 내가 마시고 취하는 게 낫겠다.'는 푸념을 넋두리처럼 내뱉으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정지아의 에세이집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는 나와 같은 특이 체질의 사람들에겐 그저 대리만족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술에 얽힌 작가의 잡다한 경험을 풀어놓은 이 책이 그닥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너스레와 솔직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틀에 박힌 유교적 사고방식의 굴레에서 성장했을 성싶은 그녀가 '여자'라는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과의 음주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남녀평등을 신념으로 삼았던 빨치산 아버지를 둔 덕분이 아니었을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엄마가 아니라 아빠에게 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엄마는 남녀평등을 원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지만, 당신 딸을 대하는 마음은 여느 엄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남자애들과 밤을 새워 논다는 걸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반면 아빠는 진정한 평등주의자였다!"  (p.22)


소문난 애주가이자 자칭 시티걸이었음을 강조하는 작가는 해가 짧은 구례의 산간 마을에서 고양이 네 마리와 두 마리의 개, 그리고 100세에 가까운 어머니와 함께 산다고 했다. 한적하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 듯한 풍경이지만 그녀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리산의 눈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술을 부르고, 혼자 취할 수 없는 기나긴 밤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술 한 잔에 녹아든 옛 시절의 추억과 사람들. 고향에서, 수배길에서, 강단에서, 먼 이국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주를 숟가락으로 떠 계란에 붇던, 큰아버지의 그 조심스런 손길이 그립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렇게 속절없는 게 아닐까. 무슨 일로 심사 복잡한 날이면 고립된 우주 같던 큰아버지의 방이 떠오르고, 큰아버지에게 술 한잔 대접하지 못한 게 마음에 얹히고, 위스키가 아닌 소주가 그리워진다. 위스키로는 달래지지 않는, 소주로밖에는 달랠 수 없는 어떤 슬픔이, 우리 민족에게는 있는 모양이다."  (p.106)


별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술보다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깨트릴 수 없는 벽에 잔금을 내고 종국에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서로가 확인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음료가 술 아니겠는가.


"나에게도 찬란한 젊음의 시절이 있기야 했겠지. 그때의 나는 몸 따위 돌아보지 않았다. 몸 따위, 하찮았다. 정신은 고결한 것, 육체는 하찮은 것. 그래서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는 모든 행위를 혐오했다. 혐오라니. 몸이 있어 존재하는 것인데. 젊은 나는 참으로 하찮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하찮게 천대해왔던 불쌍한 나의 몸에게 블루를, 귀하디귀한 블루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아름다운 육체가, 찬란한 젊음이 펼쳐보이는 어느 여름날의 천국에서."  (p.262~p.263)


누군가에게 술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위로와 희망의 손길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하는 마법의 양탄자가 되기도 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다리를 뻗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술이 우리에게 주는 크나큰 혜택일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늦둥이 딸로 태어나 독재정권으로부터 늘 감시의 대상이 되었던 작가가 술을 매개로 좋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꿈꿀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터, 그에 얽힌 질펀한 이야기들이 이보다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갑진년 새해 첫 주가 포근한 날씨 속에서의 진득한 미세먼지처럼 몽롱하게 흩어지고 있다. 술도 마시지 못하는 내게 한잔 하라고 권하는 듯 말이다. 나를 위로하는 누군가에게 건배를 청하고 싶은 밤. 그렇게 2024년의 첫 주가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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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누구나 한번쯤 꼴통보수를 꿈꾸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국적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한 번 꼴통보수나 돼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자신이 꼴통보수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이렇게 추정하는 까닭은 꼴통보수가 되었을 때의 혜택이 너무도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의 사저 주변에서 밤새 꽹과리를 치며 시끄럽게 하는 것은 물론 흉기를 들고 위협적인 행동을 일삼아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잘했다며 그의 누나를 대통령 홍보수석실에 특별 채용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욕설을 일삼는 목사도 언론이나 정계의 주요 인사들이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떠받드는 등 대한민국에서의 꼴통보수에 대한 대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면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분쟁지역이라며 일본 극우의 편에 섰던 자도 잘했다며 국방부 장관에 기용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하하고 막말을 일삼았던 자도 여당의 비대위원으로 기용하는 등 대한민국에서는 꼴통보수의 전력이 출세를 향한 징검다리이자 훌륭한 이력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언론도 그들의 비상식적 행동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 그들이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꼴통보수가 최고권력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 그를 비판했던 언론은 살아남기 힘들어짐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까지 고초를 겪었던 일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넘치도록 많이 보아왔고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혜택을 바라고 꼴통보수로 전향한 인물들이 여럿 있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둔 까닭에 취업 등 다방면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지인 중 한 사람도 지금은 누구보다도 철저한 꼴통보수가 되어 출세를 꾀하고 있다. 죄도 없는 자신의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한 대한민국의 공권력에 대해 적개심을 품을 만한데 그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내 인생은 또 내 인생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야당의 당대표를 살해하려 했던 인물도 어쩌면 꼴통보수로서의 이력을 쟁취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무분별한 행동도 우리나라의 공권력과 언론이 잘 무마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나중에 그 이력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층으로 진출할 수도 있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꼴통보수가 되기를 꿈꾼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그 혜택이 너무도 달콤하고 유혹적이어서. 차마 뿌리칠 수 없는 그 유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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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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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감정을 등급별로 명확히 선을 그을 수는 없겠지만, 소설가 최은영은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등급에 자신의 감정을 위치한 채 글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최은영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은 대체로 슬픔에 국한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의 슬픔, 타인이 느끼는 날것 그대로의 슬픔을 자신의 가슴에 넘치도록 가득 담아 자신이 쓰고자 하는 한 문장 한 문장의 소설에 고스란히 우려내는 것을 볼 때마다 내게는 없는 그 능력이 내심 부럽기도 하고, 이따금 질투를 쏟아낼 때도 있지만 작가의 재능을 아끼는 한 사람의 애독자로서 무엇보다 작가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소설을 쓰는 얼마 간의 시간 동안 그와 같이 깊은 슬픔에 젖어 지낸다는 건 개인의 건강에는 아무래도 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전달하는 낱낱의 감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건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어느 날 퇴근하던 길, 나는 그녀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나의 숨은 흰 수증기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p.44~p.45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최근에 발간되어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역시 우리의 감정 가장 깊은 곳을 자극한다. 은행원이었던 '희원'이 뒤늦게 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한 후 만났던 시간강사와의 관계와 헤어짐을 되돌아보면서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교지 편집부 활동을 함께 했던 세 사람의 경험과 한계를 그린 '몫', 비정규직 문제 속에서 동갑내기 인턴 다희와 카풀을 하면서 전혀 다른 대화를 하는 지수의 관계를 다룬 '일 년',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부모 역할을 해온 언니와 그 언니가  결혼을 한 후 형부로부터 무시당하는 현실의 모멸감에 맞서려는 ‘나’의 모습을 그린 '답신', 텃밭을 배경으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준 오빠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여동생 이야기를 담은 '파종', 작고한 이모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온 조카의 관계를 그린 '이모에게' 어릴 적 식모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기남이 결혼하여 홍콩에 살고 있는 작은딸을 만나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의 작은 실수와 손자인 마이클의 위로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기남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는 방들이 있었다. 언제든 그 문을 열면 기남은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 중식당의 냄새, 식기의 모양, 음식의 종류, 노인 옆에 있던 젊은 남자, 그러니까 노인의 아들이 입었던 옷과 큰언니라는 사람의 표정까지도. 기남은 살면서 수시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기억의 세부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여전히."  (p.306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중에서)


감정의 소모는 체력의 소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몸속 에너지를 허비함은 물론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타인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에 몰입하는 배우처럼 최은영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각각의 인물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모두 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죽어서라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단순한 진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으며, 그가 자신에게 준 마음을 갚을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진실이었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지울 수 없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으리라는 진실이었다."  (p.199 '파종' 중에서)


새해가 시작된 후의 며칠은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남은 날들이 많아서 하루를 설렁설렁 보내는 탓도 있을 테고, 1년의 아득한 날들을 계획하다 보면 사는 게 참으로 부질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밀린 숙제를 하듯 분초를 다투며 바삐 움직이던 12월의 농밀한 시간에 비하면 1월은 얼마나 성근 시간들로 채워지는가. 최은영의 소설집을 읽다 보면 가슴 한켠에 '쿵' 하고 무거운 바윗덩이가 얹히는 느낌이 든다. 가벼워지기 쉬운 연초의 내 발걸음에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채우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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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는 어떡하라고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물론 멧돼지 세계에서 새해는 그닥 큰 의미도 없지만 말입니다. 11월부터 시작된 짝짓기의 계절이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 마무리되는 까닭에 미처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한 수컷 멧돼지의 공격성이 날로 더해져 우리를 미워하는 인간들로부터 더욱 큰 미움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맘때입니다. 리더 멧돼지인 나로서는 이 시기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짝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지질한 멧돼지의 우발적인 공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괜한 공격으로 인해 가뜩이나 낮은 나의 지지율이 더욱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오늘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나를 지지하는 부산의 어느 지질한 멧돼지 한 마리가 인간을 공격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대한민국의 차기 지도자로 물망에 오른, 유명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백주대낮에 벌인 어처구니없는 짓에 나 역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범죄 혐의를 받는 아내 멧돼지로 인해 가뜩이나 골머리가 아픈 이 시점에 나를 추종하는 멧돼지 한 마리가 벌인 최악의 노상 공격으로 인해 나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럴 땐 언제나 일본에 있는 기시감 멧돼지를 만난다는 핑계로 일본을 찾고는 했는데 갑자기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시감 형님의 지지율은 나보다도 낮은 10%대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이제 나는 사면초가에 처한 듯합니다. 올해 선거가 있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날리면 멧돼지의 지지율 역시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나는 리더 멧돼지로 당선되자마자 두 나라의 형님 멧돼지에게 충성을 맹세했는데 그들 멧돼지마저 정계에서 물러난다면 그야말로 나는 고립무원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며칠째 하늘이 어둡습니다. 나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울고 싶은 이 마음.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만 바라보네'로 시작되는 옛노래가 떠오릅니다. 노랫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듯합니다. 아아, 나는 어떡하라고.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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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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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한 해가 신기루처럼 흘렀다. 시간 속으로의 '그 용감한 낙하를 누군가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또 우리 앞에 다가올 갑진년 한해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무모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던 게 2023년 9월 말경이었다. 하루키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그의 신간 소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하는 처지이니 구매 후 굳이 뜸을 들일 필요도 없었던 게 사실, 760쪽이 넘는 꽤나 긴 이야기지만 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렇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만큼은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망각한 채 너무도 쉽게 읽어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 가눌 길이 없었던 나는 맘에 들었던 몇몇 구절의 문장을 필사하며 작가의 생각을 어림해보려 애쓰곤 했다.


"내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지금 나 자신의 위치가 아마도 '저쪽'과 이쪽' 세계의 경계선 근처이리라는 것 정도였다. 이 반지하 방과 마찬가지다. 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도 아니다. 흘러드는 빛은 엷고 흐릿하다. 나는 그렇듯 어슴푸레한 세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장소에.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확인하려고 한다. 내가 정말 어느 쪽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어느 쪽에 있는지를."  (p.495)


내가 하루키의 팬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구분하여 명확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그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선, 칼날과 같은 좁디좁은 경계에 터를 잡은 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얼리즘 소설을 표방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하고 말이다. 작가가 설정한 그의 소설 속 '하루키 영역'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항상 '소설의 효용' 혹은 '소설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현실에 지친 우리가 다시 또 소설 속 현실 속으로 들어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무거운 현실을 되새김질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오히려 소설을 읽을 때만이라도 이건 소설이니까, 하면서 잠시 동안 현실을 잊고 쉴 수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격렬히 싸우며 뒤엉켰다. 나는 바야흐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에 와 있다. 이곳은 의식과 비의식의 얇은 접면이고,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해야 할지 지금 바로 선택해야 한다."  (p.209)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주인공인 '나'의 일대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리얼리즘 소설인가 하고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 하루키 소설의 특성상 그럴 리가 없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 제목만 들어도 흥분이 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배경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중첩된다.  열일곱 살의 나'는 고교 에세이 대회 수상식에서 열여섯 살의 여학생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꾼 꿈을 상세히 적어 놓는 버릇이 있는 여학생은 '나'에게도 자신의 꿈 이야기를 긴 편지를 통해 써 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사라졌다.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지낸다. 어찌어찌 대학을 겨우 졸업한 '나'는 출판 유통회사에서 근무한다. 여전히 '나'는 독신이고 청소년기에 만났던 그 여학생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여학생이 자신의 꿈속에서 구축해 놓았던 도시에 떨어진다. 도시는 높고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물이라고는 단각수와 밤꾀꼬리가 유일하며,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디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이 있고, 강 옆으로 모래톱이 존재하며, 도시에 하나뿐인 출입문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해가 지면 뿔피리를 불어 단각수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던 소녀는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나'는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 근무한다. 소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잊혀진 꿈을 읽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차를 끓여준다. 도시에는 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다. 내가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나와 분리된 그림자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죽어간다. 도시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분주하던 '나'는 도시로부터 나의 그림자를 탈출시킨다.


현실의 '나'는 이제 45세의 중년 직장인이다. 여전히 독신이지만 평범한 회사 생활을 이어오던 나는 갑자기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회사를 그만둔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어느 산간 지방의 작은 도서관에 관장으로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는 전임 관장이자 도서관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고야스 씨를 만난다. 그러나 도서관의 직원인 소에다 씨로부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야스 씨는 이미 죽은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고야스 씨의 유령을 만난 셈이었다.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고야스 씨는 베레모와 스커트로 대변되는 특이한 복장으로 생활하면서부터 생동감을 찾았고 자신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마을 도서관으로 바꿔 도서관장으로 근무하다 사망하였다. '나'는 죽은 고야스 씨로부터 도서관의 운영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도서관을 자주 출입하는 이용자 중에는 옐로 서브마린 점퍼를 입은 M**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고야스 씨의 묘지 앞에서 독백처럼 말했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나'도 그리지 못했던 도시의 지도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다. 부모는 물론 다른 누구와도 소통을 하지 않던 소년이 '나'에게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 소년은 오직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현실에서의 '나'는 소년의 가족들로부터 추궁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높고 단단한 벽이 있는 그 도시에서 소년과 재회하게 되는데...


도시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고 단단한 벽을 쳐 놓았다고 밝힌다. 현실의 시공간 속에서 사는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던져질 수밖에 없고, 좋든 싫든 우리는 마음의 역병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변화도 없는 도시에서 '나'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나'를 단단히 방어한 채 다른 이의 영혼에서 분리된 '잊혀진 꿈'을 읽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p.280)


한해의 마지막 날. 매년 이맘때면 나는 감기처럼 연말 우울증을 앓는다. 연말연시마다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심리 상태인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의 환경도 빠르게 변하는데 나만 홀로 뒤처진 채 헐떡거리며 알 수도 없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막연히 뒤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높고 단단한 벽도 미처 세우지 못한 채 '마음의 역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비가 오락가락하던 하늘은 해도 없이 온종일 어둡기만 하다. 그렇게 나는 연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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