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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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한 해가 신기루처럼 흘렀다. 시간 속으로의 '그 용감한 낙하를 누군가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또 우리 앞에 다가올 갑진년 한해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무모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던 게 2023년 9월 말경이었다. 하루키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그의 신간 소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하는 처지이니 구매 후 굳이 뜸을 들일 필요도 없었던 게 사실, 760쪽이 넘는 꽤나 긴 이야기지만 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렇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만큼은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망각한 채 너무도 쉽게 읽어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 가눌 길이 없었던 나는 맘에 들었던 몇몇 구절의 문장을 필사하며 작가의 생각을 어림해보려 애쓰곤 했다.


"내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지금 나 자신의 위치가 아마도 '저쪽'과 이쪽' 세계의 경계선 근처이리라는 것 정도였다. 이 반지하 방과 마찬가지다. 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도 아니다. 흘러드는 빛은 엷고 흐릿하다. 나는 그렇듯 어슴푸레한 세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장소에.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확인하려고 한다. 내가 정말 어느 쪽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어느 쪽에 있는지를."  (p.495)


내가 하루키의 팬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구분하여 명확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그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선, 칼날과 같은 좁디좁은 경계에 터를 잡은 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얼리즘 소설을 표방했던 <노르웨이의 숲>을 제외하고 말이다. 작가가 설정한 그의 소설 속 '하루키 영역'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항상 '소설의 효용' 혹은 '소설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현실에 지친 우리가 다시 또 소설 속 현실 속으로 들어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무거운 현실을 되새김질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오히려 소설을 읽을 때만이라도 이건 소설이니까, 하면서 잠시 동안 현실을 잊고 쉴 수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격렬히 싸우며 뒤엉켰다. 나는 바야흐로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에 와 있다. 이곳은 의식과 비의식의 얇은 접면이고,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해야 할지 지금 바로 선택해야 한다."  (p.209)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주인공인 '나'의 일대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리얼리즘 소설인가 하고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 하루키 소설의 특성상 그럴 리가 없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 제목만 들어도 흥분이 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배경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중첩된다.  열일곱 살의 나'는 고교 에세이 대회 수상식에서 열여섯 살의 여학생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꾼 꿈을 상세히 적어 놓는 버릇이 있는 여학생은 '나'에게도 자신의 꿈 이야기를 긴 편지를 통해 써 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사라졌다.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나'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지낸다. 어찌어찌 대학을 겨우 졸업한 '나'는 출판 유통회사에서 근무한다. 여전히 '나'는 독신이고 청소년기에 만났던 그 여학생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여학생이 자신의 꿈속에서 구축해 놓았던 도시에 떨어진다. 도시는 높고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물이라고는 단각수와 밤꾀꼬리가 유일하며,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디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이 있고, 강 옆으로 모래톱이 존재하며, 도시에 하나뿐인 출입문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해가 지면 뿔피리를 불어 단각수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던 소녀는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나'는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 근무한다. 소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잊혀진 꿈을 읽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차를 끓여준다. 도시에는 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다. 내가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나와 분리된 그림자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죽어간다. 도시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분주하던 '나'는 도시로부터 나의 그림자를 탈출시킨다.


현실의 '나'는 이제 45세의 중년 직장인이다. 여전히 독신이지만 평범한 회사 생활을 이어오던 나는 갑자기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회사를 그만둔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어느 산간 지방의 작은 도서관에 관장으로 취직한다. 그곳에서 '나'는 전임 관장이자 도서관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고야스 씨를 만난다. 그러나 도서관의 직원인 소에다 씨로부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야스 씨는 이미 죽은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고야스 씨의 유령을 만난 셈이었다.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고야스 씨는 베레모와 스커트로 대변되는 특이한 복장으로 생활하면서부터 생동감을 찾았고 자신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마을 도서관으로 바꿔 도서관장으로 근무하다 사망하였다. '나'는 죽은 고야스 씨로부터 도서관의 운영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도서관을 자주 출입하는 이용자 중에는 옐로 서브마린 점퍼를 입은 M**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고야스 씨의 묘지 앞에서 독백처럼 말했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나'도 그리지 못했던 도시의 지도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다. 부모는 물론 다른 누구와도 소통을 하지 않던 소년이 '나'에게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 소년은 오직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현실에서의 '나'는 소년의 가족들로부터 추궁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높고 단단한 벽이 있는 그 도시에서 소년과 재회하게 되는데...


도시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고 단단한 벽을 쳐 놓았다고 밝힌다. 현실의 시공간 속에서 사는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던져질 수밖에 없고, 좋든 싫든 우리는 마음의 역병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변화도 없는 도시에서 '나'는 '마음의 역병'으로부터 '나'를 단단히 방어한 채 다른 이의 영혼에서 분리된 '잊혀진 꿈'을 읽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p.280)


한해의 마지막 날. 매년 이맘때면 나는 감기처럼 연말 우울증을 앓는다. 연말연시마다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심리 상태인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의 환경도 빠르게 변하는데 나만 홀로 뒤처진 채 헐떡거리며 알 수도 없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막연히 뒤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높고 단단한 벽도 미처 세우지 못한 채 '마음의 역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울비가 오락가락하던 하늘은 해도 없이 온종일 어둡기만 하다. 그렇게 나는 연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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